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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298화 (298/434)

298화 : 누구나 관리국을 고소 가능하다. 그러나 (2)

“또한, 재판부는, 고소 측 플레이어가 속한 국가로 정한다.”

길드연합국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하면 길드연합국에 있는 재판부가, 3군주 측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하면 3군주 측의 재판부가 재판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이 부분은 괜찮네.’

플레이어를 존중해서 재판부가 그 플레이어의 소속 국가에 귀속되는 건지, 아니면 관리국이 관리하기 귀찮아서 떠넘긴 건지는 애매했다.

이어서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기에 은혁은 담담한 어조로 요약했다.

“플레이어의 직계 친족이 대리로 고소를 접수하는 것은 가능하다. 또한 관리국장이 100층에 있는 한, 고소 접수를 고의로 거부하거나 지연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또한…….”

몇 가지 지루한, FAQ에 가까운 설명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사항은…….”

은혁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스트는 활짝 웃었다.

사실 이스트가 가장 기다린 부분이다.

“……위의 사항은 플레이어들이 누려야 할 법적 안정성을 위해, 300년간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뭐, 뭐라고요?!”

페넬레시아가 앙칼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플레이어의 관리국에 대한 고소 권리를 300년간 외부에 안 알린다면, 플레이어는 알 길이 없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여기 단서가 더 붙어 있네요.”

은혁이 화도 안 난다는 태도로 마저 읽었다.

“본 판례가 발표되고 있는 황금 궁전 회의실에 있는 모든 재판 당사자 즉, 원고, 피고, 재판장을 포함한 모든 재판관과 방청석의 일반 방청객 플레이어들은 위의 의결 사항을 외부에 알려서는 아니 된다. 만에 하나 위에 해당하는 이가 있다면 관리국은 위의 사항을 전부 무효화할 수 있다. 이상.”

“…….”

황금 궁전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한마디로 오늘 재판 내용을, 여기 있는 이들이 외부로 유출하기라도 했다간 싹 다 무효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은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요약을 마쳤다.

“요약 감사합니다, 피고인.”

이스트가 일어나서 말했다.

그는 다시 저스티스를 돌아봤다.

“이제 만족하셨습니까, 저스티스 님? 일부러 피고인이 시키는 광대 노릇까지 하며 들으러 오셨는데, 어떠셨는지요?”

대놓고 저스티스를 도발했다.

저스티스의 수십 년에 걸친 기다림을 짓밟는 듯한 어조였다.

“별로. 아무 느낌 없는데.”

“다행이군요. 미라처럼 관 속에 너무 오래 계신 탓에 감각이 둔해지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콰쾅!!!

저스티스는 이번에도 준비 동작 없이 발차기를 날렸고, 이스트는 양손으로 막았다.

“큭……!”

쉬오오오…….

한 박자 늦게 바람이 몰아쳤다.

저스티스는 아주 대충 날린 발차기를 천천히 거두었다.

“거, 적당히 놀리지? 완만하게 지나가려고 하는데 왜 자꾸 시비일까?”

“흥, 완만하게 지나가려 했다고요?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어야죠!”

이스트 또한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길드연합국과 관리국의 균형을 위해 대사관이 존재했다.

이스트 대사는 그 대사관의 장으로서, 그 균형을 맞출 의무가 있었다.

‘이 인간들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바람에……!’

이스트는 화를 내고 싶었다.

‘100층탑에 끌려왔으면! 그냥 남들처럼 100층탑 꼭대기에 올라가! 그냥 시키는 대로 스테이지나 클리어하면서 그냥 올라가라고! 뭐 이렇게 따지는 게 많아, 이 새끼들아!!’

이스트의 본래 성격대로라면 이렇게 울부짖었을 것이다.

다만 그럴 수가 없으니 화를 억누른 채 빈정거릴 뿐.

“하하하!!”

은혁이 웃었다.

“뭐가 웃깁니까?”

이스트는 고개를 홱 돌려 은혁을 노려봤다.

“아, 당신 보고 웃은 거 아닙니다. 저스티스 님 보고 웃은 겁니다.”

“응? 나?”

저스티스가 되물었다.

“네. 길드연합국의 지배자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사실상 제게 넘긴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럼 좀 놀림 받아도 참으셔야죠.”

“끄응. 그랬지.”

저스티스는 털썩 주저앉았다.

반면에 이스트는 은혁에게 화를 냈다.

“강은혁 플레이어. 이것도 기회인데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아, 상관없는데, 좀 기다리시죠.”

은혁은 재판장인 빌을 돌아봤다.

“어쨌거나 전 자유죠?”

“그랬지.”

판례의 효력을 지니는, ‘플레이어가 관리국을 고소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답의 유무에 따라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다.

즉, 판례가 존재하므로 재판을 처음부터 다시 할 이유는 없고, 은혁은 첫 판결 내용을 따르면 된다.

“벌금형 20만 골드에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이었지.”

“네.”

“좋아. 넌 자유다. 하지만 무죄라는 뜻은 아니다.”

“예. 그럼 항소하겠습니다.”

“……어?”

“뭐가 ‘어?’입니까? 항소 제기는 판결 날짜로부터 7일 이내면 가능한 거 아닙니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난번 판결로부터 아직 3일밖에 안 지났다.

“관리국에 하는 고소가 아니라 길드연합국에 하는 항소지?”

“네. 당연하죠.”

관리국에 대한 고소는 가능하다곤 해도 너무 어렵다.

100층까지 가야 하니까.

하지만 길드연합국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재판에는 항소가 가능했다.

“저기, 강은혁?”

“네, 재판장님.”

“이미 충분히 골치 아픈데 왜 또 일을 비트는 거냐?”

“뭐가요?”

“너 진짜 일부러 딴소리할래? 지난번에 내가 벌금형이랑 집행유예 때렸을 때는 불만 없다고 했잖아? 대신, 관리국을 고소하는 게 가능한지만 따졌었지. 안 그래?”

“그땐 그랬죠. 관리국 고소가 가능한지 아닌지 몰랐으니까. 단!”

은혁은 손가락을 척 세웠다.

“지금은 관리국 고소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이 황금 궁전에서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하……?”

“알 건 다 알았으니, 본래 재판에 대해 항소한 건데, 뭔 문제라도?”

“하……!”

빌은 이마를 문질렀다.

그 자리에 있던 나머지 다른 이들도 다들 탄식했다.

‘지독하게 집요하네.’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궁금증이 풀리자마자, 조건이 바뀌자마자 바로 자신도 결론을 바꾼다.

“강은혁. 혹시 벌금형 20만 골드 때문에 항소하는 건가? 그 정도 돈은 네게 껌일 텐데? 모자라면 나중에 지불해도 된다.”

“아뇨. 제가 항소하는 이유는, 저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은혁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말했다.

“저는 명예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무죄가 아니라 유죄에 집행유예라니. 그건 제 명예에 대한 심대한 손실…….”

“야. 3일 전에 판결 내렸을 때는 별말 없었으면서……!”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니까요!”

“좋아, 강은혁. 그럼 솔직해지자고.”

“저는 늘 솔직합니다. 특히 법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이 자리에 거짓말 탐지기가 있었다면 아마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강은혁. 그냥 원하는 걸 말해봐. 뭐가 그리 억울하지? 재판이 길어져서 다들 지루해하는 거 같은데 그냥 빨리 끝내자고?”

“그게 재판장이 할 소립니까?”

은혁은 빌을 꾸짖을 기세였다.

빌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아, 골치 아프고 집요해서 못 해먹겠네. 야, 저스티스!”

휙!

빌은 재판장석에서 뛰어내리더니 저스티스를 손으로 가리켰다.

“항소심은 네가 재판장 해.”

“어?”

“길드장이나 부길드장이 맡아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빠지면 네가 유일한 길드장이니까 네가 재판장 하라고.”

만약 저스티스가 없었다면, 관리국 대사인 이스트가 재판장을 맡았을지도 모른다.

빌은 강은혁이 얄미웠지만 그렇다고 재판장 자리를 관리국 대사에게 넘길 정도로 이성을 잃진 않았다.

무엇보다, 은혁이 가지고 온, 3군주 인치가 줬다는 ‘쪽지’ 내용도 확인해야 했으니까.

빌의 계산 대부분이 은혁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저스티스는 허참, 하는 소리를 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이렇게 대충 결정해도 되나?”

“네가 강은혁 편을 들어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 아니냐?”

“헐, 또 남들 앞에서 내 탓 하네.”

“닥쳐. 네놈은 관짝 속에 들어가 있을 때나 아닐 때나 골치 아픈 놈이야, 저스티스.”

“와, 오랜만에 만나놓고 엄청 나 싫어하네.”

저스티스는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일단 시키는 대로 항소심 재판장을 맡기로 했다.

재판장석으로 올라가 관련 서류를 주섬주섬 읽는 동안 빌은 은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놔.”

“뭘요?”

“아까 입구에서 주려고 했던 무슨 쪽지 말이다.”

3군주의 인치가 남긴 운명석 제작에 관한 쪽지다.

“내용이 엄청 궁금하셨나 보군요. 평소답지 않게 무척 서두르시는 것 같던데.”

“빨리 내놔.”

은혁은 쪽지를 내밀었다.

단, 쪽지는 두 장이었다.

하나는 인치의 쪽지.

다른 하나는 은혁의 개인적인 협조 요청이 담긴 쪽지.

‘조만간 피스메이커랑 한판 붙을 건데,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빌은 두 장의 쪽지를 받아서 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퇴장했다.

‘재판장 교체 성공.’

빌이 딱히 은혁에게 불리한 재판장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번과 같은 재판장이라서 변수를 만들기가 조금 어렵다.

또한, 재판장마저 포기하고 떠났다, 라는 사실을 이스트에게 보여줌으로써 이스트의 의지를 꺾는 작은 퍼포먼스로 이용할 수 있었다.

놀란 이스트는 조금 늦게 반응했다.

“재, 재판장이 떠나다니. 그 경우!”

이스트가 벌떡 일어났지만 저스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길드장이 없고 부길드장만 남은 경우라면 대사, 당신이 재판장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길드장인 내가 있군.”

“큿……!”

이스트는 자신의 대처가 안일했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재판장석에 간 저스티스가 재판 기록을 다 읽었다.

“강은혁. 너에게 걸린 혐의는…… ‘시체 유기 및 운반과 폭행치사상해죄와 법정모독죄’인 걸로 기록되어 있군. 맞나?”

“기록된 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저의 죄는 아닙니다.”

“강은혁. 빌이 하는 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일을 저질러 놓고도 벌금형이랑 집행유예로 끝난다면 엄청 운이 좋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은혁이 저스티스를 노려봤다.

“……물론 아니지.”

저스티스는 정의 길드장으로서의 최후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렇게는 말 못 했다.

그러자 은혁은 청산유수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확인을 위해 피해 당사자인 노리를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그러자 이스트 대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의 있습니다! 본 재판은 실제 피해자인 노리 차장 대신 관리국이 대행하고 있으며, 원고는 관리국 대사관입니다. 굳이 노리 차장을 데리고 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은 거 아니었습니까, 대사님?”

“큭.”

관리국 대사는 물론 이 일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다.

길게 끌면 끌수록 관리국과 길드연합국 사이의 갈등만 부각되고, 관리국 대사관이 일을 못 한다는 사실에 대한 구설수가 퍼질 터이므로.

“흠. 나는 빌과 달라서, 판결을 내릴 때는 직접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걸 선호하긴 하는데.”

저스티스가 말했다.

정의에 관해서 상식적인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양쪽 말을 모두 들어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됐다.’

사실 은혁은 노리를 꼭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시간을 잔뜩 끌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반면에 이스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혁은 이스트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두 가지가 있지. 노리를 이곳에 불러온다면 첫째로 사태를 크게 만들었다는 무능함이 부각되지. 관리국 본부에서 일하는 차장을 오라 가라 하는 일이 되므로, 관리국 대사관 선에서 일을 마무리 못 했다는 것. 이는 즉, 대사의 무능함이 부각되는 일이 된다. 그리고 둘째는 나의 무죄가 입증된다는 점이지. 크크크.’

노리가 증인으로 이곳에 온다면 안 죽고 살아 있다는 뜻이다.

이전의 대사관 대리는, 노리가 부활했을 뿐, 죽었던 것 자체는 사실이라는 논리를 펼쳤었다.

하지만 그건 노리가 증인으로 오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노리가 이곳에 오면 재판장 저스티스는 진실을 강제하는 스킬을 걸고 질문할 터.

‘당신은 스스로 강은혁에게 죽임을 당했었다고 생각합니까?’

노리가 뭐라 답하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답변의 내용보다, 답변하는 사람의 존재 때문에.

설령 은혁의 재판 결과가 최악으로 치닫더라도, 관리국에 대한 평판은 떨어질 것이며, 100층에 올라가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의 열망은 커질 것이다.

그 사실을 은혁도 알고 이스트 대사도 알았다.

“고소를 취하할 수 있습니까.”

“고소를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고, 그냥 재판 포기를 선언할 수는 있지. 그 경우 원고 측 즉, 당신은 자동으로 패소되며, 피고 측 즉, 강은혁이 승리하는 게 되는데.”

빠드득.

이스트 대사는 이를 갈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재판 포기를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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