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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29화 (329/434)

329화 : 아카데미와 미래 전략 연구소 (2)

빌을 100층탑 밖에서 본 적 있느냐는 은혁의 질문에, 아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뇨. 갑자기 그건 왜 묻습니까?”

“빌이, 아까 네가 말한 미래 전략 연구소의 연구원이었거든.”

“정말입니까? 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군요. 아카데미에 초대장이 남아돌 정도였으니, 그쪽 미래 전략 연구소에도 초대장이 여러 장 왔었나 보군요.”

“참고로 빌은 너와 같은 1기 참가자다. 네가 처음 100층탑 1층에 도달했을 때 빌도 그곳에 있었어.”

“으음.”

아벨은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1층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저는 누가 옆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빌 연구 길드장은 당시에 사교적이거나 남들 앞에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군. 다만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너희 아카데미와 미래 전략 연구소가 작전 내용까지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었다는 거지?”

“음? 그게 그렇게 되나요?”

“자폭 테러 같은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정보 공유가 안 되었다는 거지. 혹시 아카데미와 미래 전략 연구소는 교류는 하되, 서로 완전히 믿지는 않는 집단이었나?”

“그건 또 모르겠습니다. 말단이라.”

“아, 진짜 쓸모가 없네.”

“……그보다 이런 건 왜 묻는 겁니까?”

“첫째로, 100층탑의 비밀이 궁금하니까. 둘째로, 빌에 대한 약점이라도 혹시 알아낼 수 있을까 해서.”

아카데미와 미래 전략 연구소에 관한 이야기는, 위의 두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는 데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대화를 나눠봐야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라도 알아냈으니 다행인가.”

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어디 가세요?”

“조금 위층에 잠깐.”

* * *

31층의 대기실에는 플레이어들이 많이 있었다.

참가 인원이 많지 않을 때는 대기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진행자’와 미션을 진행할 수 있지만, 유난히 사람이 많았다.

“여기 왜 이리 사람이 많지?”

“이 층만 그런 건 아니야. 요즘 사람들이 엄청 빠르게 탑을 오르고 있어.”

“음, 그 이유는 아마도…….”

“불패불굴 길드 때문이겠지.”

불패불굴 길드, 특히 강은혁과 염훈.

이 두 사람은 가히 폭발적인 속도로 탑을 올랐는데, 단지 탑만 오르는 게 아니라 부길드장과 길드장을 차례로 꺾으면서 올랐다.

그 일대기는 최근 ‘밤말 신문’에서 연재 중이었다.

밤말 신문에는 은혁이 각 층을 공략하며 얻은 정보가 담긴 힌트가 적혀 있었다.

플레이어의 각 직업이나 플레이 성향에 맞춰 적힌 힌트라서 인기가 좋았다.

“밤말 신문을 읽으면 마치 고수한테 쩔 받는 기분이라니깐.”

“그러게. 강은혁은 마치 탑을 두 번은 오르락내리락 한 경험자처럼 글을 잘 쓴단 말이야?”

“맞아. 특히 31층의 대본집은 그 종류와 공략법이 꽤나 자세하게…….”

벌컥!

대기실의 문이 갑자기 열리고 진행자가 나타났다.

플레이어들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휴, 바쁘군요.”

진행자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다음 분들 어서 들어오십…….”

진행자는 손에 밤말 신문을 든 플레이어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통과.”

“엥?”

“답안지를 다들 들고 계시니 영 진행하는 맛이 없군요. 클리어 판정 내려드릴 테니 그냥 올라가시죠.”

진행자가 투덜거리자 밤말 신문을 든 플레이어들은 환호하며 게이트로 향했다.

바글거렸던 대기실이 어느새 텅 비었다.

“거참. 스포일러 당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다니.”

진행자는 대기실 구석의 그림자를 향해 투덜거렸다.

“안 그렇습니까, 강은혁 플레이어?”

“후후.”

은혁은 [은신] 상태로 숨어 있었다.

단둘이 진행자와 대화하고 싶었으므로.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관객이 아니라 플레이어니까요. 답을 미리 알아서라도 빠르게 클리어하고 다음 층에 갈 수 있다면, 그편을 택하는 것일 뿐.”

“흐흐. 일반 관객으로서는 빵점. 플레이어로서는 만점이다 이건가. 뭐, 좋습니다. 왜 돌아오신 겁니까?”

“눈치채셨을 텐데요. 다른 이들을 그냥 통과시킨 걸 보면.”

“역시. 지난번 히든 미션에 재도전할 생각이군요.”

진행자는 기대감과 곤혹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재도전이 가능한 히든 미션이지만, 반복하는 경우 난이도가 조금 어렵게 조정됩니다.”

너무 여러 번 반복 도전해서 정보를 우려먹는 것을 막는 조치인 것으로 보였다.

‘즉, 이 히든 미션에 담긴 정보는 진짜배기다.’

“따라오시지요.”

진행자는 대기실에 다른 플레이어가 없는 걸 확인한 뒤 문을 봉인했다.

그리고 저번처럼 허름한 대본 서고로 은혁을 안내한 뒤, 손가락을 딱 튕겼다.

<31층 히든 미션 : 100층탑 강림 사건 속으로 (난이도 강화됨)>

-목표 : 100층탑 강림 직전 사건의 현장으로 가서, 숨겨진 진실을 하나 이상 알아낼 것.

-성공 시 보너스 : 발견한 비밀만큼 레벨 1 상승.

-실패 시 패널티 : 심연으로 떨어짐.

-제한 시간 : 7분 30초.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지난번과 거의 같은데, 제한 시간이 딱 절반으로 줄었다.

그밖에도 히든 미션 버프와 아이템 보너스가 사라졌다.

“준비됐습니까?”

“물론!”

* * *

1999년 8월 31일 화요일.

태백산에 위치한 미래 전략 연구소의 지하실.

그곳에는 정체불명의 소장과 빌, 그리고 훗날 레나로 개조되는 한 여자 연구원이 있었다.

빌은 무척 졸린 듯, 의자를 여러 개 붙여 자고 있었고, 소장과 여자 연구원만 커다란 화면을 보며 서 있었다.

소장과 여자 연구원이 100층탑 강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

쿠당탕!

은혁이 환풍구를 부수며 당당히 떨어졌다.

“꺅?!”

“으음?!”

소장과 여자 연구원이 경악했고, 은혁은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소장님.”

“누, 누군가, 자네!”

은혁은 피식 웃었다.

이번에도 소장의 얼굴은 눈으로는 볼 수 있는데 기억에는 남지 않았다.

은혁은 관리자 인턴 자격증을 꺼냈다.

“시간이 없으니 장난은 이쯤 하죠. 관리자 자격을 갖고 왔습니다.”

“그렇군.”

소장의 말투가 싹 바뀌었다.

“한번 볼까?”

“보시죠.”

은혁은 자신의 이름이 찍힌 관리국 인턴 자격증을 내밀었다.

“흠. 아슬아슬하게 합격.”

소장이 씨익 웃었다.

그 순간, 비디오를 일시 정지하듯, 여자 연구원을 비롯하여 모든 게 멈췄다.

오직 은혁과 소장만이 움직일 수 있었다.

“이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 거겠지?”

“여러분은 100층탑 강림의 순간 직전과 그 직후의 모습을 관찰했겠지요?”

“그렇다네.”

“그전에 질문 몇 개 해도 됩니까?”

“물론 가능하다네.”

“아무 질문이나 가능합니까?”

“내가 모르는 건 나도 대답 못 해. 지금의 나는 진짜 내가 남긴 꼭두각시일 뿐이니까.”

“좋습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은혁은 미리 생각해 둔 질문을 하기로 했다.

“당신의 진짜 정체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내게는 다양한 정체가 있지. 이름도, 직업도 여러 개인데, 굵직한 몇 가지만 말하자면…….”

소장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보다시피 미래 전략 연구소의 소장이며, 동시에 아카데미의 보스다.”

“……!!”

“반응을 보아하니 아카데미에 대해 대충 아나 보군.”

“대충은요.”

“아카데미라는 조직이 가면을 쓰고 다니는 조직이라, 일인이역이 어렵지 않았지. 표면상으로는 아카데미의 보스와 미래 전략 연구소의 소장은 조언을 주고받는 사이지만.”

“사실은 동일인물이었다?”

“바로 그거야.”

은혁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아카데미와 미래 전략 연구소는, 카인과 아벨의 자폭 테러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게 아니었어.’

양쪽 수장이 동일 인물이니, 정보를 공유하고 말고 할 필요가 애초에 없었다.

“두 번째 질문. 당신은 어떻게 100층탑 강림을 예지했습니까?”

“내가 워낙 잘나서…… 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지는 않군. 나도 들었다.”

“누구한테요?”

“본명은 몰라. 나에게 가면을 나눠준 자, 무수히 많은 가면을 쓴 자.”

“무수히 많은 가면을 쓴 자……?”

“아마 자네도 알 거야.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 말일세.”

“……!!”

의외의 인물 이름이 나왔다.

‘구원 길드장이 그 정도의 거물이었나?’

은혁이 알기로,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는 행복 길드장 해피 다음으로 강한 길드장일 뿐이었다.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는 정체불명의 길드장……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내 회귀 지식을 뛰어넘을 정도의 거물이었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흠, 태백산에 위치한 미래 전략 연구소는 사실 정부의 눈먼 돈을 받아먹는 기관이었네. 나는 그곳의 소장이었지. 주로 말도 안 되는 실험을 했고, 보고서를 올리면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네.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가면을 쓴 자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한다.

“그가 바로 올마스크였네. 잠긴 문이며 벽, 각종 보안 장치를 어렵지 않게 통과하는 존재였네. 그때마다 가면을 바꿔 쓰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는군.”

“그가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처음에는 별 요구가 없었다네. 내게 이런저런 정보를 주기 시작했지. 그 정보 중에는 100층탑 강림의 날짜를 측정하는 컴퓨터의 제작법 같은 게 포함되어 있었지.”

“허.”

들으면 들을수록 충격이었다.

올마스크는 100층탑 강림 이전부터 각종 스킬을 쓰며 돌아다녔다는 뜻이다.

“그 뒤로 올마스크는 가끔 들러서, 복잡한 숫자로 이뤄진 화면과 100층탑 강림 날짜를 보았다네. 그에게도 100층탑의 강림은 중요한 문제였던 듯하네.”

“그렇군요. 그 화면 속 내용이 뭔지 설명해준 적도 있습니까?”

“100층탑 강림 날짜에 관한 이야기는 들려준 적 있지만 자세한 건 가르쳐 주지 않았다네. 다만 기억에 남는 혼잣말이 몇 가지 있지.”

“무엇입니까?”

“가령, ‘아무래도 출입구를 이쪽에서 만드는 건 무리인가 보네.’라거나, ‘강림 장소를 모르니 좌표 겹침으로 훼방을 놓는 건 불가능하겠군.’이라거나, ‘이래서야, 귀환한 힘숨찐이 되어서 다시 맨 처음부터 시작하게 될 뿐인데.’ 같은 혼잣말 말일세.”

“허…….”

은혁은 회귀자였음에도 올마스크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설마, 올마스크는 평범한 지구인이었는데, 다른 곳에서 특수한 경로로 힘을 얻고 다시 지구에 돌아온 강력한 존재다…… 라고 해석해야 하나?’

은혁은 혼란스러웠다.

올마스크에게 직접 물어봐야만 알 수 있을 테지만, 직접 물어봤다간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올마스크는 100층탑에 대해 우호적인 쪽이었습니까? 아니면 싫어하는 쪽이었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이 아니었을까? 100층탑이 좋아서 강림 날짜를 분석한 것 같지는 않았네.”

“과연.”

은혁은, 올마스크가 일종의 숙련된 귀환자이며, 100층탑의 강림을 막는 게 목적이었으리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올마스크가 100층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도, 구원 길드를 만든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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