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299화 (299/434)

299화 : 밤말 신문

* * *

“허억!”

이스트 대사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어제의 꿈인가…….”

대사관 건물과 이어진 관저에는 이스트가 묵는 방이 있었다.

그곳에서 이스트는 재판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이런 망할 보고서를 쓰다 잠이 들었으니 악몽을 꾸지…….’

현실에서 겪은 일이 악몽이라는 사실이 정말 기가 막혔지만 이스트는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원래는 어제 이미 상부에 보냈어야 할 보고서다.

‘제기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어차피 관리국 본부는 이미 여기서 일어난 일을 다 들여다보고 있구만.’

이스트는 속으로 화를 삭였다.

대사관 어디에도 감시 카메라는 없지만, 관리국 본부는 100층보다 낮은 곳에 있는 모든 관리자를 관찰할 수 있었다.

즉, 관리자 주변에서 일어난 일도 모조리 하나하나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어제 재판 내용은 완전히 다 알고 있을 터.

‘그래도 써야지.’

길드연합국 주재 관리국 대사관의 대사면 결코 낮은 직급이 아니지만, 결국 일에 치여 사는 존재일 뿐이었다.

‘아니, 긍지를 갖자. 이건 자랑스러운 업무다.’

다른 국가와의 일을 본국에 정확히 전달하는 게 대사의 임무다.

그때였다.

쾅!

부하 직원이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이 이른 아침에.”

“크, 큰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나?”

“이걸 읽어 보십쇼!”

신문이었다.

다만 처음 보는 신문이었다.

“밤말 신문?”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신문 로고에 쥐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겨우 알아챘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지. 혹시 그건가?”

이스트는 어이가 없어서 어떤 놈이 만든 건지 확인했다.

“마이크? 이 새끼는 또 뭐야?”

배를 불룩하게 내밀고 있는 자였는데, 쥐 떼 두목과 함께 신문 인쇄 시스템을 만지고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다.

이 신문 인쇄 시스템은 키나핀러 왕국의 신문사가 망할 때 마이크가 정식으로 인수한 물건이다.

고철을 무단으로 수집하는 마이크였지만, 그런 그가 공정하게 인수한 몇 안 되는 물건이 이 신문 인쇄 시스템이다.

“금속을 조종하는 뚱보 새끼랑 쥐새끼 형태의 플레이어가 합심해서 만든 언론사인가?”

“맞습니다. 그 뚱땡이는 얼마 전에 강은혁 밑으로 들어간 ‘배불뚝이 마이크’라는 놈입니다. 그 미키마우스처럼 생긴 놈은 쥐 떼 두목이라 해서, 그래 봬도 블랙 마켓의 수장입니다. 마찬가지로 강은혁에게 협조하는 놈입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혹시 길드연합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신문인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서 내용을 보십쇼!”

“내용? 내가 직접 읽어볼 테니 진정 좀 하게.”

촤악!

신문을 펼쳤다.

내용도 별거 없었다.

창간호 특집이라는 글자만 컸을 뿐, 아직 제대로 된 기자도 몇 뽑지 못한 신문이었다.

기묘한 광고가 몇 페이지나 있었다.

‘이천쌀도 부럽지 않다! 맛 좋고 찰기 있는 28층의 쌀! 불패불굴 길드원들이 노약자들에게 기증하고 있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께서는 28층으로 방문해 주십시오! 한정 수량 판매!’

‘수상쩍은 버섯으로 만든 힐링 포션! 오직 불패불굴 길드에서만!’

‘거대 몬스터 도축 문제로 곤란하십니까? 제휴 업체인 NJ 미래 공장의 낸시를 찾아가십시오!’

“뭐야, 이거.”

이스트는 비웃으려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광고 뒤에는 불패불굴 길드의 프로파간다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블랙 마켓의 지배자 쥐 떼 두목의 심경 고백! 그는 왜 신문사를 차렸는가!’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 테일러! 불패불굴 길드와 협력 제휴!’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가 강은혁에게 패배하다!’

대부분이 강은혁, 염훈, 불패불굴 길드의 장점만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이스트는 페이지를 휙휙 넘겼다.

멈칫.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기사 내용을 보고 경악했다.

‘독점 기사 : 충격! 플레이어는 관리국을 고소할 수 있다!’

“뭐, 뭐야, 이 내용은!”

바로 어제 황금 궁전 내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 전체였다.

몇몇 부분은 요약되었지만, 몇몇 부분은 아예 녹취록 형식으로 적혀 있었다.

<기사 내용>

(전략)

지혜롭고 담대한 플레이어 강은혁은, 관리국의 답변서를 어떻게 입수하였는가?

답은 간단하다.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로부터 직접 건네받았다.

다음은 녹취록의 일부이다.

이스트 대사 : 저스티스 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답변서 받으십시오.

저스티스 : 고맙군.

(강은혁에게 건내며)

저스티스 : 읽어라.

강은혁 : 안 읽어보셔도 됩니까?

저스티스 : 먼저 읽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강은혁은 답변서를 가장 먼저 읽을 권리를 얻었다.

“뭐, 뭐야, 이거!!”

이스트는 신문을 콱 구겼다.

“뒷부분도 읽으셔야 합니다.”

“읽을 때가 아니잖나!! 판례의 외부 유출을 금지하기로 해놓은 부분을 빤히 알면서!”

이스트는 당장 관리국 본부에, 플레이어의 관리국 소송 권리를 싹 다 백지화시키라고 알리려 했다.

하지만 부하가 말렸다.

“대사님!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강은혁이 유출한 게 아닙니다.”

“뭐?! 그럼 다른 길드장이나 부길드장 짓인가!!”

이스트는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테일러인가?!’

방청석에 앉아 있던 테일러는 은혁에게 협조적이었다.

하지만.

‘아냐. 그는 아니다.’

왜냐하면 방청객이라 해도 외부에 유출하는 경우 무효화된다고 엄포를 놓았으니까.

‘그럼 누구지?’

신문을 다시 펼쳤다.

그곳에는…….

“특별 잠입 취재원 쥐 떼 두목?!”

그랬다.

은혁은 주머니 속에 쥐 떼 두목을 숨겨두고 있었다.

쥐 형상을 하고 있던 쥐 떼 두목은 재판 당사자도 아니고 방청객도 아니었다.

밤말 신문에 소속된 ‘특별 잠입 취재원’ 신분이었다.

길드연합국의 언론법은 취재원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했다.

즉, 황금 궁전 회의실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외부에 까발리더라도, 판례가 무효화되는 일은 없다.

‘이런 꼼수를 쓴다고?’

이스트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마치 어떤 판례가 나올 것인지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수를 쓰다니!’

물론, 이스트는 은혁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반면에 은혁은 회귀 지식으로 이스트의 대사로서의 권능과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대처할 수 있었다.

“맨 마지막 페이지도 보십시오…….”

직원은 두렵다는 듯이 말했다.

이스트 대사 또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장을 펼쳤다.

“어억.”

제목만 봐도 피가 거꾸로 솟는 내용이었다.

<밤말 신문사 공동 사주 겸 주필 염훈 칼럼 : 관리국을 고소하기 위해서라도 100층탑을 오릅시다!>

여러분. 관리국의 기만적인 답변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고소하고 싶으면 해라. 하지만 100층에 직접 올라와라.’라는 오만하고 기만적인 태도이지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100층으로 오라고 하는데, 까짓거 오르면 그만 아닙니까?

저희, 불패불굴 길드는, 길드연합국 창건 이래로 가장 빠른 속도로 탑을 오르고 있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3년 안에 반드시 100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친애하는 길드연합국 플레이어 여러분.

저희 불패불굴 길드는 관리국을 고소할 예정입니다.

죄목은 무수히 많겠지만, 모든 플레이어에게 공통되는 문제인 강제적인 소환을 중점적으로 따질 계획입니다.

우리들 대다수는 100층탑에 끌려 온 자들입니다.

100층탑 내부에서 행복이나 진리를 얻은 자들도 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리국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관리국이 순차적인 난이도로 플레이어를 강하게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죽고 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닌 이상,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고소를 했다가 불이익을 당하면 어쩌지?’

‘고소하려면 직접 100층에 가야 하는데 내 실력으로는 무리인데.’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불패불굴 길드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불패불굴 길드는 빠른 시일 안에 100층탑의 정상에 도달할 것이며, 관리국의 횡포에 맞서 플레이어의 권익을 챙기는 일에 전념할 것입니다.

또한, 친족의 대리 고소 가능 규칙에 따라, 필요한 경우 억울한 모든 플레이어를 양자, 양녀로 삼아서 대리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불패불굴 길드는 여러분을 이미 한 가족으로 편입할 냉철한 구상과 따뜻한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합시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우리 불패불굴 길드의 부길드장이자 저의 개인적인 최고의 친구 강은혁이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을 상대로 하는 도전권을 획득했으며, 이미 정의 길드장을 상대로 승리했음을 알리게 되어 정말로 기쁩니다.

앞 지면을 보셨겠지만, 강은혁은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만큼이나 플레이어의 권익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자이며, 이미 황금 궁전에서 플레이어의 관리국에 대한 고소를 요구한 바 있습니다.

저는 길드장으로서, 그리고 동료로서, 지혜롭고 담대한 강은혁과 함께 할 것이며, 그가 길드연합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발돋움하길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과업에 동참하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직접 28.5층을 방문해 주시거나, 아래의 후원 계좌를 통해…….

이야기는 줄줄이 이어졌다.

‘이럴 수가. 이건 곤란해.’

이스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관리국 대사관은 본연의 역할에 완전히 실패해 버렸다.

100층탑 관리국은 추상적 존재여야 한다.

플레이어들 입에서 ‘관리국 새끼들 스테이지 난이도 겁나 못 맞추네.’라는 소리가 나오는 건 괜찮다.

그건 더운 여름날 하늘을 보며 ‘날씨 한번 개 같네, 진짜.’라고 투덜거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하지만 고소가 가능하다는 게 대서특필되어 버리면?

‘실제로 고소가 몇 건 일어나느냐의 문제가 아냐! 문제는 관리국이라는 추상적 존재가! 소송을 걸 수 있는 구체적인 존재로 격하되었다는 거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은혁은 기존의 7대 길드와 달리, 관리국을 문제 삼으며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있었다.

외부에 꼴 보기 싫은 놈이 있으면, 내부에서 권력을 잡기 쉽다.

즉, 불패불굴 길드는 플레이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님들! 관리국 꼴보기 싫죠? 우리 불패불굴 길드가 100층에 직접 올라가서 대리 소송해 드림! 돈? 필요 없음! 그냥 우리 길드를 지지해주셈!’

이는 관리국과 길드연합국 사이의 균형을 완전히 파괴하는 행위다.

“창간호요! 창간호는 무료입니다!”

대사관 밖에서 밉살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양복을 입고 있는 몇몇 플레이어들이 신문을 팔고 있었다.

이스트 대사는 몰랐지만, 이들은 이미 길드연합국 내에 뿌리내린 블랙 마켓의 플레이어들이었다.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 시리우스를 탈출시킨, 쥐와 인간 형태를 번갈아 취할 수 있는 존재들.

이 블랙 마켓의 쥐들은 돈만 주면 뭐든 한다.

그리고 자유시장 길드의 부길드장 테일러가 불패불굴 길드의 강은혁과 손을 잡기로 결정한 이상, 블랙 마켓은 강은혁의 절대적인 조종하에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놈들이 계획적으로……!’

계획적으로 신문사를 설립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즉흥적이라 보기에는 너무 탄탄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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