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 강은혁 VS 빌 (3)
그렇게, 빌은 슬레이버와의 대화를 통해 드래곤 파워드 아머를 상대할 돌파구를 찾아냈다.
‘강은혁이 드래곤 파워드 아머를 소환하는 순간을 노려서 아머를 파괴한다!’
물론, 드래곤 파워드 아머는 매우 단단해서 파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다행히 빌에게는 강입자 물질을 압축시켜 만든 포환이 있었고, 그것을 예상 지점에 던져서 드래곤 파워드 아머와 좌표 겹침 폭발을 일으킬 수 있었다.
-계약 대결의 제한 시간이 2분 남았습니다!
“큭!”
은혁은 이번에야말로 위기인 듯 비틀거리더니 한 손을 땅에 짚었다.
빌은 차가운 눈으로 강입자물질포를 겨눴다.
‘널 죽이지 않고 치명상만 입힐 정도의 여유는 없다, 강은혁.’
빌은 죽일 각오로 강은혁의 상체를 겨눴다.
그 순간.
“[돌 부수기]!”
쩌적!!
빌의 발밑이 쪼개졌다.
하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조준이 어긋났다.
꽈콰콰콰콰콰쾅!!!
이번에는 강입자물질포탄이 천장을 뚫고 올라갔다.
“쯧!”
빌은 이런 잔재주로 조준을 흐트러뜨리는 은혁과 실제로 거기에 당한 자신에게 혀를 찬 뒤 다시 은혁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빌이 본 것은…….
‘파도?’
땅으로 이뤄진 파도였다.
‘[스파이럴] + [광역 돌 부수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파도치는 대지].’
본래라면 부서져야 할 땅이, 마치 끈적한 요구르트처럼 빌을 중심으로 밀려들어 왔다.
땅이나 돌을 부수는 거라면 일가견이 있는 빌이었지만, 끈적하게 요동치는 땅에 대해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망할. 마치 마개 빠진 욕조의 배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군.’
빌은 [고속 명상] 스킬로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았지만.
투두두두……!
설상가상으로, 빌이 이미 부순 [메탈 워리어]나 메탈 스파이크 등의 부서진 금속 잔해들 또한 빌을 향해 밀려들어 왔다.
빌은, 은혁이 일부러 금속 소환수들이 쉽게 부서지도록 유도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금속 소환수의 잔해에 [염력 부여]와 [피의 지배]를 부여한다!!”
구우우우우웅……!
처참하게 부서진 메탈 워리어와 메탈 레인저의 몸에, 은혁이 이미 흘린 피와 복수심이 담긴 염력이 부여되었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리벤지 아미 소환]!!”
파앗!!
붉은 섬광이 대련실을 뒤덮었다.
“크우우우우……!”
한 번 죽었다가 부활한 언데드 기계 군단이 나타났다.
“복수.”
“복수.”
“복수.”
일반적으로 금속 차원의 존재는 복수심과는 거리가 먼 존재다.
하지만 빌에게 파괴된 뒤, 은혁의 피와 복수심을 주입 당했기에 복수심을 위해 움직이는 언데드 기계가 되었다.
-복수심이 담긴 사념파가 방출됩니다.
-사념파의 대상이 된 플레이어의 사이오닉 능력이 제한됩니다!
“젠장.”
빌은, 연구 길드장이 되고 처음으로 매스꺼움을 느끼고 식은땀을 흘렸다.
‘강은혁 이 자식. 살을 주고 뼈를 가져간다더니만. 언데드 금속 병사들을 만들어서 사념파 안테나로 쓰고 있군.’
실제로 복수를 외치고 있는 리벤지 아미들은 똑똑하게 굴었다.
사사사삭!
사사사삭!
리벤지 아미는 능숙하게 대련장 외곽의 사방으로 물러나더니, 빌의 공격으로 뚫린 차원의 유리벽 밖으로 슬쩍 몸을 피했다.
섣불리 빌에게 접근했다간 부서질 테니, 대련장 바깥으로 도망친 채 머리만 경기장 안으로 쏙 내밀고 “복수. 복수. 복수.” 거리면서 사념파를 뿜고 있다.
똑똑한 복수 방법이다.
‘아직 멀었어.’
은혁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빌에게 추가로 스킬을 썼다.
“[메탈 스파이크] + [피의 지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블러드 스파이크]!!”
스파이크 관련 스킬은 함정 스킬이었지만, 이 경우에는 빨려들어 오는 대지 덕분에 알아서 빌에게 날아갔다.
푸욱!!
“큭?!”
리벤지 아미의 사념파와 땅이 어지럽게 밀려드는 탓에 빌은 방어에 실패했다.
“좋아! 회복된다!”
블러드 스파이크에는 [피의 지배] 스킬이 담겨 있어서, 빌이 피를 흘리는 만큼 은혁의 체력이 회복되었다.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전략.
“큭! 아직이다!”
빌이 외치며 비장의 수를 썼다.
“[원자 분해 필드]!!”
화아악!!
파사사사사사삿……!!!
빌의 몸을 중심으로 원자를 분해하는 장이 방출되었다.
구겨진 대지가 닿으면 먼지로 변했고, 블러드 스파이크 함정은 철분 냄새 나는 쇳가루로 변해서 흩날렸다.
타앗!
은혁 또한 뒤로 크게 뛰어서 피해야 했다.
그때였다.
쉬오오오오오……!!
빌은 이를 악물며 왼손을 앞으로 뻗었고, 방출 중인 [원자 분해 필드]가 손아귀에 모였다.
그리고 오른손 검지 끝에는 [아토믹 블래스트] 스킬을 준비했다.
[원자 분해 필드]를 압축한 뒤, [아토믹 블래스트]로 점화하는 궁극기를 준비한 것이다.
“이건 못 막을 거다, 강은혁.”
빌의 말에 은혁은 히죽 웃었다.
은혁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낼 생각이었다.
빌 또한 은혁의 각오를 알았기에 지체 없이 방출했다.
“궁극 퓨전 스킬 [둠브링어 블래스트].”
번쩍!!
‘길드 본부 죽이기.’
적의 길드를 본부째로 소멸시킬 목적으로 빌이 준비한 스킬이다.
길드 대전 당시에도 쓰지 않고 망설인 스킬.
그것을 은혁을 향해 가차 없이 쐈다.
화아아아악……!!
장(場) 형태로 존재하는 원자 분해의 힘을, 강제로 핵폭발을 일으켜 초고속으로 비폭시킨다.
매우 광범위한 분해 현상이 전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파아아아아아악……!!
방어 불가, 회피 불가, 관측 불가의 분해 현상이 은혁을 휩쓸고 지나갔다.
은혁의 뒤에 있던 차원 유리벽은 물론, 리벤지 아미도 가루가 되어 순식간에 소멸했으며, 그 뒤의 연구실 건물 상당 부분이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후후.”
반면에 정작 직격당한 은혁은 멀쩡했다.
은혁은 가만히 둔 채, 은혁의 뒤편에 있던 것들만 모조리 쓸어버린 것이다.
‘[스킬 트랜스미션 : 2초 무적].’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파훼법.
염훈에게서 [2초 무적]을 빌리는 것은 실전에서도 여러 번 해봤고, 차원의 유리벽이 깨져 있는 상태이므로 염훈과 차단된 상태도 아니다.
그러니 타이밍을 잘 맞출 자신만 있다면, [2초 무적]으로 견디면 된다는 식으로 받아낸 것이다.
“허……!”
빌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은혁은 빌이 허탈해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사이오닉 러시]!!!”
투쾅!!
뻐억!!!
은혁의 주먹이 빌의 몸통에 꽂혔다.
사이오닉의 힘이 담긴 주먹인 데다가, 지금의 빌은 리벤지 아미가 보내던 사념파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더 강렬했다.
빌이 비틀거리는 순간, 은혁은 공격 스킬을 연달아 먹였다.
“[강타]! [염열파]! [블러드 스피어]! [사이오닉 블래스트]! [영거리 사격]! [메탈 바이크 소환]! [무아연환격]!”
하나하나가 치명상을 유발하는 공격들.
후려치고 태우고 뚫고 갈기고 쏘고 치고 두들겨 팼다.
어지간한 대형급 드래곤도 진작 절명했어야 할 극악한 공격들.
-연구 길드장 전용 회복 프로토콜 발동!
-생명 유지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생체 분자 회복 스프레이 가동 중…….
빌의 연구소답게, 빌이 죽을 지경이 되면 시스템이 감지하여, 자동으로 발동하는 보호 프로토콜이 있었다.
은혁은 빌을 두들겨 패는 와중에 그것조차 막았다.
“[시스템 해킹 : 회복 프로토콜 관리 권환 획득]!”
-연구 길드장을 위한 회복 프로토콜 정지!
-회복 시스템은 강은혁을 위해 발현됩니다!
“크헉……!”
빌 입장에서는 비장의 보호 수단 하나를 통째로 뺏긴 격이지만, 길드장답게 발상이 달랐다.
‘1초 벌었다.’
은혁이 [시스템 해킹] 스킬을 쓰는 동안의 1초.
그 1초 동안은 공격이 멈췄으므로.
“나와라! 레나여!!”
콰쾅!!!
대련장 중앙에서 얼음 기둥 하나가 치솟아 올랐다.
그 기둥 속에 담긴 것은 아주 기괴한 창이었다.
두근! 두근!
두뇌와 내장, 그리고 눈알 하나가 달린 거대한 냉기의 창이었기 때문이다.
창의 내부에 담긴 내장 기관들이 맥동하면서, 얼음 기둥이 깨지고, 뭉쳐 있던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파창!
화아아악!!
“큭!”
은혁은 자기도 모르게 물러났다.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냉기는 의료용으로 보관 중인 액체 질소보다 차가웠다.
은혁은 세븐 칼리버 제6형태 프로스트 스파이럴을 쥔 채, 회복 프로토콜이 완료되길 기다렸다.
철컹!
빌은 냉기의 창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서로 구면이지? 인사해라.”
“구오오오옥……!”
창이 절규했다.
그때마다 리벤지 아미가 내뿜던 것과 유사한 강력한 사념파가 뿜어져 나왔다.
‘살려줘아악구해줘그아악죽여버려복수다끼야아아아……!’
은혁의 귀에는 물론, 아직 도망치지 않고 용케 중계 중인 기자들의 귀에도 들릴 정도의 뚜렷한 사념파였다.
“설마.”
“맞아. 레나로 만든 냉기의 창이다.”
빌이 서늘하게 웃었다.
“실험체와 폐기 예정체를 포함, 총 63체의 복제 레나를 한 자루의 창에 쑤셔 박은 거다.”
스윽.
빌은, 레나로 만든 냉기의 창을 움켜쥐고 은혁을 겨눴다.
“여러 개의 레나를 하나로 합친 대가로 미쳐 버렸지만, 뭐, 무기로 쓰기에는 딱 좋은 수준이지.”
“미쳤군요.”
“아, 오해하지 마. 오늘만 쓰고 다시 풀어줄 생각이니까. 어차피 오래 유지할 수도 없고.”
휘리릭.
빌은 냉기의 창을 자연스럽게 허공에 휘둘러 회수했다.
“[냉기 지배].”
쩌저저적.
부상당한 빌의 몸 곳곳에 냉기가 스며들었는데, 그 냉기에 담긴 마력 속 마립자를 순환시켜 자연 치유력을 강화시켰다.
은혁 또한 자신의 몸 치료가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렸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숨을 골랐다.
-계약 대결의 제한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어느새 대결의 3분의 2가 지났다.
“자, 라스트 스퍼트다. 와라.”
“갑니다.”
타앗!
은혁은 쉬는 척하며 자신의 그림자에 마력을 부여해뒀다.
“[그림자 분신 5.0] 연속 발동.”
파바바바박!
은혁의 달려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그림자 분신이 생성되었다.
빌은 냉기의 창을 휘둘러 냉기를 방출해댔다.
화아아악!!
냉기에 적중된 그림자 분신들은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은혁은 터져 나가는 그림자들을 미끼로 삼고, 칼라미티 해머를 휘둘렀다.
“[재난 흡수]!!”
화악!
냉기라는 이름의 재난이 일시적으로 위축되었고, 은혁은 빈손으로 스킬을 썼다.
“[블레이징 러시]!!”
“[고분자 방벽 생성]!”
투쾅!!
꽈광!!
은혁의 공격과 빌의 방어가 격돌하고, 이번에는 빌의 반격이 이어졌다.
“[양자 터널].”
빌은 단순히 원자만 지배하는 게 아니라, 사이오닉의 힘으로 그보다 더 작은 영역을 포함하는 아원자 영역에까지 간섭이 가능했다.
파츠즈즈즈…….
은혁의 발밑에 게이트와 비슷한 차원의 문이 생겨났다.
“떨어져라.”
확!
은혁은 10층 연구소에 비밀 지하 실험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지금 막 알았다는 점이다.
‘이런 망할.’
탓!
바닥에 안전히 착지한 뒤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에 있던 [양자 터널]은 이미 사라졌고, 컴컴한 지하실만이 눈에 들어왔다.
-강은혁 플레이어가 대련장을 이탈하였습니다!
-10초 이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패배합니다!
-장외패까지 남은 시간 : 10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