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312화 (312/434)

312화 : 피스메이커의 계략 (1)

-특별히 무슨 일이 일어나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관리국 놈들 기준에서도 인공 성좌 제작은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내 몸과 정신을 합치는 일에 실패했을 뿐.

은혁은 깜짝 놀랐다.

100층탑의 시스템 자체를 좌지우지하는 관리국이, 자신들이 만든 인공 성좌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일에 실패하다니.

“어째서 실패한 걸까요?”

-내 육체, 리바이어던의 본체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성좌쯤 되면 정신이 육체를 압도한다고 하지만, 관리국이 만든 인공 성좌의 경우에는 그 밸런스가 반대였다.

모처럼 관리국 차원에서 만드는 인공 성좌이니 최대한 강하게 만들려고 한 게 화근이었던 셈이다.

-내 정신은 50층~54층의 플레이어들의 무의식이 쌓이는 성숙기를 거쳐 만들어진 경우지. 반면에 내 본체가 될 육체는 관리국 놈들이 신이 나서 제작한 괴물이고. 그러니 막판에 하나로 합쳐질 수가 없었다. 너무 다른 존재였기에.

“이해했습니다.”

-그러니 해신의 신전에 가게 해달라는 요청은 자살 요청이나 마찬가지다. 그곳에 가면 내 육신, 본체에 잡아먹힐 테니까.

“당신이 날 돕는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도울 수 없다.

“네?”

-오해를 한 것 같군. 내 본체와 나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아니다. 분리되어 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다하고 있다.

“음…….”

은혁과 대화 중인 리바이어던의 정신은 ‘비상용 출입구’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그렇다면 리바이어던의 본체는 자아가 없는 괴물이지만, 나름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뜻인데.’

리바이어던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수호하거나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중일 터.

‘리바이어던의 본체가 지키는 그 무언가란, 아마도 해신의 신전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일 테지? 이거, 더 궁금해지네.’

은혁의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리바이어던은 혀를 차듯 말했다.

-괜히 호기심을 부추긴 것 같군. 다시 강조한다. 해신의 신전에 있는 육체는 관리국도 통제가 불가능한 괴물이다.

“이해했습니다. 해신의 신전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급한 피스메이커부터 처리하죠.”

은혁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 * *

피스메이커는 54층의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차박차박.

바짓단을 조금 걷어 올린 채 맨발로 걷는 모습은 산책이라도 하는 듯 평온했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녹색의 독성 바이러스가 퍼져 나갔다.

주룩주룩….

그의 발자취가 닿은 푸른 바다는 서서히 초록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물론, 바다 전체의 면적은 상상을 초월하게 넓으므로, 심각한 오염은 아닐 터였다.

-오염률 : 0.0000……0000152%.

-오염률 : 0.0000……0000162%.

-오염률 : 0.0000……0000194%.

하지만 바이러스는 자가 증식을 하므로, 오염률은 점차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터였다.

그때, 멀리서 여러 선박이 다가왔다.

“뭐야, 저놈은?”

“물 위를 걷고 있는데?”

“그게 문제가 아냐! 걸음걸이마다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어!”

“심상치 않은 놈이군. 일단 다 같이 포위하자.”

그런 이유로 플레이어들은 피스메이커를 포위했다.

50층~54층 구간의 플레이어들은 거대 해양 몬스터를 상대로 사냥을 하며, 경쟁과 협력을 함께 해왔기에 마음이 잘 맞았다.

그리고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은 이들이었다.

“거기, 물 위에 떠 있는 노인!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체포에 응하시오!”

투항 권고를 들은 피스메이커는 피식 웃었다.

“무슨 이유로 날 체포하려는 건가?”

“바다 오염이지 뭐야!”

“하하! 자네들은 괜찮나?”

“뭐?”

“내가 바다만 오염시키는 것 같나? 바다 위에서 항해 중인 자네들은 멀쩡할까?”

피스메이커의 말에, 포위한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 기겁했다.

“저, 저놈 피스메이커다! 평화 길드장이라고!!”

“뭐, 뭣?!”

모든 선박들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제길, 길드장이라니.”

“우리가 힘을 합치면 부길드장급은 제압할 수 있지만……!”

그들은 즉각 싸울 태세를 갖췄지만 감히 먼저 공격하진 못했다.

피스메이커는 허허 웃었다.

“역시, 다들 멀쩡하군.”

지금 이 순간에도 피스메이커는 호흡기 감염용 바이러스를 서서히 퍼뜨리고 있었다.

독성 바이러스에 비하면 약한 위력의 바이러스지만, 즉시 효과가 나타나야 정상이다.

하지만 포위망을 짠 이들은 멀쩡했다.

피스메이커는 껄껄 웃었다.

“소문대로, 다 백신을 맞은 건가?”

“그렇다, 이 악마 같은 놈!”

무척 나이 많은 선장 플레이어가 외쳤다.

“나는 네놈이 길드 대전 때 한 짓을 직접 목격하고 살아남은 자다!”

선장은 지휘용 검을 휘둘렀다.

“저런 놈은 길드장도 아니다! 여기서 놈을 죽인다!”

“옳소!”

“전원 사격!!”

콰쾅!!

빠지지직!!

화르르륵!!

선박에 내장된 대포.

수십 발의 뇌격.

화염구 공격 등등.

원거리 공격이란 원거리 공격은 모조리 피스메이커에게 쏟아졌다.

콰콰콰쾅!!!

슈우우우우우우우우……!!!

연기가 걷혔을 때, 그들은 경악했다.

“뭐, 뭐야, 저건……!”

끈적한 바닷물이 솟아서 녹색 슬라임처럼 피스메이커를 감쌌다.

“백신을 맞은 너희들에게 호흡기 감염식 바이러스는 안 통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지. 모든 바다를 바이러스로 만들겠다고.”

꿀렁……!

“[독성 바이러스의 파도].”

슈와아악!!

녹색의 파도가 피스메이커를 겹겹이 둘러쌌다.

독성을 지닌 바이러스는 특히 바다에서 빠르게 증식했다.

피스메이커는 바다 전체를 [바이러스의 바다]로 만들 생각이었다.

“다 죽여라.”

촤아아아악!!!

녹색의 파도가 선박들을 덮쳤다.

“잠깐……!!”

대부분은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농축 바이러스에 휩쓸려 죽었다.

나무와 금속의 선박은 물론이고, 플레이어의 시체조차도 순식간에 분해되어 녹색 즙으로 변했다.

녹색의 바다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피스메이커는 생각했다.

‘이거라면 통하겠군.’

강은혁의 주도로 만들어진 백신이 존재한다고 전해 들었다.

호흡기나 혈액 감염에 대한 저항력은 어느 정도 갖췄을 터.

‘하지만 유기물, 무기물 가리지 않고 녹여 버리는 극독성 바이러스가 파도처럼 덮친다면 그때는 어쩔 텐가?’

피스메이커는 바다 전체를 바이러스의 파도로 만들고, 50층~54층 구간을 바이러스의 지옥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준 성좌급 힘을 갖춘 뒤, 5층에 침공을 가한다…… 라는 게 피스메이커가 그린 큰 그림이다.

‘물론, 그건 양대 작전 중 하나일 뿐이지.’

피스메이커에게는 제2의 작전도 존재했다.

“슬슬 유인에 걸릴 때가 되었는데.”

피스메이커는 바다 아래를 굽어보며 중얼거렸다.

녹색의 바이러스 감염수는 그 자체로 센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심해까지 닿을 정도는 아니라서, 은혁, 염훈, 슬레이버의 반응은 알기 어려웠다.

“직접 바다 밑으로 내려가 봐야 하나?”

피스메이커는 바이러스 오염수를 분해시켜 수소와 산소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고민하는 그때, 가면을 쓴 여인이 다가왔다.

피스메이커와 파티를 맺은 그녀는, 피스메이커가 물 위에 남긴 녹색 발자취를 따라서 걸어올 수 있었다.

“오, 자네 왔나?”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꿔 주시면 좋겠군요.”

“바꿀 리가 없잖아.”

피스메이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 목적을 단숨에 이루느냐 마느냐에 대한 싸움을 목전에 두고 도망칠 수는 없지.”

“이건 당신 기준에서도 도박일 텐데요.”

“뭐, 그렇지.”

어차피 피스메이커로서는 다른 길이 없었다.

애초에 그가 50층의 휴양지에 몸을 숨긴 건, 자유시장 길드장인 슬레이버를 감시하고, 정보를 모으기 위함이었다.

‘슬레이버의 정보를 가로채는 것.’

슬레이버가 눈치챘는지는 모르지만, 피스메이커는 슬레이버의 귀한 정보를 상당 부분 가로챘다.

뿐만 아니라, 이 ‘가면을 쓴 조력자’ 또한 다른 채널로 정보를 모아서 공유했다.

그리고 오늘, 감시하고 있던 자유시장 길드장이 강은혁과 손을 잡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걸 본 순간, 피스메이커는 확신했다.

‘놈들이 100층탑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를 찾았다.’

길드연합국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초창기 무렵.

당시 피스메이커는 슬레이버와 같은 길드장으로서 서로의 이상과 목적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슬레이버는 피스메이커를 미친놈으로 여겼고, 피스메이커는 슬레이버를 이용하기 좋은 놈으로 여겼다.

‘슬레이버가 100층탑의 출입구를 찾아서 지구와 자유상거래를 시도하려 할 때, 지구로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이었고, 지금이 기회다.

또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

가면 쓴 여인은 설득을 멈췄다.

타탓!

그녀는 파도를 빠르게 박차더니 어디론가 떠났다.

“후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양이군.”

피스메이커는 가면 쓴 여인이 부르면 다시 올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잠시 떠나도록 했다.

가면 쓴 여인은 피스메이커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녀는 피스메이커가 대량 학살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스메이커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가기 전까지 나를 무조건 도와줘.’

피스메이커는 노골적으로 부탁했고, 그녀는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오늘만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오늘 모든 게 결정된다.

“그럼 해신의 신전 입구로 가볼까.”

피스메이커는 해신의 신전 입구가 있는 섬과, 그 주변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소용돌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소용돌이에 바이러스를 심으면, 훨씬 더 빠르게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원하는 수준의 오염이 빨리 이뤄질 것이다.

피스메이커가 발걸음을 옮긴 순간.

콰콰쾅!!!

3톤짜리 황금 덩어리가 바다 밑에서 위로 치고 올라왔다.

“으음!”

[바이러스 지배]의 힘으로 바이러스 오염수를 부드러운 장막으로 만들어 충격을 흡수했다.

휘익!

그리고 나이에 비해 날렵한 자세로 물 위에 섰다.

위이잉.

황금 덩어리의 표면이 열리고, 슬레이버, 은혁, 염훈이 올라왔다.

셋 다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망할 잠수병 같으니.”

염훈이 [광역 축복]을 걸어줬지만, 심해에서 수면 위까지 고속으로 올라오느라 잠수병이 생겼다.

슬레이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피스메이커.”

“오랜만일세, 슬레이버.”

“평화 협정은 끝인가?”

슬레이버가 빈정거리며 물었다.

피스메이커가 50층에 올라올 때, 두 사람은 서로 싸우지 않기로, 암묵의 약조를 한 바가 있었다.

운명치에 휘둘리는 그들로서는 서로 싸우지 않는 편이 이득이었다.

실력이 호각인 두 사람인데 한쪽이 섣불리 공격을 감행했다가 실패하면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

“미안하지만 평화 협정을 깨진 않았다네.”

“고의적인 오염 행위는 적대적인 도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 바다는 누구의 것도 아닌 공해로 인정되잖나? 50층 해양 도시의 앞바다를 오염시키는 거라면 모를까.”

“하지만 54층부터 53, 52, 51, 50…… 하는 식으로 서서히 전부 오염시킬 것 아닌가?”

“물론.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바다 전체는 [바이러스의 바다]가 되어서, 나는 ‘바이러스의 성좌’급으로 강해지겠지.”

“좋은 계획이군. 우리에게 들통나지만 않았다면 말이야.”

슬레이버는 혀를 차며 말했다.

“나는 자네와는 협력의 여지가 더 있으리라 믿었는데.”

“100층탑 밖으로 나가는 것 말이지?”

슬레이버가 비밀을 대놓고 말하자, 피스메이커가 히죽 웃었다.

“자네가 가진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자네도 다 눈치채고 있었군.”

“뭐, 이전에 대화도 많이 나눈 사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