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 아카데미와 미래 전략 연구소 (3)
“그 이후에도 올마스크는 내게 이것저것 지시했지. 인류에 대해 걱정하는 온라인 모임이던 아카데미를 실제 비밀 조직으로 만들었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올마스크는 내게 특수한 힘과 지식이 담긴 가면을 하나 대여해줬다네.”
‘가면?’
그러고 보니 올마스크는 여러 개의 가면을 다루는 존재였다.
‘가면이 단순한 희귀 아이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의 무언가인가?’
소장의 말대로라면 그 가면들은 100층탑 바깥의 지구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플레이어가 아니었던 소장 같은 자에게도 힘을 빌려주는 게 가능한 물건이다.
“그 가면의 힘을 이용해 미래 전략 연구소장과 아카데미의 보스 역할을 동시에 해낼 수 있었던 거군요.”
“그렇다네. 아카데미를 비밀 조직화 한 나에게, 올마스크는 명령을 내렸지.”
“무슨 명령입니까?”
“100층탑에 관한 정보와 소문을 공유하고 퍼뜨리되, 너무 눈에 띄지는 말라, 라는 명령이었지.”
“엄청 애매한데요?”
“흐흐. 자네도 우리 활동에 대해 들은 적 있을 거야.”
“설마요. 아카데미에 대해서는 최근 들었는걸요.”
“잘 생각해 봐. 100층탑의 정상에 오르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
“그게 뭐 어쨌…… 잠깐. 그것도 아카데미에서 퍼트린 소문이었습니까?!”
“맞아. 정확히는 올마스크가 가면에 담아서 전해 준 정보였지만.”
“제가 듣기로는 관리국이 뿌린 정보라고 들었는데요.”
“그것도 맞아. 일부는 관리국이 아카데미 같은 여러 조직에 뿌린 정보고, 또 일부는 아카데미의 보스였던 내가 올마스크에게서 들은 정보를 뿌린 것이기도 했지. 개중에는 서로 충돌되는 소문도 있었고.”
100층탑에 관한 무성한 소문과 정보는, 관리국과 아카데미가 서로 퍼뜨린 것인 모양이었다.
“재밌는 건, 관리국이 퍼뜨린 정보보다, 올마스크가 나를 통해 퍼뜨린 정보가 더 먼저였고, 더 정확했다는 거야. 100층탑에 전송되는 대략적인 인원수나, 100층탑의 층수가 ‘100층’이라는 사실, 100층탑 전송 날짜 등. 일반 지구인은 결코 알기 어려운 정보들 말일세.”
100층탑이 실제로 강림하기 하루 전날까지도, 아카데미는 이런 식의 정보를 교묘히 퍼뜨렸다.
“올마스크는 왜 아카데미를 시켜서 100층탑에 대한 정보를 퍼뜨리라는 명령을 내린 걸까요?”
올마스크가 가면을 이용해 직접 퍼뜨리거나, 100층탑이 강림한 이후에 정보를 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올마스크가 직접 설명한 적은 없지만, 대략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하네. 첫째. 100층탑 강림의 순간에 겪을 인류의 정신적 충격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 100층탑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100층탑을 마주하고, 100층탑으로 소환되어 사람이 사라지는 경우, 인류가 받을 충격은 더욱 클 테니까.”
“과연. 그럼 둘째는요?”
“둘째. 아카데미가 100층탑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미리 어필해 둬야 100층탑 관리국의 관심을 받아, 입장용 초대장을 얻기 편할 테니까.”
“세상에.”
즉, 올마스크는 지구에 100층탑이 강림할 거라는 사실은 물론, 100층탑 관리국이 지구의 유력 조직들에게 초대장을 뿌릴 거라는 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회귀자인 내가 정보력에서 밀리다니.’
은혁은 단순 회귀자 치곤 상당히 정보를 깊고 넓게 알고 있었는데, 그런 은혁보다 올마스크는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로 머릿수 채워서 올마스크에게 도전했다면……!’
은혁에게는 4인의 파티를 구성하여 올마스크에게 아무 때나 도전할 수 있는 우승 트로피가 있었는데, 적당한 머릿수를 믿고 도전했다간 크게 당황할 뻔했다.
‘더 들어보자.’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마스크는 100층탑 강림을 모니터링하는 일도 내게 맡겼네. 혼자서는 피곤한 일이라, 부하 직원을 둘 뽑았지.”
“아. 그 기억은 본 것 같습니다.”
은혁이 지난번 처음 이 히든 미션에 도달했을 때 본 기억이다.
“늘 졸린 눈의 윌리엄과 여자 연구원 한 명이었지.”
훗날, 윌리엄은 연구 길드장 빌, 여자 원구원은 부길드장 레나가 된다.
두 사람 모두 매우 우수한 인재였다고 한다.
“그들도 올마스크의 명령을 받았나요?”
“아니, 올마스크가 지시하면 내가 그의 지시를 따라서 전달했지. 빌의 경우에는 눈치가 빨라서인지, 비정상적인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더군. 반면에 레나는 많은 부분에서 신경질적이었고. 그리고…….”
소장은 천장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뱉듯이 말했다.
“정말로, 컴퓨터에 적힌 시간에 맞춰 100층탑이 강림했다네.”
“세상이 무척 혼란스러웠겠군요.”
“물론이지. 특히 내가 힘들었지. 나는 고지식하게 100층탑에 대해 보고서를 매달 상급 기관에 올렸거든. 그쪽에서는 내 보고서를 무시하고 있다가, 실제로 100층탑이 나타나니 경악할 수밖에.”
은혁은 소장이 겪어야 했던 곤란은 적당히 흘려들었다.
“그리고 초대장이 세계 곳곳에 뿌려졌겠군요.”
“맞아.”
“이후, 빌과 레나 두 사람은 100층탑 초대장을 이용해 100층탑으로 들어가죠.”
은혁이 앞질러 말하자 소장의 표정이 괴로워졌다.
“사실은 세 장이었다네.”
“음? 아, 당신 것까지 합쳐서 세 장이었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나는…….”
소장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이 부분은 조금 부끄러운 기억이야. 나는 100층탑 초대장을 쓰지 않았네.”
“……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겠군요, 당신은.”
“대놓고 말하는군.”
“아니, 당신은 그냥 소장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아카데미의 보스였다면서요?”
“…….”
“즉, 당신은 카인과 아벨을 시켜서 폭탄 조끼 입히고 자폭하도록 명령한 거 아닙니까?”
“나는 승인만 했을 뿐, 계획은 다른 학사들이 세운 걸세.”
“그런 변명으로 무마할 수 있다면, 당신은 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겁니까?”
“으으…….”
100층탑 강림 이면의 흑막처럼 서 있던 소장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자네가 내 입장이 되어 보게. 내게 100층탑은 그저 두려운 것일 뿐이었어.”
“그렇다면 처음부터 아카데미를 만들지 않았으면 될 거 아닙니까. 인류의 미래를 걱정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말단 부하들에게 피해를 준 건 인정 안 합니까?”
페넬레시아와 피스메이커의 경우도 그렇다.
아카데미가 없었다면, 소장이 페넬레시아에게 임신 실험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사람이 훨씬 덜 죽었을지도 모른다.
“뭐, 추궁하러 온 건 아니니까 이쯤 하죠.”
은혁은 얄궂은 기분이 들었다.
100층탑의 비밀이나 빌에 대한 약점을 얻을까 해서 이곳에 왔다.
히든 미션 속 소장은 많은 것을 알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적절한 답을 얻으려면 적절한 질문을 알아야 했기에, 은혁은 때가 무르익은 지금 온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난 것은 100층탑에 대한 더 많은 의문과 구원 길드장에 대한 비밀, 아카데미의 수장 겸 소장인 이 중년 사내의 나약한 민낯뿐이었다.
“하아, 빌과 레나가 여기 들어오고, 그다음 당신은 뭘 어떻게 한 겁니까?”
“나는 몇 년 정도 조용히 지냈다네. 낮에는 게으른 미래 전략 연구소 소장으로, 밤에는 추악한 아카데미 수장 노릇을 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올마스크가 내게 찾아왔지.”
“그가 뭐라고 했나요?”
“그가 나의 아카데미 활동을 비판할 줄 알았지만, 정작 그는 별 관심도 없더군. 100층탑에 관한 소문을 퍼뜨려, 안에 들어갈 각오를 한 자들을 일정 수 만드는 것, 초대장을 넉넉히 얻어내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어.”
그 목적은 전부 이룬 셈이다.
실제로 현재의 지구는 100층탑의 존재와 공존하고 있다.
매년 수천 명에서 만 명 가까운 숫자가 100층탑으로 갑자기 전송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하긴. 전 세계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1년에 135만 명이나 된다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인데도, 사람들은 사망 위험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즉, 지구 기준에서는, 100층탑에 강제 전송되어 실종되는 경우도 살다 보면 당할 수 있는 재난이나 사고 정도로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다.
‘만약 지구의 인류가 이렇게 받아들이도록, 아카데미가 교묘하게 조종한 거라면 대단하긴 하네.’
그 아카데미의 수장은 결국 올마스크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지만.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지. ‘당신 역할은 거의 다 끝났다.’라고. 그러면서 자신을 따라 다음번 100층탑에 6기로 참가할 것인지, 아니면 남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는 남겠다고 했지. 그러자 그는 그동안 내게 빌려줬던 가면을 즉시 회수했다네.”
소장은 허탈하게 웃었다.
“자네와 대화하고 있는 나 자신은 그 가면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네.”
그것이 소장의 얼굴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흐릿해 보이는 이유인지도 몰랐다.
실제 소장이 아닌 소장과 함께하던 가면에 저장된 기억일 뿐이므로.
“그 뒤에 현실 세계의 나, 소장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네. 아마도 조용히 살거나, 죽었을지도.”
“아카데미도 몰락했겠군요. 아카데미의 보스가 갑자기 사라진 게 되니까.”
“그렇지. 가면이 없는 진짜 나는 정부의 눈먼 돈 타 먹는 소장일 뿐이니까.”
긴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다.
“사실 제가 여기 온 진짜 이유는 빌에 관해 묻고 싶어서입니다만.”
“미안하지만 모르네.”
“모른다고요?”
“그래. 자네가 알고 싶은 건 100층탑 안에서 활약하는 빌 아닌가?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100층탑 바깥에서 함께 일한 부하 직원 윌리엄일세.”
“그거라도 충분합니다. 빌…… 윌리엄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냉소적이면서도 인류를 걱정하는 자였지.”
“감사합니다.”
알아야 할 건 다 알았다.
그리고 전혀 모르던 사실도 알아냈다.
-제한 시간이 30초 남았습니다!
“이제 떠나야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한 가지만 물어도 되나?”
“네.”
“빌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건가?”
“그와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에 관한 조언 있으십니까?”
“그는 자신의 재능을 숨기는 데 능한 사람일세.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 것.”
“과연.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션 제한 시간이 끝이 났다.
-축하드립니다! 31층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발견한 비밀의 개수만큼 레벨이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3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95.
빌의 성격, 아카데미의 보스 정체, 올마스크에 관한 비밀.
은혁이 알아낸 비밀을 이렇게 세 가지로 뭉뚱그려 간주하여, 비밀을 총 세 가지 밝힌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파앗!
은혁은 히든 미션 밖으로 전송되었다.
31층 관리자는 웃으며 반겼다.
“어떠셨습니까, 숨겨진 시나리오는? 재미있으셨는지요?”
“아아, 네.”
은혁은 심호흡을 했다.
“100층탑은 너무 재밌군요. 비밀이 끝이 없으니.”
* * *
은혁은 28.5층의 콩나무 본부로 돌아왔다.
“아! 강은혁 플레이어!”
낸시가 다가왔다.
“네, 낸시 공장장님. 맡겨드린 일은 잘하고 계신가요?”
“정말이지, 이번에도 쉽지 않은 일이더군요. 드래곤 비늘을 양산해달라니.”
“하하. 어떤가요?”
“결론만 말하자면 성공이네요. 내일 수확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