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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23화 (323/434)

323화 : 피스메이커의 절망

“와우.”

시간의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왔고, 은혁은 시스템을 해킹하는 혼돈술사 직업 스킬들의 오묘함을 음미했다.

그동안 피스메이커는 다시 체력을 회복하고, 흐릿한 바이러스 덩어리로 형상을 갖췄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바이러스는 다시 증식한다!

슈르르르르르륵.

피스메이커의 몸은 이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개의 덩어리가 원자 구름처럼 뭉쳐 떠다니는 형태가 되었다.

마치 은혁의 칼라미티 해머에 대한 저항력을 갖춘 듯했다.

-빌의 핵 공격이건, 너의 재난을 흡수하는 망치건, 이젠 안 통한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정말 끈질기군요. 죽는 게 싫긴 싫은가 봅니다?”

-뭐라고?

“당신의 약점 말입니다. ‘피스메이커는 의외로 죽는 걸 싫어한다.’라는 거.”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예 모든 희망을 산산이 부숴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만들자고. 그리고 이렇게 말할 생각입니다. ‘당신은 죽일 가치도 없습니다.’라고.”

은혁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타앗!

표면이 녹은 최종벽으로 [도약]했다.

-어리석은 놈! 내 주변 공간의 현실은 이미 내 바이러스에 잠식되었다!

즉, 은혁은 똑바로 움직일 수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은혁은 새로 얻은 스킬을 썼다.

“혼돈술사 스킬 [시스템 폭주]!”

파앗!!

이미 오염된 현실에 [시스템 폭주]를 일으키자, 오염이 파지직거리며 튀었다.

겨우 몇 초 남짓이지만 은혁에게는 몇 초면 충분했다.

은혁은 최종벽 주변을 향해 추가로 스킬을 뿌렸다.

“혼돈술사 스킬 [시스템 보안 점검]!”

-시스템 보안 점검 개시!

-손상된 시스템 확인 중!

피스메이커가 [시스템 바이러스 생성] 등으로 강제로 훼손한 시스템 규칙들이, 최종벽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시스템 복구 프로토콜을 진행합니다!

-불량 섹터를 복구합니다!

-불량 바이러스를 제거합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무형의 힘이 손상을 수복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피스메이커의 몸은 몰락한 지고의 위상이며, 동시에 시스템 바이러스 그 자체화되어 있었다.

즉, 시스템 회복 절차는 아예 피스메이커의 존재를 지우는 것이었다.

파지지지직!

투듀듀듀듀듀듀……!

피스메이커의 바이러스 형태의 몸이 기름에 튀겨지듯 튀었다.

화악!

견디다 못한 피스메이커는 자신의 몸에 [고속 증식] 스킬을 써서 크게 부풀렸다.

그런 뒤 몸 일부를 던져서 시스템 복구 프로토콜의 미끼로 던졌다.

그리고 몸의 절반은 비상 출입구로 향했다.

비상 출입구의 보안을 깨고 100층탑 바깥으로 탈출하려는 도박이다.

물론, 절대 열쇠가 없으니 쉽지 않을 터.

무엇보다 방해자들이 있으므로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도박이었다.

“[홀리 라이트닝]!”

“[원자 분해]!”

범위가 압축된 강력한 공격이 날아들었다.

빠지지직!

퍼서서서석……!

피스메이커는 염훈과 빌의 공격에 적중당했고, 이제 옴짝달싹 못 했다.

슈르르르르륵.

철썩. 철썩.

바이러스 형태가 해제되고, 피스메이커와 페넬레시아의 육체로 되돌아왔다.

“으으…….”

“우으음…….”

피스메이커는 하반신을 잃은 노인의 모습으로, 페넬레시아 또한 심하게 부상당한 여자의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크윽, 크어어억.”

피스메이커는 부들거리며 비상 출입구에 손을 댔다.

그리고 떼를 쓰듯 말했다.

“어, 어머니이이이……!”

피스메이커가, 의식을 잃은 페넬레시아에게 요구했다.

“궁극 스킬 좀 써줘어어어. 나 지금 주거어…….”

늙은 외모의 피스메이커가, 그보다는 젊은 페넬레시아에게 떼를 썼다.

페넬레시아는 힘겹게 입술을 달싹였다.

“[절대적 강제 평화의 영역].”

파앗!

반경 100m에 절대적인 평화의 공간이 생성되었다.

“크크크. 크하하하!”

피스메이커가 웃으며 [회복의 바이러스]로 빠르게 몸을 회복했다.

“5분간 강제로 평화가 찾아왔다! 흐하하하! 내가 이겼다!!”

피스메이커는 연신 웃었다.

파지지직.

시스템 회복의 파동은 [절대적 강제 평화의 영역]에 부딪혀 더는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피스메이커는 비상 출입구로 몸을 날렸다.

“바본가? 어차피 절대 열쇠가 없으면 열 수 없……!”

염훈이 비웃으려는 순간.

슈르르륵.

피스메이커의 한쪽 손이 열쇠 형상으로 변했다.

체내의 시스템 바이러스는 대부분 소멸했지만, 현실 조작 바이러스의 일부를 손끝에 숨겨두었다.

그 힘으로 손을 열쇠 모양으로 바꾼 것이다.

“흐읍!”

철컥!

피스메이커의 손이 열쇠 구멍에 들어갔다.

-현실 왜곡 바이러스 활성화!

-리바이어던의 비밀 해킹 프로토콜 자동 실행!

-비상 출입구의 보안을 해제하는 중……!

-보안 해제까지 남은 시간 : 59초…….

-보안 해제까지 남은 시간 : 58초…….

-보안 해제까지 남은 시간 : 57초…….

“크하하하! 해냈다!”

피스메이커는 희열에 차서 외쳤다.

은혁이 피스메이커를 통해 원하는 걸 얻었듯이, 피스메이커 또한 은혁의 공격에 당하면서 많은 걸 얻었다.

‘바이러스의 핵심은 [변이]다.’

피스메이커는 이번 싸움에서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각 죽음의 위기는 다양했으며, 그 환경도 다양했다.

그때마다 매우 효율적인 변이를 일으켰고, 특히 해신의 트라이던트와 칼라미티 해머의 공격에 당할 때와 시스템 복구 프로토콜에 휘말렸을 때 큰 진전을 보였다.

덕분에 피스메이커가 흡수한 리바이어던의 기능이 깨어났다.

“흐하하하! 인공 성좌 리바이어던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영악한 놈이었다! 그놈도 생존하고 싶었던 거야! 크하하하!!”

피스메이커는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리바이어던은 시스템에 의해 자기 존재가 소멸당할 위기가 오면, 비상 탈출구를 자신이 사용할 준비를 미리 갖추고 있었다.

리바이어던의 내면에 꼭꼭 숨겨진 최후의 비상 탈출 프로그램이었기에, 리바이어던 자신도 극한의 위기 때만 그 기억을 떠올리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피스메이커는 죽음의 위기를 여러 차례 겪으며 그 프로그램을 각성했다.

“놈이 탈출한다!”

“막아!”

퍼억!

콰쾅!

빌과 염훈은 공격을 가했지만.

“하하하! [절대적 강제 평화의 영역]이다! 앞으로 몇 분간은 내게 피해를 줄 수 없다!”

-[절대적 강제 평화의 영역]의 남은 시간 : 3분 59초.

-[절대적 강제 평화의 영역]의 남은 시간 : 3분 58초.

-[절대적 강제 평화의 영역]의 남은 시간 : 3분 57초.

“이런!”

염훈은 경악했고, 빌은 사이오닉 스킬로 제한 시간을 강제로 줄이려 했다.

“[염상 동조 : 제한 시간 감소]!”

파앗!

-[절대적 강제 평화의 영역]의 남은 시간이 급감합니다!

-남은 시간 : 1분 1초.

“큭. 여기까진가.”

빌이 화를 냈다.

“야! 은혁아! 넌 뭐 하냐!”

염훈이 화를 내자, 은혁은 여태 마시던 마나 포션의 빈 병을 내던졌다.

“이건 처음 하는 거라 마력이 많이 필요할 거 같아서.”

은혁은 느릿느릿 출입구로 다가가서 청염백광단검을 꺼냈다.

피스메이커는 흠칫했다.

“뭘 하려는 거지?”

스윽.

은혁은 자기 손바닥을 그어서 피를 흘렸다.

“[피의 표식].”

비상 출입구에 핏자국을 남기는 혈인술사 스킬.

“방해하려는 건가?”

피스메이커가 경계하듯 말했다.

“네.”

은혁은 대답하며 사이오닉 런처를 느릿느릿 꺼냈다.

그리고 퓨전 스킬을 준비했다.

“혼돈술사 스킬 [시스템 해킹] +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 [사이오닉 필드] + 도적 스킬 [소매치기].”

-히든 이펙트 발동!

“3중 퓨전 스킬 [관리국 자산 추방]! 그 퓨전 스킬을 사이오닉 런처에 담아 쏜다!!”

기유우우우웅……!!

사이오닉 런처에 퓨전 스킬이 장전되는가 싶더니.

번쩍!!!

투콰앙!!!

스킬이 발사되었다.

비상 출입구는 통째로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 어딘가가 어딘지는 오직 은혁만이 알 수 있었다.

“뭐……?”

비상 출입구에 손을 꽂은 채, 열심히 보안을 해제하던 피스메이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넋이 나갔다.

“와.”

“음.”

염훈과 빌은 감탄했다.

‘설마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은.’

그만큼 은혁이 보여준 스킬의 힘은 전례가 없는 엄청난 권능이었다.

“어떻습니까, 피스메이커?”

은혁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아……?”

“최악의 상황에 처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은혁은, 잔혹함을 감추지 않는 적 앞에서는 자신도 잔혹함을 감추지 않는 자였다.

“당신이 지닌 모든 수단은 파훼되었고, 당신이 추구하던 모든 목표는 최후의 순간에 실패했습니다.”

은혁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당신을 도와줄 사람은 없고, 적들뿐이군요. 이 시점에서 질문입니다. 아직도 살고 싶습니까?”

은혁은 피스메이커의 약점을 언어의 칼로 찔러댔다.

“인류 멸망으로 절대적인 평화를 이룩한다느니 뭐라느니 하셨으면서 정작 자신은 죽기 싫어할 때부터 모순은 극명히 드러났던 거 아닙니까? 모순 가득한 이상을 품은 자는 실패하기 마련이지요.”

“으……아아…….”

피스메이커는 꿈틀거렸다.

은혁은 바닥에 널브러진 고깃덩어리를 쿡쿡 찔러보듯 해신의 트라이던트로 찔렀다.

“자, 어서 대답해 주시죠. 회생 불가능한 실패를 겪으신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살고 싶습니까?”

“…….”

피스메이커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야, 은혁아. 죽은 거 같은데?”

염훈이 묻자 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멈춘 모양이네.”

“이런! 그럼 내가 회복 스킬을.”

“내가 할게.”

은혁은 피스메이커를 똑바로 눕게 하더니, [스파이럴] 스킬로 심장을 뒤틀었다 다시 펼쳤다.

덜컥!

털썩!

심장과 주변 근육의 시공간을 뒤틀었다 펴는 방식의 심폐소생술이었다.

“커억!”

피스메이커는 다시 숨을 쉬었다.

몇 번 숨을 몰아쉬고 천장을 바라보더니.

“으어아아아아……!”

짐승처럼 절규했다.

현실을 인식할 때마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더 괴로운 건, 그럼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건데,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죽겠다! 차라리 죽겠다!!”

피스메이커는 손끝을 뾰족하게 모아 목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찌직!

찌지지직!

하지만 [회복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상처를 회복시켰다.

“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

은혁은 웃긴 걸 본 사람처럼 웃었다.

“참으로 솔직하지 못하군요! [회복의 바이러스]를 해제하지 않고서 무슨 자결을 하겠다는 겁니까?”

은혁이 비웃자 피스메이커는 [회복의 바이러스]를 해제하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왜냐하면 바이러스의 제1 목표는, 증식과 생존이기 때문이다.

[회복의 바이러스]는 피스메이커의 자유의지를 뛰어넘어, 그 어느 때보다 생존 본능을 불태우고 있었다.

마치, 강은혁이라는 위험 존재가 있고, 그 존재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더욱 노력해서 강해지려는 것처럼.

“나르으으을!! 죽여다오오오!!”

피스메이커가 발작하듯 몸을 뒤틀며 발광했다.

피스메이커는 이번에도 무의식중에 자기 몸의 바이러스를 진화시켰다.

이번에 만들어진 바이러스는 한없이 허무한 것이었다.

바로, 은혁의 생명을 위협해서 그의 손에 죽을 정도의 강력함을 주는 바이러스였다.

피스메이커와 그를 잠식한 바이러스는, 은혁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생명에 위협을 가해서 역으로 은혁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수준만이 가능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브루트 포스]!”

하지만 은혁은 새로 얻은 시스템을 해킹하는 혼돈술사의 스킬 중 하나인 [브루트 포스]로 피스메이커가 걸어 둔 금제를 강제로 부쉈다.

“[드래곤 파워드 아머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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