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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25화 (325/434)

325화 : 빌과의 대결 약속

염훈의 말리는 말에,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 도전할 수도 있지만, 지금이 가장 [도전]하기 좋은 시점이니까.”

은혁은 새로운 직업을 얻거나, 직업 등급 상승을 한 직후가 가장 강했다.

마치 꿀잠을 자고 일어난 직후에 머리가 맑은 것처럼, 스탯 스노우볼링 효과가 가장 청명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빌이 지금 피곤해하는 것은 연기가 아니다.

“강은혁. 날 너무 깔보는군. 내가 길드연합국 통합 랭킹 3위인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염훈은 깜짝 놀랐다.

“엥?! 저 사람이 3위였어?”

“음.”

길드 연합국에 한정했을 때, 길드연합국 통합 랭킹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는 행복 길드장 해피.

2위는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

3위는 연구 길드장 빌.

4위는 상승 길드장 어센션.

5위는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

6위는 평화 길드장 피스메이커.

7위는 자유시장 길드장 슬레이버.

위의 순위는 길드 대전 당시는 물론, 지금도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3위는 큰 변동이 없었다.

압도적인 강함의 해피.

늘 새롭고 기상천외한 면모를 보이는 올마스크.

위의 둘은 1위와 2위를 번갈아 가며 차지한다.

반면에 길드연합국 마도 과학의 정점이자 실세인 빌의 3위 자리는 크게 바뀐 적이 없다.

빌은 그 정도로 강했다.

“설마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한 저스티스, 슬레이버, 그리고 피스메이커의 전투력은 확실히 나보다 낮다.”

마치, ‘그들은 칠천왕 중 최약체지.’ 하는 말투로 말했다.

“하긴 뭐, 네가 상대방의 강함 수준을 보고 싸움을 거는 놈은 아니었지.”

“제 [도전]을 받아주시는 겁니까?”

“아니. [인공 운명석 생성].”

스르륵.

빌은 자신의 모든 운명치를 인공 운명석으로 만들었다.

지금의 빌은 자신의 운명치를 인공 운명석으로, 인공 운명석을 운명치로 전환이 가능했다.

“[마립자화]. [암호화].”

스스슥.

인공 운명석을 아주 작은 마력 입자인 마립자로 전환했다.

그리고 각 마립자에는 암호를 걸어두었다.

그런 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립자를 사방으로 흩뜨렸다.

‘원자를 지배하는 사이오닉 메이지’인 빌만이 가능한 신기였다.

“내가 죽으면 이 마립자는 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즉각 양자 전송된다. 그리고 네게 패배하지 않은 나머지 길드장, 즉, 올마스터, 해피, 어센션에게 양자 통신으로 그 정보가 전송된다.”

빌은 씨익 웃었다.

실제로 빌이 그 셋에게 정보 전송이 가능한 건지, 허세인 건지는 은혁도 알 수 없었다.

빌의 설명은 이어졌다.

“그럼 그 셋 중 누군가는, 내 모든 힘과 스킬, 운명치를 획득할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겠지? 어센션은 심연에 있으니, 아마 해피나 올마스크가 먹을 거 같은데, 그렇게 되면 너도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는 것일 터.”

‘흠. 이렇게 싸움을 거절하다니.’

빌은 조건부로 마립자를 생성, 뿌린 것이기에, 당장 약해진 것이 아니다.

양자 도약은 광속보다 빨라서, 즉시 힘을 회복하는 게 가능하므로.

‘그냥 확 공격할 수도 없고.’

무작정 힘으로 빌을 죽이려 해봤자 성공률은 낮다.

더군다나 성공해 버리면 더 문제다.

연구 길드장인 빌은 인공 플레이어인 레나를 만들 정도다.

즉, 자기 자신이 죽을 경우에 대비한 복제 몸 또한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해도 지나치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영원히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기습해서는 안 된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할 이유를 만들어줘야겠군.’

“당신은 왜 길드장이 된 겁니까?”

“무슨 의미지?”

“7대 길드의 모든 길드장은 각자 이상을 품고 있지요. 당신이 추구하는 이상은 무엇입니까?”

“말하고 싶지 않군. 이만 떠나겠다.”

빌이 몸을 돌린 순간.

“저는 당신의 과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봤는데도 이해가 안 가서 묻는 겁니다.”

멈칫.

빌은 다시 몸을 돌렸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지?”

“[블러드 데이터 칩 생성].”

슈르륵.

은혁은 손끝에서 작고 붉은 데이터칩을 만들었다.

“이 데이터칩 안에는 제가 예전에 31층 히든 미션에서 겪은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100층탑 강림 사건’과 관련된 기억이지요.”

“……!”

“네. 당신이 대한민국 태백산에 위치한 미래 전략 연구소라는 기관에서, 연구복 입고 활동하던 기억이었습니다.”

“으음……!!”

빌은 자기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1999년 8월 31일의 기억.

지금의 빌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적이던 시절의 기억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초대장을 이용해 100층탑에 처음 들어온 1기 멤버라는 사실도 알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다 압니다.”

은혁은 빌이 지닌 비밀의 내용을 전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빌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상당 부분 엿본 건 사실이다.

‘일단 관심은 제대로 끌었군.’

은혁은 빌의 답변을 기다렸다.

여기서 더 밀어붙이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긴 곤란하겠는데…….”

빌은 중얼거리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은혁을 돌아봤다.

“좋다, 강은혁. 조건부로 [도전]을 받아들이겠다.”

“그 조건이란?”

“일단 당장은 [도전]을 철회하라. 그리고 네가 말한 과거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자. 네가 궁금해하는 내 과거사와도 관련이 있는 부분이니 손해는 아닐 것이다.”

“좋습니다.”

“단, 그 이야기는 민감한 이야기고, 관리국의 입김이 닿는 이곳에서 하긴 어렵군.”

놀라울 정도로 관리국이 잠잠히 있었지만, 그것은 이곳을 관리하는 인공 성좌 리바이어던 덕분이다.

실제로는 리바이어던의 정신이 피스메이커에게 흡수되는 등, 보통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게 아니지만, 정작 관리국의 감시망에는 ‘리바이어던 : 정상 가동 중’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방금 피스메이커로부터 풀려나 복구 중 메시지가 뜨기 시작한 순간부터, 관리국은 이상을 감지했을 터.

이제야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관리국 요원을 보내려 할 것이다.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군요.”

“내 연구소로 가겠나?”

10층에 위치한 연구소다.

일전에 레나를 [그림자 감옥]에 가둔 상태로 빌과 협상하러 간 적이 있었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지금은 조금 곤란할 거 같군. 솔직히 피곤하기도 하고.”

빌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피차 정리하고 정비할 것들이 좀 있을 거 같군. 그러니 내일 낮 1시 반 무렵에 보면 어떨까?”

빌은 물 흐르듯 말했지만, 사실은 이 부분이 은혁에게 있어서 중대한 기로였다.

‘어떻게 한다?’

은혁에게는 선택지가 A와 B가 있었다.

A. 즉각 공격한다.

B. 빌의 제안을 따른다.

A를 고르면 빌이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건 말건 바로 공격하는 게 되어 버린다.

[도전] 권한은 그 도전을 거는 쪽인 은혁에게 있었고, 빌의 마음이 실제로 꺾이면 은혁의 승리로 인정되므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해신의 트라이던트와 [시스템 해킹] 스킬을 이용하면 빌의 부활을 막는 게 가능할지도?’

다만 아직 불안정하다.

상식적으로 B를 고르는 게 낫다.

‘하지만 그 경우에는 빌이 회복을 할 시간을 벌게 된다. 그리고 나와 싸울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빌이 지치고 예상하지 못한 지금 [도전]을 한 의미가 완전히 퇴색해 버린다.

‘어떻게 한다?’

고민을 오래 할 수도 없다.

부자연스러우면 빌이 도리어 기습적인 역공을 해올 수도 있다.

‘해신의 트라이던트 고유 스킬 [스파이럴] + 사이오닉 듀얼 블레이더 스킬 [텔레파시]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정신과 시간의 텔레파시].’

파앗!

퓨전 스킬의 힘으로, 은혁과 염훈은 조금 더 긴 시간 동안 [텔레파시]를 나눌 수 있었다.

‘어? 갑자기 시간이 느려졌어?’

‘우리가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동안만 느려졌어.’

‘무슨 작전이라도?’

‘너한테서 자문 좀 구하려고.’

은혁은 염훈에게 두 선택지를 제시하고 질문했다.

선택지를 본 염훈은 즉시 B라고 답했다.

‘왜?’

‘감이야.’

‘감?’

‘응. 감. 설명은 잘 못 하겠는데. 으음. 일단 여기서는 물러나는 게 답이라는 느낌이 들어.’

염훈이 나름 확신을 담아 말했다.

더 묻고 싶었지만 [정신과 시간의 텔레파시]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좋아. 알았다.’

은혁은 자체 없이 스킬을 해제한 뒤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의 제안대로 하죠.”

은혁은 [도전]을 철회했다.

-도전자와 길드장의 합의에 의해, [도전]이 임시 보류되었습니다!

“고맙군. [도전]을 신청했으니, 무작정 내게 공격을 퍼부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와.”

“왜?”

“당신에게서 고맙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 거 같군요.”

“그야 네가 민폐 끼친 게 더 많아서 그래.”

빌은 그렇게 말하더니, 반쯤 죽어가는 피스메이커와 페넬레시아를 수습하려 했다.

“아, 그 두 사람은 저희가 회수하겠습니다.”

은혁이 얼른 말했다.

어쩌면 빌이, 피스메이커와 페넬레시아의 시체를 이용해서 생체 병기 같은 걸 만들 가능성도 있었으므로.

“흠, 그러든가.”

빌은 그 말을 마친 뒤, [퀀텀 리프] 스킬로 단숨에 사라졌다.

“자, 염훈. 두 사람 응급 처치 해줘. 그리고 5층 길드연합국으로 돌아가서 저스티스와 워잭에게 넘기자.”

“좋아.”

두 사람은 떠날 준비를 했다.

그 순간.

-전 관리국 대사 이스트의 [텔레파시] 스킬의 신청이 있습니다!

‘흠.’

이스트 대사는 재판에서 물 먹은 뒤, 대사 자리에서 짤렸다.

이스트가 떠나기 직전 은혁과 이스트는 비밀 협정을 맺었고, 이스트가 은혁에게 비밀 정보를 전해주기로 했었다.

‘문책을 받으러 관리국 본부로 떠났다고 했을 때 내심 죽었겠거니 했는데 안 죽고 살아 있는 모양이네.’

은혁은 [텔레파시] 스킬을 발동했다.

단, 발동하면서 보안을 위해, 새로 얻은 ‘시스템을 해킹하는 혼돈술사’ 스킬인 [통신 보안] 스킬을 썼다.

해킹과 보안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민감한 대화를 할 때도 좋고 엿들을 때도 좋았다.

반대편의 이스트가 은혁의 정신을 향해 외쳤다.

‘강은혁 플레이어! 혹시 지금 54층의 히든 구역에 들어가 있습니까?’

‘네. 그런데요.’

‘당장 거기서 도망치십쇼!’

‘무슨 일입니까?’

‘그건 오히려 내가 묻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요! 관리국 요원이 100명도 넘게 급파되었습니다!’

‘음. 안 그래도 튈 차례였는데 잘 됐군요. 하여간 고맙습니다.’

‘고맙다면 나중에 내가 도와달라고 할 때도 도와주면 됩니다. 그럼.’

‘아, 잠시만요.’

‘할 말이라도?’

‘[메모리 마인 생성].’

‘아?’

-이스트의 기억 중추에, 보안용 지뢰가 설치되었습니다!

-오늘의 대화를 유출하려 하는 경우, 자동으로 기억 중추의 일부가 폭발합니다!

‘이, 이런 미친?!’

‘제 안전을 위해서 당신의 기억 중추에 작은 보안 장치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이스트 대사님.’

‘보안 장치라니! 내가 배신해서 이 대화를 유출할까 봐 폭탄을 설치한 거잖습니까!’

‘실제 폭탄은 아닙니다. 당신이 배신하고 떠벌리지만 않으면 안전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야이……!!’

뚜둑.

은혁은 얼른 [텔레파시]를 끊었다.

“염훈. 네 생각이 맞았다.”

“어?”

“빨리 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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