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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2화 (272/434)

272화 : 우리가 재난이 된다 (2)

“당연히 플랜 B다!!”

염훈이 외치자, 다들 ‘설마 했더니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왕으로서의 피가 끓는다!! 으랴아아아아!!!”

염훈이 포효하자 다들 기겁했다.

“세상에, 저 인간도 정상은 아니었네.”

“그나마 정상인 아니었어?”

“강은혁이란 인간이랑 같이 지내다 보니 저렇게 변했나 봐.”

염훈은 투지를 불태우느라 듣지 못했다.

“국왕이 하드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겠어!!”

염훈은 책임감을 느낄 때 가장 강해지는 타입이었다.

평소에는 은혁이 힘든 일을 죄다 뒤집어쓰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염훈은, 왕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할 기회가 오자 피가 끓었다.

“자자, 조금만 참아. 3단계 재난 웨이브 시작 때까지 같이 합도 맞춰보고 해야 하니까. 그리고 너, 박병철.”

“이번에야말로 내가 선봉인가?”

심장까지 파먹은 직후였기에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선봉은 아니고 예비대다. 주요 역할은 흡혈귀 사냥이다.”

재난과 재난이 충돌하면, 흡혈귀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은혁과 염훈은 내부로 들어가야 했고, 나머지 이들은 통로를 유지해야 했다.

“떨어져 나오는 흡혈귀들은 우리들을 무시하고 민간인을 노리러 달려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부스러기들을 잡아먹으라 이거군.”

“잘 아는군.”

“그동안 활약할 기회가 없어서 돌아 버릴 것 같았는데 잘됐군. 맡겨둬!”

“좋아.”

은혁은 모두를 돌아봤다.

“그럼 미리 연습해 봅시다!”

* * *

-3단계 시작까지 3초…….

-3단계 시작까지 2초…….

-3단계 시작까지 1초…….

-웨이브 3단계가 시작됩니다!

화악……!

키나핀러 왕국 전체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공기에서는 철분 냄새가 가득 차서, 입안에 녹슨 물을 머금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슈오오오오오…….

붉은 하늘에, 더 짙은 붉은색의 구름이 뭉치는가 싶더니, 서서히 지고의 위상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경고! 강력한 지고의 위상이 곧 강림합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1분 이내에 미션을 취소하십시오!

-취소는 웨이브 클리어 실패로 간주하지 않기에 추가 페널티가 없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메인 미션 참가자들에게 경고를 보내왔다.

지고의 위상의 본체가 물질계에 강림하는 대사건이기에, 그리고 극도로 난이도가 높은 존재라고 관리국이 판단했기에 진입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으으…….”

“으윽.”

미션에 참가하지 않는 다수의 NPC들은, 이미 안전한 피난처에 숨어 있는데도 의식을 잃고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편, 그 반대도 있었다.

“캬아악!”

“캬악! 캬악!”

완전히 토벌되지 않고 곳곳에 숨어 있던 흡혈귀들이 하늘을 향해 마구 손을 뻗어댔다.

사실, 그들은 고대 혈족 계열의 흡혈귀로, 혈운파 계열의 흡혈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본체를 본 순간 눈이 붉게 물들고, 맹목적인 추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휘리릭!

하늘에서 붉은 빨대 같은 것이 여러 가닥 뻗어 나오더니.

푸확!

푸화학!!

그대로 흡혈귀들을 꿰뚫고 빨아먹었다.

츄르르륵……!

흡혈귀였던 것들은 빨린 채 구겨져서 찌그러진 음료수 캔처럼 뭉쳐지고 내팽개쳐졌다.

“강하군.”

“그러게.”

은혁과 염훈은 왕궁 2층 발코니에 서서 냉정한 눈으로 사태를 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1층에서 대기 중이었다.

“은혁아.”

“왜?”

“플랜 B, 틀림없겠지?”

“거의.”

“거의?”

염훈이 은혁을 돌아봤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피구름 속의 송곳니 내부 구조는 정확히 몰라. 작전 자체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실제 내부 구조가 어떤지에 따라 성공률은 달라지겠지.”

“음, 그 정도로는 안 되는데.”

“왜 안 됨?”

“야, 우리만 망하는 게 아니라 NPC들도 다 죽는 거잖아.”

“후회되냐? 그냥 미션 포기할 걸 그랬나, 하고.”

“그건 또 아님.”

“그렇지?”

은혁은 히죽 웃었다.

“나는 지금이 딱 좋다고 봐.”

세상에는 실패해도 괜찮아~ 라는 말이 넘쳐난다.

고마운 말이지만, 사실은 아닌 경우가 참 많다.

구급 요원이 구조 과정에서 실수 한 번 하면 사람이 죽는다.

건축가가 건물 설계 한 번 잘못하면 여럿이 죽는다.

군대나 항공사 같은 곳의 실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00층탑도 마찬가지지.’

회귀 전의 은혁은 노력하는 전사로 시작하면서, 수많은 실수를 체험했다.

작은 실수 하나하나가 끔찍한 사태를 초래했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은혁은 미래를 알지 못했고, 직업은 그저 노력하는 전사였으니까.

‘더는 아니야.’

“염훈.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불패불굴 길드를 만들면서 위태로운 순간은 꽤 많았어.”

“…….”

“실수하면 나 혼자 죽는 게 아니라, 너까지 같이 죽는 일들이었지.”

“그랬지…….”

“하지만 넌 나를 믿어줬지.”

“그야…….”

“그야 뭐?”

“그야 친구니까?”

“왜 의문형이야.”

“친구니까!”

“그런 거야. 바뀐 건 없어.”

은혁이 대피소를 둘러보며 말했다.

“너는 날 친구라는 이유로 믿었지. 죽음보다 더한 재난 앞에서, 저 NPC들은 너를 왕이라는 이유로 믿을 거다. 그것 말고 여태까지와 차이는 없어.”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로 발코니의 난간을 찍었다.

콰쾅!!

“염훈. 실패했을 때 자기 자신만 망하는 건 견뎌도, 내 친구, 내 부하, 백성들이 죽는 것은 못 견디게 두려워? 그럼 실패하지 마.”

“하…….”

너무 간단한 답이다.

하지만 염훈은 대부분 사람들처럼, ‘그게 말처럼 쉽냐! 그렇게 말처럼 되면 세상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왜 있겠냐!’라고 따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은혁이 녀석은 평소에 늘 그런 각오로 싸워 왔고, 늘 성공해 왔다.’

염훈은 제멋대로 구는 은혁이 느끼는 책임감을 한번 떠올려 봤다.

“아이, 씨잇X!”

콰쾅!!

빅 썬더를 가로로 휘둘러서 발코니 난간을 모조리 박살 내 버렸다.

“푸하하! 갑자기 왜 부수냐?”

“난간을 부순 게 아니라 내 망설임을 부순 거다!!”

염훈은 프리즘 랜스를 꺼내더니, 서서히 강림 중인 피구름을 가리켰다.

“거, 빨랑 좀 내려와!! 뭐 대단한 새끼라고 그렇게 미적거리는 거냐!!!”

염훈의 일갈은 왕궁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지고의 위상, 피구름 속의 송곳니가 강림하여, 하강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세상이 조용해졌다.

하늘은 고요한 피의 호수처럼 변했고, 피구름 속의 흡혈귀는 소리 없이 촉수를 여러 개 꺼냈다.

열 가닥의 촉수들은 마치 손가락처럼 변해서 왕궁 쪽으로 다가왔다.

“읏…….”

“대기해.”

은혁은 이번 계획에 참가한 모두에게도 [텔레파시] 스킬로 단단히 명령해 두었다.

부딪히려면 더 가까워져야 했고, 집단 비행으로 돌진하는 건 다소 위험했다.

‘놈이 더 가까이 오도록 한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이 최선의 유인책이었다.

-배…… 불…… 러…….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그렇게 말했다.

부글부글부글……!

피구름이 마구 꿈틀거렸다.

자세히 보면 피구름의 표면에 거품이 맺혀 있었다.

각 거품 크기는 사람 얼굴 크기였고, 거품이 터지기 직전 흡혈귀의 얼굴 형상으로 변했다.

펑!

퍼벙!

무수히 많은 거품들이 터질 때마다, 수많은 흡혈귀의 목소리를 냈다.

-내보내줘어!

-이럴 줄 알았으면 흡혈귀가 안 되는 건데!

-으아아아! 죽여줘어어……!!

통째로 먹힌 남작급, 자작급 흡혈귀들이었다.

저들 중 선택받은 존재만이 백작급 흡혈귀가 되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선택받기 위해, 저 피구름 내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흡혈귀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혈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저 내부는 지옥 같겠지.’

은혁은, 성기사 동료 염훈이 있어서 든든하다 생각했다.

스르르륵.

피구름 속에서 나온 촉수가 왕궁의 좌우 측면에 찰싹 달라붙는가 싶더니.

-크우우우우…….

왕궁을 붙잡고, 피구름이 서서히 내려왔다.

은혁은 미리 자신의 그림자와 결속시켜둔 왕궁 건물의 그림자를 재점검한 뒤 외쳤다.

“좋아! 곧 격돌한다!”

은혁은 앞서 계획한 대로, 스킬들을 조합했다.

우선 [그림자 방출] 스킬로 자신의 그림자를 팽창시키고,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그림자와 맞닿게 했다.

“[염상 조작] + [그림자 결속] + 카라미타스의 성유물 융합!”

쿠구구구구구……!

비정상적이고 이질적인 힘이 한 곳에 응축되고, 카라미타스의 성유물은 깨질 듯 진동했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재난 결속]!!”

화아악……!

그렇게 은혁과 염훈, 그리고 왕궁의 그림자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들 모두에게 ‘재난’이라는 ‘염상값’이 덧씌워졌다.

“돌격!!”

염훈이 [신성한 지휘] 스킬과 함께 외쳤다.

타앗!

이번 임무에 참가한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은혁과 염훈의 뒤로 보였다.

은혁과 염훈을 꼭지점으로 하는 쐐기 대형을 이룬 채, 다 함께 돌격했다.

-비정상적 재난 감지!

-비정상적 재난 감지!

강은혁 일행과 피구름 속의 송곳니가, 서로가 서로를 비정상적인 재난으로 인식했다.

-경고! 재난과 재난이 충돌합니다!

뿌두드드드등……!!

차원이 일그러지는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재난과 재난이 서로 중화시켰다.

그 순간.

쩌어억……!

피구름의 전면부가 조개처럼 입을 벌렸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송곳니가 있었다.

-히이익.

-열렸다아.

-흐으으으.

그 송곳니의 정체는 반쯤 소화되어 허옇게 변한 흡혈귀들이었다.

마음의 각오를 한 플레이어들조차 흠칫할 정도의 끔찍한 몰골이었다.

-히히힉.

-우흐흐.

-나가자아.

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려 한 그 순간.

“우리 차례가 왔다!!!”

벼르고 있던 박병철이 외쳤다.

“쿠오오오!!”

늑대인간으로 변한 박병철과 부하들이 돌격했다.

타탓!!

흡혈귀들이 본능적으로 탈출하려 들자, 요격하듯 하나씩 잡아 죽였다.

촤악!

촤자작!

“들어가기 전에 정리 좀 할까?”

원래 계획은 지체 없이 돌격하는 것이었지만, 은혁은 혹시 모를 NPC 피해나, 남아 있을 플레이어들을 위해 청소를 하기로 했다.

“염훈! 전에 말한 합체기다!”

“아꼈다가 안쪽에서 안 쓰고?”

“미리 한 방 크게 먹이자고!”

투쾅! 투쾅!

은혁은 선즈 리볼버를 꺼내서 튀어나오려는 흡혈귀들을 쏘며 외쳤다.

생각보다 튀어나오려는 흡혈귀들이 많아서 입구에서 한 번 정리하고 들어가는 게 나을 터였다.

“[사이오닉 필드] + [거대화] 융합!”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로 생성된 [사이오닉 필드]는 빛을 넓게 뿜어내는 오목 렌즈처럼 구부정하게 변했다.

-히든 이펙트 발동!

“[그레이트 사이오닉 렌즈]!!”

그동안 염훈은 프리즘 랜스에 [신성한 오러]를 모았다.

“여기에 갈겨!!”

“으랴앗!!”

신성한 힘을 모은 단순한 찌르기.

파앗!!!

신성한 빛이 렌즈를 통해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내부로 뿜어져 나갔다.

-그아아악……!!

표백.

빛이 뿜어져 나가면서 점차 약해졌지만, 입구 근처에서 탈출할 기회를 노리던 흡혈귀들은 싹 다 죽었다.

-궁술사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궁술사 숙련도 : 32%+.

-궁술사 스킬 [차지 샷]을 획득하셨습니다!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숙련도가 8% 증가했습니다!

-현재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숙련도 : 32%+++.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 [천쇄혼살참]을 획득하셨습니다!

“좋아! 돌입하자!!”

은혁과 염훈은 뛰어들었다.

-쿠오오오오……!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울부짖으며, 은혁과 염훈을 통째로 씹으려 했으나.

“이놈이 어딜!”

“다들 버텨라!”

플레이어들이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몸으로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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