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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1화 (271/434)

271화 : 우리가 재난이 된다 (1)

다음에 어떤 재난 웨이브가 올 것인지는 은혁도 정확히 몰랐다.

재난 클리어 수준에 따라 난이도가 그때그때 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상 최고 난이도의 웨이브가 반드시 한 번은 찾아올 터.

‘그때, NPC들의 염훈만 바라보며 하나 된 정신력이 쓸모가 있지.’

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이크에게 NPC들을 위해 벙커를 개방하라 일렀다.

다행히 마이크는 순순히 알았다고 했다.

NPC들을 자기 벙커에 공짜로 보호해 줌으로써, 그동안 알게 모르게 폐자재들이나 골동품을 허락 없이 챙겼던 일에 대한 면죄부를 얻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 발상은 은혁도 크게 나무랄 게 없어서 일일이 지적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야.”

은혁은 박병철을 불렀다.

“…….”

박병철은 못 들은 척했다.

“야, 박병철!! 안 들리는 척하지 마라!!”

은혁이 거칠게 부르자 얼른 달려왔다.

“불렀나?”

“그래, 이 새끼야. 이 쓸모없는 놈.”

냅다 매도를 박았다.

막상 늑대인간과의 결전에서는 박병철이 별 쓸모가 없었다.

물론, 박병철도 할 말은 있었다.

“어이! 전술 방침이 바뀐 걸 나보고 어쩌라고!”

전투 방식이 야전이 아닌 수성전으로 바뀌었기에, 박병철과 그 부하들도 성벽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닥치고 먹어.”

“어?”

“저기 널브러진 늑대인간들 시체 다 먹으라고, 이 새끼야!!”

“뭐, 뭣?!”

그랬다.

헬로이와 그 부하들은, 그냥 늑대인간이 아니다.

3군주 세력의 인치가 개발한 신종 늑대인간들이다.

“너같이 특수한 늑대인간이라면 동족을 섭취할 때 보너스가 있을 거다. 당장 처먹어.”

“으으…… 심장이라면 먹을 수 있지만.”

박병철은 몸서리를 치면서 [심장 뽑기] 스킬로 심장만 파먹었다.

콰드득!

심장을 뽑아 먹는 모습은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파앗!

-[심장 먹기] 스킬로, 같은 늑대인간의 힘을 흡수합니다!

-전체 스탯 효율이 10% 증가합니다!

“우오옷……!”

박병철은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박병철의 부하 늑대인간들도 심장을 뽑아 먹으며 강해졌다.

“우리가 최강이다!!”

“쿠우오오오오오!!!”

늑대인간들의 울부짖음은 같은 편이 들어도 흠칫할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어이, 그만 먹으려고?”

“에?”

“평소에는 같은 편 심장도 먹던 놈이 왜 이제 와서 엄살이야? 나머지도 팍팍 처먹어!!”

은혁이 박병철에게 윽박지르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아니, 정말로?”

“그래. 아직 놈들 시체는 많잖아? 심장만 먹지 말고 싹 다 발라먹어.”

“그, 그건!”

“이제 와서 윤리적이지 않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으으…….”

“정 찝찝하면 내가 도와주지. 혈인술사 스킬 [피의 포식]이라고 하는 스킬인데…….”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를 꺼낸 뒤, 냅다 박병철을 후려쳤다.

촤악!

“아악?! 미친 새끼! 갑자기 뭐야!”

“스킬 전수 중이다.”

은혁이 혈인술사 스킬과 뱀프릭 체인 소드는 연관성이 높았다.

플레이어 간 스킬 전수가 매우 어려운 100층탑의 시스템이기에, 은혁은 [피의 포식] 스킬을 뱀프릭 체인 소드에 건 뒤, 직접 휘둘러 피해와 재생을 반복시킬 생각이었다.

“재생력에 집중해라. [피의 포식]이 걸린 무기에 맞고 회복하고를 반복하다 보면 확률적으로, 네 숙련도가 오르면서 스킬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야이, 이건 도가 지나치잖아!”

“박병철. 난 네 재생력과 근성만큼은 인정한다. 그러니 닥치고 맞아라.”

촤악! 촤악! 촤악!

“아악! 아악! 아악!”

가엾은 죄수에게 채찍질을 가하는 악독한 간수처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뱀프릭 체인 소드를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히익?!”

“너무 잔인해!”

“저,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으으, 말 안 들으면 저렇게 조진다는 건가?”

키나핀러 왕국 NPC들과 기타 플레이어들 모두가 경악 속에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피의 포식] 스킬을 획득하셨습니다!

마침내 박병철의 눈에 메시지가 떴다.

그제야 은혁이 칼질을 멈췄다.

“싹 다 흡수해서 강해져라. 당장.”

“으으…….”

박병철은 비틀거리면서도 [피의 포식]으로 사체들을 흡수했다.

늑대인간의 알파인 박병철이 스킬을 얻자, 부하들도 [미완성 피의 포식] 스킬을 자동 습득했다.

그들은 앞다투어 사체를 흡수했다.

“박병철. 넌 잠시 뒤 왕궁으로 와라.”

은혁은 그렇게만 말하고 왕궁으로 달려갔다.

* * *

소개 및 대피 작업이 끝난 뒤, 핵심 인물들이 왕궁에 모였다.

불패불굴 길드의 주요 플레이어들 및 평화 길드와 구원 길드의 1군인 로널드와 라벨리아도 있었다.

“이번 싸움은 거대한 규모의 레이드가 될 거다.”

안 쓴 지 오래된 어전 회의실에서 은혁이 설명했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완전히 새로운 흡혈귀를 창조할 정도의 지고의 위상이다. 잔머리를 굴려도 도리가 없어. 방법은 하나뿐!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죽인다.”

은혁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하자, 다들 전율했다.

지고의 위상의 본체를 직접 죽이는 건 다들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저어, 강은혁 플레이어. 그건 너무 무리한 계획 아닐까요?”

라벨리아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47층 미션 속 재난은 도시 단위의 재난이다.

하지만 48층 미션 속 재난은 도시보다 더 큰 권역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수준의 재난.

“하지만 일반인 피해가 너무 크지 않을까요?”

아무리 대피를 시켰다고 해도,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지고의 위상이다.

지고의 위상과 싸우다 보면 민간인 NPC 중에서도 사상자가 반드시 나올 터.

하지만 은혁은 강경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애초에 48층 메인 미션은, 버티다가 자진 포기를 하거나, 정면으로 맞서 싸우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권을 플레이어에게 맡기는 타입이니까.”

즉, 어중간하게 온건한 방법은 없다.

재난 앞에서 포기를 할 거면 확실히 포기하고, 극복하고 이겨낼 거라면 확실히 이겨내야 한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와 싸워서 이길 구체적인 방법은 있습니까?”

로널드가 질문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인 ‘플랜 A’이고, 다른 하나는 다소 위험한 방법인 ‘플랜 B’가 되겠지요.”

“궁금하군요. 부디 알려주십시오.”

“저에게는 여러 직업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에너지를 흡수하는 혈인술사’입니다. 그리고 매우 특수한 뱀프릭 계열 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의 무기와 능력을 이용해서…….”

은혁은 결의에 찬 눈으로 말했다.

“남은 제한 시간 50분 이내에, 여러분을 전부 다 저의 ‘블러드 솔저’로 만드는 겁니다.”

경악.

모인 이들 대다수가 입을 쩍 벌렸지만 아무 소리도 안 나왔다.

오직 익숙해진 염훈만이 핀잔을 줬다.

“그거, 사실상 전부 다 흡혈귀로 만들겠다는 소리지?”

“블러드 솔저랑 흡혈귀랑은 차이가 좀 커. 전자는 혈인술사 스킬로 구현되는 소환수에 가깝고, 후자는 아예 종족값이 변이를 일으키는 것에 가까운데…….”

“한마디로, 네가 미리 모든 사람들을 감염시켜서, 피구름 속의 송곳니에 감염되는 것을 막겠다는 거 아냐?”

“거칠게 해석하면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 하여튼!”

은혁은 민감한 부분에 대한 설명은 넘어가고 손뼉을 짝 쳤다.

“그렇게 저와 염훈을 제외한 모두가 블러드 솔저가 되면, 일제히 돌격합니다.”

“어이, 잠깐!!”

경악했던 이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왜 염훈만 봐주는 겁니까!”

“우리보고 블러드 솔저 상태로 돌격하라고 하셨는데, 그럼 우린 안전합니까?!”

“블러드 솔저가 된 다음 다시 원상복구가 되나요?!”

매우 예리하고 좋은 질문들이었다.

은혁 자신도 답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

은혁은 솔직한 침묵 말고는 해줄 반응이 없었다.

“뭐야!”

“왜 갑자기 입을 다무는데!”

반응은 더 뜨거워졌다.

“자자, 그만. 잠시만요.”

로널드가 중재에 나섰다.

“강은혁 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잖습니까? 위험한 계획이라고.”

로널드는 은혁을 돌아봤다.

“위험한 계획인 플랜 B를 들어봤으니, 이제 안전한 계획인 플랜 A를 들려주십시오.”

“음? 방금 그게 플랜 A였는데요.”

“……에?”

“방금 그게 그나마 안전한 계획이었단 말입니다.”

“뭐야, 그게!!”

결국, 로널드도 분노를 터뜨렸다.

“자, 잠시만요. 일단 들어보죠.”

라벨리아가 겨우 말렸다.

“그럼 플랜 B를 말씀드리죠.”

은혁은 재난의 성좌의 성유물을 꺼내 보였다.

“앗!”

“그것은!”

몇몇 성직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요. 이건 키나핀러 왕국 전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카라미타스의 성유물입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소유권을 얻었기에, 저는 재난의 힘을 어느 정도 쓸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하자 염훈은 눈치챘다.

“옳지! 뭔지 알았다.”

염훈이 퀴즈의 정답을 먼저 알아낸 소년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말하자면 ‘역’재난을 걸겠다 이거지?”

“역시 염훈. 잘 아는군.”

피구름 속의 송곳니가 강림하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재난이다.

그리고 피구름 속의 송곳니라는 재난에 맞서기 위해, 은혁 측에서 새로운 재난을 만든다.

그리고 은혁이 만든 재난과 피구름 속의 송곳니라는 재난을 서로 충돌시킨다.

일종의 맞불을 놓는 셈이다.

그 경우의 장점은 일반인에게 가해지는 피해가 줄어든다는 것.

재난끼리 충돌하느라 외부에는 상대적인 피해가 적다.

“비유하자면, 폭염 특보와 태풍이 동시에 불어 닥치는 날에는 서로를 소멸시키며 기온이 내려가면서 바람도 적당히 선선하게 부는 것으로 그치죠. 대충 그런 걸 노리는 겁니다.”

은혁이 설명하자 다들 감탄했다.

“더 좋은 계획 같은데요?”

“일반 NPC에게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 간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저기, 그런데 이게 왜 위험한 계획인가요?”

그러자 은혁은 웃었다.

“크크큭…….”

실내 온도가 낮아지는 웃음이었다.

“왜냐하면 맞불을 놓을 그 재난이……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에?”

“우리들 자신이 재난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은혁이 카라미타스의 성유물과 뱀프릭 체인 소드를 양손에 들었다.

“성유물의 힘으로, 메인 미션에 참가한 우리들의 속성을 단순 ‘플레이어’가 아닌, ‘재난’으로 덮어씌울 겁니다.”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은혁은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 [염상 조작]과 도적 스킬 [그림자 결속], 그리고 성유물의 힘을 융합시키는 히든 이펙트로 구현이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피구름 속의 송곳니를 향해 몸으로 들이받는 겁니다.”

그렇게 재난과 재난을 충돌시킨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지고의 위상이며, 하나의 차원이기도 합니다. 충돌의 순간, 저와 염훈은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저희들은요?”

“여러분은 제자리에서 충돌의 순간 생긴 ‘출입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마 수많은 흡혈귀들이 뛰쳐나올 테니, 쉽진 않겠지요.”

뛰쳐나오는 자잘한 흡혈귀들은 박병철과 그 부하 늑대인간들에게 사냥을 맡길 생각이었다.

피구름 속으로 들어간 은혁과 염훈은 그 속에 있는 ‘핵’을 찾을 것이다.

“핵을 찾으면? 그다음에는 제 뱀프릭 체인 소드와…….”

척!

염훈을 가리켰다.

“염훈의 스킬로 핵을 정화, 흡수합니다. 그리고 나면? 끝.”

은혁은 자기 설명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생각해도 정말 멋진 계획이군요. 뭐, 이게 플랜 A와 B입니다. 어느 플랜을 진행할 것인지는…….”

턱!

은혁은 염훈의 어깨를 짚었다.

“키나핀러 왕국의 국왕이신 염훈 폐하께서 결정하는 걸로.”

“결정했다!”

텅!

염훈은 빅 썬더로 책상을 가볍게 때렸다.

그리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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