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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5화 (275/434)

275화 : 3군주 인치와의 만남 (2)

“나도 설명 실력이 녹슬었군. 군주가 된 이후로 설명 없이 명령만 내리다 보니. 하하하.”

“그렇군요.”

은혁이 나서며 말했다.

“우리들도 흔히 인적 자원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인치 님이 쓰는 자원이란 단어와는 그 의미가 아주 다를 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저의 군주이자 길드장인 염훈은, 그런 표현을 아주 싫어합니다.”

“하하! 그렇겠지. 그 부분은 더 이야기하지 말자고. 그래, 내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거절합니다.”

“그렇군.”

인치는 별 실망도 하지 않았다.

염훈은 뭔가를 더 외치고 싶어서 씩씩거렸지만, 은혁이 다독이며 말렸다.

“그럼 편지 하나만 배달해 줄래?”

인치가 곱게 접은 쪽지를 내밀었다.

딱히 봉투도 없는 걸로 보아, 그냥 아무나 펼쳐서 봐도 상관없다는 듯했다.

“누구에게 전해주면 됩니까?”

“연구 길드장 빌.”

“무슨 내용인지 물어도 됩니까?”

“응, 열어봐도 돼. 거기 안에는 ‘인공 운명석 제작 공식’이 적혀 있는데, 아마 봐도 모를 거야.”

“……!”

“좀 어렵지만, 연구 길드장이라면 생산이 가능할 거야. 나는 그냥 스킬로 제작하지만 말이지.”

은혁은 심장이 뛰었다.

‘이거였나.’

은혁은 3군주가 운명치를 어느 정도 무시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은 알 수 없었는데…….

“그래. 나는 [나노 합성] 스킬과 [개념 축소] 스킬로 운명치를 최소화시키는 법과 인공 운명석을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관리국의 페널티를 대놓고 무시할 수 있을 터.

“참고로 미치오는 [운명 되감기]로 운명치를 소멸시키고, 카인은 [죄업의 형틀 소환] 스킬로 운명 페널티를 묶어두지.”

하나하나가 3군주의 큰 비밀들이다.

하지만 인치는 큰 비밀도 아니라는 듯이 다 줄줄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 비밀들을 제게 다 알려주는 이유가 뭡니까?”

“그래야 나중에 우리 영역에서 활동하지.”

“네?”

“자네 말이야.”

약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자네, 결국 우리가 지배하는 영역까지 올라올 거 아닌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우리의 영역에서 활동한다면, 자네는 쓸모가 없지 않나.”

“하…….”

은혁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조커로 쓸 셈이군.’

3군주 세력은 서로 간의 세력이 3분의 1씩 비슷했다.

미치오 쪽이 조금 더 강하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교착 상태.

인치는 그 교착 상태를 깨줄 존재를 원했다.

그 역할로 점찍어진 것이 은혁.

하지만 지금의 은혁은 무지하고 나약해서 3군주의 영역에 들어올 수조차 없고, 들어와도 아무것도 몰라서 활동할 수 없다…… 라는 게 인치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모욕이다.’

정상을 추구하는 회귀자에 대해 이보다 더 큰 모욕도 없을 것이다.

은혁은 회귀자로서 극도로 빠르게 강해졌으며, 그 누구보다 많은 미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7대 길드의 거물들은 은혁을 예언자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로 취급할 정도.

하지만 인치의 관찰에 따르면 철부지처럼 약하고 무지한 존재였다.

“조심하십시오.”

“응?”

“판을 흔들어줄 조커를 원하시는 거 같은데, 보통 그런 걸 원하는 사람들은 정작 그 조커한테 등이 찔리더군요.”

“하하하! 맞는 말이야. 내 계산에 따르면, 지금의 자네가 날 죽일 확률은 무려 40%나 되고, 머지않은 미래에 날 죽일 확률은 80%나 된다네.”

“……꽤 높네.”

은혁은 그렇게 중얼거렸고, 인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확률은 변동될 수 있어. 예를 들어 우리 3군주는 현재 60층~69층에 꽤 재미있는 계획을…….”

그 순간,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사방에 펼쳐졌다.

-경고! 경고! 경고!

-3군주 간의 계약의 이름으로, 인치에게 경고가 주어집니다!

“아차차. 이건 우리 셋의 공동 프로젝트였지. 이건 내가 멋대로 스포일러 할 수가 없겠네. 히히.”

인치는 멋쩍게 웃었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 내부, 그중에서도 셔틀 내부의 공간인데도 경고가 뜰 정도면, 상당히 위험한 계획인 게 분명했다.

“자아, 언젠가는 내 등에 칼을 꽂을 조커 군? 그런 의미에서 재밌는 게임 하나 해볼까?”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군요. 지금도 제 부하들은…….”

“지금 날 죽여 보게.”

“지금 뭐라고 하셨……!”

“죽여 보라고. 자.”

인치는 은혁에게 죽여 보라고 도발했다.

“괜찮다니까? 적어도 이걸 사유로는 보복 안 할게. 아예 계약 대결 형태로 해볼까?”

인치는 멋대로 계약 대결의 조건을 만들었다.

<계약 대결>

-목표 : 강은혁과 인치는 1분간 대결을 펼친다.

-조건 : 대결 시간은 1분. 대결 장소는 인치의 연구소로 한정한다.

강은혁은 인치를 향해 어떤 종류의 공격을 해도 되며, 인치를 죽여도 된다.

인치는 강은혁을 향해 그 어떤 종류의 공격 또는 반격을 가해서는 안 된다.

-강은혁이 이기는 경우 : 인치가 죽지 않은 상태로 패배를 인정한다면, 인치는 최대한 빨리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내부를 떠나야 한다. 인치가 죽어서 패배한다면, 인치가 지닌 모든 소유물의 소유권은 강은혁에게 주어진다.

-인치가 이기는 경우 : 얻는 것 없음.

-제한 시간 : 1분.

“어때?”

“1분 동안 무방비의 상대를 공격하는 건 제 취향이 아닙니다.”

“흠? 내가 압도적으로 강한데? 그리고 내가 허락한 거니까 되지 않나?”

“그래서 더 싫습니다.”

수상쩍고 오만한 제의를 받는 것은 은혁의 취향이 아니다.

“그러니 역으로 제안하고 싶습니다.”

“뭔데?”

“일단 일대일 대결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음? 네 동료, 염훈이랑 같이 해도 되는데.”

“아뇨. 일대일입니다.”

“흠, 그러든가.”

“당연히 제 부하들은 물론, 인치 님의 부하들도 이 대결에는 개입 못 합니다.”

“아하, 그걸 걱정한 거구나? 걱정 마. 지금은 물론, 훗날에도 보복 같은 건 하지 않겠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은혁은 대결을 좀 더 분명히 하기로 했다.

“일격으로 하죠.”

은혁이 단 일격을 가한다.

그리고 인치는 그것을 막거나 피한다.

“제 일격을 맞고 견디신다면, 혹은 피하는 데 성공하신다면 제가 지는 걸로. 어떻습니까?”

“하핫! 재밌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려?”

“5초면 됩니다.”

“좋아. 준비에 5초. 실제 대련은 1분으로! 그럼 그렇게 하자고!”

-[계약 대결]이 발동되었습니다!

-5초 뒤 대결이 시작됩니다!

염훈은 경악했다.

“야, 은혁아……!”

“쉿. 너무 걱정하지 마.”

-대결 시작까지 5초…….

-4초…….

-3초…….

-2초…….

-1초…….

-대결 시작!

그렇게 1분짜리 대결이 시작된 순간.

“염훈!”

은혁이 큰 소리로 말했다.

“당장 밖으로 나가 있어! 이 근방은 엄청 위험해질 거다!”

고작 1분짜리, 그것도 일격으로 결정되는 대결이다.

하지만 은혁은 46층~49층 구간의 모든 재난을 합친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을 대하듯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빨리 나가!”

염훈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주춤주춤 나갔다.

“하하하하!”

인치가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아아, 진짜 기대되네. 동료보고 나가 있으라고 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미친 짓을 하려는 거야?”

“네.”

은혁의 답변은 생뚱맞았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다 담겨 있었다.

“과연. 도박을 시도하려는 건가.”

인치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3군주 중의 하나인 나를 죽일 수 있다면, 무리를 해도 남는 장사다, 라는 판단 같군.”

“안 됩니까?”

“설마. 오히려 기쁘지.”

인치는 은혁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는 최근 길드연합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플레이어잖아? 그런 너에게 3군주의 위엄과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광기, 살의, 기쁨, 호기심이 인치의 눈 안에서 춤을 췄다.

은혁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저에 대해 아주 잘 알고 계시진 않은 모양입니다.”

“음?”

“저는 상대가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싸우는 걸 선호하는 편입니다.”

스윽.

철컹!

은혁은 세븐 칼리버를 청염백광태도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3군주에 대한 예의로서 미리 경고합니다. 맞으면 아플 테니까, 꼭 피하셔야 합니다?”

“흠?”

“[그림자 분신 5.0].”

스르륵.

은혁은 특별히 마력을 쏟아부어 만든 분신들을 몇 소환했다.

그리고 청염백광태도를 쭈욱 뻗은 다음, 분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화염 방사].”

화르륵!!

화르르르르르……!!

청염백광태도에 화염이 중첩되기 시작했다.

은혁은 [화염 지배] 스킬로 몸에 가해지는 열기와 부담을 줄이고 있었지만, 은혁 자신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초고열이었다.

퓨전 스킬 [바이올렛 블레이드]가 자동으로 발동하려 했으나, 은혁은 고의로 그것을 억눌렀다.

-경고! 초과열 현상 발생!

-즉시 중단하지 않는 경우, 내구도 격감으로 인해 무기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청염백광태도는 초열 상태로 녹아 흐를 지경이 되었다.

그 순간, 은혁은 청염백광단검을 꺼냈다.

“[화염 지배] + [무기 업그레이드]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초열 합체]!”

번쩍!!

초고열의 플라즈마와 융합된 두 개의 무기에, 두 무기를 합치는 스킬의 인위적인 힘이 더해지면서 일반적인 플라즈마가 지니고 있는 전자, 양이온, 중성입자 등의 성질마저 변했다.

기체분자의 이온화 성질을 완전히 무시하는, 비정상적인 초고열의 검이 일시적으로 구현되었다.

파사삭.

은혁이 소환한 그림자 분신들은 순식간에 말라서 소멸해 버렸다.

파지지직.

인치의 연구소 겸 셔틀의 천장에는 지름 10미터짜리 구멍이 생겨났고, 그 지름의 외곽 부분부터 점점 타들어 갔다.

‘하이퍼 퓨전 스킬 [초열극광대검].’

은혁의 한계를 쥐어짜 낸 스킬로서, 2초 정도 유지 가능했다.

왜 2초냐면, 은혁이 [스킬 트랜스미션 : 2초 무적]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2초이기 때문이다.

“하앗!!!”

은혁은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은혁과 인치 사이의 거리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었다.

은혁은 이 일격이, 전설급 성좌의 본체에게도 치명상을 입히는 일격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인치의 표정은 평온했다.

“[소형화].”

인치는 은혁의 무기를 향해 스킬을 발동했다.

공격이나 반격이 아니라면 스킬을 발동할 수 있었으므로.

하지만.

“[거대화]!”

은혁은 인치가 발동한 스킬을 중화시켰다.

화악……!

물론, 인치의 [소형화]가 은혁의 [거대화]에 비해 격과 효율이 더 높았다.

하지만 은혁도 나름 [거대화] 스킬에 마지막 남은 모든 마력을 쏟아부었기에 중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공격이 적중되기 직전, 은혁은 인치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했다.

화악……!!!

초열극광대검이 인치의 몸과 부딪혔다.

번쩍!!!

이온화된 막대한 가스가 분출되고 아크 방전 효과 때문에 은혁의 시신경이 타들어 갔다.

플라즈마 제트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 셔틀이 파괴되고,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차원마저 타들어 갔다.

그 여파로 피눈물 속의 송곳니가 통째로 울부짖었으며, 붉은 피구름 곳곳에 궤양 같은 구멍이 생겨났다.

피구름 내부의 흡혈귀 중 일부 운 없는 자들은, 강하게 뿜어져 나온 자외선과, 미친 듯이 탄성 충돌을 일으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에 맞아서 선 채로 표백되어 죽었다.

하지만.

“와우. 번쩍번쩍하네?”

초열의 칼을 가슴팍으로 받아낸 인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반면에 공격을 가한 은혁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허억, 허억……!!”

덜그렁! 터텅!

초열극광대검은 청염백광태도와 청염백광단검으로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투투툭.

은혁의 탄화된 두 주먹도 떨어졌다.

“크윽.”

털썩.

근성과 악바리의 대명사인 은혁조차도, 지금은 모든 걸 쏟아부었기에 더는 서 있을 수 없었다.

“크윽, 어떻게……!”

“히히.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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