269화 : 늑대인간 군단과의 대결
48층 메인 미션의 재난은 그때그때 바뀌는데,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전반적으로 클리어가 어려웠다.
그나마 타락한 검은 늑대 부족의 족장인 헬로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에도 그렇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리, 헬로이가 전면에 나섰다.
헬로이는 순식간에 성문 앞 200미터 지점에 도달하더니.
콰콰콰콰콰콱……!!
두 다리를 땅에 박으며 급정지.
그 과정에서 흙이 비산했는데, 마찰열이 얼마나 강한지, 흙이 순간적으로 밝은 오렌지색으로 변했을 정도다.
치이이익……!
급정지 때문에 허벅지가 흙바닥에 박힌 헬로이는 몸을 곧 빼냈다.
“와, 저 늑대인간 좀 봐.”
“갑옷이 엄청 특이하네?”
“이제 보니 머리에도 투구 같은 걸 썼는데?”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헬로이는 3군주의 인치가 직접 실험적으로 제작한 ‘늑대인간 전용 강화복’을 입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온갖 재난 환경을 견디며 싸울 수 있게 만든 전신 갑주였는데, 불길 속은 물론, 진공 상태에서도 견딜 수 있게 했다.
이는 3군주의 인치 기준에서는 46층~49층 구간이 실험장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이잉.
철컥.
자동탈부착형 투구가 해제되고, 늑대인간의 검은 머리가 드러났다.
헬로이는 키나핀러 도시를 향해 외쳤다.
“인간의 군주는 나오라!!!”
하늘까지 울리는 외침.
염훈은 직접 몸을 날렸다.
휘익!
[신성한 날개] 스킬로 헬로이의 앞까지 날아갔다.
능숙하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착지한 염훈을 보고, 헬로이는 ‘90점.’ 하고 점수를 매겼다.
“나왔다.”
염훈이 말하며 빅 썬더를 들어 올렸다.
헬로이는 빙긋 웃었다.
염훈의 표정은 더 험악해졌다.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나는 왜 불렀냐? 뭐, 보나 마나 ‘군주끼리 일대일로 한 판 붙자.’ 뭐 이런 소리 하려고 부른 거겠지?”
“키나핀러 왕국의 새로운 국왕 염훈 만세.”
“엥?”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타락한 검은 늑대인간 부족의 지배자인 헬로이라고 합니다.”
헬로이는 45도 각도로 인사했다.
적대 상태의 군주에게 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예의 바른 인사였다.
“사실 저의 진짜 정체는, 여러분께 3군주 세력으로 알려져 있는 집단 중 하나인 ‘인치 특수과학실험국’ 소속 요원입니다.”
“음……!”
꽤나 중대 정보였다.
염훈이 3군주 측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므로.
‘으아, 이런 일은 은혁이 맡아서 해야 하는데.’
하지만 은혁은 어디에도 없었고, 염훈이 직접 해결해야 했다.
“음. 놀랍군.”
염훈은 솔직하게 대답했고, 헬로이는 빙긋 웃었다.
“바로 용건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음, 그러시오.”
“저를 귀국의 대장군으로 삼아주십시오.”
“에? 부하로?”
“네. 저는 현재 3군주의 인치 님의 부하이므로, 충성을 맹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키나핀러 왕국의 지배자에게 스탯창 [맹세]를 하는 방식으로 섬겨도 좋다는 언질을 이미 들었습니다.”
헬로이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저를 부하로, 가능하다면 고위 장군직인 대장군이나, 위생이나 의학을 담당하는 위생부 장관 등의 직위로 받아주십사 요청드립니다.”
“자, 잠깐, 갑자기 너무 본론으로 들어간 거 같은데.”
염훈도 빠른 본론은 좋아했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전개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하하하. 일단 폐하의 선입견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군요. 지금의 저는 재난 미션의 일부이지만, 진심으로 키나핀러 왕국에 피해를 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 왜 수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온 거요?”
지금 도착한 이는 헬로이 하나뿐이지만, 지평선 너머와 숲 곳곳에는 무수히 많은 늑대인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염훈은 그들의 살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염려 마십시오. 그들은 오직 저의 명령만 듣습니다. 다시 말해, 폐하와 합의가 이뤄지기만 하면, 그들은 전부 폐하의 부하가 될 것입니다.”
“흠, 그건 그렇다 치고, 왜 하필 내 대장군이나 위생부 장관 같은 직위를 원하는 거지?”
“그래야만 키나핀러 왕국의 모든 신민들을 늑대인간으로 만들어, 재난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인류로 개조하기 편하니까요.”
“엥?!”
“여긴 키나핀러 왕국. 재난의 땅…… 맞지요?”
“맞는데? 그거랑 신민들을 늑대인간으로 만들겠다는 거랑 무슨 상관…….”
말하던 염훈은 깨달았다.
헬로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늑대인간이 되면 강해집니다. 어지간한 재난은 웃으며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집니다.”
헬로이는 주변을 둘러보는 시늉을 해보였다.
“재난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강인한 육체를 선물하는 것. 그것이 제 목적입니다.
“음……!”
확실히 늑대인간은 강했다.
압도적인 재생력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질병에는 걸리지도 않는다.
실제로 붉은 늑대인간인 박병철의 경우에도, ‘환몽증’ 같은 정신적인 전염성 재난에 대해서도 상당한 강점을 보인 적이 있다.
거기다가 사냥 능력도 뛰어나지니 식량 걱정이 줄고, 집 없이 비 오는 밤에 비를 맞으면서 자도 별 불편을 못 느낀다.
‘어? 잠깐. 엄청 괜찮게 느껴지는데?’
염훈은 상식과 실리가 충돌하자 주춤하게 되었다.
“폐하께서는 늑대인간으로 감염시켜 변화시킨다는 걸 조금 불편하게 여기시는 거 같군요.”
“확실히 그렇지.”
“그게 과연 정말 나쁜 걸까요?”
“잠깐만. 1분만.”
염훈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기존의 NPC들을 늑대인간으로 개조하는 것은 비윤리적인가?’
물론, 허락 없이 강제로 변이시킨다면, 흡혈귀 감염만큼이나 나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네가 대장군 또는 위생부 장관 등의 고위직이 되고 싶은 건, 최대한 합법적으로, 신민들의 동의를 받아서 저들을 늑대인간으로 만들고자 함인가?”
“그렇습니다. 만약 제가 저들을 강제로 늑대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다면…….”
헬로이는 숨길 수 없는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가 곧 감추었다.
“이미 이 땅은 늑대인간의 땅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침략자의 이빨로 모두를 물어뜯은 뒤 피를 주입해서 감염시키는 일은, 제 본의가 아닙니다.”
“네가 그 정도로 강한가?”
“강합니다. 일단 48층에서는 최강입니다.”
헬로이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강제로 변화시킨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난이겠지요. 그러니, 폐하의 허락을 구합니다.”
“허락하지 않겠다.”
염훈이 즉각 말하자 헬로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째서입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한 번 늑대인간이 되면 돌이키기 어렵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게다가…….”
“거, 말 많네, X발 새끼.”
“엥?”
염훈은 기가 막혔다.
착한 척하다가 갑자기 급발진하는 헬로이가 이해가 안 갔다.
“야. 좋게 폐하, 폐하 거리니까 네가 진짜 왕인 줄 아냐? 망해 버린 왕국의 도시 하나 장악한 거 가지고 잘난척하긴. 카악, 퉤!”
발치에 침을 뱉었다.
염훈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거부하길 잘한 것 같군. 급격한 성격 변화는 늑대인간의 부작용이냐, 아니면 그냥 네 인성 문제냐?”
“낄낄! 어느 쪽일까?”
스으윽.
헬로이의 검은 손톱이 길어졌다.
[감염] 스킬이 깃든 손톱이었다.
“타락한 검은 늑대 부족은 완벽하지만…… 다른 존재를 타락시켜야만 수명이 연장된다는 단점이 있지.”
“허! 뭐야, 그게. 주기적으로 피 빨아 먹는 흡혈귀보다 더하잖아!”
진실을 알게 된 염훈은 기막혀했지만 헬로이는 낄낄거릴 뿐이었다.
“일단 왕인 네놈부터 감염시켜주지.”
“해봐.”
염훈은 그렇게 말하며 [무적 돌진]을 발동했다.
콰콰쾅!!!
냅다 들이받는 기술이지만 워낙 가까웠기에 헬로이는 그대로 맞았다.
콰르르르르……!!
한참 저편으로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와아아아!!”
“역시 우리 길드장!!”
NPC와 불패불굴 길드원 모두가 열광했다.
하지만.
“크큭. 겨우 이 정도인가?”
헬로이는 별 타격을 받지 않고 일어섰다.
슈우우우…….
헬로이의 검은 손톱에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죽어라.”
화악!!
염훈과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손톱을 휘둘렀다.
콰콰콰콱!!
그 손톱은, 염훈이 옆으로 피한 순간, 염훈이 있던 공간 자체를 쥐어뜯고, 바닥을 파헤쳤다.
파바방!!
새까맣게 변한 흙은 인근 망루에 닿을 정도로 높이 비산했다.
‘강한데? 정통으로 맞았다간……!’
염훈이 긴장한 순간.
타앗!!
헬로이가 달려들었다.
염훈과 헬로이는 접근전을 펼쳤다.
번쩍!
투쾅!
콰과가각……!
홀리 썬더와 프리즘 랜스를 모두 꺼낸 염훈의 공격.
콰직!
스걱!
콰가각……!
손톱과 이빨을 이용한 야성의 헬로이의 공격.
얼핏 호각으로 보였지만.
‘내가 밀린다……!’
염훈은 [2초 무적]과 방어구의 힘으로 치명상은 전부 막아냈지만, 문제는 헬로이의 방어력 또한 우수하다는 점이었다.
[홀리 썬더]와 [홀리 라이트닝]이 이미 여러 방 적중했는데도, 헬로이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았다.
‘이것이 늑대인간 + 최신 갑옷의 힘인가!’
가뜩이나 재생력과 전투력이 뛰어난 늑대인간이, 3군주 세력의 신기술로 제작한 갑옷까지 입고 있으니, 영 데미지가 안 박혔다.
“크크크! 네놈의 백성들이 경악하는 게 느껴지는구나.”
“닥쳐라!”
염훈이 [신성한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
아우우우우우……!!
어느새 100미터 거리까지 다가온 늑대인간들이 동시에 울부짖었다.
-충성도 높은 늑대인간들이 울부짖습니다!
-늑대인간 부족의 알파, 헬로이의 능력치가 350% 증가합니다!
늑대인간 부족만이 지니고 있는 힘이, 순간적으로 헬로이에게 집중됐다.
“하아앗!!”
콰콰쾅!!!
일격에 염훈은 튕겨 나가 성벽에 충돌했다.
꽈콰쾅!!!
꽈르릉……!!!
성벽의 한쪽이 무너져 내리고, 그 위에 있던 경비대원들 일부가 함께 쓰러졌다.
“꺄악!”
“아악!”
그걸 본 헬로이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왕이여! 네놈의 몸뚱이가 곧 저들의 재난이 되었구나! 하하하하!”
“크윽…….”
염훈은 죄책감에 몸을 떨며, 자기 자신보다 먼저 NPC들부터 회복시켰다.
“[광역 치유]! [상급 치유]!”
파앗! 파앗!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서 빠르게 치유되었다.
하지만.
타탓!
헬로이는 집요하게도, 굳이 무너진 성벽 앞까지 달려왔다.
염훈은 부하들을 치유하느라 등을 보인 상태였다.
“사격!”
“염훈 폐하를 구해라!”
“길드장님을 보호해!”
성벽 위의 다른 이들이 동시에 외치며 스킬을 썼다.
소환수, 화염, 화살 등등을 날렸지만, 능력치가 350% 상승한 헬로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네놈의 눈앞에서, 네놈이 아끼는 놈들부터 늑대인간으로 감염시켜줄…….”
그 순간, 스테이지 전체를 통틀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휘오오오오!!
휘오오오오!!
두 개의 돌풍이 휘몰아쳤다.
하나는 배불뚝이 마이크가 운영하는 골동품점 겸 고물상에서부터.
다른 하나는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휘몰아쳤다.
고물상의 금속들은 모두 제물로 바쳐져 하늘로 올라갔고, 그 대가로 하늘에서는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두 돌풍이 하나로 합쳐지더니, 무언가가 강림했다.
-금속 차원의 거신이 강림합니다!
“……에?”
“저, 저게 뭐……!”
메탈 서전트의 크기를 수천, 수만 배로 키운 다음 묘하게 나이 들어 보이게 꾸미면 금속 차원의 거신과 비슷한 외모가 될 터였다.
스으으윽…….
금속 차원의 거신은 얼굴과 한쪽 팔만 47층 스테이지로 꺼냈다.
전체가 강림하기에는 받은 제물의 양이 적고, 운명치 관련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은혁과의 계약대로.
금속 차원의 거신은 한마디 했다.
그리고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갑자기 빠르게 휙, 팔을 들어 올리더니.
콰콰콰콰콰콰쾅!!!
도망치는 바퀴벌레를 때려잡듯, 손바닥을 여러 번 바닥에 마구 내리쳤다.
타락한 검은 늑대인간들이 학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