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 저스티스에 대한 도전
저스티스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고, 염훈은 한 손을 허리에, 다른 손으로는 저스티스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야이, 냉혹한 새끼야!!”
염훈은 일단 욕부터 박더니, 저스티스에게 기초 윤리에 대해 가르쳐 줬다.
저스티스는 피식피식 웃었다.
“아니, 그렇게 욕을 한다고 해서 내 생각이 바뀔 것 같진 않은데? 너무 맥락이 없잖아?”
“그래?! 그럼 성공이군! 지금 네가 느낀 어이없는 감정을 100배로 부풀리면 지금 내 기분이다! 모처럼 은혁이가 널 깨워줬더니만 이런 식으로 죽이느니 마느니 하는 소릴 하냐!!”
“음? 깨워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게 무슨……! 어라?”
염훈은 욕을 하다가 문득 ‘듣고 보니 그러네.’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은혁을 돌아봤다.
저스티스는 다시 히죽 웃었다.
“들어봐. 나는 강은혁이 준 블러드 데이터 칩을 통해 강은혁의 목적을 가감 없이 확인했다. 그가 날 깨운 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야. 그렇지?”
“그렇습니다.”
은혁이 솔직히 인정했다.
말로 설명하는 대신 블러드 데이터 칩 같은 스킬을 쓴 이유 중에 하나는, 저스티스로 하여금 자신의 진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나를 이용하기 위해 깨웠을 뿐이잖나. 100층탑을 통틀어도, 자기 목적을 위해 7대 길드의 길드장을 깨우는 놈은 드물지. 그런 위험한 자를 살려둘까 말까 고민하는 건 오히려 정의 길드장이 할 법한 일 아닐까? 응?”
저스티스가 말하자 은혁은 고개를 끄덕였고, 염훈은 당황해 버렸다.
은혁은 당황한 염훈을 위해 말해줬다.
“7대 길드의 부길드장과 길드장은 완전히 다른 존재야, 염훈. 부길드장들은 논리, 사회적 시선, 최소한의 법률에 대해 신경 쓰지만, 길드장들은 그런 최소한의 것들에도 별로 신경 안 써.”
“후후. 길드장에 대한 이해가 깊군.”
“길드장과는 상대해 본 적이 있으니까요.”
“알아. 네가 준 기억 중에는 피스메이커랑 싸울 때의 모습도 일부 들어있더군. 얼핏 본 거지만 제법 잘 싸우던데?”
“지금 저와 당신이 싸운다면 더 잘 싸울 자신이 있습니다.”
“음?”
“저스티스 님. 지금 당신이 말로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진실로 악의를 품고 그러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은혁이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길드연합국에서 그나마 정의로운 축에 속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정말 쓰레기라면, 저 정의로운 워잭이 당신을 길드장으로 섬길 이유가 없으니까요.”
“흐흐. 그건 어쩌면 과거의 내 모습이고, 자다가 깬 지금은 내가 미쳐 버렸을지도 모르잖나?”
“그랬다면 우릴 이미 죽였겠죠. 죽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후후후…… 네 말이 전부 다 맞다.”
저스티스는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강은혁. 내가 왜 관 속에 들어 갔는 줄 아는가? 다른 봉인 방법 말고 하필 관속에 들어간 이유 말이다.”
“……짐작은 가지만 듣고 싶습니다.”
“첫째. 깨어날 일이 없다면 그대로 죽어도 상관없었으니까. 둘째. 만약 다시 깨어난다면, 길드연합국에 혼란을 끼칠 테니, 누구도 나를 쉽게 깨우지 못하게 하려고.”
저스티스는 회한에 차서 말했다.
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관리국을 고소하는 게 가능한가에 관한 답을 확인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문의한 직후 후회했다.”
“어째서입니까?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 가능한가에 관한 내용은 길드연합국과 관리국 모두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일 텐데요.”
“그게 문제야. 어느 쪽에 유리한 결론이 나오건, 길드연합국과 관리국 간의 관계가 크게 요동칠 수 있으니. 그리고…….”
저스티스가 은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도 순진한 놈은 아니지.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하는 게 가능한가?’에 관한 관리국의 답변은 그 자체로 판례로서 작용한다지? 그 판례가 어떻게 나올 거 같냐?”
“기각이나 각하는 아니겠죠. 관리국 측이 답을 준비하긴 할 겁니다.”
“그래, 그 답은?”
“아마 불가능하다겠지요.”
관리국 입장에서 플레이어의 고소를 허용했을 때의 이득이 전혀 없다.
만약 그런 고소가 허용된다면, ‘7층 스테이지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부상당했습니다. 치료비 주셈!’ 같은 고소가 남발될 것이다.
그러니 관리국은 ‘100층탑 전체의 관리를 위해 고소를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은, 공손하지만 철벽같은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건 그나마 완만한 결과지. 만약, 플레이어가 길드연합국을 고소하는 게 합법이라는 결론이 떴다고 치자. 그러면 누가 피해를 보겠냐?”
“……십중팔구 말단 플레이어겠죠.”
“그래. 일견, 플레이어의 권익이 향상될 것 같지만, 애초에 강제력의 균형추는 관리국 쪽이 더 무거워. 고소를 허락하는 대신 상상도 못 할 새로운 규제 장치가 생길 수도 있다.”
가령, ‘플레이어의 관리국을 향한 고소는 가능함. 단, 고소를 하려면 100억 골드를 내야 하고 패소 시에는 사형.’과 같은 규제가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런 식의 더러운 규제가 생겨나는 경우 길드연합국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관리국 말을 잘 듣자는 쪽과 저항하자는 쪽으로 나뉘어 새로운 분열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일리가 전혀 없진 않지.’
은혁은 생각했다.
비교적 최근 클리어한 토론 스테이지인 45층에서도, 관리국에 관해서 무척 치열한 토론이 있었으니까.
저스티스는 한숨을 또 내쉬었다.
“관리국을 건드리는 문제는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어. 그 사실을 당시의 나는 몰랐지. 아니, 알았어도 길드 대전에 대한 분노와 수치 때문에 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어.”
저스티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다른 이들의 관점에서는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잠들어 있던 저스티스의 관점에서는 겨우 얼마 전의 일이다.
“그래서 패기 넘치게 관리국에, ‘길드연합국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하는 게 가능한가?’ 같은 문의를 던진 거야. 그 답변, 판례가 막상 나왔을 때의 파장은 생각도 못 하고 말이다.”
저스티스는 한참 한숨을 내쉬다가 천장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일반 플레이어였다면 문제가 오히려 없었겠지만, 길드연합국의 길드장이었다는 게 문제였지. 파장이 커질 거라는 건 자명하지.”
다른 플레이어의 질문이면 대놓고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7대 길드의 길드장이 던진 질문은, 그 질문과 답변이 그 자체로 판례에 준하는 효력을 지닌다.
관리국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에 수십 년을 미루는 연기를 택한 것이다.
저스티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말 그대로 사람 눈 피해서 관짝 속에 들어가 눕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멀미에 시달리던 워잭이 일어나서 한마디 했다.
“역시 저스티스 님. 결국 스스로를 봉인하신 이유는 길드연합국 전체를 위해서…….”
“시끄럽다. 난 다시 잔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새끼 봐라? 누가 길드장에게 소리쳐도 된다고 했지?”
“윽.”
“너야말로 자라. [정의 부여 : 해가 뜰 때까지 잠드는 것이 정의다].”
파앗!
워잭에게 음파가 집중되는가 싶더니, 워잭은 그대로 엎드려 잠이 들었다.
워잭의 육중한 갑옷도 저스티스의 언령에는 아무런 저항을 발휘하지 못했다.
물론, 특유의 [초음속] 관련 스킬을 쓰면 꽤 버틸 수 있지만, 전반적인 역량 수준에서 저스티스가 몇 수 위였다.
저스티스는 불편한 자세로 잠든 워잭을 똑바로 눕혀준 뒤, 은혁을 바라봤다.
“모처럼 꼼수를 써서 날 깨운 너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역시 내 첫 결론이 낫다고 판단했다. 나는 길드연합국에 피해를 끼치지도 않도록 다시 잠들겠다.”
“지금 다시 잠이 드시면, 어쩌면 영원히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하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알아.”
“저스티스 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플레이어도 영원히 그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 부분은 내 잘못이지. 내가 멋대로 총대를 메고 질문을 한 탓에, 나만 그 답을 들을 수 있게 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판단을 믿는다. 그 질문과 나는 봉인되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거다.”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음.”
“그렇다면 잠시 뒤 [도전]하겠습니다.”
“뭐?”
“제가 보낸 기억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저에게는 길드장에 대한 도전권이 있습니다.”
“크크크……! 크핫하하하!”
저스티스는 고개까지 뒤로 젖히며 웃었다.
“재미있군. 나보고 잠들고 싶으면 도전을 받아들이라 이건가?”
“거부하셔도 됩니다. 길드장에 대한 도전은 거부하셔도 되니까요.”
“그래, 잘 아는군.”
“하지만 그 경우 이 석관을 박살 낼 겁니다.”
“뭐?”
“[돌 부수기].”
빠칵!
은혁은 [돌 부수기] 스킬을 아주 약하게 썼다.
석관의 귀퉁이 장식이 똑 부러졌다.
그걸 본 테일러가 가장 먼저 감탄했다.
“굉장하군. 그런 스킬이 가능하면 굳이 나를 시켜서 시간을 되감을 필요도 없었던 거 아닌가?”
“자물쇠에 담긴 권능이 문제니까요. 지금은 그 자물쇠가 해제된 상태라서 석관이 약해진 겁니다.”
“과연…….”
테일러는 납득했다.
하지만 석관의 주인인 저스티스는 납득하지 못했다.
“……꽤 신박한 협박이군.”
저스티스는 기가 막힌다는 어조로 말했다.
“너희 플레이어들을 다치게 하는 게 싫어서 스스로 잠들겠다는데, 그걸 억지로 막으면서 싸움을 걸겠다고?”
“뭐, 그렇죠. 저도 진심이거든요.”
“자넨 정말 어리석군!”
“왜 그런지 일깨워주시죠.”
“정말 너 바보냐? 길드장에 대한 도전은 말 그대로 정면으로 도전하는 거다.”
“네. 그래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해력이 딸리는 건가? 그렇게 각 잡고 하면 내가 대비를 하지 않겠냐? 너, 정말 방심하지 않은 길드장을 상대로 싸워 이기겠다고?”
방심하지 않은 상태의 저스티스라면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사실 은혁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방심하지 않은 저스티스 VS 나, 염훈, 테일러의 연합으로 싸우는 경우에도 저스티스가 이긴다.’
그만큼 방심하지 않은 길드장의 전투력은 상식을 초월한다.
“경고하지, 강은혁. 네가 내게 도전 신청을 한다면, 난 널 죽일 각오로 싸울 것이다. 석관을 손상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도발을 이어 가도, 나는 널 죽일 것이다. 그리고 네가 노리는 게 방심이라면, 나는 절대 방심하지 않는다.”
저스티스가 무서운 이유는 말만 앞서는 지도자와는 완전히 다르게,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기 때문이다.
저스티스의 스킬은 언령 기반이기에, 스스로에게 언령으로 맹세를 하면 자기 자신도 반드시 지켜야 하므로.
하지만 은혁은 피식 웃으며 더 도발하러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테일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그쯤 하시오. 염훈, 그쪽도 좀 말리고.”
“아, 그렇지.”
테일러가 저스티스를 말리고, 염훈은 은혁을 말렸다.
저스티스는 테일러 부길드장이 자신을 손수 말리자, 그의 체면을 봐서 투지를 조금 줄였다.
그 순간, 테일러가 말했다.
“길드장에 대한 [도전] 발동.”
“뭐?”
-길드장에 대한 [도전] 신청이 발동했습니다!
“어?”
저스티스가 당황했다.
분명히 도전권을 지닌 자는 은혁이었다.
그런데 테일러가 갑자기 [도전]을 발동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다음이었다.
타앗!
은혁, 염훈, 테일러는 미리 스킬 발동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각자 자신 있는 스킬을 발동했다.
“[염열파]!!!”
“[홀리 썬더]!!!”
“[감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