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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26화 (326/434)

326화 : 빌과의 대결 준비 (1)

은혁은 내심 오싹했다.

만약 은혁이 빌과 싸우는 걸 택했다면?

한창 빌과 싸우고 있는데 관리국 요원 100명과 마주했을 것이다.

다행히 염훈의 감을 믿고 선택해서 도망칠 준비를 다 했다.

“그럼 가볼까!”

은혁은 [그림자 터널]을 이용해 도망치면서, 곳곳에 [악성 코드 생성]과 [흔적 편집] 스킬을 썼다.

관리국 요원들이 권능으로 이곳에 남아 있던 자들의 흔적을 역추적하려고 하면, 은혁이 남긴 가짜 정보나, 혼란을 유발하는 효과에 휘둘리게 될 터였다.

‘이제 나는 진짜 사기 캐릭터네.’

100층탑의 플레이어에게 있어 관리국과 시스템은 절대적 존재다.

하지만 지금의 은혁은 관리국의 통제에 어느 정도 저항하고, 시스템을 조작하는 게 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 * *

100층탑 중앙 광장.

다양한 게시판이 있는 이곳에, 연구 길드의 공지사항이 걸렸다.

-연구 길드장 빌은 강은혁의 [도전] 신청을 받아들였다. 10층에서 대결할 예정이므로, [도전]이 끝날 때까지는 함부로 10층에 오지 말기를 권한다.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렸다.

“진짜 싸우나 보네?”

“겁나 살벌하게 싸울 듯.”

“누가 이길까?”

“그야…….”

대부분 플레이어들은 쉽사리 단정 짓지 못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강은혁은 100층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연구 길드장 빌은 7대 길드장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다.

길드 대전 때는 원자 폭발 관련 스킬을 난사하며 싸운 1인 전략 병기였는데, 막상 길드 대전이 끝나자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조용히 지냈다.

스스로를 인위적으로 봉인하지도, 전면에 나서 깽판을 치지도 않고 살아왔기에 여러 플레이어들의 경외를 받아왔다.

그런 빌과 강은혁이 일대일로 대결을 벌인다.

“하여간 내일 오후에 붙는다고 하니까 그때까진 기다리자고.”

“그나저나 강은혁이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때, 하얀 양복을 입은 청년이 슬쩍 다가왔다.

블랙 마켓 소속의 쥐 인간이면서, 동시에 밤말 신문의 직원이었다.

“그거라면 이 밤말 신문 특집호를 읽어 보세요!”

“엥?”

“강은혁이 꺾은 부길드장과 길드장에 대한 모든 기록이 적혀 있답니다!”

“호오.”

많은 이들이 비싼 돈을 내고 밤말 신문 특집호를 구매했다.

강은혁의 투쟁 기록이 적혀 있었다.

놀랍게도 별다른 미화는 없었다.

“허, 이렇게 보니 강은혁 이 인간은 들어오자마자 줄창 싸움만 했구만?”

“그러게요. 보통은 탑 오르기만 해도 벅찬데, 이 인간은 오르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올랐나 봐요.”

“이런 독종이랑 빌 길드장이랑 싸우는 건가.”

“크으, 싸우는 장면을 보고 싶은데, 연구 길드 내부에서 싸운다고 하니 볼 수가 없네.”

그러자 하얀 양복을 입은 직원이 또다시 다가왔다.

“중계 시간도 적혀 있습니다!”

“엥? 둘이 싸우는 걸 중계한다고요?”

“그렇습니다. 역대급 싸움이니까요.”

실제로 역사적인 59층 공략 장면이나 60층에서의 참사 같은 경우 생중계되기도 했다.

“밤말 신문 중계 방송팀이 길드연합국 방송국과 연계하여, 광장 하늘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합니다!”

웅성웅성……!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밤말 신문 소속 직원들이 이렇게 분위기를 띄우는 이유는 자명했다.

‘내일 강은혁이 이기면, 그가 곧 길드연합국의 지배자다.’

길드연합국 헌법에 의하면, 길드장 4인을 꺾은 경우 ‘임시’ 통합길드장이 된다고 나와 있는데, 다른 길드장 3인인 어센션, 해피, 올마스크는 거취조차 불분명하므로 사실상 정통 통합길드장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라는 사실을 일반 플레이어들의 무의식 속에 깔아두는 작업인 셈이다.

밤말 신문 건물 꼭대기에 있는 마이크와 쥐 떼 두목은 조용히 이런 분위기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눴다.

“허참. 언론 장악은 무섭군.”

“그러게 말이야.”

불패불굴 길드 밑에 들어가서 여론을 조성 중인 당사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 * *

한편, 은혁과 염훈은, 정의 길드의 길드장실에서 저스티스와 대화 중이었다.

“설마 피스메이커는 그렇다 쳐도 페넬레시아까지 그럴 줄이야.”

피스메이커와 페넬레시아는 각각 정의 길드 본부의 지하와 평화의 감옥에 나누어 가두었다.

두 사람 모두 의식불명 상태였는데, 일부러 응급처치는 최소한으로만 받게 해뒀다.

언제 부활해서 돌발 행동을 저지를지 몰랐으므로.

당분간 두 사람은 마력을 제한하는 구속구를 장착해야 하며, 정의 길드원들이 상태를 관리할 예정이었다.

“웃기는 일이지.”

저스티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대량 학살을 일으킬 뻔한 피스메이커는 비교적 편하게 정의 길드 본부에 갇히고, 무고한 살인을 한 건도 저지르지 않은 페넬레시아가 오히려 평화의 감옥에 갇혔으므로.

은혁이 이어서 말했다.

“피스메이커가 살인하며 날뛴 건 길드연합국이 아니라 50층~54층의 스테이지였습니다. 반면에 페넬레시아는 한 건의 살인도 안 저질렀지만, 길드연합국의 귀한 내부 정보를 악의적으로 이용될 줄 알면서 고의적으로 피스메이커에게 팔아넘겼다는 죄가 있지요.”

그래서 오히려 페넬레시아만 감옥에 갇히고 피스메이커는 감옥에는 안 갇히게 된 것이다.

“거, 이상하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됩니까?”

염훈이 저스티스에게 물었다.

“당분간 골치 아픈 일은 없을 거라고 본다. 듣자하니 강은혁에게 몸과 정신이 모두 제대로 털렸다던데?”

“그건 그렇죠.”

“어차피 피스메이커와 페넬레시아 모두 의식불명 상태이니…… 당분간 괜찮을 거다.”

저스티스는 정리하듯 말했다.

은혁은 피로한 듯 하품을 하더니, 한 가지를 질문했다.

“50층의 해안 도시 상태는 어떻답니까?”

“아까 워잭을 보내서 슬레이버를 돕게 했다. 바이러스 오염이 걱정되었는데, 피스메이커가 네게 패배하고 의식불명이라 그런지 더 이상 확산은 안 한다더군. 슬레이버가 잘 처리할 거다.”

그 말에 은혁은 피식 웃었다.

슬레이버는 해안 도시의 시장 NPC 자격을 얻어서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정말로 이득을 본 이들은 해안 도시의 시민들이다.

‘플레이어가 NPC의 정체성을 빌려 쓰는 건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크지.’

“캬, 정말 훌륭한 어른이네.”

염훈은 슬레이버를 칭찬했다.

“수염이 퍼런색이고 자유시장 길드 소속이라서 수상쩍어 보였는데, 의외로 상식이랑 책임감을 갖춘 사람이었네? 안 그러냐, 은혁아?”

“뭐, 그렇지.”

사실, 슬레이버에게도 몇 가지 오점은 있었다.

길드 대전 당시의 책임, 길드 대전 이후로는 탐욕스러운 부길드장인 테일러를 방치했다는 점 등등.

하지만 자유방임 원칙을 중시하는 길드인 것을 감안하면, 슬레이버는 썩 상식적이고 책임감 있는 길드장이었다.

저스티스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슬레이버는, 책임감이야말로 반드시 지켜야 할 값진 것임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야. 안 그런가?”

염훈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혁은 슬레이버의 책임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지, 하품을 한 번 더 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죠.”

귀찮은 피스메이커와 페넬레시아를 넘겼고, 50층~54층의 오염 문제도 걱정할 게 없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떠나려 한 순간.

“잠깐!”

저스티스가 막아섰다.

“소문에 의하면 빌과 싸운다던데.”

“네. 내일 오후에 싸웁니다.”

“하지 마라.”

“네?”

“그놈이랑은 싸우지 마.”

“왜요?”

“그놈은 길드연합국에 꼭 필요한 놈이니까.”

기존의 길드연합국은 거의 방임 국가에 가까웠고, 부길드장들이 즉흥적으로 다스려왔다.

다른 길드장들은 5층에 없거나, 아예 봉인되거나 했으므로.

그중에 단 한 명, 연구 길드장 빌만이 5층과 10층을 오가며 귀찮은 업무를 보곤 했다.

“워잭에게 들었는데, 그놈이 덜컥 죽어 버리면 가뜩이나 취약한 길드연합국 통치 구조가 모조리 마비될 수도 있다더군. 내가 잠든 사이 귀찮고 피곤한 일을 여럿 해결했다던데?”

“흠.”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안다. 결국 네가 빌을 빨리 꺾고 통합길드장이 되면 다 해결될 일이다~ 라는 거지?”

“대충은요. 이론상으로도 맞습니다.”

은혁은 저스티스, 슬레이버, 피스메이커를 꺾었다.

앞으로 1인만 더 꺾으면 길드장 7인 중 4인, 즉 과반수를 꺾는 게 된다.

그 경우, 길드연합국 헌법 제1조의 특례법의 5항 내용에 따라, 길드연합국 임시 통합길드장이 되는 게 가능하다.

“부길드장 7인은 이미 다 꺾었고, 길드장 7인 중 과반수인 4인을 꺾은 상태에서 길드연합국에 다른 길드장이 없다면? 그 경우 5항에 따라 임시 통합길드장이 될 수 있습니다.”

5항을 은혁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어? 그게 그렇게 되는 거임?”

염훈이 깜짝 놀라 물었다.

염훈이 예상한 통합길드장이 되는 그림은, 길드장 7인을 차근차근 전부 꺾는 것이었다.

그런데 통합길드장이 되는 미래가 의외로 가까웠다.

“현 상태의 길드연합국에서는 제 말이 맞습니다.”

은혁이 말했다.

“음. 패배를 너무 일찍 인정했나.”

정작 길드연합국 헌법을 손으로 적은 멤버 중 하나인 저스티스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은혁, 염훈은, 수혜자 입장이었음에도 그런 저스티스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길드연합국은 건국부터 현재까지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크흠! 하여간! 빌과 싸우는 건 좀 더 생각해보라고!”

“이미 [도전]을 했는걸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결정적으로?”

“제가 이길 확률이 더 높은 싸움인데, 이제 와서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죠.”

“야. 길드연합국의 안정성이 걱정된다니깐?”

“그보다 제 승리가 더 중요합니다.”

“허, 대놓고 말하네. 이 뻔뻔한 새끼. 하하하!”

저스티스는 웃더니.

슈콱!!!

예비 동작 없는 하이킥을 은혁의 목에 갈겼다.

콰쾅!!!

은혁은 [사이오닉 필드]를 펼쳐 막았다.

[사이오닉 필드]가 깨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지만.

슈우우우……!

은혁의 목과 저스티스의 발끝 사이의 미세한 공간에서 먼지 타는 연기만 날 뿐, 아무런 피해도 없었다.

“확실히…… 강하군.”

저스티스는 은혁이 오기 직전, 자신의 오른발에 [정의 부여 : 반드시 명중한다.]를 걸어뒀다.

상대방의 의지력보다 저스티스의 의지력이 높은 경우, 절대적으로 명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네. 저의 의지력 스탯이, 당신의 의지력 스탯보다 높습니다.”

“그런가.”

“저도 한 방 쳐도 되죠?”

“내가 먼저 쳤으니 할 수 없지. 와라.”

은혁은 [광풍돌진권] + [사이오닉 필드]를 검지만 이용해서 펼쳤다.

고착화하는 사이오닉 에너지와 뚫으며 돌진하는 무투가 스킬은 정반대였지만, ‘모든 직업의 가능성’을 지닌 은혁에게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히든 이펙트 발동!

“[사이오닉 러시]!”

퀴오오오오오오!!

지근거리에서 은혁이 손가락으로 스킬을 쓰며 돌진해왔다.

저스티스는 한 손을 크게 펼쳤다.

“[금령대수장].”

이름이 존재하는 스킬의 위력을 극단적으로 축소시키는 디버프형 방어 장법.

이론상 슬레이버의 [마이더스의 손]도 막아낼 수 있었다.

콰콰콰쾅!!!

굉음이 울려 퍼졌고, 저스티스는 한 발자국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다.

“큭.”

은혁은 깨진 손톱과 아픈 손가락을 부여잡으며 물러났다.

그 순간.

투툭.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저스티스 쪽에서 났다.

저스티스의 손바닥에 동전 크기의 상처가 있었고 피가 제법 많이 났다.

저스티스는 손바닥의 상처를 보며 혀를 찼다.

“쯧, 정말 강해졌군.”

“네. 그러네요.”

저스티스와 은혁의 공격 주고받기는 테스트였다.

“재판 직전까지만 해도, 너, 테일러, 염훈 셋이 힘을 합쳐야만 내게 위협적이었지.”

“네.”

“하지만 지금은, 너 혼자만으로도 내게 꽤 위협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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