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 50층 해안 도시로 가다
이들은 자유시장 길드의 자본으로 신문사를 차리고, 불패불굴 길드의 명령대로, 배불뚝이 마이크가 지닌 신문 인쇄 시스템과 [금속 지배]로 만든 활자판으로 신문을 찍고, 블랙 마켓이 구석구석 판매 유통을 담당한다.
지금쯤 5층뿐만 아니라 다른 층에서도 무료 창간호가 뿌려지고 있을 터.
적어도 이 신문사가 망할 일은 없다.
앞으로도 불패불굴 길드와 염훈, 은혁을 띄워주는 한편, 일반 시민들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데 쓰일 것이다.
‘이 악독한 것들……!’
그랬다.
길드연합국의 국민 정체성은 모호했다.
플레이어 중 그 누구도 자신을 길드연합국의 국민이라 칭하지 않는다.
직업이 뭐냐, 레벨이 몇이냐, 어느 길드 소속이냐를 따지기만 했을 뿐.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 * *
광장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저기다!”
“강은혁과 염훈이다!!”
우르르르!
사람들의 발소리는 천둥 같고 파도 같았다.
필사적인 기자 몇 명이 맨 앞줄에 서서 은혁과 염훈을 포위했다.
반쯤은 은혁과 염훈의 계획대로다.
은혁과 염훈은 관리국 대사관으로 가는 길에, 일부러 광장을 가로질러 갔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몰려들도록 의도한 것이다.
“염훈 길드장! 질문입니다!”
“음, 질문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염훈이 쿨하게 답했다.
은혁은 염훈을 철저히 교육했고, 이 또한 모범 답안이었다.
“칼럼 내용에 대해서도 안 됩니까?!”
“그거라면 제가 대신 답변드리죠.”
은혁이 스윽 나섰다.
사실, 칼럼을 실제 작성한 건 염훈이지만, 절반 정도는 은혁이 뒤에서 읊어준 내용을 적은 것이다.
그러니 은혁이 대답하는 게 낫다.
“여러분은 그동안 불패불굴 길드가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하셨을 겁니다.”
끄덕끄덕끄덕끄덕……!
무수히 많은 인파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분들은 저와 염훈이 보여 온 과격한 행보에 우려를 느끼기도 했을 겁니다.”
적지 않은 이들이 동의를 표했는데, 다들 속으로만 동의를 표해서 조용했다.
“또 몇몇 분들은 연구 길드와의 협업으로 백신을 제작하여 판매한 일, 노약자를 위한 쉼터를 만든 일, 쌀을 나누어준 일, 흡혈귀를 구제한 일 등등 선한 영향력을 기억하시기도 할 겁니다.”
이번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동의를 표했다.
“저희가 그 모든 일을 한 것은 전적으로 길드연합국 자체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은혁의 말은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모르고 있지만, 은혁은 제2차 길드 대전의 발생 확률을 10% 이하로 낮췄다.
만약 제2차 길드 대전이 일어났다면, 이 광장에 모인 이들 대다수가 그 전쟁에 휩쓸려 죽거나 다친다.
‘얄궂군. 이기적인 목적으로 행동한 것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 되다니.’
물론, 은혁은 단순히 착해 빠져서 이들을 살려둔 것이 아니다.
재난의 왕국에서 염훈을 왕으로 만들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실험’은 그냥 재미로 한 게 아니다.
그 실험 결과는 재난의 성좌를 사실상 죽이고 그 핵을 반 토막 내는 위업을 일으켰다.
‘NPC들의 마음을 모아도 그 정도 위력인데, 길드연합국의 모든 플레이어의 마음을 모으면? 크크크큭.’
은혁은 이들의 마음을 ‘자원’으로 쓸 생각이었다.
길드연합국에 대한 애국심까진 아니더라도, 정체성과 소속감을 선사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 모든 마음을 염훈에게 [홀리 채널링]으로 끌어모은다면?
‘물론, 나 아니면 염훈이 길드연합국의 통합길드장이 되어야겠지만.’
이는 은혁이 워잭을 향해 ‘길드연합국을 발판 또는 점프대로 삼겠다.’라고 했을 때부터 미리 세워 둔 빅 픽처 중 하나다.
“여러분! 저와 염훈은 지금 관리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은혁이 외치며 종이를 한 장 들었다.
“관리국은 저에 대한 소송에서 패소했고, 그에 대한 소송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요구하러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와아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은 열광했다.
큰 이유는 없다.
그저 관리국을 상대로 정당한 요구를 하러 간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뿐.
길드연합국의 경우, 민사건 형사건, 재판에서 패소한 경우, 승소한 측이 소송 과정 중에 부담했던 각종 비용을 보상해야 했다.
한국의 경우 소송 비용에 관한 소송비용법이 존재하지만, 관리국과 길드연합국에는 그런 게 없었다.
더군다나 관리국은 한 번도 패소한 적이 없기에 더욱 애매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의 애매함은 관리국 대사관 측에 불리했다.
* * *
관리국 대사관 응접실.
응접실은 대사관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이다.
그곳에 은혁, 염훈이 앉았고, 맞은편에 이스트 대사가 앉았다.
“그래서, 대답은?”
그 중요한 자리에 앉은 은혁은 관리국 대사 이스트에게 선제시를 요구했다.
패소 측에게 소송 비용을 선제시 형식으로 요구하는 건 100층탑은 물론, 지구를 통틀어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
이스트 대사는 종이를 내밀었다.
노리가 걸었던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사용 제한을 풀어주는 대신 밤말 신문을 폐간하라는 요구였다.
“대사님. 죄송하지만 거래하러 온 게 아닙니다. 패소 측에 소송 비용을 요구하러 온 겁니다.”
“그건……!”
“네네. 전례가 없다는 말은 안 통합니다.”
은혁이 선수 치듯 말했다.
“강은혁 플레이어. 그런 식으로 나올 경우……!”
“완만한 합의는 불가능하다고요?”
“자꾸 말 좀 끊지 마시오!!”
탕!!
대사가 손바닥으로 응접용 테이블을 내리쳤다.
은혁은 입을 다물었다.
이스트는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이제 끝장났습니다. 조만간 100층으로 끌려 올라가 질책을 당하겠지요.”
이스트는 자기 입에서 감성적인 주절거림이 나오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재판과 나를 이용해서 많은 것들을 얻어냈습니다. 이 상황에서까지 나를 짓밟아야겠습니까?”
이스트의 솔직한 하소연을 듣자, 염훈은 조금 안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스트는 길드연합국에 파견된 대사로서, 기존 길드연합국과 관리국 사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게 그의 일이다.
하지만 은혁은 칼 같았다.
“저는 당신을 짓밟은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침해되어 온 플레이어의 권익을 되찾으려 했을 뿐이고, 그 관리국을 대표하는 자가 당신이었을 뿐.”
“하…….”
이스트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렇다면 저의 제안은 없었던 걸로 하지요.”
“역제안이 있습니다. 들어보시죠.”
“들어도, 그 역제안을 받아들일 권한이 이제 없습니다. 저는 몇 시간 뒤에 끌려갈 입장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제안을 하는 겁니다.”
“음?”
그 순간, 이스트는 두 종류의 체험을 했다.
하나는 은혁이 입으로 하는 제안을 귀로 듣는 것.
다른 하나는 은혁이 [텔레파시] 스킬로 하는 제안을 두뇌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관리국장이 직접 모든 플레이어들 앞에 나서서 하는 사과입니다.”
‘당신이 관리국의 스파이가 되는 겁니다.’
“뭐라고요?!”
이스트는 놀라서 되물었다.
은혁이 입으로 한 소리보다, [텔레파시]로 전달한 내용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가 그리 놀랍습니까? 당연한 소리를.”
‘한마디로 100층의 관리국 내부 정보를 팔라는 겁니다. 그 대신 원하는 걸 드리죠.’
이스트의 얼굴은 표정 관리가 힘들어 보였다.
“어떻습니까?”
‘어렵다면 고개를 끄덕이십시오. 만약 할 마음이 있거든 의심스럽다고 말하십시오.’
은혁의 목소리와 [텔레파시]가 교차했고, 이스트는 힘겹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란스럽군요.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이스트가 말하자, 은혁은 [텔레파시] 대화 권한을 이스트에게도 나누어줬다.
‘마음으로 대화합시다.’
은혁과 이스트는 입으로는 변죽만 올리는 대화를 나눴다.
감시 중인 관리국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몇 가지 사항이 정해졌다.
첫째. 이스트는 몇 가지 사전 정보를 불패불굴 길드의 강은혁에게 제공한다.
둘째. 그 대가로 강은혁은 이스트가 요구하는, 관리국 내부의 입지 상승을 도와야 한다.
셋째. 이는 매우 느슨한 약속이며 일방의 의사에 의해 언제든 해제될 수 있다.
서로 최대한 모호한 협정을 원했는데, 여차하면 판을 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례가 없고 위험한 계약이었기에 쌍방이 모두 그것을 원했다.
“그럼 그렇게 타협해야겠군요.”
“네. 그게 최선일 겁니다.”
은혁은 차원의 엘리베이터인 ‘히든 룸’을 관리국에 반납하기로 했다.
대신에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제한을 완전히 풀어주기로 했다.
이는 은혁에게 무조건 이득이었는데,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바디 파츠에는 히든 룸의 차원 틈새 이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합의의 효력은 언제 발휘하는 겁니까?”
“지금 바로가 좋겠지요.”
“좋습니다. 합의합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눴다.
표면적으로는 타협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약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법 공방은 일단락되었다.
* * *
며칠이 지났다.
관리국 대사관은 규모가 축소되었고, 길드연합국의 일에 불침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또한, 은혁은 공공연히 통합길드장이 되어 길드연합국을 지배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제 불패불굴 길드는 단순히 7대 길드에 준하는 길드가 아니었다.
7대 길드보다 거대해질 수 있음에도 일부러 힘을 아끼고 있는 길드로 평가되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글쎄.”
“몬가…… 몬가가 일어날 거야.”
100층탑 공략에 별 관심이 없던 플레이어들도 덩달아 긴장했다.
폭풍전야 특유의 고요함이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은혁과 염훈은 다른 길드를 습격하지 않았다.
중소 길드 수장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평소에 하던 일을 했을 뿐이다.
탑을 오르는 일이다.
* * *
-50층 : 해안 도시
갈매기 울음소리.
푸른 하늘.
파도 소리.
아름다운 해안 도시.
도시의 중앙에는 작은 광장과 게이트가 있었고, 은혁과 염훈이 막 나온 참이다.
“와우.”
염훈이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멋진 휴양 도시군. 마치 포카리스X트 광고에 나올 법한 그런 푸른 해안 도시야!”
염훈의 말은 참 정확했다.
시스템 메시지만 뜨지 않았다면 광고의 한 장면 같았을 것이다.
-50층에 도달하신 플레이어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여러 곤경과 위협을 뚫고, 공식적으로 100층탑의 중간 지점에 도착하신 여러분은 진정으로 숙련된 모험가입니다!
-50층~54층은 통합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50층은 휴양 도시, 51층부터 54층까지는 인근의 바다와 섬을 탐험하는 미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디 천천히 즐겨 주십시오!
100층탑 제작자 올림.
메시지가 끝남과 동시에 50층 미션창이 떴다.
<50층 메인 미션 : 도시의 휴양 즐기기>
-목표 : 미션 시작 때 주어지는 지역 화폐 1500 패킷을, 해안 도시 안에서 소비할 것.
50층 메인 미션이 끝날 때까지는 기존의 돈을 이용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이 지역 화폐만을 이용해야 한다.
-성공 시 보너스 : 없음.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2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