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 바닷물 아래로 (2)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려 하다니! 참으로 한탄스럽도다!
“저희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내쫓기는 마당에 수단 방법 가릴 수야 없지요.”
-말대답은 잘하는구나! 너희가 가는 곳은 금지된 구역임을 정녕 모르는 것이냐?!
“네. 모릅니다. 바다에 ‘금지 구역’ 팻말이 꽂혀 있는 것도 아니고.”
은혁이 빈정거리자, 염훈이 킥킥 웃었다.
-너희는 나의 경고를 수차례 무시했다! 이제, 나의 수하를 보내어 너희들을 징벌하리라!!
그 뒤로 이런저런 난관이 있었다.
소용돌이의 정령이 나타나서 황금 덩어리를 뒤흔들었다.
-흐하하하!
성좌는 여태 다이렉트 메시지를 끊지도 않고 비웃었다.
-그 소용돌이의 정령은 각별할 것이다! 상급 바람의 정령과 상급 물의 정령이 결합된 존재! 정령술의 대가조차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일지니!
성좌가 괴물 운운하면 강력한 존재일 터.
하지만 슬레이버, 은혁, 염훈은 더 강했다.
슬레이버는 은혁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지체 없이 황금 덩어리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물이 쏟아져 들어와야 했지만 은혁이 [사이오닉 필드]로 막았다.
그다음은 염훈이 활약했다.
“[무적 돌진]!!”
투쾅!!!
은혁의 [사이오닉 필드]는 같은 편은 가볍게 통과시켜줬다.
그대로 돌진한 뒤 소용돌이의 정령 속에 들어가서는, 냅다 [홀리 썬더]를 발동했다.
꽈르릉!!!
아무리 소용돌이의 정령이라 해도 내부에서부터 신성한 충격파가 터지면 살 수 없었다.
뽀그르르르…….
염훈은 바닷속에서 헤엄쳤다.
전혀 숨쉬기가 힘들지 않았는데, ‘수중 호흡의 반지’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17층 피라냐의 호수에서 얻은 거지.’
17층에 있던 몰락한 지고의 위상, 청록색 피라냐를 처치하고 염훈이 선택한 보상이었다.
말 그대로 물속에서 호흡하게 해주는 아이템.
공포감 자체를 없애주는 건 아니지만, 염훈은 34층 뗏목타기 미션을 극복한 뒤로는 각오하고 물속에 뛰어들 수 있었다.
‘수중 호흡의 미역을 쓰지 않아도 되겠는데?’
은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흡!”
은혁은 솜씨 좋게 차원의 낚싯대를 던져서 염훈을 다시 회수했다.
“읏차. 그럼 다시 막겠네. [마이더스의 손].”
스르륵!
황금은 다시 막혔다.
-으음. 과연 강적들이로고.
리바이어던은 조금 긴장했다.
이 와중에도 황금 덩어리에 탑승(?)한 은혁, 염훈, 슬레이버는 꾸준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으므로.
-그렇다면 내 수하들을 보내는 수밖에 없겠군!
따다닥……!
따각……!
심해 바닥에 가라앉은 소라 껍데기, 갑각류의 사체, 인간이 버린 쓰레기 따위들이 뭉쳐지더니 몸을 일으켰다.
심해의 바닥에는 50층~54층의 무의식이 담긴 쓰레기들이 가라앉았고, 리바이어던은 그것에 자아를 부여했다.
리바이어던은 그들을 심해의 수호병이라 불렀다.
-자아! 심해의 수호병들이여! 놈들을 죽여라!!
리바이어던의 외침은 그 자체로 성좌의 가호가 되어, 심해의 수호병들의 공격력, 방어력, 속력을 모두 크게 강화시켰다.
“부오오오오……!!”
컴컴한 바다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심해의 수호병들의 울부짖음.
심해 공포증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세 사람은 태연했다.
세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순차적으로 스킬을 펼쳤다.
“[광역 축복].”
염훈이 펼친 [광역 축복]은 은혁과 슬레이버가 발동하는 스킬에 정의로운 신성력을 부여했다.
성좌 리바이어던의 가호를 받은 심해의 수호병의 버프를 중화시키는 역할이다.
뒤이어 은혁이 스킬을 썼다.
“[사이오닉 싸이클론].”
키유우우우웅……!!
은혁의 [사이오닉 싸이클론]은 해류를 마구 비틀어 버리는 초능력의 소용돌이였다.
자연적인 해류라면 심해의 수호병들이 피해를 입지 않으나, [사이오닉 싸이클론]에는 속도가 많이 느려지고, 껍데기의 일부가 깨져 나갔다.
“황금 연계식 [황금천수신격].”
마지막으로 슬레이버가 스킬을 썼다.
이미 사방에 존재하는 황금이 지닌 가치가 슬레이버에게 흡수되더니, 심상으로 구현된 황금의 주먹으로 변해서 다시 되뿜어졌다.
콰두두두두두두……!!
무수히 많은 황금의 주먹은 바닷물 특유의 저항력을 모조리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심해의 수호병들을 박살 냈다.
-이, 이럴 수가……!
리바이어던은 경악했다.
성좌의 본체까진 아니더라도, 직접적인 의지를 투영해서 세 사람을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은, ‘성좌건 뭐건 방해하면 가만 안 둔다.’라는 태도와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이것이 플레이어의 저력인가……!
“음, 성좌님? 아직도 다이렉트 메시지 연결 중인데요. 이거 유지하고 있으면 운명치 소모 크지 않습니까?”
-아, 아차.
플레이어와 접한 경험이 부족한 성좌인 터라, 크고 작은 방심을 보이고 말았다.
-다이렉트 메시지가 종료되었습니다!
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슬슬 도착이군. 추가 방해는 없을 거 같지?”
슬레이버가 물었고, 은혁과 염훈이 동의했다.
꾸궁…….
심해의 바닥에 도착했다.
뚜드드드드……!
수압은 무척 강했고, 황금 덩어리의 표면이 일그러졌다.
스킬의 힘으로 강화된 황금이었기에 그나마 버티는 것이지, 순금이었다면 순식간에 우그러졌을 것이다.
“이대로 1km만 더 이동하면 되는군.”
슬레이버가 좌표를 확인한 다음 말했다.
슬레이버는 손가락으로 비스듬히 아래를 가리켰다.
“저편에 해저 동굴 입구가 있다는 메시지가 뜨는군.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히든 미션이 진행될 텐데,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일이로군. 하하하!”
슬레이버가 웃었다.
바닥까지 도달한 건 좋은데, 여기서 해저 동굴 입구까지 더 이동할 길이 없었으므로.
“엥?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염훈이 어이없어하자 슬레이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다시 잠수함을 꺼낸 다음, 황금으로 강화시켜서 이동하는 것은 가능하다네.”
“그럼 그렇게 하죠?”
“여태 성좌 리바이어던에게 당해놓고서 그런 소린가?”
“우리가 황금 덩어리 밖으로 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해올 거다?”
“아마 그렇겠지?”
“음.”
염훈은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혁을 돌아봤다.
“야, 너도 아이디어 좀 내놔봐.”
“하나 있긴 한데.”
“뭔데?”
“[돌 부수기] + 드릴 랜스로 바닥을 뚫는 거지.”
비스듬히 아래 방향으로 가서 동굴 입구가 나온다면, 아예 그냥 땅을 뚫고 들어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너랑 슬레이버 님이 날 돕는다면 꽤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은혁이 은근한 어조로 말하자 염훈은 이미 체념했다.
“위험한 작전처럼 들리는군?”
슬레이버가 웃으며 묻자,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랑 슬레이버 님 단둘이 하는 거면 위험하죠. 하지만 염훈이 서포트하면 의외로 안전하게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혁, 염훈, 슬레이버는 해냈다.
은혁은 [돌 부수기]와 드릴 랜스의 힘을 융합하는 [택티컬 디깅] 스킬을 이미 갖고 있었는데, 그것에 [광풍돌진권]의 힘을 추가로 융합하는 [허리케인 디깅] 또한 어렵지 않게 해냈다.
슬레이버는 은혁이 [허리케인 디깅]을 발동하기 전에, 드릴 랜스에 [골드 코팅] 버프 스킬을 걸어줬다.
평소의 [골드 코팅]은 얇은 강화 금속을 덧바르는 식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황금 덩어리의 금속 절반을 모조리 녹여서 드릴 랜스를 강화시켰다.
그것만으로도 막대한 질량이 압축된 초중량의 황금 드릴이 생겨났다.
이 상태로 [허리케인 디깅]을 발동하면 사용자인 은혁과 서포트하는 슬레이버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위력이 발생한다.
그걸 견디기 위해 염훈은 [2초 무적]을 은혁의 [스킬 트랜스미션]에 빌려주고, [신성한 오러], [광역 축복], [신성한 지휘] 스킬을 써서 모두를 보호했다.
번쩍!!!
강력한 세 사람이 합심하여 전력을 다하자, 1km 남짓의 해저 지대는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콰두두두두두!!!
순식간에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슬레이버에게 설명하고 염훈을 설득하는 시간보다, 스킬을 융합해서 땅을 파고드는 시간이 더 짧았다.
즉, 지금의 은혁은, 자신 아닌 다른 강자와의 합의가 어려울 뿐, 막상 합의를 하고 나면 문제 해결은 매우 쉽게 해내는 그런 수준의 압도적인 강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투두두두두두!!
촤아아아악!!
해저 동굴의 천장을 뚫고, 세 사람은 들어갔다.
“흡!”
슬레이버는 [마이더스의 손] 스킬로, 동굴 천장에 생긴 구멍을 막았다.
그렇게 안전히 해저 동굴에 도착한 순간, 은혁과 염훈에게도 히든 미션이 개방되었다.
-54층 히든 루트 : 해저 동굴
그와 동시에 54층 메인 미션은 자동으로 클리어되었다.
-축하드립니다! 54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최초로 54층 히든 루트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54층 히든 루트를 지배한 리바이어던은 보상 지급을 거부하였습니다!
54층 메인 미션은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면, 그곳에 맞는 성좌나 지고의 위상이 보상을 주는 미션이다.
그런데 하필 그곳을 지배하는 리바이어던은 속 좁게도 보상 지급을 거부했다.
“…….”
“…….”
“…….”
은혁, 염훈, 슬레이버가 ‘성좌가 너무 쪼잔하네.’ 하는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자, 마지못해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졌다.
-플레이어들의 항의성 시선에, 리바이어던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해저 희귀 금속이 300kg씩 제공됩니다!
쿠쿵!
터텅!
원석에 가까운 희귀 금속들이 세 사람 앞에 떨어졌다.
“흐음, 당장 쓸모는 없어 보이는 물건들이군.”
“제가 사고 싶은데요? 정비 용품으로.”
“정비? 뭘 정비하려고?”
“아, 대형 갑주가 하나 있는데요. 아직 실전 테스트도 안 한 거라. 수리용 자재를 미리미리 챙겨두려고요.”
“뭐, 그렇게 하게나. 그냥 주지.”
슬레이버는 선선히 은혁에게 희귀 금속을 넘겼다.
‘희귀 금속의 원석은 정제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통 크게 강은혁에게 선물로 주고 마음을 얻는 게 낫겠지.’
슬레이버는 그것이 더 경제적으로 이로운 투자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은혁은 다르게 생각했다.
‘천하의 슬레이버도 때로는 이렇게 잘못된 투자를 하는군.’
만약 은혁이 만든 ‘대형 갑주’의 정체가 초월급 무구인 드래곤 파워드 아머라는 것을 알았다면 희귀 금속을 통째로 넘기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슬레이버의 정보력이라 해도, 실전에서 선보인 적 없는 드래곤 파워드 아머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다.
“나도 줄게, 은혁아.”
“오, 정말?”
“그래. 어차피 쓸모도 없는 돌덩어리, 성좌가 생색내서 준 거 필요 없어.”
염훈은 리바이어던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리바이어던은 반응이 없었다.
‘나야 좋지.’
은혁은 희귀 금속들을 모조리 인벤토리창에 넣었다.
이 희귀 금속들은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인공 근육 보강용으로 쓸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슬슬 이 해저 동굴을 탐사해 보세나.”
슬레이버가 말한 순간.
-자력으로 해저 동굴에 도달하였습니다!
-히든 미션이 개방됩니다!
<54층 히든 미션 : 해저 동굴의 비밀>
-목표 : 해저 동굴에는, 100층탑 바깥으로 도중에 나갈 수 있는 비밀 출입구가 존재한다. 그 비밀 출입구를 찾아낼 것.
-성공 시 보너스 : 없음.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없음.
-주의사항 : 출입구의 위치를 알아도, 그 출입구를 열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들이 필요함.
-히든 미션 전용 버프 [좌표 시야]를 획득하셨습니다!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해저 터널 전용 나침반]을 획득하셨습니다!
“후후. 이걸로 완전히 한배를 탔군. 히든 미션이라는 이름의 배를.”
슬레이버가 웃으며 말했다.
은혁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거짓말을 하진 않는 타입이군.’
히든 미션의 내용과 버프 및 아이템의 종류까지.
전부 슬레이버가 시장실에서 말한 것에서 크게 어긋남이 없었다.
“가세나.”
해저 동굴은 축축하고 매끄러웠다.
공기가 충만한 구간도 있었고, 물이 가득 차 있는 구간도 있었다.
찰박찰박…….
세 사람은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