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 자유시장 길드장 슬레이버 (2)
빠악!
슬레이버가 날린 프론트 킥이 은혁의 몸에 꽂혔다.
“큭!”
은혁은 일부러 맞으면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스킬을 썼다.
“[저격] 2연속!”
쉬익!
투쾅!
낚싯바늘 공격과 선즈 리볼버를 동시에 날리는 공격.
피하기 애매하다 판단한 슬레이버는 손가락을 튕겼다.
터텅!!
터텅!!
집무실의 천장과 바닥에서 황금의 장벽이 생성되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이러려고 일부러 여기서 싸우자고 한 거군요.”
“흐흐. 그런 셈이지.”
슬레이버는 자신의 집무실 구석구석을 평소에 손으로 미리 만져뒀다.
평소에 지내는 장소이고, [명상]도 자주 했다.
때문에 슬레이버의 마력은 이 집무실 곳곳에 골고루 퍼져 있었다.
화악……!
집무실 전체가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이런 것도 가능하지.”
따악!
슬레이버가 손가락을 튕기자, 은혁이 딛고 선 바닥이 끈적하게 녹은 황금이 되어, 늪처럼 변했다.
은혁은 개의치 않고 [그림자 도약]으로 피했다.
그 순간.
“[황금광].”
번쩍!!
황금빛 집무실 전체가 빛을 내뿜었다.
보통 적들의 시야를 가릴 때 쓰는 스킬인데, 그 빛으로 은혁의 그림자 관련 스킬을 원천 봉쇄 한 것이다.
그리고 [아광속권]이 작렬했다.
꽈과광!!!
은혁은 [사이오닉 필드]와 뱀프릭 체인 소드의 칼날 옆면을 합쳐 방어를 했다.
하지만.
빠직!
뱀프릭 체인 소드가 깨졌다.
“쿨럭!”
은혁은 피를 토했다.
막았는데도 피를 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처덕처덕!
피가 사방에 튀었다.
하지만 슬레이버는 방심하지 않고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그림자가 없으니 피를 뿌리는 건가?”
은혁의 [피의 지배]는 각종 스킬로 활용이 가능하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피구름 생성].”
부글부글부글……!
깨져 나간 뱀프릭 체인 소드의 파편이 피거품을 일으키며 마구 늘어났다.
은혁의 뱀프릭 체인 소드는 혈인술사 스킬과 매우 상성이 좋았기에, 깨져서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도 저력을 발휘했다.
“거기에 [인페르노 볼텍스]를 융합한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초열혈운]!!”
투확!!
다목적 피구름이 엄청난 열기로 인해 피의 증기로 변했다.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슬레이버의 집무실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콰두두두두……!!
엄청난 고열에 팽창하여, 터지기 직전이 되었다.
공기 분자에 흡착된 피구름은, 분자 하나하나가 갈퀴와 같았고, 열기와 함께 방 전체로 퍼졌다.
아무리 슬레이버라고 해도 방 안의 공기 분자 하나하나를 황금으로 변환시키려면 시간이 걸렸다.
‘망할. 숨도 못 쉬겠군.’
숨을 쉬면, 뜨겁게 달아오른 피구름 분자가 슬레이버의 폐에 달라붙어서 뭔 짓을 할지 모른다.
물론, 슬레이버는 레벨이 높은 권성인 데다가, [가치 변환]으로 혈중 철분을 극미량의 순금 입자로, 다시 그 순금을 혈중 산소를 변환하는 것도 가능했다.
마음만 먹으면 숨을 쉬지 않고 5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었고, 전투 중이라 해도 20분은 거뜬했다.
‘그래도 호흡이 가쁜 척해야겠지?’
슬레이버는 조바심을 내는 듯 창가를 힐끔거렸다.
파악!
슬레이버는 의자를 걷어차서 창문으로 날렸다.
일단 창문을 깨서 공기를 순환시키려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놈이 저 의자에 신경을 쓸 때 친다!’
실제로 은혁은 몸을 날려, 슬레이버가 날린 의자를 걷어차 부쉈다.
콰직!
그러느라 은혁의 등이 보였다.
슬레이버는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은혁의 뒤를 노렸지만, 은혁은 일부러 허점을 보인 것이었다.
“[트릭 샷].”
투쾅!
은혁은 팔만 뒤로 돌리는 기묘한 자세로 선즈 리볼버를 쏘았다.
“쯧!”
슬레이버도 너무 쉽게 뒤를 점한 게 수상해서 대비했기에 가볍게 피했다.
하지만 그 화염탄은 빗나간 게 아니었다.
슈욱!
어느새 만들어진 [그림자 터널] 속으로 화염탄이 쏙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차!’
[초열혈운] 일부가 뭉쳐지면서 작은 그림자가 몇 개 생겨났고, 그 그림자 속에 [그림자 터널]이 몇 개 생겨났다.
슈욱!
[그림자 터널]로 들어간 화염탄은 슬레이버의 발밑에서 튀어나왔다.
퍼억!!
콰쾅!!
“윽!”
슬레이버의 오른발이 파괴되었다.
슬레이버는 그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판단하고 책정했다.
고통의 가치가 슬레이버의 손가락 끝에 맺혔다.
“[골든 레이]!!”
번쩍!!
황금의 섬광이 광속으로 은혁을 향해 날아갔다.
빛을 발하면서 날아드는 섬광이라, [그림자 도약]으로도 도저히 피할 수 없었고, [그림자 터널]로 빗겨 나가게 할 수도 없었다.
퍼억!
은혁은 방어 동작을 취했고, 왼쪽 팔꿈치로 공격을 받아 냈다.
섬광인데도 상당히 묵직했다.
쩌저적!
맞은 부위가 빠르게 황금으로 물들어 갔다.
“승화!”
은혁은 재빨리 청염백광단검의 칼날을 승화시켜 왼팔을 잘라냈다.
털썩!
은혁의 왼팔이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쩌저저적……!
잘려서 떨어진 왼팔은 순식간에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나는 오른발을, 자네는 왼팔을 잃었군. 호각지세로군.”
슬레이버는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아직도 슬레이버가 유리했다.
스르륵.
슬레이버의 오른발은 회복되었으므로.
화염탄에 당했으므로 회복 스킬이 있어도 회복이 어려워야 하지만 슬레이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치 있는 싸움이니까.’
1단계 : 피해를 가치로 변환시킨다.
2단계 : 그 가치를 황금으로 변환시킨다.
3단계 : 그 황금을 또다시 이로운 가치, 즉 재생력으로 변환시킨다.
4단계 : 고속 회복 완료.
대다수 길드장들은 개념과 가치를 멋대로 조작하여 물리 법칙 변환에 이용하곤 했다.
물론, 모든 장소에서 이토록 효율이 좋은 건 아니다.
슬레이버가 구매한 부동산이거나 시청 같은 곳에서만 효율이 높다.
즉, 슬레이버는 이 시장실에서 싸우는 경우, 자신이 인정하는 강적과 싸우면 싸울수록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
‘진짜 사기네.’
길드장급이면 준신급 존재와 싸우고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스킬의 위력, 범용성, 숙련도 모두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
그것이 7대 길드의 길드장이다.
“슬슬 끝내자.”
“동감입니다.”
“[황금천수신권].”
파앗!
영혼인지 황금인지 불분명한 주먹이 정확히 천 개 생성되었다.
권성으로서의 슬레이버가 진심으로 구현한 심상의 권으로서, 결코 좁지 않은 시장실 안을 가득 채웠다.
슈와아아아악……!!
[초열혈운]을 모조리 쓸어버리며 쇄도하는 천 개의 황금-사이오닉의 주먹.
회피는 불가능하고, 방어도 어려운 상태.
그래서 은혁은 다 맞아주기로 했다.
“[스킬 트랜스미션 : 2초 무적] + [미완성 시간 되감기]!!”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무한 무적]!!”
파앗!!
원리는 간단하다.
[스킬 트랜스미션]으로 염훈의 [2초 무적]을 빌린다.
그리고 그것을 [미완성 시간 되감기]로 쓸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2초가량 시간을 되돌린다.
그 경우 [2초 무적]의 유일한 약점인 시간제한 2초가 상쇄된다.
물론, 마력은 계속 소모되지만, 이론상 마력만 충분하다면 계속 버틸 수 있다.
투다다다다다다다다……!!!
콰직! 콰콰쾅!!
소름 끼치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충격파만으로도 시장실의 바닥과 천장이 부서진다.
번쩍이는 황금빛만으로도 온도가 올라서 벽면의 콘크리트 표면이 녹았다.
그럼에도 [무한 무적]을 연달아 발동 중인 은혁의 몸 자체에는 데미지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지니고 있는 꼼수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였나!’
슬레이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슬레이버 또한 막대한 마력을 쏟아부어서 [황금천수신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슬슬 한계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로 진귀한 체험이지!’
진귀한 체험이므로 슬레이버의 체력과 마력도 자꾸 회복되었다.
마치 은혁과 슬레이버는 불완전한 영구 기관으로 승부를 벌이는 기괴 과학자들처럼 스킬을 쏟아부었다.
투다다다다당……!!!
충격파만으로도 시장실은 당연히 박살 났고, 시청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은혁은 그 파괴를 가속시키기로 했다.
“[돌 부수기]!!”
콰쾅!!
우르르……!!
[황금천수신권]과 [무한 무적]이 대결하는 사이, 은혁은 슬레이버의 발밑을 부쉈다.
슬레이버가 1미터쯤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메탈 스파이크 소환]!”
파앗!
슬레이버의 발밑에 무수히 많은 가시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슬레이버는 [허공답보]로 가볍게 허공을 딛더니 오히려 은혁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투두두두두두두……!!
이 와중에도 [황금천수신권]과 [무한 무적]은 쉬지 않고, 무수히 많은 황금의 창과 절대 부서지지 않는 방패의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서로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진 순간, 은혁은 청염백광단검을 들고 달려들어, 마지막 도박을 하기로 했다.
‘[화염의 차원 강림]을 쓴다!’
청염백광단검에 담겨 있는 한 방 필살기였다.
화염의 차원과 통하는 초고열의 통로를 만드는 스킬로, [황금천수신권]의 틈새를 찾아 청염백광단검을 쑤셔 넣은 뒤 [화염의 차원 강림]을 발동하면, 그 틈새를 강제로 벌리면서 슬레이버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 판단했다.
슬레이버 또한 은혁이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했기에, [황금천수신권]의 연계 스킬을 준비했다.
그 순간.
-계약 대결의 제한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3분간 패자가 없었으므로, 무승부입니다!
파앗!
메시지 확인과 동시에 은혁과 슬레이버는 스킬을 거두었다.
쿠르르릉……!
와르르르…….
사방에서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났지만, 슬레이버와 은혁은 서로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럭저럭 예상대로군.”
“네.”
슬레이버와 은혁 모두, 싸우기 전부터 어떤 결론이 날 것인지 예측하고 있었다.
‘무승부로 끝나서 둘 다 살거나, 서로를 동시에 죽이거나.’
계약 대결에 가타부타 조건을 붙이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강하군, 자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길드연합국의 통합길드장이 될 정도의 실력은 아니야.”
“그렇습니까?”
“오해는 마. 지금의 너는, 7대 길드의 길드장을 상대로 무승부를 유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과대평가이십니다. 3분짜리 싸움이었기에 무승부가 난 거지요.”
은혁이 겸손하게 말하자 슬레이버는 빙긋 미소만 지었다.
사실 건물이 박살 난 시점에서 슬레이버에게는 운명치 소모가 꽤 빠르게 일어나고 있었다.
세계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면 운명치가 빠르게 줄어드는데, 건물이 무너지며 50층의 다른 플레이어와 NPC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반면에 은혁은 [재난의 심장]으로 운명치 무한 생성 꼼수를 46층~49층에서 달성하고 왔기에 그럴 걱정이 없다.
‘게다가 내게는 진짜 숨겨둔 비장의 수단이 있고.’
이 사실을 은혁과 슬레이버 모두 안다.
은혁은 대화하며 숙련도창을 요약해서 확인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80%++.
-현재 마법사 숙련도 : 91%++.
-현재 도적 숙련도 : 5%+++.
-현재 무투가 숙련도 : 74%++.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27%++.
-현재 드루이드 숙련도 : 15%++.
-현재 궁술사 숙련도 : 4%++.
-현재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숙련도 : 64%+++.
-현재 혈인술사 숙련도 : 77%+++.
두 사람은 사이좋게 힐링 포션을 마시며 잠시 회복 시간을 가졌다.
슬레이버는 자신의 부상을 ‘영광의 상처’라고 선언한 뒤 [가치 변환]으로 즉시 잘린 다리를 회복시켰다.
은혁은 [피구름 생성] 스킬을 응용하여 단숨에 잘린 팔을 회복시켰다.
“자네, 싸움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제 보니 회복 역량도 상당하군.”
“감사합니다. 하지만 길드장님만큼 회복이 깔끔하진 못합니다.”
“하하! 사나이끼리 주먹도 교환했겠다, 허심탄회하게 대화해 볼까?”
“바라던 바입니다.”
“연장자인 내 속내를 먼저 드러내 보도록 하지.”
계약 대결에서 진 쪽이 사실을 먼저 말하기로 약속한 바는 없고, 공식적으로 무승부였음에도 슬레이버는 마음을 열기로 했다.
강은혁 정도의 강자는 진실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경청하겠습니다.”
“내가 굳이 50층에 자리를 잡고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부터 설명해야겠지. 아마 자네도 모를 거야.”
“100층탑의 중심이기에, 이곳 휴양 도시에서 돈보다 귀중한 정보를 수집하며 복룡처럼…….”
“그건 대외적인 이유야. 진짜 이유는 지금 말하려고 하네.”
슬레이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나는 100층탑 밖으로 나가는 길, 이른바 ‘출입구’에 대해 알고 있네.”
은혁은 충격을 받았다.
슬레이버가 추구하는 걸 회귀 전 지식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심지어는 출입구가 50층~54층 구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마저 회귀 지식으로 알고 있었음에도 충격적이었다.
슬레이버는 은혁이 충격받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어 말을 꺼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