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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3화 (273/434)

273화 : 피구름 속의 송곳니 속으로

“맛이 어떠냐, 이 자식아! [돌벽 소환]!”

“모조리 죽여주마! [에시드 애로우]!”

“흡혈귀놈들의 턱관절 장애가 되어주마!! [쇼크 웨이브]!!”

불패불굴 길드원들답게, 필요한 순간에는 깡다구를 발휘할 줄 알았다.

‘재난’ 속성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몸으로 버티면서, 각종 스킬을 난사해댔다.

그걸 본 로널드와 라벨리아도 용기를 냈다.

“정말 대단하군요!”

“여러분이라면 할 수 있겠어요!”

그동안 평화 길드와 구원 길드의 1군 플레이어들은 의지도 강했고, 재난에 맞설 정도의 실력도 있었지만, 재난을 압도하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불패불굴 길드원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 * *

“클리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기냐!”

붉은 내장 같은 통로 한복판.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위장관’과 비슷한 위치다.

그 속에서, 은혁과 염훈은 무수히 많은 ‘피의 촉수’들과 싸웠다.

“크루룩!”

“크와라라락!”

흡혈귀의 피와 원한이 뭉쳐 만들어진 기생충이었다.

“귀찮네. [회전 베기].”

촤자자자자작!

뱀프릭 체인 소드는 믹서기로 셀러리를 갈아 버리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피의 촉수들을 제거했다.

그러면 염훈은 바로 스킬을 썼다.

“[광역 정화]!”

파앗!

이렇게 정화까지 해놔야 피의 촉수가 부활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만 가면 될 거 같은데?”

염훈이 말했지만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남은 제한 시간 : 19분 10초.

“제한 시간이 겨우 30분인 데다가, 피구름 속의 송곳니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 탓에 시간이 촉박해.”

이대로 핵을 찾아서 파괴하건 흡수하건 해야 하는데, 핵까지 가기가 어려울 듯했다.

“게다가 공간이 자꾸 뒤틀리고 있어.”

이 부분은 은혁이 우려하면서도 미리 대비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내부가 일종의 미니 차원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 크기가 제멋대로 넓어지는 경우는 예상치 못했다.

‘제한 시간이 1시간이었다면 해볼 만도 하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갇히고 만다.

“어쩌지?”

염훈이 물었다.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는데, 은혁의 얼굴에 떠오른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덩달아 걱정하게 된 것 같았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걱정 마, 염훈. 정말로 갇힐 거 같으면, 그냥 다 뚫고 도망치는 수가 있으니까.”

사이오닉 런쳐 + [거대화] 스킬을 이용해 크게 구멍을 뻥 뚫고 튀는 최후의 수단이 있었기에, 은혁은 히죽 웃었다.

‘재수 없으면 차원 계면에 갇히거나 공간 겹침 때문에 죽겠지만, 뭐, 염훈에게는 [2초 무적]이 있으니까.’

은혁은 염훈에게 거듭 안심하라 했고, 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은혁이 네 말이 맞아. 이놈의 촉수들만 처리하면 되니까.”

“음? 잠깐만.”

염훈의 말에 은혁은 위화감을 느꼈다.

“왜 흡혈귀 귀족 놈들이 없지?”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최하급 흡혈귀나 촉수만 보이고 있다.

슬슬 고위 흡혈귀가 스스로 나와서 막아서야 정상인데 하나도 안 보였다.

“더 안쪽에 숨어 있는 거 아닐까? 가령 핵 근처라든가.”

그런 대화를 하며 통로 끝으로 이동한 순간.

“아……!”

확 넓어지는 공간이 나왔다.

대략 야구장 서너 개 넓이.

꾸물텅거리는 내장으로 형성된 거대한 돔이 있었고, 그 내부에 고위 흡혈귀 귀족들의 영지가 있었다.

단, 전부 파괴된 채로.

“다 부서져 있네?”

염훈이 의아해하며 주위를 살폈다.

“은혁아. 이거, 우리 말고 딴 놈이랑 싸우다 부서진 거 같은데?”

부서진 성과 궁전들은, 마치 엄청나게 거대한 거인이 손바닥으로 눌러서 부순 것 같았다.

가끔 고위 흡혈귀들의 시체도 보였는데, 그들도 예외 없이 납작하게 죽어 있었다.

“이건 정말 이상한데? 이 성은…….”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거대한 성은 ‘쥬빌레’의 것이었다.

부러진 깃발 곳곳에도 그녀의 이름과 문양이 적혀 있었다.

“쥬빌레? 뭐였더라?”

염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44층에서 강림했던,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간택을 받은 자.”

‘쥬빌레 드 오스트리아’는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선택을 받은 자였다.

뿐만 아니라 3군주 중 하나인 카인의 부하였다.

지금의 은혁보다 더욱 강한 존재.

그런 쥬빌레의 성까지 파괴되어 있다면, 이는 은혁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은혁이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가능성뿐.

‘우리 말고 누군가가 있다. 쥬빌레보다 훨씬 강한 누군가가!’

그때였다.

슈와아아악……!

저편에서 새빨간 박쥐 인간 하나가 날아왔다.

날개가 달려 있으면서도 날갯짓 하나 없이, 똑바로 선 채로 허공에 뜬 채 날아오는 모습은 소름 끼치기 그지없었다.

“큭, 적이다!”

염훈이 외쳤지만.

“대화를 하러 왔다.”

흉측한 박쥐 인간은 생김새와 다르게 무척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거나, 아니면 나의 부탁을 들어다오.”

은혁은 선즈 리볼버를 왼손에 쥔 채 5미터 앞에 섰다.

“누구인지부터 밝히지 그래?”

“모르나? 너희가 피구름 속의 송곳니라 부르는 존재의…… 그래, 집사와 같은 존재라고 하자.”

“그럼, 편의상 피의 집사라고 부르겠다.”

“좋을 대로 해라. 그러나 빨리 선택하라.”

“뭘 알아야 선택을 하지? 떠나달라는 건 무슨 소리며, 부탁을 들어달라는 건 또 무슨 소리냐.”

“떠나달라는 소리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 달라는 거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한다면 우리 또한 더 이상의 ‘재난’을 일으키지 않고 떠나겠다.”

“좋은 제안이군. 그리고 부탁이란 뭘 말하는 거지?”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기인을 설득해서 내보내다오.”

“뭐?”

은혁도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이었다.

‘기인? 여기에 기인이 산다고?’

새빨간 피의 집사는 허공에서 꾸물텅거렸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피곤해 보였다.

“나의 주인께서 너희들이 말하는 ‘히든 미션’이라는 것을 준비하셨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 히든 미션 : 퇴거 요청.>

-목표 : 숨어서 무언가를 연구 중인 기인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내쫓을 것.

-성공 시 보너스 : 강은혁과 염훈이 정한 요구 사항 한 가지를 들어준다. 단,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능력이나 권한 밖의 것을 요구하는 경우 들어줄 수 없으며, 즉시 취소된다.

-실패 시 페널티 : 히든 미션 참가자 즉, 강은혁과 염훈의 죽음.

-제한 시간 : 15분.

“당장 선택하라.”

피의 집사가 요구했다.

‘허. 이건 고민 좀 해야겠네.’

관리국이 숨겨둔 히든 미션이 아니라, 지고의 위상이 힘을 짜내어 만든 히든 미션이다.

스테이지의 지배자가 아닌 존재가 만들어 낸 히든 미션이 신기했지만, 따지고 보면 피구름 속의 송곳니 내부 공간이 곧 하나의 스테이지에 준하는 것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지고의 위상이 히든 미션을 제안해야 할 정도로, 이 기인이란 존재가 거물이라는 건데.’

은혁이 난이도를 가늠하기 어려워서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염훈이 질문했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면 지고의 위상 아니야? 근데 그토록 강력한 존재가 자기 몸속에 들어온 ‘기인’ 하나를 못 쫓아낸다고?”

염훈의 질문이 정곡을 찔렀다.

피의 집사는 짜증스러운 어조로 설명했다.

“지금의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앞서 말한 기인에 의해 그 핵을 장악당하고 침식당한 상태다. 그래서 많이 약해진 상태지.”

흡혈귀를 만드는 지고의 위상의 핵이 무언가에 침식당한 상태라고 하니, 그 기인이 상당히 강력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리고 피의 집사가 그걸 순순히 인정할 정도면 절박한 상태라는 뜻이다.

“허나, 너희가 그 기인을 내쫓는 데 성공만 한다면, 새롭게 다시 태어나듯, 평소처럼 강력한 존재로 되돌아올 터.”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즉, 그 기인만 쫓아낸다면, 너희는 그 강대한 지고의 위상에게 부탁을 하건 요구를 하건 할 수 있다. 이는 상당한 보상일 것이다.”

“과연.”

‘히든 미션 형태의 제안인 걸 보니 거짓일 가능성은 낮군.’

은혁은 조금 짓궂게 물었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핵이 약해진 상태라면, 히든 미션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뭐라……!”

쿠구구구구구……!

피의 집사의 분노가 공간을 뒤흔들었다.

“흥분하지 말고 들어. 그 반대의 경우도 우린 걱정해야 한다고. 막상 우리가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핵을 구해줬다가, 그 직후에 역으로 공격당할 수도 있잖아?”

“그렇군…….”

피의 집사는 납득하더니, 추가 조건을 덧붙였다.

-추가 조건 : 미션 참가자들이 히든 미션을 받아들인 경우,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핵을 공격하는 행위는 엄금한다. 역으로, 피구름 속의 송곳니 또한 미션 참가자들을 공격하지 않는다.

만약 참가자들이 공격하는 경우, 미션 실패로 간주한다.

서로의 안전을 강조하는 추가 조건이었다.

“이렇게까지 조건을 붙여도 거부한다면, 적으로 간주하고 즉각 척살하겠다.”

피의 집사가 각오한 어조로 말했다.

은혁 피식 웃었다.

“엄청 까칠하게 반응하는군. 그만큼 네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겠지?”

“…….”

“뭐, 좋아. 조건을 전부 받아들이겠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 [탐지의 화살표]가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1회용 절대 내열 방패]가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용 아이템과 버프도 꽤 좋은 게 걸렸다.

촤르륵!

피의 집사는 작별 인사도 없이 붉은 죽처럼 변하여 바닥에 떨어졌다.

“음, 은혁아. 너라면 사태를 파악하고 있겠지만, 내가 볼 때는 사태가 아주 미쳐 돌아가고 있거든?”

“아니, 내 기준에서 봐도 좀 미쳐 돌아가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직접 부딪쳐보자고, 염훈.”

은혁은 [그림자 분신 5.0]을 다수 소환한 뒤, 그것을 앞에 세운 채 이동했다.

찰박찰박찰박…….

피가 튀는 통로는 복잡했지만, 히든 미션 전용 버프로 구현된 [탐지의 화살표]가 그 ‘기인’이 있는 곳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저건가?”

“으음……!”

그곳에는 작은 매점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 형태의 다차원성계 여행용 셔틀이 있었다.

‘셔틀’이라는 용어는 기묘하지만, 100층탑에서는 차원 이동용 운송 수단을 베슬이나 셔틀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셔틀의 위에는 앙증맞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인치 특수과학실험국.’

“설마……!”

은혁이 경악한 순간.

“여어.”

셔틀 안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청년이 걸어 나왔다.

“그동안 네 명성은 많이 들었어.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싱글벙글 웃는 청년을 본 은혁은 굳어 버렸고, 염훈은 미심쩍어하며 빅 썬더와 프리즘 랜스를 모두 꺼냈다.

“정지. 더는 가까이 오지 마시오.”

“하하하! 너무 가시 세우지 말라고, 성기사 염훈. 그냥 친해지려고 하는 거라니깐?”

“거기서도 말할 수 있을 텐데? 한 걸음만 더 가까이 오면…….”

파지직!

파앗!

빅 썬더의 주변에 뇌전이 휘감기고, 프리즘 랜스가 신성한 빛을 내뿜었다.

하지만 청년은 가볍게 손짓하며 말했다.

“[크기 지배 : 마나 축소].”

파앗!

원자보다 작은 마나의 핵, 그 핵의 내부를 구성하는 마립자의 크기를 극단적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아이템에 깃든 스킬의 힘 자체를 취소시켜 버렸다.

“뭐……!”

“정말 대화만 하자니깐?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지?”

청년은 자신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나, 너희가 3군주라고 부르는 자들 중 하나인, ‘인치’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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