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307화 (307/434)

307화 : 슬레이버와 함께 메인 미션 클리어 (2)

미션창에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53층 메인 미션은 52층 메인 미션과 마찬가지로 반복 가능한 미션이다.

공격대의 대장선이 다가왔다.

“나는 공격대장 폴로라고 하오.”

“저는 강은혁, 이쪽은 염훈, 그리고 이쪽은…….”

“알고 있소. 파란 양복 입고 다니는 시장 NPC인 거.”

공격대장 폴로는 슬레이버를 무시했다.

슬레이버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빙긋 웃기만 했다.

조금 모욕당해도 운명치를 아낄 수 있다면 이득이므로.

“여기는 크라켄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고, 이제 곧 나타날 거요.”

공격대는 이미 수십 회 이상 크라켄을 사냥해 왔다.

사실, 이들의 레벨과 숙련도는 7대 길드의 1군급보다 한 수 위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50층~54층 구간에서 활약하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여러분을 쫓아내야겠지만 원한다면 합류해도 좋소. 강은혁, 당신의 차원의 낚싯대의 명성은 익히 들었으니까.”

은혁이 세븐 칼리버 제4형태인 차원의 낚싯대를 이용해 이뤄낸 활약은 한둘이 아니었고, 널리 퍼져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 반대로 해야겠는데.”

“무슨 의미요?”

“원래대로라면 협력하는 게 본인의 방식이지만, 오늘만은 여러분 모두를 쫓아내야겠습니다.”

“뭐, 뭐라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5분 이내에 이곳을 떠나시오.”

은혁이 준엄한 어조로 말하자, 염훈은 당황해했다.

평소의 은혁은 이렇게 남의 사냥터를 이유 없이 뺏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날 믿어, 염훈.’

은혁은 [텔레파시]로 말한 뒤 정신을 닫았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했다.

‘폴로의 공격대.’

은혁의 기억이 맞다면, 여기 있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다 죽는다.

폴로의 공격대는 낚시용 떡밥을 뿌려서 크라켄을 사냥하는 데 능숙했다.

대형 트럭 크기의 크라켄을 사냥해서 몬스터 부산물을 팔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폴로의 공격대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이 밑에 지고의 위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기적인 사냥법이 점점 그 지고의 위상을 화나게 하고 있다는 것.’

아마도, 은혁이 회귀한 뒤로 상대한 지고의 위상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바다의 지배자 크립카라.’

매우 강력한 지고의 위상이다.

은혁이 알기로, 이 바다의 공식적인 지배자는 두어 차례 바뀐 바 있다.

현재 바다의 지배자 칭호를 지닌 것은 ‘리바이어던’이라는 비밀스러운 성좌다.

그 리바이어던을 무시하고 자신도 바다의 지배자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크립카라의 강력함은 상당한 편.

그 크립카라가 폴로의 공격대를 죽인다.

그날이 오늘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은혁은 왠지 오늘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가 왔으니까.’

은혁과 염훈이 도착했기에, 크립카라는 강력한 힘을 느꼈을 터.

이번 기회에 모조리 잡아먹으러 튀어나올 확률이 높았다.

“만약 우리가 못 떠나겠다면 어쩔 거요?”

폴로가 팔짱을 턱 낀 채로 물었다.

“나라면 그렇게 서지 않을 텐데?”

“이젠 내 자세 하나하나까지 트집 잡을 셈이오, 강은혁?”

“어휴, 친절하게 말해줘도 다 꼬아서 생각하니, 원.”

그 순간.

촤아아악!!

콰쾅!!

폴로가 탄 기함의 밑에서 거대한 상어가 들이받았다.

“으악?!”

우당탕!

오만한 자세를 취한 폴로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들도 나동그라졌다.

“미친! 자이언트 샤크입니다!”

“으윽, 몇 마리냐!”

“……오 맙소사!”

폴로의 부하들도 나름의 레이더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레이더를 탁탁 두들겨댔다.

“50마리, 60마리, 아, 아니, 70마리……! 계속 늘고 있습니다!!”

“제길! 쏴라! 쏴!!”

플레이어들은 능숙하게 무기를 발사했다.

작살을 쏘는 거치형 쇠뇌.

충격파가 담긴 룬을 쏘아내는 지연식 쇼크 블래스터.

마정석을 끼워 넣은 라이트닝 스피어.

그밖에도 해상전에 맞춰 조율된 스킬과 각종 마법 무기들.

콰쾅!!

슈슈슉!!

푸확!!

자이언트 샤크 무리들은 빠르게 죽어 나갔다.

바다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음, 잔인하긴 하지만 잘 싸우네?”

염훈이 감탄조로 말했고, 은혁은 곧 있을 큰 싸움에 대비해서 차원의 낚싯대와 선즈 리볼버를 들었다.

“하하! 어떠냐!”

“이게 우리들! 폴로의 공격대의 힘이다!”

“와아아아!!”

상어들의 공격을 일단 잘 넘겨 낸 폴로와 그 부하들이 환호했다.

그런데.

휘오오오…….

한 줄기 바람이 불더니.

우뚝……!

출렁이던 바다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아무리 잔잔한 바다라고 해도, 호수처럼 조용해질 수는 없는데, 그렇게 변한 것이다.

“자, 잠깐! 다들 조용!!”

폴로가 외쳤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순간.

-바다가 붉게 물들 때, 해수면을 올려다보는 분께서 기뻐하신다.

-기뻐하라.

-바다를 붉게 만들자.

-그분께서 기뻐하시게.

불길한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흘러나왔다.

“윽!”

“갑자기 머리가…… 아파앗.”

“우웁, 우우욱……!”

격렬한 파도 속에서도 멀미 한 번 일으킨 적 없는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두통과 구토 증세를 호소했다.

“큭, 이건……!”

그나마 폴로 공격대에서는 폴로가 가장 멀쩡했다.

그 순간.

투쾅!!

투쾅!!

붉은 물기둥이 마구잡이로 치솟기 시작했다.

“쿠웨에에엑!!”

“키에에에에!!”

크라켄, 자이언트 샤크, 빅 웨일 등.

온갖 해양 괴수들이 물기둥에 꽂힌 채 허공으로 치솟더니.

뻐엉!!

퍼버벙!!

통째로 터져서 사체들이 갑판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히익?!”

많은 이들이 사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크립카라의 강림을 돕기 위해, 대형 해양 몬스터들이 제물이 되는 중이었다.

크립카라는 붉은 바다를 좋아하므로.

은혁은 냉철하게 선즈 리볼버를 꺼냈다.

“얍.”

은혁은 선즈 리볼버를 적당히 쏴서 반쯤 죽은 크라켄 한 마리를 죽였다.

-축하드립니다! 53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그러나 클리어 보상으로 주어져야 할 해양 괴수 사체의 소유권은, 현재 지고의 위상, 크립카라에게 귀속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경악하는 동안에도 은혁은 실속을 챙겼다.

펑!

뻐버벙!

연달아 터져 죽는 해양 괴수들의 사체로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그 순간.

쑤욱!

물 밑에서 남성형 인어가 불쑥 솟아올랐다.

“으하하하하하!!”

하얀 수염과 밧줄처럼 엉킨 머리카락.

그리고 갈퀴 달린 손.

얼굴은 노인 같았지만 눈알은 문어처럼 좌우에 달려 있었다.

-지고의 위상, 붉은 바다의 크립카라가 나타났습니다!

바다게 붉게 물들면 나타나는 전설 속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바다 위에 지고의 위상이 모습을 불쑥 드러내는 광경은 악몽 속의 한 장면 같았다.

“흐아아악!”

“나 돌아갈래!”

“다 도망치자고, X발!!”

그나마 정신이 있는 일부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뱃전을 돌렸다.

하지만.

“어딜 가시나? 이 좋은 바다에서! 으하하하!!”

크립카라는 접영으로 헤엄쳤다.

동네 수영장에 가면 가끔 보이는, 유난히 수영 잘하는 할아버지가 헤엄치는 것 같다.

“우하하하!!”

콰쾅!!

크립카라는 그대로 도망치던 배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양팔을 가볍게 휘둘렀다.

퍼버버벅!!

배에 탑승하고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죽었다.

아니, 죽었어야 했다.

“음?”

크립카라의 양팔은 은혁과 염훈에 의해 막혀 있었다.

“아우, 아프네.”

“그러게.”

은혁이 [그림자 터널]을 이용해, 배의 깃발 아래로 이동한 뒤 막아선 것이다.

“호오?”

크립카라는 문어 같은 눈으로 은혁과 염훈을 바라보고 활짝 웃었다.

“제법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 같군.”

“즐거움은 끝이다.”

은혁이 크립카라의 등 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음?”

그곳에는 [수상비]로 달려오고 있는 시장 NPC, 아니, 슬레이버가 있었다.

슬레이버는 황금 장갑을 벗으며 관수로 찔러 들어왔다.

“힘숨찐이라고 들어봤나? 그게 나야.”

“그……!”

콰직!!

그게 뭐냐고 물어보려는 크립카라의 등을, 슬레이버의 관수 공격이 꿰뚫었다.

“끝.”

화악……!

슬레이버의 강력한 스킬이면서, 동시에 저주에 가깝게 강화된 [마이더스의 손]이 발동되었다.

아무리 지고의 위상이라 해도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황금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대책이 별로 없다.

쩌저적……!

특히, 마정석까지 황금으로 변하면 죽는다.

“이, 뭐, 뭔……!”

크립카라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으나, 그래도 지고의 위상답게 권능을 발동했다.

-황금의 저주를 붉은 바다에 퍼뜨립니다!

파앗!

크립카라는 몸속으로 이미 침범해 온 [마이더스의 손]의 힘을 방출해댔다.

붉은 바다에 황금의 힘이 뿜어져 나가서, 인근이 버석거리는 핑크 골드 재질의 액체 금속으로 변화했다.

은혁과 염훈은 그걸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다.

“연계기 [메탈 스파이크 소환].”

은혁은 핑크 골드의 액체 금속으로 변한 바닷물을 이용해 금속 가시를 소환해 버렸다.

퍼버버버버버벅!!!

“억……!!!”

슬레이버의 황금의 힘과 크립카라 자신의 힘이 담긴 피의 바닷물을 매개로 한 무수히 많은 가시들이기에, 크립카라는 지고의 위상 특유의 저항력을 발휘하지도 못한 채 꿰어 버렸다.

이어서 염훈의 차례였다.

“[홀리 라이트닝]!!”

번쩍!!!

염훈은 빅 썬더에 담긴 스킬의 힘으로 크립카라의 머리에 신성한 번개를 갈겼다.

빠지지지지지지직!!!

“크어어어어어어억……!!”

크립카라는 온몸에서 흰 연기를 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온몸이 피와 황금의 가시에 꿰뚫린 상태인데 신성한 뇌격이 가해졌다.

저항하지 못하고 직격으로 맞아서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권능을 발휘하면 붉은 바다 어디로든 순간이동이 가능했으나, 가시에 꿰뚫리고 감전 중인 상태라 그럴 수도 없었다.

“으어어억…….”

그렇게, 크립카라는 죽었다.

화려한 등장에 비해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클리어 보너스는 은혁과 염훈에게도 전달되었다.

-축하드립니다! 지고의 위상, 크립카라를 처치하셨습니다!

-이름 없는 해신의 호의를 얻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91.

-전사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82%++.

-전사 스킬 [바다 가르기]를 획득하셨습니다!

-소환술사 숙련도가 2% 증가했습니다!

-현재 소환술사 숙련도 : 29%++.

-도적 숙련도가 1% 증가했습니다!

-현재 도적 숙련도 : 6%+++.

‘이름 없는 해신의 호의? 그게 뭐지?’

은혁도 잘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호의니까 일단 챙겨두면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

“가뿐하군. 전부 자네들 덕분이야.”

슬레이버가 황금 가루 묻은 손을 털며 다시 장갑을 꼈다.

슬레이버의 말대로 은혁과 염훈이 주의를 끌어준 덕분에 정체를 숨기고 있던 슬레이버가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오, 맙소사! 저 황금의 스킬을 쓴 사람은?!”

“자유시장 길드장 슬레이버……!!”

“50층의 푸른 수염 시장이 사실은 자유시장의 길드장이었다는 건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경악하며 감탄했다.

슬레이버는 쓴웃음을 지었는데, 운명치 소모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빨리 떠나는 게 좋겠군.”

“네. 하지만 가기 전에 바다를 정화하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흠, 그럴까?”

슬레이버는 바다를 향해 [황금여래신장]을 한 방 갈겼다.

투콰앙!!!

붉게 물들었던 바다의 오염 물질이 나노 단위의 황금 알갱이에 흡착되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오오!”

“새빨갛던 바다가 푸른색과 황금색으로……!”

“역시 길드장이구나!”

저 생존자들은 살아서 50층 해양 도시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은혁과 염훈, 특히 슬레이버의 업적에 대한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 소문이 지역의 전설이 되면, 슬레이버의 운명치 생산량도 늘어날 것이다.

“자, 가세.”

슬레이버가 다시 배를 조종해서 떠났고, 생존한 폴로 공격대는 손을 흔들었다.

“고맙소!”

“덕분에 살았습니다!”

“강은혁 만세! 염훈 만세! 슬레이버 만세!”

환호를 들으며 아주 먼 바다, 54층 구역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