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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11화 (311/434)

311화 : 리바이어던의 정체

은혁은 [블러드 데이터 칩] 스킬을 이용해 내용을 읽어냈다.

“이미 바깥과의 상호 작용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다 돌려봤군요.”

각종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담겨 있었다.

상거래, 의료, 통신을 개방한 경우.

플레이어에게 ‘휴가’ 보내주듯 내보내는 경우.

지구의 가난한 자들만을 100층탑으로 들여보내는 경우 등등.

리바이어던은 비상 출입구를 지키기만 하는 게 아니라, 비상 출입구가 작동했을 때 발생할 일에 대한 각종 시뮬레이션을 관리하는 일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상용 출입구가 있는 곳의 위치가 왜 하필 데이터 룸인지 몰랐는데, 그런 이유였구나.’

은혁은 힘겹게, ‘상거래 개방’의 분석 결과를 읽어 나갔다.

은혁도 이해하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분석 결과가 이어졌고, 마지막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100층탑과 바깥 세계 간의 자유로운 상거래는 불가능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은혁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도 있었고, 아닌 이유도 있었다.

‘역시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을까.’

지구에 있는 아픈 사람을 위해 힐링 포션을 팔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 자체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변수가 너무 컸다.

공정한 유통의 문제만 따져도 그렇다.

100층탑 내부의 자유시장 길드가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그 영향력을 지구에도 행사하긴 어렵다.

행사하려면 지구에 누군가를 파견해야 하는데, 100층탑 출입구 이용 자격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그 밖에도, 100층탑에서 관리국이 갑자기 스테이지를 개변해서 힐링 포션 수급량을 줄이거나, 아니면 힐링 포션은 플레이어에게만 통하는 것으로 설정해 두었다면?

이런저런 변수를 따지면 따질수록 어렵다.

‘그렇다는군요.’

은혁이 [텔레파시]로 모든 걸 전해줬다.

‘역시 그런가. 내가 추구한 이상이 너무나 단순했던 걸까?’

슬레이버도 내심 알고 있었다는 듯 반응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봐다오. 정말 마지막 질문이다.’

‘뭡니까?’

‘100층탑 내부와 외부의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상거래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외의 극소수 인원끼리만이라도, 상업, 지식, 권력 등을 교류하는 게 가능하냐고.’

‘괜찮겠습니까?’

‘무슨 의미인가?’

‘그건… 자유시장 길드의 신념과 어긋나는 것 아닙니까?’

부길드장인 테일러야 오직 자신과 운명을 위해 돈을 모았지만, 길드장인 슬레이버는 조금 달랐다.

슬레이버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두의 이로움’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질문은 그런 슬레이버의 신념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상관없다.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은 거니까.’

그래서 은혁은 질문했다.

그러자 리바이어던은 뜻밖의 답을 해줬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

“누구입니까?”

-더는 말할 수 없다.

리바이어던은 이미 너무 많이 말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은혁은 그 사실도 슬레이버에게 전해줬다.

‘젠장. 수지 안 맞는 장사였군!’

슬레이버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패배 인정한 게 후회되시죠?’

은혁은 조심스레 물었는데, 남들이 보면 놀리려고 묻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은혁은, 만약 슬레이버가 패배 인정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면 한 번 정도는 봐줄까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슬레이버는 공정했다.

‘이미 한 약속을 무를 수는 없지. 시스템적으로도 불가능할 거다.’

‘그럼…….’

‘어차피 테일러도 네가 100층탑을 클리어하는 것에 걸지 않았나? 나도 그렇게 하는 게 합리적이겠군.’

멀리서 [텔레파시] 중이므로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은혁은 슬레이버의 진지한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시간을 너무 오래 낭비했다. 강은혁, 자네가 100층을 정복해서, 소문 속의 소원을 얻어내라. 그리고 모순을 극복해라.’

‘바라는 게 많군요.’

‘100층탑의 정상을 정복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며? 소원 100개 이루게 해주세요~ 라고 한 다음 우리한테 몇 개 나눠주면 되잖아?’

‘켁, 농담이겠죠?’

‘진심인데?’

‘으음.’

100층탑을 정복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은혁도 정확히는 몰랐기에 일단 알았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알아내는 대로 또 연락드리죠.’

일단 [텔레파시]를 끊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말했다.

“이 출입구를 좀 가까이서 관찰하고 싶은데요.”

은혁이 통유리를 가볍게 통통 두드리며 말했다.

‘보통 통유리가 아니네.’

매우 강력한 보호의 힘이 겹겹이 걸려 있었다.

리바이어던이 열어주지 않으면 은혁도 통유리 너머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음? 지금 사용할 것인가?

“아뇨. 이 비상 출입구를 분석하는 게 가능한지 그냥 궁금해서.”

은혁은 [재해석] [역설계] [초월 설계] 등의 다양한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출입구가 발판형 기계 장치로 보이는 이상, 복제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안 됩니까?”

-음…….

리바이어던은 조금 당황해했다.

출입구를 통째로 분석하려는 자는 아직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 도달한 자가 많지 않았으므로.

-그대에게는 자격이 있지…….

위이잉.

통유리가 위로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은혁이 몇 걸음 걸어 들어간 순간.

‘주인님! 주인님!’

메탈 서전트가 교신을 걸어왔다.

‘무슨 일인가?’

‘긴급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피스메이커가 공격을 해왔습니다.’

‘직접 왔나?’

‘그게, 설명하기가 조금 어렵습니다.’

‘알았다. 곧 가지.’

은혁은 허공을 향해 말했다.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기다려라!

리바이어던의 모습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입니까?”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압니다.”

-안다고?

“정확히는 모르지만, 피스메이커라는 플레이어가 공격을 해왔다는군요.”

은혁은 최대한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피스메이커 혼자라면, 슬레이버와 염훈이 힘을 합쳐 버틸 수 있는 적이다.

은혁이 너무 호들갑 피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 피스메이커가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

“네?”

은혁은 되묻다가도 그러려니 했다.

피스메이커가 즐겨 쓰는 녹색의 [독성 바이러스 생성] 스킬은, 액체 속에서 빠르게 증식할 수 있다.

시간만 주어지면, 도시에서 시작한 독성 바이러스가 대륙의 모든 강을 물들이는 것도 가능했다.

피스메이커가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통째로 바이러스로 오염시키는 것도 가능할 터.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상당히 필요한 일이므로 은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전에 내가 처리할 테니까.’

하지만 리바이어던은 다급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겠군. 50층~54층 구간의 바닷물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다.

“설마 냉각수 역할입니까?”

출입구가 작동하려면 막대한 전력 소모와 발열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한 추측이었다.

-그렇지 않다. 출입구를 작동시킬 때는 복잡한 연산이 필요하지만, 발열은 큰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직접 좌표 연산과 전송을 전부 담당하니까.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나의 뇌다.

“엥?”

-이 바다 전체가 나의 액체 두뇌라고 해두지.

리바이어던은 설명했다.

자신이 관리국에 의해 제작된 인공 성좌라는 점.

자신의 인공 의식은 50층~54층 구간에 도달한 플레이어들의 무의식이 합쳐져 성숙기를 거친 것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50층~54층까지 도달한 플레이어들의 무의식은, 개별적으로는 다르지만 큰 영역에서는 단 하나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게 무엇일까?

“100층탑 밖으로 나가는 것?”

-비슷하다.

50층~54층 구간은 100층탑의 딱 중간이다.

여기까지 온 플레이어들은 모두 강하다.

그런 플레이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생각은 비슷하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100층탑 클리어하고 나갈 수 있겠는데?’

‘아, 빨리 나가고 싶다.’

‘100층탑 중간에 무슨 탈출구 같은 거 없나?’

비슷한 무의식은 조개껍데기처럼 바닷물 아래로 축적되었다.

그 무의식의 영향을 받아 가며 일종의 딥러닝을 거쳤다.

그런 성숙기를 거쳐 리바이어던은 출입구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존재로서 거듭났고, 관리국의 허가를 받아 활동 중이다.

-비유하자면, 무의식을 받아들이는 저장 장치에 가깝다. 실제 연산 장치 역할을 하는 핵은 이곳에 숨겨져 있지.

즉, 바다 전체와 비상 출입구가 있는 이곳에 숨겨진 핵을 합쳐 리바이어던의 정신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거였군요.”

-문제는 지금이다. 피스메이커라는 자가 50층~54층의 바다에 즉, 나의 두뇌에 증식하는 바이러스를 뿌리고 있다.

“심각합니까?”

-아직은 아니다. 나의 두뇌는 말 그대로 바다처럼 넓고, 플레이어가 간섭 가능한 스테이지 영역 바깥까지 뻗어 나가고 있으므로.

“하지만 방치하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겠군요.”

-그러하다.

“돕겠습니다.”

-정말인가?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봉인된 해신의 신전에 가게 해주십시오.”

만약 슬레이버가 은혁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욕심 많은 놈!’ 하면서 욕을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협상질을 하는 건 자유시장 길드의 기준에서도 지독한 일이었다.

‘하지만 양보 못 해.’

사실, 은혁은 리바이어던이 그 해신의 신전에 있을 줄 알았다.

회귀 전에 들은 지식 때문이다.

회귀 전, 50층~54층 구간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다가 소용돌이에 빠져 죽을 뻔한 어느 고고학자를 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고고학자는 귀중한 정보를 준 적이 있다.

‘바다 깊은 곳에 있는 해신의 신전에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가까이 간 순간 무언가가 끊임없이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지.’

고고학자는 마치 귀한 정보를 알려주듯 말했지만, 당시의 은혁과 염훈은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99층까지 올라가며 각종 숨겨진 비밀을 수집하게 된 은혁은 이제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

‘그 해신과 여기 있는 리바이어던은 서로 다른 존재다. 즉, 여기와는 다른, 해신의 신전이라고 하는 곳이 존재한다.’

지금 이곳만 해도 매우 비밀스러운 장소지만, 그 해신의 신전은 어쩌면 여기 이상으로 비밀스러운 곳인지 모른다.

‘그곳에는 무언가가 있다. 느낌이 들어!’

그래서 은혁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리바이어던에게 요구한 것이다.

-어떻게 해신의 신전에 대해 알고 있지?

은혁은 반사적으로, ‘아카식 제로와의 인연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아냐. 리바이어던과 아카식 제로는 둘 다 성좌다.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거 같아.’

왠지 모르게 그런 확신이 들었다.

“어느 고고학자로부터 들었습니다.”

거짓은 아니었다.

회귀 전에 봤던 고고학자긴 하지만.

-만약 해신의 신전으로 너를 안내하지 않는다면, 너는 날 돕지 않을 건가?

“아뇨. 어차피 피스메이커와는 한 판 붙어야 하기 때문에 도울 겁니다.”

-잠시 시간을 달라.

묘하게 부글거리는 듯한 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10여 초 뒤, 리바이어던이 다시 말했다.

-나는 인공 성좌다.

“그 말씀은 이미 하셨는데요.”

-불완전한 인공 성좌다.

“엥?”

-왜냐하면 정신과 몸이 분리된 존재기 때문이다.

“네?”

-이해하기 어렵나? 바다가 나의 뇌와 같다고 했지. 그 말은 내게 진짜 뇌가 없다는 거다. 눈알도, 심장도, 발톱도 없다. 육신 전체가 없단 말이다!

리바이어던은 그 사실이 콤플렉스인 것처럼 소리쳤다.

“그렇다면 몸은 어디에……?”

-그대가 가고자 하는 해신의 신전을 지키고 있다.

리바이어던이 한숨 쉬듯 말했다.

-이젠 그대가 내게, 정신과 몸이 왜 분리되어 있느냐고 물을 차례겠지? 답해주지. 엄밀히 말해 분리된 적 없다.

“그럼 왜 분리되어 있습니까?”

-합체된 적이 없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원래 리바이어던의 정신과 몸은 따로 제작된 뒤, 완성 단계에서 합쳐질 예정이었다.

은혁은 리바이어던의 설명을 듣자, 알 듯 말 듯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서 합체에 실패한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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