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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79화 (279/434)

279화 : 재난 웨이브 4단계와 5단계 (2)

염훈이 걱정하듯 말했고,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정말 아는 거야? 네가 그렇게까지 위험을 떠맡아야 할 정도면, 차라리 투표를 반대로 하는 게 낫지.”

“맞습니다!”

“옳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플레이어들은 죄다 은혁의 편을 들었다.

NPC들은 기가 막혔다.

지금까지는 위험해도 열심히 해보자는 식으로 나오더니, 자기네들 부길드장 1인이 모든 걸 떠안으려 하자 말리는 꼴이었으므로.

은혁도 그걸 의식했는지 짜증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봐요들! 지금까지는 재난 웨이브 5단계에 다 찬성하는 쪽이었잖아? 실패하면 NPC들한테 재난이 쏟아진다고 했을 때는 찬성하더니, 막상 나 혼자 독박 쓴다고 하니까 죄다 반대 입장이라니. NPC들이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어?”

“하, 하지만 그건…….”

“냉정하게 생각해, 냉정히! 관리국 놈들이 보고 있다고!!”

은혁이 버럭 소리를 쳤다.

마카론이 찔끔했다.

“애초에 100층탑에 재난이 넘쳐나는 미션이 왜 있겠냐! 인치가 멋대로 재난 난이도를 키우고 떠났을 때, 원상 복구 하는 대신 우리끼리 토론하라는 재난을 왜 만들었겠냐!!”

은혁은 이 토론도 하나의 재난이라 칭했다.

“모르겠어?! 관리국 놈들은 우리의 민낯을 까발리려 하고 있는 거다! NPC들이 리스크를 뒤집어쓸 때는 가만히 있더니, 플레이어인 내가 리스크를 뒤집어쓴다고 하니까 말린다면! NPC들이 뭐라 생각하겠냐! 관리국 놈들이 얼마나 비웃겠냐!”

은혁이 일갈하자, 플레이어들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가만히 있었다.

자신들은 나름 은혁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NPC들의 목숨 전체보다 플레이어 1인의 목숨을 우선시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은혁도 필요한 경우 그렇게 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은혁은…….

“적어도 전설의 용사의 증표를 걸고 싸우는 지금만큼은, 아무리 가짜고 허상이라 해도 진짜 용사처럼 사태를 해결하고 싶다. 그 마음뿐이다.”

“아…….”

그제야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용사의 증표를 하나씩 갖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불만 있으면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하지만 용기와 양심에 기준을 둔 발언이 아니면 개소리로 취급하겠다.”

강경한 은혁의 말이, 모두의 용기와 양심에 불을 지폈다.

모두가 은혁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은혁은 NPC들을 바라봤다.

“제 진심을 이제 아시겠지요? 여러분은 어떤 걸 고르셔도 페널티를 입지 않습니다.”

“아……!”

NPC들은 머뭇거리며 관리국의 마크론을 바라봤다.

마크론은 은혁의 말이 사실이라고 답해줬다.

NPC들은 결심했다.

“조, 좋습니다.”

“전설의 용사의 증표를 지니고, 우리들의 입장을 고려하기로 한 당신을 믿겠습니다.”

“당신이 고르자고 하는 쪽을 고르겠습니다.”

그렇게 정식으로 협의를 맺은 순간, 조건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합의에 의해, 재난 웨이브 5단계를 실패하는 경우, 모든 페널티는 강은혁에게 쏟아집니다!

-이는 재난의 성좌 카라미타스와의 협약과 관리국의 중재에 의한 것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마카론이 지금 물러도 늦지 않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아, 하지만 변경 사항을 두어 가지만 명시하고 싶군요.”

“무엇입니까? 어지간히 무리한 요구라고 해도, 관리국의 재량으로 들어드리지요.”

마카론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든 것을 뒤집어쓰려는 은혁의 각오를 보고 감탄한 것이다.

“모든 페널티를 제가 뒤집어쓴다는 건, 바꿔 말하면 클리어 시의 모든 보너스를 제가 받을 수도 있다……라고 해석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음, 물론입니다. 좀 더 분명히 하고 싶으시다면 다른 플레이어분들이나 NPC 분들과 협의를 하셔야겠지요.”

물론, 은혁의 부하들과 염훈, 그리고 NPC들은 모두 동의하려 했다.

하지만 은혁은 고개를 저으며, 동의하기 전에 다시 확인하라 지시했다.

“5단계 클리어 시의 보너스와 페널티뿐만 아니라, 4단계 클리어 시의 보너스까지 제가 갖겠다는 겁니다.”

“4단계 클리어 보너스까지……?”

NPC들은 의아해했다.

5단계 클리어 보너스는, 클리어 이후에 재난의 성좌가 재난을 일으켜도 그에 대한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4단계 클리어 보너스는 자정이 지나서부터는 3일간 재난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보너스 내용도 비슷하고. 사실상 중첩되는 거 아닌가……?”

염훈마저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은혁은 고집을 부렸다.

“일종의 이중 안전장치라고 이해하면 될 거야.”

은혁은 대충 설명했다.

염훈은 여전히 납득 못 했다.

“은혁아. 그건 말이 좀 안 되는데? 5단계 미션 제한 시간은 겨우 50분이야.”

“그런데?”

“그런데 4단계 클리어 보너스인 ‘3일간 재난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오늘 자정이 지나야 발동된다고. 시간이 안 맞는데 어떻게 안전장치가 된다는 거야?”

염훈의 의문은 타당했다.

자정까지는 앞으로 6시간 가까이 남았으므로.

하지만 은혁은 [텔레파시]로 딱 한마디 했다.

‘날 믿어.’

염훈은 “허참.” 소리를 한 번 내고 결국, 은혁을 믿기로 했다.

염훈이 마지못해 믿자, 다른 길드원들과 NPC들 모두 동의했다.

적어도 NPC들에게 손해는 없었으므로.

4단계와 5단계 성공 시 보너스에는 본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성공 시 보너스 : 클리어한 날의 자정부터 3일간, 키나핀러 왕국 어디에도 재난이 나타나지 않는다.

-성공 시 보너스 : 키나핀러 왕국에 속한 모든 NPC는, 재난의 성좌가 재난을 일으키더라도, 그 재난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 여기서의 재난이라 함은 지극히 자연적이거나, 비유적인 의미의 재난이 아니라, 재난의 성좌, 또는 그 성좌의 힘이 담긴 존재(성직자, 성유물, 성지, 성좌의 핵 등)가 직간접적으로 유발하는 형태의 재난을 뜻한다. 만에 하나라도 재난의 성좌와 관련된 재난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관리국을 통해 성좌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위의 4단계, 5단계 성공 보너스를, 실패 시 페널티와 마찬가지로 마카론이 변형했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4단계 클리어 시 은혁이 얻는 보너스 : 클리어한 날의 자정부터 3일간, 강은혁에게는 재난이 나타나지 않는다.

-5단계 클리어 시 은혁이 얻는 보너스 : 강은혁은, 재난의 성좌가 재난을 일으키더라도, 그 재난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는다.

“수정했으니 확인하십시오.”

마카론이 말했고, 은혁은 확인한 뒤 말했다.

“좋습니다. 재난의 성좌에게 뒤통수를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요.”

은혁이 보험에 가입한 사람처럼 웃었고, 마카론이 대신 안절부절못했다.

“정말 괜찮은 겁니까? 재난 4단계는 이미 클리어했지만 보상을 받으려면 자정이 와야 합니다. 더군다나 재난 5단계는 극도로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클리어한 거잖습니까.”

“아니, 잊은 겁니까?! 그 5단계는 기존의 플레이어들이 클리어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어렵단 말입니다! 인치가 난이도를 대폭 키운 걸 잊은 겁니까!!”

“옳소!!!”

곁에 있던 염훈이 응원을 보냈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아, 배부르다.’

은혁은 계획을 잔뜩 짜두면, 가끔 맛 좋은 식사를 한 것처럼 배가 부른 기분이 들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그럼 누르자!”

모두가 초록색을 눌렀다.

-만장일치로 재난 웨이브 5단계에 도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어서 클리어 메시지가 떴다.

-재난 웨이브 4단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앞으로 3일간 강은혁에게는 재난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단, 이 클리어 보상은 금일 자정 이후부터 발효됩니다!

클리어 메시지 직후, 엄중한 경고 메시지가 추가로 떴다.

-재난 웨이브 5단계는 앞서 관리자 마카론을 통해 전달된 내용과 같습니다.

-단, 클리어 실패 시 페널티는 강은혁 1인에게 적용되며, 성공 시 보너스 또한 동일합니다.

-이는 관리국과 재난의 성좌 간의 계약에 의거한 것으로, 결코 취소할 수 없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보통 플레이어의 눈에만 보이지만, 이 경우에는 NPC들의 눈에도 보였다.

“저, 정말이구나!”

“오, 맙소사.”

“우리가 무슨 짓을…….”

NPC들은 뒤늦게 뉘우쳤다.

결국, 자신들이 오랜 세월 시달려 온 재난을 강은혁 1인에게 전부 떠넘긴 것과 다름없는 짓을 한 것이다.

은혁은 히죽 웃으며 그런 NPC들을 격려했다.

“죄의식 가질 필요 없습니다.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그 순간.

파앗!

플레이어들과 NPC들은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앗!”

“돌아오셨군요.”

“어떻게 된 겁니까? 재난 웨이브 5단계를 진행한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뜨던데…….”

길드원들이 반기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었다.

은혁은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고, 설명을 들은 이들의 표정이 핼쑥해졌다.

“아니, 이해가 안 가네.”

“그냥 재난 웨이브 5단계는 포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재난 웨이브 5단계를 수락하건 말건 48층 메인 미션은 클리어로 쳐준다며?”

이번만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는 길드원들이 많았다.

일부는 관리자를 찾아서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취소를 하자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뭐라고 설명하건 납득하기 어렵겠지. 결과로 보여줄 테니, 너희들은 준비해라.”

“뭘 말입니까?”

“뭐긴 뭐야. 운석 충돌 대비지.”

은혁은 길드원들을 분산시켜, 50분 이내에 날아올 운석을 막을 준비를 시켰다.

“염훈. 네 역할이 여기서 크다.”

“엥?”

“왕궁 지하 예배당의 현재 주인은 바로 너다.”

“그런데?”

“그리고 존 키나핀러 왕이 기도하던 예배당이 본래 섬기던 존재는 재난의 성좌가 아니라, 왕가의 수호령인데…….”

은혁은 키나핀러 왕가에 담긴 숨겨진 힘을 설명했다.

염훈은 빠르게 이해했다.

“그러니까, 지하 예배당에는 키나핀러 왕가의 수호 성물이 있었는데, 그걸 파괴하고 카라미타스를 섬기는 예배당으로 개조한 거다?”

“그렇지.”

“그리고 나보고 [정화] 스킬을 써서 키나핀러 왕가의 수호 성물을 복원시키라는 거야?”

“옳지. 이해가 빠르네. 그렇게만 하면 왕가의 수호령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줄 거야.”

“도움? 구체적으로?”

“뭐, 이것저것?”

“이것저것이라니. 운석 충돌을 막는 것도 가능해?”

“아마도?”

은혁은 평소답지 않게 알쏭달쏭하게 말했는데, 사실 은혁도 100% 정확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은혁이 너, 요번 재난 관련 스테이지에서는 묘하게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는 거 같은데.”

그 말에 은혁은 뜨끔했다.

실제로 회귀 지식이 부족한 지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으니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믿고 해라. 어차피 이제 와서 다른 수도 없잖냐.”

“쩝, 알았어. 하지만 문제가 두 개가 있는데.”

“와, 두 개밖에 없어? 말해봐.”

“빈정거리지 말고 진지하게 들어봐. 우선, 내 힘으로 키나핀러 왕가의 수호 성물을 복원시키는 게 정말 가능해? 네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냐?”

“내 도움은 없어도 될 거야. 이미 배불뚝이 마이크의 도움을 받았거든.”

은혁은 마이크에게서 되산 고대 유물을 내밀었다.

“오옷…….”

염훈이 봐도 상당한 힘이 깃들어 있는 왕가 수호의 힘이 담긴 유물이었다.

그 유물들을 한곳에 모아 놓는 것만으로도 큰 힘을 빌릴 수 있다.

그렇다면 염훈 혼자서도 키나핀러 왕가의 수호령들을 불러낼 수 있을 터.

“그, 그렇다 쳐도 다른 문제가 있는데.”

“뭔데?”

“내가 그 수호령들의 힘을 빌리면 실제로 운석을 막는 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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