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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86화 (286/434)

286화 : 재난의 성좌로부터의 강요

테일러가 화를 내자 은혁은 히죽 웃었다.

“눈치가 빨라서 좋군요. 다 같이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다 같이 이득을 보는 길이 있습니다.”

은혁이 엘더 포지를 툭툭 친 다음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다차원 은행 결전 당시, 제가 미션 제한 시간을 조작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림자 분신 4.0]을 만든 뒤에 온갖 꼼수를 썼던 게 기억난다.”

당시 은혁은 미리 [그림자 분신 4.0]을 소환한 뒤,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 [염상 조작]에, 마법사 스킬 [초월 명상]을 융합시키는 퓨전 스킬을 발동했었다.

“맞습니다. 퓨전 스킬 [조건 조작]이었죠.”

자기 자신의 미션 제한 시간을 멋대로 조작하는 건 당시 은혁이라도 무리였기에, 자신의 소유물이면서 각종 시스템값을 공유하는 분신을 향해 [조건 조작]을 걸었다.

그런 다음 그 분신에 대고 [뇌파 연동]을 써서, 스테이터스를 일치시켰다.

지금의 은혁이 봐도 상당히 복잡한 과정.

“그 복잡한 과정을 이번에는 테일러 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안 해, X발!”

테일러가 그답지 않게 경박한 욕설을 한 순간.

“으으, 부탁하네, 테일러.”

옆에 있던 마이크가 부탁을 했다.

“엘더 포지 복원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작업일세. 모두가 힘을 합쳐 해낼 수 있다면 그게 최선 아닌가?”

“흥, 더 솔직히 말하시지?”

“……여기서 강은혁 부길드장이 운석 충돌의 모든 페널티를 받아 죽으면, 우리도 다 죽네.”

“뭘 모르는 건 자네야, 마이크. 강은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놈이지. 그냥 죽게 두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어.”

말투를 보아하니, 테일러는 은혁만 두고 도망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는 듯했다.

마이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은혁의 위험성은 나도 당해봐서 안다네. 하지만 자네야말로 엘더 포지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구먼. 애초에 카라미타스가 왜 엘더 포지 위에 자신의 성지를 만들었겠나?”

“그건……!”

“엘더 포지가 지닌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나. 솔직히 궁금하지 않나? 내 목숨도 아깝지만, 엘더 포지도 솔직히 아깝다네.”

“…….”

테일러는 한숨을 내쉬더니 은혁에게 말했다.

“방금 네놈의 히든 미션 클리어 메시지를 보았다. 엘더 포지 사용권이 3회라지?”

“네.”

“그중 2회를 내게 다오. 그럼 널 돕겠다.”

“1회만 드리겠습니다.”

“제기랄, 이 판국에 협상을 시도하는 거냐?”

“들어보십시오. 3회 중 1회는 제가 살아남는 데 쓸 거고, 1회는 동료인 염훈에게 줘야 합니다. 남는 건 1회뿐입니다. 더 드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젠장……!”

테일러는 연신 욕설을 하다가 결국 동의하기로 했다.

이대로 은혁이 죽어 버리면 엘더 포지 사용권이 0회가 되어 버린다.

0회보다는 1회가 언제나 이득이라는 경제적 동기 때문에 설득되었다.

“정말 복잡한 과정이니까, 일단 파티부터 맺죠.”

“가지가지 하는군.”

테일러는 연신 투덜거리면서 은혁과 파티를 맺었다.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분 2초…….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분 1초…….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 : 1분…….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이 테일러의 눈에도 보였다.

“이런 미친?! 1분 남은 거였냐!!”

“바로 갑니다! [그림자 분신 5.0]!”

은혁은 퓨전 스킬 [조건 조작]을 발동했다.

테일러는 은혁의 스킬 타이밍에 맞춰 [시간 되감기]를 썼다.

파티를 맺은 두 사람이 같은 시간, 같은 마력을 부여하여 스킬을 발동한 순간.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조건 조작 2.0]!!”

꾸궁……!

그림자 분신을 중심으로 시간이 조작되더니 되감겼다.

“마력을 계속해서 부여해야 합니다! 놓치지 마세요!”

“알고 있다!”

그림자 분신에게 적용된 시간만이, 시간을 거슬러 자정에 도달했다.

-미션 참가자의 시간이 자정에 도달했습니다!

-재난 웨이브 4단계 클리어 보상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3일간 강은혁에게는 재난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은혁이 소환한 그림자의 조건이 조작된 순간.

은혁은 그 찰나의 순간에 꼼수를 추가로 썼다.

‘퓨전 스킬 [사이오닉 스틸].’

[메모리 스틸]과 비슷한, 상대의 스킬을 훔치는 스킬.

[메모리 스틸]이 [사이코메트리] + [소매치기]의 융합으로 기억을 훔친다면, [사이오닉 스틸]은 [강탈] + [텔레파시]의 융합으로 스킬을 훔쳤다.

-스킬 탈취 일부 성공!

-[미완성 시간 되감기]를 훔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현재 [미완성 시간 되감기] 스킬의 힘으로 약 2초 정도의 시간을 되감는 것이 가능합니다!

‘됐다!’

테일러만큼의 [시간 되감기]는 아니지만, 시간을 되감는 능력은 그 가치가 크다.

테일러로서는 연속으로 뒤통수를 맞는 셈이다.

협상을 다 해놓고, 같은 편인 척 파티까지 다 맺어놓고는 절묘한 타이밍에 스킬을 훔쳤으므로.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은혁과 테일러가 파티를 맺은 상태였고, 은혁의 분신을 향해 합체기를 쓰는 도중이었기 때문이다.

테일러 자신은 스킬 위력이 조금 감소한 것 같다는 것을 느꼈지만, 조금 전까지 적이었던 자와 합체기를 쓰느라 생기는 현상으로 여겼다.

“수고하셨습니다. [뇌파 연동]!”

은혁과 그림자 분신의 조건이 하나가 된 순간.

-재난 웨이브 5단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강은혁 플레이어는, 재난의 성좌가 재난을 일으키더라도, 그 재난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됐다! 전부 계획대로다.’

은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테일러는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이게 네놈 계획이었군. 재난 웨이브 4단계 보상인, ‘3일간 재난 없음’을 일찍 찾아오도록 당겨서, 5단계를 회피하는 것.”

“그렇습니다.”

은혁이 받은 4단계 보상에 의하면, 자정부터 3일간은 재난이 오지 못한다.

그 재난에는 당연히 재난 웨이브 5단계의 운석 관련 재난도 포함된다.

더군다나 4단계 보상은 5단계보다 선행하며, 관리국의 동의를 얻은 것이므로 당연히 보장받는다.

그리고 재난 웨이브 5단계의 목적은 운석 재난으로부터 NPC들을 살리는 것.

재난 웨이브 5단계는 오지 못하므로 당연히 자동 클리어가 된다.

“만약 내가 너를 돕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나?”

“그 경우에는 염훈을 이용한 플랜 B를 시도해야겠죠.”

염훈이 [홀리 채널링]으로 끌어모은 모든 신성력을 염훈의 프리즘 랜스에 과충전시킨 ‘신성력 과충전’ 상태를 만드는 것.

그 힘을 은혁이 이어받아 사이오닉 런처에 주입해서, 염훈의 [2초 무적]을 빌려 운석 궤도를 빗나가게 하는 것.

이 플랜이 진행되었다면 그야말로 무식한 도박인지라, 은혁도 목숨을 걸어야 했을 터.

‘게다가 그건 성공해도 죽음을 모면하는 것일 뿐, 크게 이득을 볼 수 없지.’

반면에 지금은 테일러를 꺾고, 스킬도 훔쳤으며, 엘더 포지 사용권까지 얻었다.

그때였다.

-재난의 성좌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YES/NO

“당연히 NO다.”

보나마나 욕을 하거나 부하로 포섭하려고 들 터.

그런 걸로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었다.

“급한 불을 껐으니,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겠죠.”

“뭘 말인가? 지금의 자네는 46층~49층 통합층 미션을 모두 다 클리어했을 텐데?”

순서가 뒤죽박죽이었지만, 테일러의 말이 맞았다.

이제 모든 걸 뒤로 한 채, 게이트를 타고 50층으로 갈 수 있었다.

키나핀러 왕국에 대한 카라미타스의 영향력은 여전하겠지만.

그 순간, 은혁에게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찌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메시지였는지, 은혁뿐만 아니라 테일러와 마이크의 눈에도 보였다.

-재난의 성좌가 다이렉트 메시지를 강력히 신청합니다!

-만약 이번에도 다이렉트 메시지를 거절할 경우, 빠른 시일 내에 키나핀러 왕국 전체를 멸망시킬 것임을 알려옵니다!

-다이렉트 메시지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ES/NO

“으음, 내가 우려한 결말이군.”

마이크가 중얼거렸다.

“나는 이곳에 오래 있어서 알지. 카라미타스는 제멋대로야.”

“아니, 절반은 제 책임입니다.”

은혁이 말했다.

본래 5단계의 보너스와 페널티는 키나핀러 왕국을 향하고 있었으나, 협상에 의해 전부 은혁이 갖는 걸로 바꾸었다.

그러니 카라미타스는, 은혁을 노리지 않는 대신 키나핀러 왕국만을 노릴 수 있을 터.

물론, 은혁은 카라미타스가 쪼잔하게 굴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YES.”

-플레이어여. 매우 흥미로운 놀이였다.

카라미타스가 말을 걸어왔다.

“놀이라고 하셨습니까, 성좌여?”

-그러하다. 실로 흥미로웠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은혁은 신중히 말을 골랐다.

“이를 단순히 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당신이 입은 손해가 막심할 텐데요.”

카라미타스의 영향력은 이미 약해졌다.

은혁이 주도해서 재난을 차례로 격파했고, NPC들을 구원했으니 재난에 대한 절망의 농도는 옅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카라미타스를 섬기던 기존의 키나핀러 왕가가 몰락하고, 염훈이 대신 왕위를 이었으니, 카라미타스의 영향력은 점점 더 약해질 터였다.

-그렇지는 않다. 그대가 있으므로.

“무슨 의미입니까?”

-그대를 내 사도로 영입하고자 한다.

“제가 거절할 거라는 걸 잘 아실 텐데요.”

-네가 거절할 경우, 다른 이를 사도로 세울 뿐이다. 아직 나에 대한 신앙은 뿌리 깊다.

실제로, 카라미타스의 성지를 파괴한 말단 성직자들은 대부분 자폭했지만, 일부는 아직도 곳곳에 숨어 있었다.

만약 카라미타스가 무리를 각오하고 그 성직자 중 하나를 통해서 [화신 강림] 따위를 한다면, 그때는 더욱 골치가 아파진다.

마치, 광범위한 영향력을 잃은 대신 깊이 파고든 테러리스트 조직처럼.

미션과 무관하게 카라미타스가 깽판 치는 것이므로 관리국과의 협의고 뭐고 없다.

카라미타스는 그 사실을 알고 은혁을 은근히 압박했다.

-자, 선택하라.

“고민이…… 되는군요.”

은혁은 성좌를 상대로도 시원시원하게 말하던 평소와 달리, 무척 말을 길게 끌었다.

“일단 제 성직자 직업이 비어 있긴 한데…….”

은혁이 말하자 테일러와 마이크가 경악했다.

“뭐……!”

-방해꾼들은 물러나라.

파창!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은혁으로부터 마이크, 테일러가 멀리 튕겨 나갔다.

-흐하하하! 너희가 있는 엘더 포지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의 영역이었던 곳이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내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할 것이다.

카라미타스는 무리하고 있었다.

일부러 힘을 과시해야만 할 정도로 초조한 상태.

그렇기에 카라미타스가 마지막 영향력으로 정말 심한 깽판을 칠 수도 있었다.

“하는 수 없군요.”

은혁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사도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나에 대해 모른다는 건가?

“당신의 부하들이나, 당신이 일으킨 권능은 실컷 상대해 봤지만, 당신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오라.

파앗!

거대한 포탈이 생성되었다.

죽은 존 키나핀러 왕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재난의 차원.

-안으로 들어오라.

“어어, 그냥 들어가면 왠지 죽을 거 같은데요.”

-나의 허가 하에 들어온다면 괜찮다. 더군다나 그대는 내가 일으키는 재난 피해로부터 면역 아닌가?

은혁은 재난 5단계를 클리어한 보상으로, 도시가 받아야 할 ‘카라미타스가 일으킨 재난 피해로부터의 면역’을 지니고 있었다.

은혁은 빙긋 웃었다.

부드럽게 계획대로 흘러갈 때 짓는 웃음인데, 평소의 웃음과 구별 가능한 사람은 염훈뿐이었다.

“더 안전하고 좋은 수가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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