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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4화 (274/434)

274화 : 3군주 인치와의 만남 (1)

* * *

은혁과 염훈은 셔틀 내부로 초대받았다.

내부 공간의 첫 느낌은 연구 길드장 빌의 연구소와 비슷했다.

“휴, 바깥은 피 냄새 엄청나지? 그나마 이 안은 좀 나아.”

인치는 [크기 지배] 스킬로, 피를 구성하는 분자 자체를 축소시켜서 혈향을 소멸시켰다.

“아무 의자에나 앉아. 일단 손님들이니까 커피라도 내와야겠지?”

물론, 은혁과 염훈 모두 적진에서는 음료를 사양하는 편이었다.

“사양하죠.”

은혁이 말하자 인치는 흐흐 웃었다.

“사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바로 용건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거든. 자, 바로 들어갈까?”

“그전에, 몇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 한두 개 정도라면.”

“여긴 뭐 하는 곳이고 당신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겁니까?”

“아, 여긴 내 개인 이동 수단 겸 연구소 겸 회담장이야. 직접 제작한 다목적 셔틀이지.”

인치가 자랑스레 말했다.

실제로 이걸 자신의 스킬을 이용해 직접 만들었다면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나는 이 셔틀을 타고 피구름 속의 송곳니 내부에 숨어들었지. 그리고 적당히 운전해서 이곳에 주차했다.”

인치는 씨익 웃었다.

염훈은 상상해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고의 위상 속에 숨어든 뒤, ‘운전’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3군주 정도라면 가능하지.’

은혁이 기억하고 있는 개별 3군주의 힘은, 7대 길드의 길드장보다 근소하게 강했다.

즉, 3군주 3인이 지닌 강함의 총합과 7대 길드의 길드장이 지닌 강함의 총합은 거의 같거나, 전자 쪽이 근소하게 강한 것.

‘즉, 3군주 1인의 강함은 아무리 약하게 잡아도 길드장 1.5명급, 아주 크게 잡으면 길드장 3명급이라고 봐야 한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빠르게 [함정 탐지] 스킬과 함께 주변을 살폈다.

셔틀 겸 연구소라는 인치의 말이 거짓은 아닌지, 곳곳에 연구 자료가 있었다.

벽면에는 양각으로 전자기판의 회로도처럼, 혹은 시각장애인용 안내판처럼 뭔가가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은혁과 염훈의 눈에는 오돌토돌한 무늬들이 새겨진 것 같지만, 사실은 암호화되어 마이크로 단위로 새겨진 연구 기록들이다.

연구 기록의 크기를 다시 크게 조작 가능한 인치만이 해석할 수 있다.

“이곳에 오면서 파괴된 성과 궁전들을 봤습니다.”

“아, 맞아. 그거 다 내가 부순 거임.”

인치가 부순 성 중에는 쥬빌레의 성도 있다.

쥬빌레는 카인의 부하다.

그런 쥬빌레의 성도 부쉈다면, 이는 같은 3군주로서 상당한 도발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걸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낼 수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는데…….

“왜 부순 건데요?”

염훈이 대신 물었다.

“아, 사실은 쥬빌레에게 통보하러 갔었어. 46층~49층 구역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할 테니까 그 구역 안에 있는 너희 계열 흡혈귀들을 모두 제거하거나 이주시켜 달라~ 라고 통보하러 간 거였지.”

“그랬더니요?”

“그랬더니 화를 내더라. 그냥 화를 내는 거면 참겠는데, 카인 이름을 들먹이면서 나보고 막 뭐라는 거야. 나도 일단은 3군주 중의 하나인데 말이야.”

인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쥬빌레를 좀 참교육시켜줬지.”

인치는, 손바닥으로 뭔가를 납작하게 내리치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런 다음 죽이진 않고 내쫓았지. 궁전 따위는 그 과정에서 부서진 거고.”

“……허.”

염훈은 납득한 건지 못 한 건지 애매한 소리를 냈다.

그래서 은혁이 다시 질문했다.

“실례합니다, 인치 님. 아까 제 질문이 조금 모호했던 거 같군요.”

“음? 왜 왔냐, 어떻게 왔냐 뭐 이런 거 물어봤던 거 아니야?”

“맞습니다. 어떻게 오셨는지에 대해서는 잘 대답해 주셨습니다. 다만 제 질문은, 왜 하필 이 피구름 속의 송곳니를 조종하여, 이 46층~49층 통합층 구간에 왔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후후. 그야 물론 실험도 할 겸 겸사겸사.”

“겸사겸사?”

“음, 이미 싸워 봐서 알지 않나? 48층 구간에 풀어 놓은 늑대인간은 내가 제작한 놈들이지. 놈들을 개량하는 실험도 하고…….”

인치가 벽에 새겨진 기록을 손으로 쓸었다.

은혁은 물론, 특히 염훈이 납득했다.

‘그러고 보니 늑대인간 헬로이가 처음에 자기소개를 그런 식으로 했던 것도 같고…….’

“원래는 키나핀러 왕국에 늑대인간 괴뢰국을 건설하려고 했는데, 하하! 너희가 다 죽여 버렸지. 아,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야. 재미도 있었고.”

인치는 정말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짚 더미 속에서 바늘을 제작하는 재미라고나 할까? 두 사람은 이해를 할까?”

염훈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은혁은 이해했다.

‘재난의 왕국 속에 늑대인간의 습격이라는 재난을 만드는 일이므로, 3군주의 나머지 두 명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장점, 그리고 운명치 소모가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는 거겠지.’

3군주 세력의 서로를 향한 견제는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한 스테이지의 운명을 멋대로 바꾸는 건 운명치가 크게 소모되는 일이나, 이미 재난으로 꽉 찬 스테이지에 슬쩍 새로운 늑대인간 재난을 곁들이는 것은 운명치 소모가 거의 없다.

“뭐, 좋은 실험 데이터를 얻었으니 상관없어. 두 사람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인치의 태도에 악의나 거짓은 없어 보였다.

은혁은 조금 더 질문하기로 했다.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저희 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계신 겁니까?”

“응? 너희 둘은 유명인이잖아? 두 사람의 명성은 우리 세력권에서도 자자해.”

보나 마나 3군주 측 스파이들이 이미 길드연합국 세력권 속에 들어와 있다고 봐야 했다.

그걸 일일이 캐묻는 것도 유치한 일이 될 것이기에, 은혁은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인치 님께서 이곳에서 하신 일들에 대해서는 대충 들은 것 같군요. 한데, 저희들을 굳이 이…… 셔틀 안쪽으로 초대해 주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나의 부하가 되어주지 않을래? 너희가 길드연합국을 지배하는 걸 도울게.”

의외로, 아주 확실한 용건이었다.

“그 대가로 당신이 얻는 것은?”

“헤헤. 뭘 유치하게 물어봐? 너희들을 퍼핏 삼아서 길드연합국을 간접 지배 하려는 거지.”

너무 말투가 직설적이라서, 염훈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은혁은 고개만 갸웃해 보였다.

“왜요?”

“응?”

“왜 길드연합국에 관심을 보입니까? 단순히 더 많은 땅을 지배하고 싶어서?”

“그런 단순한 이유도 있지. 더 분명한 이유는, ‘낮은 곳’이기 때문이지만.”

“낮은 곳……?”

“우리 3군주는 욕심이 많아. 누구보다 먼저 100층탑을 정복하고자 하지. 그래서 길드연합국이 59층, 60층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린 벌써 89층까지 지배했어.”

“음…….”

은혁의 회귀 전 지식과 비교했을 때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약간 더 빠르다.’

회귀 전 이 시점의 3군주는, 마음만 먹으면 89층까지 지배하는 게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실제로 지배하진 않았다.

하지만 현재의 3군주는 실제로 89층까지 지배를 끝낸 상태다.

‘나 때문인가?’

은혁의 폭발적인 성장이 어쩌면 3군주로 하여금 더 높은 층을 지배하도록 만든 요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방금 꽤 귀한 정보를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군.’

사이오닉 런처를 세븐 칼리버에 편입시키지 않고, 따로 차원용 부스터로 쓸 수 있게 개조한 게 정답이었다는 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쓰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므로.

다만 지금의 은혁은 앞날에 대한 예측을 너무 드러내진 않은 채 얌전히 인치의 다음 발언을 기다렸다.

“우리 3군주 세력이 89층에 머무르는 이유가 뭘까?”

인치가 물었다.

은혁은 대충 짐작했지만 모르는 척했다.

반면에 염훈은 의기양양한 어조로 말했다.

“정답! 90층의 미션이 너무 어려우니까!”

“하하! 염훈 길드장 말이 거의 맞았어. 90층의 메인 미션이 너무 어렵기도 하고, 70층~89층 통합 미션이 너무 어렵거든.”

“70층~89층 통합 미션이라니…….”

지금까지의 통합층 미션은 주로, 2개 층이나 4개 층 단위로 이뤄졌다.

하지만 70층~89층의 통합 미션은 훨씬 더 거대했다.

“우리 3군주는 여태 70층~89층 통합 미션을 가지고 서로 경쟁 중이지. 아마 누구도 클리어하지 못할 거야.”

인치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얼마나 어려운 미션이기에……?’

염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교착 상태를 뚫을 방도가 도무지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궁리 끝에 90층에 도달하기 위한 방도를 몰래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인치가 손가락을 척 세웠다.

“90층을 막고 있는 차원의 벽 언저리에서, 70층~89층을 클리어하지 않고도 90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히든 미션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지.”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은혁이 놀랍다는 듯이 묻자, 인치는 히죽 웃기만 하고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90층의 히든 미션이 뭡니까?”

염훈이 호기심으로 묻자, 인치는 빙긋 웃었다.

“스포일러인데 말해도 되려나? 뭐, 그냥 말하지. 90층 진입 전용 히든 미션은…….”

인치의 눈에 악의가 깃들었다.

“100층탑 내부의 전체 플레이어 숫자가 99,999명 이하가 될 것. 그 경우 모든 플레이어에게 즉각 90층에 도전할 권리가 주어진다…….”

“……엥?”

“미션이 참 막장이지?”

인치는 싱긋 웃었다.

은혁이 아는 한, 길드연합국의 인구수는 159만 명 정도 된다.

이는 플레이어와 NPC를 합친 숫자로, 플레이어의 숫자만 따지면 60만~69만 정도 된다.

게다가 3군주 세력권의 플레이어들은 총 3만 명가량.

다 합치면 70만 정도.

이 중에서 99,999명이면 약 7분의 1이다.

“즉, 100층탑 전체의 7분의 1만 남고 나머지 7분의 6은 죽으라 이거지. 상당히 막장이지?”

“그런……!”

염훈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 관리국에 가서 따져 물어야겠는데? 무슨 미션이 그따위냐고.”

“후후. 관리국 요원 멱살 잡고 물어도 대답은 안 할 거야. 말했잖아? 스포일러라고.”

인치가 자신의 말이 주는 충격을 즐기려는 게 명백했기에, 은혁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랑 우리를 시켜서 길드연합국을 간접 지배 하겠다는 거랑 뭔 상관입니까?”

“뻔하잖아? 내가 있는 곳에서 길드연합국의 인구수를 줄이긴 어려워. 하지만 내 부하가 길드연합국의 통합 길드장이 된다면?”

인치는 히죽 웃었다.

“그 밖에도 활용도는 무궁무진하지. 길드연합국의 플레이어들을 레벨업 시킨 다음, 통째로 갈아서 내 레벨업에 도움을 준다든가. 이 세상에서 플레이어는 자원이잖아?”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염훈은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 하는 기세였다.

하지만 염훈이 지닌 책임감이 그를 가만히 있게 했다.

“갑자기 다른 플레이어들의 인구수를 줄이겠다니!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인가!”

“호오? 무슨 의미지?”

“3군주라면 길드연합국의 7대 길드장과 비슷하거나 더 강한 존재라며! 내가 듣기로는 너무 강력한 존재라서 무슨 운명치? 그런 거에 휘둘릴 정도라던데!”

“하하. 잘 알고 있군. 맞아. 그런데?”

“그 정도로 강력하다면 자기보다 약한 플레이어를 통째로 갈아 버린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진 힘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잖아!”

“허참, 그런 소리였나.”

인치는 별 유치한 이야기 다 듣는다는 듯이 웃었다.

“자세히 말해줄 순 없지만, 100층탑의 패권을 겨루는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거는 도전이지.”

인치는 안 하던 설명을 하려니 익숙지 않은 듯이 생각을 잠시 골랐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모든 것은 유한하다. 100층탑도 예외는 아니라서 자원은 한정되어 있지. 그것이 시간이건, 마력이건, 운명치건, 플레이어의 생명이건……. 하여간 우리는 이 유한성이라는 틀 속에서, 필멸의 각오로 싸운다. 그것이 군주의 업이겠지…….”

어느새 인치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염훈은 어이없어했고, 인치도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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