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 56층 클리어하고 바로 57층으로
“아, 딱 한 병만 사고 싶은 게 아니라 그 병에 대한 생산 및 판매 권리도 받고 싶어서.”
“허……!”
성좌를 상대로 주류 사업을 신청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건 제 선에서 처리할 일이 아니군요. [강신]을 할 테니, 그분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겠습니까?”
“오,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죠. 부탁합니다.”
“위대한 성좌시여, 제게 [강신]하소서.”
-술의 성좌, 바쿠스가 이곳에 현현합니다!
바텐더는 하얗게 뒤집힌 눈과 구부정한 자세를 취했다.
-뭘 원하는가? 히끅!
살짝 취한 듯 보였다.
“위대한 성좌시여. ‘타오르는 술’을 원합니다.”
-그거 인간이 먹으면 죽어.
“보통 인간은 죽겠지요.”
-너는 보통 인간이 아니란 건가?
“제가 마실 건 아닙니다.”
-술은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져야 한다! 히끅!
“독살용으로 쓸 생각도 없고, 누굴 괴롭히는 용도로 쓸 생각도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원하나?
“제조법을 사고 싶은데요.”
-그렇게는 못 하지이. 히히.
바쿠스의 지배를 받는 바텐더가 갑자기 [취권]을 발동했다.
빠악!
비틀거림의 힘이 실린 강권이 은혁의 얼굴을 노렸고, 겨우 방어했다.
“큭.”
-성좌를 상대로 말빨로 설득하고 꼼수로 뒤통수치는 거, 나한테는 안 통해.
‘이런. 내가 너무 깔봤나?’
성좌를 죽이기도 한 은혁이다 보니, 성좌와의 거래를 너무 편하게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위대한 성좌여.”
-히히. 그럼 내놔.
“네?”
-수업료 내놓으라고, X이펄.
“네, 그러죠.”
은혁은 냅다 칼라미티 해머를 꺼내 휘둘렀고, 바쿠스는 즉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콰쾅!!!
[재난 흡수]의 힘을 담아 힘껏 갈긴 일격.
-으음. 제기랄.
꼬부라진 바쿠스의 혀가 똑바로 돌아왔다.
-내 ‘취기’를 통째로 흡수한 거냐?
“네.”
‘취기’를 재난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그걸 노려 휘두른 것이다.
바쿠스는 방어했기에 실제 피해는 전혀 입지 않았지만, 취한 상태의 기운을 모조리 빨렸기에 강제로 맨정신으로 돌아왔다.
-으음……!
강제로 맨정신이 된 바쿠스는 조금 긴장했다.
취한 상태일 때 온전한 힘을 발휘하는 바쿠스였기에 지금은 위기 상태이기도 했다.
-맨정신으로 상대하긴 어려운 놈이군.
“혹시 수업료를 더 원하십니까?”
-충분하다. 그러나 여전히 술의 제조법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럼 100병만 파시죠.”
-한 병에 2,000 골드다.
“좋습니다.”
은혁은 20만 골드를 흔쾌히 지불했다.
-술의 성좌, 바쿠스가 대단히 만족스러워합니다!
-‘타오르는 술’을 100병 획득하셨습니다!
파앗!
그리고 바쿠스는 떠났다.
“으으.”
대신에 바텐더가 무척 지친 듯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좋았어.”
은혁은 술부터 챙겼다.
“은혁아. 그건 뭐에 쓰려고?”
“아, 57층에 가서 쓸 거야. 지금 쓸 건 아님.”
그리고 은혁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자, 그럼 미션 클리어하러 가자.”
* * *
5분.
은혁이 바쿠스와 거래를 한 지 겨우 5분이 지났다.
하지만 은혁은 이미 미션 클리어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후아암.”
정작 은혁은 보안관 사무소 안에서 하품하고 있었다.
“아, 이제 일반 메인 미션은 너무 쉽네.”
은혁은 회귀자답게 주요 현상범들의 은거지를 알고 있었다.
물론, 각종 함정이 깔려 있고, 총 찬 부하들이 넘쳐났지만 은혁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블러드 솔저 소환]. [다크 코볼트 소환]. [메탈 워리어 소환]. [메탈 레인저 소환].”
각종 소환수들을 소환한 뒤, 명령했다.
“[텔레파시]로 현상범들의 위치 및 정보를 전달해 주겠다. 가서 죽이거나 항복시켜서 끌고 와.”
은혁의 소환수들은 두려움을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최대 장점은 그들의 ‘그림자’가 익숙하다는 점이었다.
‘하얀 계곡에서 교전 시작합니다.’
‘검은 늪에서…… 교전 시작했습니다…….’
‘메마른 언덕에서 지원 바랍니다.’
소환수들은 손실이 일어날 것 같으면 즉시 은혁과 미리 연결된 [텔레파시]로 지원을 요청했다.
그럼 은혁은 하품을 멈추고 보안관 사무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볼까? [그림자 도약].”
파앗!
은혁은 상시 대기 중인 공군의 전략 폭격기처럼, [그림자 도약]과 [그림자 터널] 스킬을 이용해, 소환수들의 지원 요청에 따라 나타났다.
“[그림자 도약]! [블러드 스피어]!”
촤악!
“[그림자 도약]! [연사]!”
투쾅! 투쾅!
…….
…….
“[그림자 터널]! [사이오닉 필드]!”
파앗!
“[그림자 터널]! [광풍돌진권]!”
콰콰콰쾅!
-현상범, 블랙팁을 체포하였습니다!
-현상금 59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현상범, 장주철을 체포하였습니다!
-현상금 85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
…….
-현상범, 가렌더스를 체포하였습니다!
-현상금 1,15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현상범, 릭 팽을 체포하였습니다!
-현상금 1,25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아, 다 체포되었나 보네. [그림자 터널] 동시 발동!”
파앗! 파앗! 파앗! 파앗!
사방에서 [그림자 터널]이 열리더니 소환수들이 현상범들을 끌고 나타났다.
“……지금 내가 뭘 보는 건가.”
보안관이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축하드립니다! 56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현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은혁은 클리어 메시지를 당연하다는 눈으로 보고는 하품을 했다.
“아, 빨리 열 명을 채워야 하는데.”
열 명 생포를 다 채우면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
마지막 열 번째는 염훈에게 맡겨뒀다.
“으아아아아……!”
저 멀리서 염훈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성공했다아아아……!”
염훈은 방화범 섀넌을 꽁꽁 묶은 뒤 [지크리엘의 날개]를 발동하고 날아왔다.
“잘했어, 염훈!”
“휴우, 네가 시킨 대로 했는데, 진짜 위험했어.”
염훈은 계곡물을 몸에서 뚝뚝 떨어뜨리며 말했다.
염훈이 체포하러 가자 섀넌은 화염병으로 자폭을 시도했고, [지크리엘의 날개]를 발동해서 끌어안은 뒤 계곡물로 함께 뛰어들었다.
그 상태로 기절시킨 뒤 온 것이다.
그 순간.
-현상범, 섀넌을 체포하였습니다!
-현상금 5,500 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주요 현상범 10인을 모두 생포하는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불살의 체포 전문가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최상급 인내의 룬’을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3,00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보너스로 체력과 마력이 완전 회복됩니다!
은혁과 염훈은 흐뭇하게 웃으며, 각자의 직업 숙련도를 확인하고 돈과 아이템을 나눴다.
‘최상급 인내의 룬이라.’
현상범들을 안 죽이고 체포하여 얻은 업적 달성 아이템.
아이템이나 자신의 몸에 직접 이식할 수 있는데, 통증에 강해지고, 숙련도 상승에 작은 도움을 준다.
지금의 은혁의 수준에 비하면, 아주 작은 보너스 아이템이지만, 갖춰 둬서 나쁠 건 없었다.
‘바로 룬을 장착해볼까.’
은혁은 이전 27층 구간에서 얻었던 최상급 공포 저항의 룬 바로 밑에 최상급 인내의 룬을 장착했다.
염훈의 것도 지크리엘의 갑옷에 장착해 줬다.
보안관 사무소의 다른 이들은 그런 은혁과 염훈을 보고 놀라서 입을 벌렸다.
“엄청나군.”
“죽이지도 않고 전부 살려서 체포하다니.”
“도, 도대체 왜?”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불살 칭호는 일단 갖고 있으면 쓸모가 많거든.’
100층탑에 학살자 관련 칭호는 넘쳐난다.
은혁도 ‘트렌트 학살자’ 같은 칭호는 갖고 있었으니까.
“그럼 바로 다음 층으로 가자고, 염훈.”
“다음 층도 이번 층처럼 쉽게 클리어되면 좋을 텐데.”
* * *
-57층 : 무공을 연마하는 사당
“와.”
57층 게이트는 짙은 녹색의 산속에 있었다.
산속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고, 몇 명의 플레이어들이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
“…….”
그들은 은혁과 염훈의 기척을 느꼈음에도 더더욱 내면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좌선하는 층인가?”
염훈이 중얼거리자 한 플레이어가 못 참고 외쳤다.
“제기랄! 나 좀 도와주쇼!”
그 순간, 허공에서 죽비가 날아와, 그 플레이어의 머리를 쳤다.
타악!!
“악!!”
플레이어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겨우 사흘도 못 버티느냐? 쯧쯧.”
날카로운 인상의 스님이 혀를 찼다.
“이 미친 스승아! 사흘 밤낮을 참선만 하라니! 이걸 누가 견뎌!!”
“이노옴!!”
스님은 현란한 발걸음으로 플레이어를 향해 쇄도했다.
‘와, [소림탄영보]를 쓰네.’
은혁은 스님의 보법을 알아보고 감탄했다.
“큭!”
플레이어는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탁! 탁!!
타타탁!!
스님이 튀는 듯한 발걸음을 싣고 때리니, 그 플레이어는 무너졌다.
“어흐흑!”
“고얀 놈. 내면부터 갈고 닦아라! 에잉.”
그 스님은 어디론가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다.
그 순간, 그 플레이어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미션을 실패하셨습니다!
-무투가 숙련도가 5% 감소하였습니다!
-3일 뒤에 재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안 돼애! 또 실패냐! 어흐흑!”
플레이어는 서럽다는 듯이 울었다.
“음, 이게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상급 치유]!”
파앗!
염훈이 우는 플레이어를 치료해줬다.
플레이어는 눈물을 그치고 염훈을 알아봤다.
“아! 당신은 그 유명한 불패불굴 길드의 염훈!”
“네, 맞습니다. 당신 이름은?”
“톡스릴이라고 합니다.”
“여긴 도대체 뭐 하는 곳입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니, 저쪽에서 이야기하죠.”
톡스릴이 안내한 곳에는 노천 찻집이 있었다.
“아! 톡스릴 님! 또 오셨군요!”
동자 한 명이 나와서 톡스릴을 반겼다.
톡스릴은 신경질이 났다.
“요놈! 또 오셨다니!”
“아차차, 죄송합니다. 요놈의 입.”
동자는 자기 입을 톡톡 때리는 시늉을 했다.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한데, 이분들은?”
“새로 오신 분들이다. 이분들이 내가 가진 정보를 사겠다고 하셔서 모시는 중이다. 좋은 차를 내오너라.”
은혁과 염훈은 정보를 산다고 말한 적이 없지만, 정보가 필요하긴 하고, 톡스릴의 사정이 딱해 보이기도 하고 해서 안내에 따랐다.
“후, 추태를 보여서 미안합니다. 우선 저에 대해 소개하죠.”
“랭킹 55위의 무투가, ‘독수의 톡스릴’ 맞죠?”
은혁이 묻자 톡스릴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절 아십니까?”
“랭킹 100위 안에 드는 플레이어는 훤히 꿰고 있습니다.”
“하아, 이거 감격스럽군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57층에서만 머물러서 저에 대해서는 모를 줄 알았죠.”
마침 차가 와서, 세 사람은 차를 한 모금씩 했다.
“그럼, 두 분께 바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어, 대신…….”
“정보료라면 물론 제공하겠습니다.”
은혁이 말했다.
그제야 톡스릴은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처음 도착한 곳에 있는 사당 안으로 들어가면 미션창이 뜹니다. 그 미션창이 뜨고 나면 돌이킬 수 없으니, 미리 마음의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음.”
염훈은 신음하며, 여기서 정보를 사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미션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톡스릴이 설명했다.
<57층 메인 미션 : 무공 연마의 장>
-목표 : 무공의 고수를 만나서, 마음속 깊이 인정받을 것.
-성공 시 보너스 : 무공, 내단, 비보 중 하나를 제공받는다.
-실패 시 페널티 : 고수에 의해 쫓겨남. 쫓겨나는 과정에서 모욕이나 폭력이 수반될 수 있음. 3일간 재도전이 금지되며, 실패가 반복되면 참선 미션이 추가될 수 있음.
-제한 시간 : 없음.
“헐. 무공의 고수라.”
염훈은 은혁을 흘깃 바라봤다.
“따지고 보면 은혁이 너도 무공의 고수인데.”
“아, 조금 다를 거야.”
은혁은 상당한 수준의 무투가이긴 하지만, 무공의 고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무공의 고수는, 100층탑이 여러 무인들의 차원의 파편에서 수집한, 진짜 고수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