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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81화 (281/434)

281화 : 재난의 산 (2)

<구원의 딜레마 문제>

동굴 안에는 선로가 깔려 있으며, 잠시 뒤에 선로 위를 매우 빠른 속도로 광차가 지나갈 것이다.

선로는 두 개인데, 선로 A 위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고, 선로 B 위에는 네 사람이 묶여 있다.

그리고 당신은 광차가 선로 A와 선로 B 중 어디로 달려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광차는 선로 A와 선로 B 중 한 곳을 무작위로 정하여 달려갈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흔해 빠진 트롤리 딜레마구만.”

철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문제라고 하지만, 은혁이 보기에는 실질적인 의미가 크지 않았다.

‘엄마랑 애인이랑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구할래?’라는 질문처럼 정해진 답이 없는, 아니, 가치관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질문일 뿐.

은혁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문제를 만든 자를 패 죽이고 모두를 구한다는 선택은 금물이오.”

노파가 얼른 말했다.

“본인은 한낱 NPC이지만, 선택 결과는 관리국에 전송되거든. 흘흘흘.”

“어련하시겠어요.”

은혁이 투덜거렸다.

플레이어의 성향에 대한 데이터를 뽑으려는 모양이다.

“또한, 한 선로의 희생자를 통째로 들어서 옮기려고 시도하거나, 철도 자체를 파괴하거나 하는 등의 시도 또한 실패로 간주될 것이오.”

“그럴 일 없습니다. 그보다 레버는?”

“이쪽에 있수. 흘흘흘.”

레버를 당기면 광차가 선로 A로 가거나 B로 갈 터였다.

오리지널 문제와는 미세하게 다를 뿐, 크게 다른 부분이 없었다.

그저, 선로에 구면인 이들이 묶여 있었을 뿐.

“웁읍읍!”

“흐으으읍……!”

선로 A에는 루이사 시장이 묶여 있었다.

선로 B에는 은혁과 염훈에게 돌을 던졌던 청소년들 네 명이 묶여 있었다.

팔다리만 묶인 게 아니라 입까지 묶여 있었다.

‘역시 재난의 왕국 속 NPC들은 처우가 안 좋아.’

저들의 입장에서는, 미션 참가자인 은혁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션에 강제로 전송되는 재난에 처한 셈이다.

“흐흐흐. 제한 시간은 5분. 선택하시오.”

“별거 아니네.”

철컥!

은혁은 지체 없이 레버를 당겼다.

-레버가 작동되었습니다!

-광차는 A 선로를 향해 달려옵니다!

“호오? 역시 늙은 여자 한 명을 죽이는 선택이로군?”

노파가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지만 은혁은 무시하고 A 선로로 갔다.

스르륵.

루이사의 입을 막고 있던 끈이 풀렸다.

“흐흑. 잘하셨습니다, 전설의 용사여.”

루이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은혁을 칭찬했다.

“저 하나를 죽게 하고 저 아이들을 살려주시니…… 흑흑…….”

“잘했다면서 뭘 웁니까.”

은혁은 그렇게 말한 뒤 자세를 잡았다.

“달려오는 광차쯤이야 막으면 그만.”

은혁이 호기롭게 말하자 노파는 비웃었다.

“후후후! 그런 생각을 한 게 당신 하나일 줄 아시오? 광차라고 해서 얕보다가 깔려 죽은 자는 부지기수요.”

“거, 되게 짜증 나게 하네.”

“흘흘흘! 그래서 어쩔 거요?”

“흠. 노인 학대는 취미가 아니지만.”

은혁은 가볍게 [섬영권]을 날렸지만.

터텅!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본 NPC는 관리국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플레이어의 선택에 대한 관찰자 역할을 맡겨서인지, 관리국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노파는 낄낄거리더니,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날 공격했겠다? 광차의 속도를 두 배로 올리겠다!!”

노파는 리모컨 같은 걸 꺼내더니, 정말로 속도를 높였다.

-광차의 속도가 두 배로 가속되었습니다!

“겨우?”

은혁은 피식 웃으며 추가로 도발했다.

“한 대 때려서 두 배로 가속되면, 세 대 때리면 네 배로 가속되나?”

“뭣?! 지금 뭐라고 했지?”

노파가 앙칼지게 되묻자, 은혁은 스킬로 대답해줬다.

“[돌 부수기].”

파칵!

노파의 발밑이 깨지며 아래로 쑥 꺼졌다.

“우각?!”

허리 높이 정도로만 추락했으므로 실제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크게 놀라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관찰자면 똑바로 관찰만 하도록 해. 주제넘게 플레이어나 NPC를 모욕하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겠다.”

“가, 감히이이!!”

노파는 리모컨의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광차의 속도가 네 배로 가속되었습니다!

-현재 광차의 속도는 최대치입니다!

그걸 본 루이사가 경악했다.

“미쳤어요?! 아니, 왜!”

“그래야 탈선이 잘 일어나죠. 일단 피 좀 뽑고.”

은혁은 거대한 뱀프릭 체인 소드를 휘두르더니.

찌직!

루이사의 어깨에 작은 혈선을 그어서 피를 뽑아냈다.

그리고는 [그림자 분신 5.0]을 발동했는데, 루이사와 동일한 외모였다.

혈인술사의 힘으로, 원하는 자의 피를 소량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피가 흐르는 복제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읏차. 여기 누워 계시고.”

은혁은 광차가 오는 방향으로 루이사의 분신을 눕혔다.

이대로 루이사의 분신이 죽으면 클리어 판정은 뜬다.

은혁은 테일러와 싸울 때 썼던 [그림자 분신 4.0] 시절에 이미, 미션 클리어 권한을 분신에 심어서 써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어차피 싹 쓸어 죽일걸!”

실제로 광차를 막지 못하면, 클리어가 되건 말건 은혁과 루이사도 함께 쓸려나갈 터.

‘물론, 그것도 대비는 했지.’

콰두두두두두두두……!!

맹렬한 속도로 광차가 달려왔고.

콰직!!

루이사의 분신이 터져 나갔다.

“꺄악!”

진짜 루이사가 비명을 지른 순간.

“[그림자 터널].”

파앗!!

[그림자 터널]의 입구를 만들어서, 달려드는 광차를 통째로 전송시켰다.

콰쾅!!!

“크악!!!”

[그림자 터널]의 출구는 노파의 바로 앞으로 해뒀다.

물론, 노파는 관리국의 보호를 받으므로 광차와의 충돌 때문에 죽진 않는다.

하지만 탈선된 광차와 함께 통째로 산 아래로 튕겨 날아갔으니 추락사할 터였다.

-제2코스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마력이 완전 회복됩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초대형 마나 포션 항아리를 1개 획득하셨습니다!

“후아암.”

은혁은 피로가 쌓인다는 듯이 하품을 했다.

죽다 살아난 루이사는 입을 뻐끔거렸고, 묶여 있던 몸이 자동으로 풀렸다.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아, 됐습니다. 그보다 사과드려야 할 게 있는데요.”

은혁은 전임 국왕을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지만, 루이사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이시니…….”

“그래요? 그럼 이만.”

용건을 마친 은혁은 바로 몸을 돌려 앞으로 걸었다.

“전설의 용사님! 힘내세요!”

“용사님 만세!”

어느새 풀려난 청소년들도 함께 외쳤다.

은혁은 제3코스로 향했다.

* * *

-제3코스 : 폭우의 숲.

동굴을 빠져나오면 분지가 있었는데, 비정상적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었다.

척박한 키나핀러 산 전체에서 분지형 숲에만 비가 잔뜩 내리는 모습은 기이했다.

‘그만큼 강한 적이 있다는 뜻이지.’

이 지역의 대기 시스템을 조종하는 강대한 적.

비를 내리게 하고, 바닥을 적신 물을 다시 하늘로 올려 내리게 하는 엄청난 힘이었다.

“이곳의 지배자여. 나와 주시오.”

은혁이 빗소리에 묻힐 듯한 목소리로 말한 순간.

슈루루루루룩…….

한 지점에서 물이 역류하며 거대한 파충류의 머리통이 나타났다.

-블루 드래곤 익스포레인이 나타났습니다!

“플레이어여. 나를 부를 필요는 없다.”

빗소리를 뚫고, 분지 전체가 웅웅 울리도록 하는 거대한 목소리.

“평소라면 그대는, 끝없이 비 내리는 분지의 숲속에서 내 사냥감이 되어, ‘드래곤이라는 이름의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했을 터.”

인간 기준에서 드래곤은 재난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므로, 말이 되는 코스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왜요?”

“이유는 말할 수 없다.”

“왜요?”

“말할 수 없다고 했잖나.”

“아니, 두 번째 질문은,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뭐냐고 물은 건데요.”

“……그건 말해줄 수 있겠군. 계약 때문이다.”

“더 말해줄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테일러가 뭐라고 꼬드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임머신 개발은 불가능합니다.”

“뭣……!”

은혁은 회귀 전 지식을 밑바닥까지 끌어냈다.

“테일러의 스킬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시간을 통째로 되감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황금을 쏟아붓고, 시간의 축을 되감는 장치를 만들어도, 그런 방식으로는 시간이 되감겼다는 사실에 대한 기억조차도 되감겨집니다.”

“…….”

“즉, 당신은 테일러와 계약을 했다는 사실조차 되감겨져 소멸한다는 겁니다. 당신이 테일러와 계약을 했다는 기억도 소멸할 테고요.”

“그 부분은 각오했다. 테일러가 명예를 아는 자이길 바라는 수밖에.”

익스포레인은, 은혁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판단해서인지, 테일러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익스포레인이 은혁을 대상으로 재난 제3코스를 진행하지 않는 것은, 마력을 테일러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가 타임머신을 다시 제작하고 충전하기 위해서는 드래곤급 마력이 필요하므로.

그럼에도 실패한다는 사실을 아는 은혁은 갑갑했다.

“이해를 못 하셨군요. 테일러 본인도 계약 내용을 망각하게 된단 말입니다. 그리고 테일러에게서 명예를 기대하신다는 걸 보니 갑갑하군요. 테일러는 다차원 은행에서 제게 패배한 뒤 이곳에 온 겁니다. 그는 패배자로서 승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대신 여기로 도망쳤단 말입니다.”

은혁의 말은 단순한 매도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테일러에게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부하들을 챙겼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다차원 은행은 물론, 5층의 자유시장 길드 본부도 내팽개쳤다.

“불명예스럽게 도망친 뒤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고 있는 테일러를 산에 머무르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 낮은 계약을 맺고 거기에 매달리다니요. 장구한 시간을 살아가는 드래곤이면서 어찌 그런 어리석은 판단을 하신 겁니까?”

“드래곤에게도 후회는 있는 법이다.”

“후회를 없애려는 시도는 더 큰 후회를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익스포레인은 아쉬움을 담아 말끝을 흐렸다.

“왜 시간을 되감고 싶어 하십니까?”

“엘더 포지 때문이다.”

엘더 포지는 키나핀러 왕가를 위해 청룡파가 내려준, 거대한 제련 장치다.

인류가 다루기 힘든 엘더니움이나 각종 희귀 금속, 아티팩트 등을 제련하는 제련 장치.

지금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순환하는 이 분지조차도 본래는 엘더 포지의 거대한 냉각로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블루 드래곤 익스포레인조차도 이 거대한 냉각로 관리자일 뿐.

“그 엘더 포지는 현재 파괴된 상태지요?”

“그렇다. 저 간악한 재난의 성좌 때문이다.”

엘더 포지는 키나핀러 왕가만이 다룰 수 있도록 계약되어 있었다.

그리고 재난의 성좌는 키나핀러 왕국을 멋대로 갖고 놀기 위해, 제일 먼저 엘더 포지를 파괴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잔해 위에 자신의 성지를 건설했다.

“처음에 엘더 포지가 파괴되었을 때, 나는 기뻐했다. 더 이상 엘더 포지를 수호할 필요가 없다고, 이제 나는 미션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지.”

즉, 익스포레인은 카라미타스의 권능이 엘더 포지를 파괴할 때, 일부러 느슨하게 경계를 섰다는 뜻이다.

“하지만 엘더 포지 파괴 직후, 나는 후회했다.”

익스포레인은 차량용 냉각수 냄새가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내게 맡겨진 임무, 엘더 포지 수호를 실패해 놓고서 자유라니. 부끄러움이 엄습해 오더군.”

후회감에 빠진 드래곤은 이미 파괴된 엘더 포지를 떠나지 못하고 이곳에 남게 된 것이다.

“이곳에 남은 나는 미션을 주관하며, 엘더 포지를 복원하는 게 가능할지 알아봤다. 하지만 엘더 포지를 복원하기는커녕, 그 잔해조차 장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더군.”

왕가의 지원을 받는 카라미타스의 신도들 때문이었다.

물론, 왕은 염훈으로 바뀌었지만.

“한데, 이해하기 힘든 일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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