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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82화 (282/434)

282화 : 테일러와의 재회

“키나핀러의 국왕이, 카라미타스의 성지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은혁에게 왕위를 뺏기기 전, 존 키나핀러는 연락병을 보내어 49층에 위치한 카라미타스의 성지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었다.

늘 주둔하며 성지를 관리하는 신도들이 있었으므로.

“신도들이 자폭하더니, 성지를 스스로 파괴했다. 그렇게 하면 카라미타스가 이곳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약해질 터인데,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

“아마 성지의 소유권을 저한테 뺏길까 봐 파괴한 것이겠지요.”

“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대에게 뺏기는 걸 왜 두려워한단 말인가?”

“아마 이런 것 때문에?”

은혁은 카라미타스의 사도에게서 뺏은 성유물을 들어 올렸다.

“아마 성좌는, 자신의 성유물과 성지를 통째로 뺏길 가능성을 고려해서 성지를 미리 파괴하려 한 것이겠지요.”

카라미타스로서는 차마 사도를 철수시킬 수는 없기에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리라.

물론, 은혁은 그 사도마저 처치하고 성유물을 뺏었다.

“대단하군…….”

익스포레인은 은혁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은 듯했다.

“그대는 실력뿐만 아니라 지식 또한 상당한 존재로군. 그대라면 혹시……!”

익스포레인은 무의식중에 은혁을 인정했다.

그 순간, 제3코스가 클리어된 것으로 판정되더니, 49층 메인 미션 클리어 메시지가 떴다.

-축하드립니다! 49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1회용 순간이동 장치 1개를 획득하셨습니다!

“흠. 순간이동 장치라.”

정작 재난에 시달릴 때 필요한 아이템을, 재난 미션을 다 클리어하고 나서야 지급했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바로 이어서 히든 미션이 발동되었다.

<49층 히든 미션 : 엘더 포지 반환>

-목표 : 엘더 포지를 현재 장악하고 있는 존재를 처리하고, 익스포레인에게 돌려줄 것.

-성공 시 보너스 : 엘더 포지 대여권 3회.

-실패 시 페널티 : 익스포레인에게 잡아먹힌다.

-제한 시간 : 3시간.

“으음, 운명은 아직 날 버리지 않았는가……!”

익스포레인도 처음 보는 히든 미션에 전율했다.

“플레이어여. 어떻게 하겠는가?”

“이거 좀 하자가 있는 미션 아닙니까? 엘더 포지는 파괴된 상태 아닌가요?”

그랬다.

카라미타스의 성지가 파괴될 때, 바로 밑에 있던 엘더 포지 또한 상당 부분 파괴된 상태.

“아, 아주 완파된 건 아니다. 완전히 파괴되어 무로 돌아갔다면 카라미타스의 성도들이 굳이 그 터 위에 성지를 짓지 않았겠지.”

“그렇겠죠.”

은혁은 엘더 포지의 숨겨진 구조를 대략 알고 있었기에 선선히 납득했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파괴되었어도, 내부 구조는 충분히 남아 있을 터.

“자네라면 엘더 포지를 재탈환해서 내게 돌려주는 게 가능할 텐데?”

“그건 그렇죠.”

“그래, 동의하겠나?”

“동의합니다.”

은혁이 말한 순간.

히든 미션 보너스와 아이템이 제공되려 했다.

하지만.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방전의 반지가 제공…….

-히든 미션 전용 버프 [고속 기동]이 제공…….

은혁의 앞에 뜨려고 하던 히든 미션 전용 버프와 아이템 메시지가, 반쯤 뜨다 치지직거리며 사라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블루 드래곤 익스포레인은 의아해했고, 은혁은 눈치챘다.

‘시스템 메시지의 시간을 묶어서 어긋나게 한 다음, 강제로 취소를 해버렸군.’

일반 플레이어는 시도조차 못 할 엄청난 위업.

아마 부길드장급에서도 상당히 강한 자만이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콰쾅!!

은혁이 서 있던 곳에 [시간 폭발]이 작렬했다.

좁은 범위의 시간을 인위적으로 어긋나게 해서 차원 폭발을 일으키는 기술로, 방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은혁이 [도약]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팔다리가 터져나갔을 터.

“역시 방심하지 않는군.”

빗물에 푹 젖은 채 나타난 이는 테일러였다.

히든 미션이 말하는 엘더 포지를 현재 장악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테일러였다.

은혁은 씨익 웃었다.

“일부러 찾으러 갈 필요가 없어서 좋군요.”

“오만한 건 여전하군.”

그렇게 말하는 테일러는 확실히 전보다 오만함이나 자만심을 덜어낸 것으로 보였다.

“따라와라.”

“기습은 안 합니까?”

“설득을 할 생각이다.”

“이미 한 번 기습을 해놓고 실패하니 설득이라.”

“불만 있나?”

“일단 들어나 보죠.”

은혁은 테일러의 뒤를 따라갔고, 익스포레인은 의아해하면서도 끼어들지 않는 게 상책이란 판단을 내렸다.

‘어느 쪽이 이기건, 손해는 없을 것 같군.’

다만 드래곤 특유의 민감한 감각은, 재수 없게 휘말리면 자기 목숨을 보장 못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 * *

엘더 포지는 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커다란 모루처럼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일 뿐,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구조의 제련 장치였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산의 ‘내부’에 보다 많은 기계 장치들이 있었다.

더군다나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었기에 키나핀러 왕가의 관계자만이 유지 보수가 가능했다.

카라미타스의 신도들도 엘더 포지를 파괴했다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파괴한 것이고, 내부는 너무 복잡해서 건드리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위에 성지를 건설했다가, 은혁에게 통째로 뺏기는 것을 우려하여 그 성지마저 스스로 폭파했다.

“제멋대로인 놈들이지.”

테일러가 카라미타스의 신도들을 평가했다.

“반쯤 파괴하고 뺏었다가, 그 위에 성지를 짓고서는, 또 너한테 뺏길 거 같으니 이번에는 스스로 파괴하고 자폭하고…….”

“동족 혐오입니까?”

은혁이 히죽 비웃었다.

제멋대로이기로 따지면 테일러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런 동굴 하나하나가 유지 보수 통로인 셈이다.”

테일러는 은혁의 비아냥을 무시한 채 설명을 이어갔다.

테일러의 은신처는 카라미타스의 성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동굴 속이었다.

그곳에는 엘더 포지의 동력 장치가 있었고, 그 동력 장치와 연결된 곳에 신형 타임머신이 있었다.

우우우웅……!

신형 타임머신은 모양과 색깔 모두 호박과 비슷했는데, 크기는 10배 정도였다.

‘저 신형 타임머신은 상당히 소형화되었군.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완성에 가까워.’

제작 과정에서 배불뚝이 마이크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마력 충전을 위해 드래곤의 마력을 지원받기도 했다.

‘테일러가 정말 독하게 마음먹은 모양이군. 그래도 실패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어차피 완성을 해봐야 근본적인 결함이 있으므로 시간축을 뒤로 되감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설득해 봐야 소용없겠지.’

은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테일러는 은혁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네가 틀림없이 카라미타스에게 도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럼 그렇게 하게 두지, 왜 방해하고 날 불러들인 겁니까?”

“방해가 아니라 설득 시도다. 네가 이미 일을 다 해치워 버리면 내가 설득을 시도할 수 없으니까.”

“흠. 제안이나 해보시죠.”

“지금이라도 나와 동등한 파트너가 되지 않겠나? 힘을 합쳐 엘더 포지를 되찾고, 함께 수리한 뒤 타임머신을 완성시키자.”

“왜 그렇게까지 시간을 되감는 일에 집착하는지 모르겠군요.”

은혁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보나마나 욕심 때문이겠지.’

하지만 테일러가 하는 말은 예상과 달랐다.

“그야 운명을 극복하고 싶기 때문이지.”

“운명?”

은혁은 내심 당황했다.

회귀 전에도 상당한 강적이었던 테일러의 목적과 욕망을 다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입에서 듣게 된 본심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으므로.

“복잡한 말 다 빼놓고 예시를 들어보겠다. 누구는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 왜 그럴까?”

“그건…….”

“그냥 운이야, 운. 그것뿐이라고.”

은혁은 인정했다.

고아원에 맡겨진 쌍둥이라도, 부잣집에 입양되느냐 가난한 집에 입양되느냐에 따라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크게 다르다.

그리고 누가 어느 집에 입양되는가는, 모호한 운에 의해 결정된다.

은혁은 테일러의 말에 일부 동의했으나, 모든 게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테일러 님. 당신은 내게 패배하고 돈을 많이 잃었지만, 여전히 길드연합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일 겁니다. 여전히 돈이 많으면서,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냅니까?”

“넌 방금 내가 든 예시를 납득할 수 있나?”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구는 빈자로 태어나는 현실을 납득 가능하냐고요?”

“그렇다.”

“납득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설명해봐라.”

“보드게임을 예로 들자면, 주사위를 굴리다가 1이 나올 수도, 6이 나올 수도 있지요. 거기에 대해 화를 내거나 기뻐할 수 있겠지만, 그 6분의 1로 작용하는 확률에 대해 납득하느냐 마느냐로 접근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흥, 한마디로 1이 나오건 6이 나오건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거짓말하고 있네. 보나마나 주사위의 눈을 조작할 테지.”

“하하! 물론, 불리한 운명에는 저항해야겠지요. 그게 바로 인간의 지혜 아닙니까?”

은혁이 웃자, 테일러는 미간을 더욱 깊게 찌푸렸다.

“네놈과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군. 너는 내 설득을 들을 자격이 없다.”

“그건 제가 할 소리입니다. 결국, 돈과 스킬의 힘으로 운명을 극복한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자기합리화하려는 수작 아닙니까?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있을까요?”

“뭐……!”

“당신은 돈으로 이미 여러 사람을 파멸시켰고, 돈 때문에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왔습니다. 실제로 산 사람에게 빚을 지워놓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귀신으로 부려 온 주제에 뭐가 운명을 극복하네 마네 떠드는 겁니까?”

은혁은 테일러의 얼굴을 분명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미리 말해두는데, 당신이 저지른 짓들은 당신의 자유의지로 한 일입니다. 당신이 저지른 악행이, 운명에 휘둘려서 저지른 거라고 변명하진 않겠지요?”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대의를 위해서였다.”

“허이구, 이제 와서 대의? 타임머신 만들어 과거로 돌아가서 운명을 바꾸는 거? 그걸 가지고 운명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걸 대의라고 부르다니. 기가 막히는군요.”

“무슨 소리냐. 길드 대전이 일어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걸 내가 지배한다면, 적어도 길드 대전을 막을 수 있게 된다. 그것만 해도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다.”

“백 보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그건 운명을 극복한 게 아닙니다.”

“어째서냐.”

“당신이 타임머신을 만들어 과거로 가는 것이 당신의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운명을 극복하는 일이라 믿고 시간을 역행하는 것이 당신의 운명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건 그냥 말장난일 뿐이다.”

“맞습니다. 딱 당신 주장만큼의 말장난이죠. 당신의 행동이 여전히 운명에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증명도, 인간의 힘으로 운명을 극복 가능하다는 증명도 이뤄지지 않았으니까요.”

테일러의 일방적인 주장도, 그에 대한 은혁의 반박도 전부 입증 불가능한 주장들일 뿐이다.

“……그래. 입증 불가의 문제는 그렇다 치자. 내가 해낸다면 다 입증될 문제다.”

“…….”

“뭐냐! 왜 그렇게 보는 거냐!”

테일러는 화를 냈고, 은혁은 테일러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과거에 집착하는 자일 줄은 몰랐네.’

은혁은 자신이 회귀자임을, 그리고 테일러의 타임머신 계획이 실패하여 관리국에 의해 죽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사실, 은혁은 테일러의 말을 따박따박 반박하면서도, 내심 가슴이 아팠다.

‘테일러를 향한 내 비판의 대부분은 사실 내게도 적용되는 것들이지.’

은혁 또한 회귀자로서 수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꿨다.

가급적 악한 자들, 이기적인 자들의 욕망을 분쇄하고, 그들의 것을 빼앗았지만, 미래의 지식으로 타인의 운명을 찬탈한 존재라는 지적은, 어느 정도 은혁에게도 적용되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은혁이 거리낌 없이 회귀 지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100층탑 정복의 욕망 때문이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냉철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보이는 은혁은 매우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다.

애초에 두 사람은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당신의 각오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스윽.

은혁은 뱀프릭 체인 소드를 들었다.

“결국, 싸우는 수밖에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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