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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83화 (283/434)

283화 : 테일러와의 재대결 (1)

“시간 낭비가 없어서 좋군. 하지만.”

테일러는 한 손을 내밀었다.

“[계약 대결]을 요청한다.”

“또 이상한 조건을 덕지덕지 붙이려고요?”

“아니.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내 목숨, 내 운명을 전부 거는 대결이다.”

“운명을 거는 대결이라.”

은혁은 냉소를 숨기지 않았다.

테일러는 도발이라 여겼는지 무표정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

“뭐, 좋습니다. 그렇다면 대결 조건은? 패배했을 때 뭐를 걸겠습니까?”

“내 모든 걸 걸겠다. 너도 모든 걸 걸어라.”

“모호하군요. 그냥 패배한 쪽이 이긴 쪽의 부하가 되는 걸로 하죠.”

“그것도 좋겠지.”

“전투 시간은?”

“네가 정해.”

“키나핀러 왕국 수도에 운석이 날아오는 중인데요. 운석 충돌 이전까지로 하죠.”

“그건 더 모호한 조건이군.”

“이건 양보 못 합니다. 정확히 시간을 정하면, 당신이 스킬로 시간을 막 되감거나 가속시킬 수가 있으므로…….”

테일러라면, 미션의 시간을 멋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

물론, 은혁 또한 이미, [그림자 분신 4.0]에, [염상 조작] + [초월 명상]을 이용한 퓨전 스킬, [조건 조작] 꼼수로 대응한 바 있다.

게다가 지금은 무려 [그림자 분신 5.0]이므로 미션이나 계약 조건에 대한 장난질에 저항이 가능했다.

“좋다.”

“좋습니다.”

-쌍방의 합의에 의해, 계약 대결이 성립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격돌했다.

* * *

쿠르릉!

콰르르르……!!

키나핀러 산에서는 연신 굉음이 울려 퍼졌다.

멀리서 산을 바라보는 염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정말 괜찮은 거냐.’

지금 이 순간에도 운석은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5분 37초…….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5분 36초…….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5분 35초…….

“멸망까지 15분이라. 엄청 쫄리네.”

염훈은 투덜거렸다.

은혁이 지시한 준비는 이미 다 마쳤다.

지하 예배당에는 키나핀러 왕국을 수호하는 수호령들이 정말 잠들어 있었고, 염훈은 그들의 힘을 이용해 방어막을 펼칠 수 있었다.

또한 지금 이 순간, 대피소에 들어간 모든 이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오오, 위대한 국왕 염훈이시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불패불굴 길드원들에게는 죄다 염훈의 이름을 외며 기도하라고 지시한 상태.

[홀리 채널링] 스킬을 지닌 염훈은, 그들의 힘을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근데 이 황금빛은 좀 어떻게 안 되나?”

염훈은 투덜거렸다.

[홀리 채널링]으로 끌어모은 신성력의 힘은 엄청났다.

지금의 염훈은 단순히 왕이 아니라 재난에 대한 구원자이기도 했기에, 생존을 바라는 가장 순수한 의지가 염훈 한 사람에게 집중된 상태인 것이다.

만약 염훈이 이 힘을 전부 한 번에 쏟아부으면, 성좌의 본체를 거꾸러뜨리는 것도 가능할 터.

“엄청나군요.”

“역시 불패불굴 길드장……!”

감탄하는 두 사람은 로널드와 라벨리아였다.

그들은 구원 길드원과 평화 길드원을 움직여서 일반 시민 NPC들을 최대한 대피시킨 뒤 돌아온 참이다.

“흠흠.”

염훈은 몸의 광채를 프리즘 랜스로 흡수하려다가 잘 되지 않아서 그냥 섰다.

“최대한 대피시켰는데, 상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아요.”

로널드와 라벨리아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NPC들을 구하려 했고, 또 수많은 도움을 준 이들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었는데도 이번에는 표정이 어두웠다.

“음…….”

염훈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사실, 운석이 충돌해도 NPC들은 다치지 않는다.

모든 페널티를 은혁이 떠안기로 했기 때문이다.

즉, 운석은 이곳에 떨어져도, 충격파로 건물이 파괴되거나 불에 타는 대신, 은혁의 몸이 박살 나는 것이다.

그것도, 그 피해량을 전부 청산할 때까지 반복해서.

그럼에도 라벨리아와 로널드의 표정은 어두웠는데, 단순히 은혁이 걱정되어서는 아닌 것 같았다.

라벨리아가 한 걸음 나서며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볼 테니 솔직히 말해주시겠어요, 염훈 길드장?”

“음? 뭡니까?”

“강은혁이 당신마저 속인 걸까요?”

“엥? 뭔 질문이 그렇습니까?”

“그야…….”

라벨리아는 차마 더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로널드가 나섰다.

“강은혁은 어차피 우리 모두가 살 수 없으니, 우리에게 거짓말로 희망을 준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엥?! 뭔 소립니까, 그게!”

“아닙니까?”

잔뜩 지친 라벨리아와 로널드는 남들 앞에서는 드러내지 못할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대로 운석에 직격당해서 고통 없이 죽는다면 차라리 바라던 바라는 듯한 태도.

그걸 본 염훈은 황망한 표정을 잠시 짓더니.

“푸하하하!!”

크게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조금 발끈해서 물었다.

“왜 웃으십니까?”

“미안하지만, 두 분은 강은혁에 대해 좀 오해를 하신 것 같네요.”

“오해요?”

“그렇습니다. 은혁이는 5단계 웨이브의 실패 시 페널티를 모조리 뒤집어쓰기로 했죠. 그런데 포기를 할 리가 없잖습니까?”

“혹시 모르지요. 어떤 기묘한 묘수로 그 페널티를 벗어 던지고 자신만 살아남을 길을 찾아냈는지도 모르죠.”

“허참. 은혁이에 대한 평가가 참 안 좋군요.”

“오해하지 마시길. 실력적인 부분은 누구보다 크게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해한 은혁은, 상황이 좋은 경우에는 여러 사람을 구하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는 왕국이고 뭐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갈아 넣는 인간이었다.

은혁의 곁에 늘 붙어 있으면서도 갈려 나가지 않은 존재는 염훈 정도밖에 없다.

두 사람이 그렇지 않냐고 묻자, 염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맞습니다. 하지만 강은혁 생각은 다를 겁니다.”

“어떤 부분이?”

“지금은 절체절명의 상황도 아니고, 기껏 손에 넣은 왕국을 버릴 위인은 더더욱 아닙니다.”

염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녀석이 저한테 왕위를 떠넘긴 걸 보면, 이 왕국을 보호할 생각은 충분히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

“아직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엥?”

“방금 두 분이 하신 이야기와도 연관이 있는 건데, 은혁이가 힘든 조건을 떠안는 경우, 뭔가 이득이 있으니까 떠안는 겁니다. 한데, 아직까지는 키나핀러 왕국을 위해서 헌신만 하고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음…….”

“그러니 여러분 말대로 혼자 도망치는 꼼수 같은 걸 쓸 리는 없습니다.”

염훈이 말한 순간.

-재난의 성좌, 카라미타스가 운석을 가속시킵니다!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3분 35초…….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3분 30초…….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3분 25초…….

* * *

키나핀러 산에서는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광풍충장]!!!”

콰콰콰쾅!!!

충격파가 동굴을 파괴하고 산을 뒤흔든다.

“[시간 되감기].”

스르륵.

파괴된 지형지물이 서서히 복원되었고, 테일러는 되돌려지는 지형지물을 능숙하게 밟고 타 넘었다.

은혁 또한 테일러의 템포에 맞춰 요격을 하려는 순간.

“[순간 가속].”

투쾅!!

느릿느릿 되감겨지던 지형지물이 대여섯 배의 속도로 갑자기 빠르게 되감겨졌다.

“큭!”

타이밍을 잡던 은혁이 순간 당황했다.

비산되던 파편이 고속으로 되감겨지자, 은혁은 [그림자 도약]으로 크게 피했다.

거리가 멀어지자 테일러는 스킬을 연속으로 썼다.

“[시간 지뢰 소환] 연속.”

팍!! 팍!! 팍!!

은혁의 재돌격 루트 곳곳에 투명한 시공의 어긋남이 생성됐다.

은혁은 사이오닉 런처를 꺼내더니, 통째로 날려 버렸다.

콰콰쾅!!!

차원의 떠밀림 현상이 일어나고, 테일러가 생성한 시간 지뢰는 멋대로 터져 나갔다.

콰쾅!! 콰쾅!! 콰쾅!!

물론, 테일러의 의도대로다.

더욱 많은 파편이 생성되고, 테일러는 무수히 많은 파편을 향해 금화를 뿌렸다.

“[황금의 시간].”

화악!!!

쐐애애액!!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파편들이 은혁을 향해 날아왔고.

“[사이오닉 필드]! [메탈 벙커 소환]!”

파파팍!!

터터터텅!!

[사이오닉 필드]는 순식간에 찢겼고, 메탈 벙커의 두께는 순식간에 얇아졌다.

‘전투 센스가 갑자기 늘었네?’

은혁은 최악의 가능성을 인정하기로 했다.

“반복 학습을 하셨나 봅니다?”

“물론.”

놀랍게도, 지금의 테일러는 심리전에서 은혁을 이겼다.

‘타임머신 수복에 시간을 들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은혁은 도망친 테일러가 제2의 타임머신을 만드느라 시간을 낭비할 거라 판단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제2의 타임머신은 처박아 두고, 수련에 몰입했다.

“그래. 나는 너에게 패배한 당시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감기’ 하며 복기했다.”

일류 바둑 기사는 자신이 패배한 대국을 반복해서 복기한다.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여 교정하고, 적의 강점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적의 약점을 파악한다.

키나핀러 산에 숨어 지내던 테일러가 한 일이 그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시간을 되감는 일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다.”

“또 뭔 소립니까?”

“이전의 나는 네놈이 미래를 예지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상태에서 싸웠다. 하지만 패배의 기억을 계속 반복하여 학습하던 중, 보다 과감한 결론을 내렸다.”

테일러가 검지로 은혁을 가리켰다.

“네놈은 미래의 큰 줄기를 알고 있다.”

“…….”

기존의 부길드장들이 내린 것과는 다른 결론이었다.

다른 부길드장들은 은혁의 판단력과 계산력에 대해, ‘뭔가가 있다. 어쩌면 예언자일지도?’라는 선에서 접근해왔다.

반면에 테일러는, ‘강은혁은 분명히 미래의 큰 줄기를 이미 알고 있으며, 다음번 나와 싸울 때도 그러할 것이다.’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품고 싸우는 중이다.

‘작은 차이지만 크다.’

일대일 대결에서는 심리적인 요소가 특히 크게 작용할 터.

“[황금의 분신]!”

파앗!

테일러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려 했다.

은혁 또한 맞대응하기 위해 스킬을 썼다.

“[그림자 분신 5.0] 연속 발동.”

은혁 또한 분신으로 맞섰다.

콰쾅!!

퍼버벙!

은혁이 소환한 분신들이 가볍게 테일러의 분신을 박살 냈다.

그리고 은혁은 그 기세를 몰아, 테일러에게 [광풍돌진권]을 분신들과 함께 몰아치듯 쓸 생각이었다.

그 순간, 테일러가 외쳤다.

“지금이다!!”

콰쾅!!

땅 밑에서 제3의 황금의 분신이 튀어 올랐다.

은혁과 협상을 시도하기 전부터 ‘미리’ 숨겨뒀던 것이다.

‘[황금의 분신]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된 건가.’

은혁의 회귀 전 지식으로는, 테일러는 죽을 때까지 [황금의 분신]을 딱 하나만 보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테일러는 그런 은혁의 지식을 공략하기 위해, 이곳에 숨어서 [황금의 분신]을 추가 소환하는 법을 습득한 것이다.

덥석!!

황금의 분신이 은혁의 한쪽 팔을 잡았다.

“쳇.”

퍼버벅!!

은혁은 자신의 분신과 함께, 숨겨져 있던 [황금의 분신]을 박살 냈지만.

-[마이더스의 손]에 적중되었습니다!

-신체는 서서히 황금으로 변화합니다!

[황금의 분신]은 이미 자폭할 각오로 손에 [마이더스의 손] 스킬을 발동하고 덤벼든 것이었다.

‘허! [마이더스의 손]까지 쓴다고?!’

이는 자유시장 길드장인 슬레이버가 지닌 일종의 저주이자 고유 스킬이다.

은혁은 설마 테일러가 슬레이버만이 사용하는 스킬까지 쓸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조금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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