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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7화 (277/434)

277화 : 피구름 속의 송곳니와의 협상 (2)

“우리가 널 죽이느냐 마느냐는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우리가 결정할 문제니까. 단, 히든 미션 클리어 보상에는 네가 우리의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고 적혀 있더군.”

은혁이 선언한 순간.

-축하드립니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피구름 속의 송곳니에게 한 가지 사항을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좋아! 잘했다, 염훈!”

“엥?”

“[정화]를 딱 절반만 시킨 거 잘했다고.”

역시 완전히 정화시키지 않은 염훈의 판단이 답이었다.

“어느 쪽을 쏙쏙 뽑아먹을지 결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은혁은 핵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너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거다. 그 무리한 요구가 네 능력의 한계를 넘으면, 보상이 자동 취소되는 거였지?”

-그렇다만……?

“미션 보상을 받는 일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그냥 히든 미션 자체가 취소되는 거다. 틀림없겠지?”

-그렇다. 잠깐, 네 의도를 알았다.

핵이 실망스럽다는 말투로 말했다.

-히든 미션 자체를 무효화시킬 모종의 방법을 떠올린 모양이군.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을 무효화시키려는 건가?

“후후…….”

은혁은 일부러 어느 쪽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게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히든 미션을 받아들인 덕분에, 다른 촉수나 흡혈귀들의 방해 없이 단숨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히든 미션에는 핵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다.

은혁은 일부러 논리적 모순이 담긴 요구를 함으로써 싹 다 무효화시킨 다음 죽일 생각이었다…….

‘라는 게 본래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은혁의 계획.

-나를 너무 깔보는 것 아닌가? 그대는 이미 내 배 속에 있다.

눈앞에 있는 것은 핵일 뿐, 본체는 아직 건재했다.

하지만.

“그건 아닐 텐데?”

염훈이 냉큼 지적했다.

“너는 여러 혈관과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게다가 내게 반쯤 [정화]되어서 힘도 반으로 줄었을 텐데?”

염훈은 지고의 위상의 생태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적어도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고 행한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은혁도 히죽 웃으며 동의했다.

“염훈 말이 맞을 거다, 지고의 위상의 핵이여. 너는 어리석었어.”

인치를 내쫓고 은혁과 염훈을 끌어들였으니, 여우를 내쫓고 호랑이를 데리고 온 격이다.

핵이 힘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가 중요하다.’

만약 핵이 이판사판이라는 식으로 깽판을 치면, 은혁과 염훈도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

하지만 은혁의 블러핑에 넘어가서 낮은 자세를 보인다면?

‘그 경우가 최선인데, 과연 어떻게 나올까?’

-애원하겠다. 그대의 요구를 물러다오.

다행히 은혁의 기대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싫다면?”

-그렇다면 내 죽음은 확정적, 자폭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쿠구구구구구……!

피구름 속의 송곳니를 구성하는 피의 구름 전체가 떨었다.

“음……!”

염훈은 전율했다.

사실 은혁과 염훈은 적의 배 속에 들어와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고, 만약 피구름 속의 송곳니가 정말로 자폭을 시도하는 경우 다 같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은혁은 이 상황이 예상대로의 전개였기에 태연했다.

하지만 못 이기는 척 말했다.

“그렇다면 타협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렇다. 합리적으로 원하는 것을 요구하라.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내 마지막 명예를 위해서라도 즉시 자폭할 것이다.

“두 가지다. 너를 구성하고 있는 이 피구름의 49%를 다오. 그리고 네가 어쩌다 인치에게 제압당한 건지 설명해다오.”

-과한 요구로군.

“뭐가?”

-네놈의 속이 들여다보인다. 일부러 엄포를 놓고 못 이기는 척 타협하고, 그 분위기를 타서 당연하다는 듯이 두 가지를 요구한 거 아닌가?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핵은 바보가 아니었다.

은혁과 같은 길드연합국 측 플레이어 입장에서, 3군주 세력에 관한 정보는 하나하나가 천금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두 가지를 요구하니 분노가 다시 끓어오르는군.

부글부글부글……!

피구름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마구 들끓었다.

하지만 은혁은 이번에도 태연했다.

“꼭 필요해서 하는 요구다. 이걸 거부한다면 나도 그때는 싸우는 수밖에. 그리고.”

-그리고 뭐냐?

“솔직히 밀당은 네가 먼저 시작하지 않았냐? 재난 형태로 몰려온 주제에 히든 미션을 걸지 않나. 지고의 위상 주제에 너무 인간 사업가처럼 구는 거 아닌가?”

-크크큭! 피할 수 없는 비판을 하는군……. 확실히, 내 권속들을 많이 잃은 상태이다 보니 이해득실에 민감해진 상태이긴 하다만…….

피구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끓어오르던 것을 가라앉혔다.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군. 네 요구 사항을 모두 받아들인다.

“좋아. 그럼! 피구름부터 흡수하겠다!”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를 높이 들었다.

내구도가 극도로 낮아진 상태.

콰악!

그 검을 바닥에 박았다.

“혈인술사 스킬 연속 발동!”

키이잉!

뱀프릭 체인 소드의 칼날이 돌면서, 혈인술사 스킬이 연속 발동됐다.

“[피의 지배]! [에너지 흡수]! [피의 포식]! [피의 재생]!”

꿀렁꿀렁……!

뱀프릭 체인 소드의 칼날이 일렁이며 피구름을 밀크쉐이크 빨아먹듯 흡수해댔다.

-혈인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혈인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

…….

-혈인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혈인술사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혈인술사 숙련도 : 35%+++.

“오옷, 회복되고 있어?!”

염훈이 감탄했다.

은혁의 팔과 몸은 순식간에 치유되었다.

“거기에 더해서 [분해 학습]!”

스팀펑크 메카닉 스킬을 아낌없이 쓰기로 했다.

부글부글부글……!!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로 일부 흡수하고, 일부 분해하며, 피구름 속의 송곳니를 구성하는 피구름의 형질을 분석해냈다.

“흠. 이런 식인가.”

그 누구도 해낸 적 없는, 지고의 위상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특성을 간파해냈다.

‘왜 송곳니가 보이지도 않는데 그런 이름을 갖고 있나 했더니만.’

피구름을 구성하는 분자의 모양이 송곳니 형태였다.

은혁과 염훈은 나름의 준비를 한 상태로 구멍을 뚫고 들어왔지만, 만약 무단 침입을 하려 했다간 들어오는 과정 중에 다 뜯어 먹혔으리라.

“분석 끝! [긴급 수리]! [무기 업그레이드]!”

파앗! 파앗!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를, 수리보다는 회복에 가까운 방식으로 원상복구시켜 버렸다.

그와 동시에 피구름의 분자 구조를 적용시켜, 뱀프릭 체인 소드의 위력을 증가시키는 한편, 새로운 스킬까지 얻어냈다.

-혈인술사 스킬 [피구름 생성]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제, 뱀프릭 체인 소드는 무수히 많은 금속 송곳니를 지닌 피의 구름 형태로 전환될 수 있었다.

‘뱀프릭 체인 소드로 피구름을 만들면 더욱 효율이 좋겠지?’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3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86.

“와, 대단하다, 은혁아. 엄청 잘 빨아먹네.”

염훈이 감탄사를 토해냈지만.

“아직 멀었어! [데이터칩 소환] + [피의 지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블러드 데이터칩]!!”

꿀렁……!

은혁의 손에 붉은색 데이터칩이 생겨났다.

이 칩 속에는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유기 정보가 들어 있었다.

흡혈귀 계열의 지고의 위상의 정보를 통째로 해킹해서 훔치는 엄청난 위업.

‘하지만 최초 업적은 아니지.’

3군주들은 이미 지고의 위상이나 드래곤 한둘쯤은 속부터 밑바닥까지 다 훑은 상태.

그럼에도 가치는 상당히 컸다.

“이걸 연구 길드장에게 팔까, 평화 길드 부길드장에게 팔까?”

“서, 설마 그건!”

“흡혈귀의 정체 분석에 관한 정보야. 이걸 만들어낸 나 자신도 이해 못 할 정보가 담긴 건데, 하여간 돈은 꽤 되겠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100층탑 최초로 흡혈귀를 ‘치료’하는 게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걸 노린 거였나.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패배감에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은혁에게 밀릴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의 내부를 잠식한 인치에게 당했던 게 너무 컸고, 히든 미션으로 맺은 보상 약속 또한 컸다.

“자, 피구름의 지분 49%는 획득 완료. 이제, 인치에게 어떻게 당한 건지 가르쳐다오.”

-짐작하지 않나?

“그래도 직접 듣는 거랑은 또 다르지.”

-그렇군.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설명했는데, 그 설명은 너무나 짧았다.

-어느 날, 놈이 내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지배했다.

“……그게 다인가?”

-그렇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들어온 것인지는 짐작이 가능하나, 확실치 않다.

‘알 만하군.’

인치는 크기를 지배할 수 있다.

아마 자신이 타고 다니는 우주선의 크기를 최소화시켜서, 피구름 속의 송곳니가 인지하지 못하도록 숨어든 것일 터.

바꿔 말하자면, 인치의 [크기 지배]는 피구름 속의 송곳니의 인지 능력을 속일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다.

“정보 고맙다. 그럼 약속대로 서로 떠나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

“해봐.”

-나와 동맹을 맺을 생각은 없나?

그 질문의 답은 염훈이 했다.

“없다!”

“야, 염훈. 왜 네가 대신 나서냐.”

“뻔하잖아. 보나 마나 인치랑 싸울 때 같은 편 먹자는 제안을 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악한 지고의 위상이랑은 동맹을 맺을 수 없지.”

“뭐, 염훈 네 말대로 말할 생각이긴 했는데…….”

-후후후…….

피구름 속의 송곳니가 나지막이 웃었다.

-성기사여. 그대는 무의식중에 모든 지고의 위상들을 다 사악한 존재로 여기고 있구나.

“아닌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거든.”

-너희 인류의 기준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뭐야, 변명이라도 할 셈이냐?”

-우리들 또한 생존을 위해 절박한 존재일 뿐이다…….

피구름 속의 송곳니는 탄식하듯 말했다.

그 순간.

파앗!!

그대로 이 차원을 떠나 버렸고, 은혁과 염훈은 왕국 수도의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면서 클리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재난 웨이브 3단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이 시간부로, 키나핀러 왕국의 땅에는 다시는 흡혈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도 두 사람은 각자 비행 스킬을 썼다.

염훈은 평소처럼 [신성한 날개]를 썼고, 은혁은 새로 얻은 스킬을 썼다.

“[피구름 생성].”

화악!

은혁이 쥔 뱀프릭 체인 소드의 양옆에 낙하산을 연상시키는 피구름이 생성되었다.

둥실둥실…….

은혁은 천천히 떨어졌다.

“오옷, 쩐다!”

염훈이 보고 감탄했다.

“훗. 부럽냐?”

“그거 비행도 가능해?”

“마력을 더 써야 하는데, 솔직히 추진용으로 쓰기에는 좀 아깝다.”

허공에 오래 떠 있거나 서서히 떨어지는 용도가 적당했다.

물론 공격용이나 방어용으로도 쓸 수 있고, 퓨전 스킬 조합용으로 쓸 수도 있었다.

“오, 다들 저기 모여 있네.”

길드원들이 왕궁 앞에 모여 있었다.

염훈과 은혁은 착지하며 손을 흔들어줬지만,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길드장님.”

한 길드원이 어두운 얼굴로 염훈에게 다가왔다.

“관리국에서 한 사람이 와 있습니다.”

“뭣?!”

염훈은 긴장하며 은혁을 돌아봤다.

지금의 은혁은 현재 재판 중이고, 관리국 측과 매우 민감한 상태다.

이런 시기에 관리국 측 인사가 왔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은혁은 짐작 가는 게 있다는 듯이 태연했다.

“어디에, 누가 왔지?”

* * *

왕궁의 응접실.

먼지와 거미줄이 그득한 그곳에는 구면인 관리국 요원이 와 있었다.

43층 관리자였던 마카론이다.

“누구신가 했더니 마카론 님이셨군요.”

은혁이 인사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마카론도 반갑게 맞이하며 일어났다.

“오랜만입니다, 강은혁 님.”

은혁과 마카론은 악수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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