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347화 (347/434)

347화 : 해피의 습격 (3)

언젠가 은혁이 한 조언대로, 염훈은 [2초 무적]을 몸 전체가 아닌, 일부에 집중시켜보았다.

프리즘 랜스의 뾰족한 끝에 [2초 무적]을 집중시킨 덕에, 해피의 기본 방어력과 운명치 폭풍의 갑옷을 뚫고 피해를 입힌 것이다.

‘저건 통한다!’

슬레이버와 저스티스가 한마음으로 생각했다.

염훈의 [불패불굴]은 해피의 [혼돈 지배]의 상성 위에 있었던 것이다.

파앗!

5층 스테이지의 천장 경계면에 처박힌 채 그 사실을 확인한 빌은, 바로 [퀀텀 리프] 스킬을 써서 염훈과 함께 도주하기 시작했다.

“잠깐, 왜 도망……!”

“네 능력은 귀하다, 염훈. 일단 후퇴해서 시간을 번다.”

그 말에 염훈은 이를 갈았다.

당장 해피와 맞서 싸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냉철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단, 후퇴할 거면 28.5층으로 가죠. 은혁이 깔아둔 방어 시설이 많이 있고, 장기전을 펼치려면 과감히 5층에서 먼 곳으로 후퇴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파앗! 파앗!

해피가 못 쫓아오게, 연달아 공간 도약을 했다.

“하핫! 재밌네.”

꾸욱.

해피는 자기 주변을 떠다니는 시스템 메시지 하나를 붕대처럼 구겨서 자기 몸에 생긴 상처에 쑤셔 박았다.

스르르르륵.

시스템 메시지가 녹아들면서, 빠르게 회복되었다.

“너네가 도망치면 따라가면 되지, 뭐!”

“어딜!”

빌과 염훈은 도망쳤고, 저스티스와 슬레이버가 합심하여 해피를 막아섰다.

* * *

“해피와의 전쟁은 그렇게 추격전으로 시작되었지.”

빌이 설명했다.

“그러다 5층 전체가 휘말린 거군요.”

“맞아. 해피의 악명은 더 말할 것도 없었으니까. 자진해서 해피를 막기 위해 출진한 중소 길드가 50개 정도 된다.”

“대부분 박살 났겠군요.”

“아아. 역효과라고 미리 교육했어야 했나 싶더군.”

해피는 자신을 막으려 드는 자들이 늘어나자 오히려 더 유쾌하게 박살 냈다.

해피가 빅 배트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중소 길드 두어 개가 박살 났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이 딱 하나 있다면, 해피의 목적이 살육이 아니었다는 점일까.”

해피는 하고 싶은 걸 하는 성격이고, 플레이어를 죽이고 싶으면 죽였다.

다행히 해피의 관심이 ‘염훈을 숨긴 빌 찾기’였기에, 방해자들을 몇 묶음씩 부수거나 날리거나 밟고 지나가기만 했다.

일일이 확인해서 죽이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행히 해피가 28.5층에는 가지 않았군요?”

“음. 너에 대한 정보를 흘렸거든.”

빌, 저스티스, 슬레이버는 해피와 교대로 싸웠다.

정면으로 싸우면 이길 수 없으니 시간을 끌 목적으로 번갈아 싸운 것이다.

그리고 은혁이 사라진 지 3일째 되던 몇 시간 전, 빌은 해피와 싸우며 은혁에 대해 말했다.

“염훈보다 훨씬 강한 강은혁이 있다. 그리고 그는 곧 5층 어딘가에 돌아올 것이다, 라고 말했지.”

“아하, 그래서 해피가 28.5층에 가는 대신 머무르고 있는 거군요.”

“맞아. 최대한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으니까. 아참, 그동안 네 드래곤 파워드 아머도 28.5층으로 옮긴 뒤 전부 수리시켜뒀다.”

“잘하셨습니다. 그럼 다 됐군요.”

스윽.

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피 보러 같이 가죠. 아, 이렇게 말하니까 꼭 강아지 구경하러 가자고 하는 거 같네.”

* * *

한때 평화의 감옥이었던 곳은 커다란 구멍으로 변해 있었다.

해피가 빅 배트를 몇 방 휘둘러서, 모조리 박살 냈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랭킹 100위 안에 드는 죄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죽었으며, 생존자는 극소수였다.

극소수의 생존자 중에는 행복 길드의 부길드장 시리우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야아, 구하러 오는 게 늦어서 미안. 잘 지냈어?”

“아니요.”

“응? 너 왜 이렇게 우울해 보이냐? 오랜만에 길드장 얼굴 봤는데 반갑지 않아?”

“…….”

사실 행복 길드 부길드장 시리우스는, 자신의 길드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광기의 화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그걸 설명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욕망의 상당 부분이 묶였기 때문입니다.”

“엥?”

시리우스는, 자신이 은혁과 싸워서 패배했고, 은혁의 제자가 된 김경철에 의해 욕망이 묶여 버린 채 허무한 삶을 보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헐! 강은혁이라는 놈, 물건이네? 널 상대로 이긴 다음, 널 죽이는 대신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아놔, 재미없게 변했네. 어떻게 할래? 재미없게 계속 살래? 아니면 내 손에 죽을래?”

“어느 쪽이건 괜찮겠지요.”

그러자 생존자 중 하나인 페넬레시아가 막아섰다.

“그만두세요.”

“오우! 넌 걔지? 그, 바이러스 쓰는 놈의 부하 겸 엄마. 히히. 다 알고 있지롱?”

“저는 평화 길드 부길드장 페넬레시아입니다.”

“아, 이름은 관심 없고, 너는 왜 감옥에 갇혀 있었던 거임? 무슨 감옥에 상담 치료 봉사 활동 나왔던 거?”

“저도 죄인입니다.”

“무슨 죄?”

“아들을 잘못 키운 죄.”

“푸하하! 야! 시리우스! 이 여자가 너보다 더 웃긴데? 하하하!”

해피는 페넬레시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커헉! 윽!”

그때마다 페넬레시아는 피를 토했다.

피스메이커와 결합했다가 풀려난 뒤로 몸이 매우 약해진 탓이다.

“그만뚜쎄여!!”

트윈스 투가 나섰다.

트윈스 원의 얼굴을 덮은 손의, 손등에 달린 얼굴이었다.

“하하하! 이건 또 웃기게 생겼네. 네가 네 언니 얼굴을 잡아먹은 거임?”

“아, 아녜여! 이건……!”

“아아, 됐어. 내 앞에서 자기변호는 할 필요 없어.”

해피는 갇혀 있던 부길드장들을 향해 농담을 툭툭 던지는 한편, 강은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특별히 강은혁의 약점 같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흥미가 가는 존재였기에 묻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타탓!

머리에 피를 흘리던 한 죄수가 달려와 해피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실례합니다, 위대한 길드장 해피 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죄수는 최강자인 해피의 부하가 되고 싶어 했다.

‘C+급 아부에 능한 도적’으로서, 간수들로부터 부식을 얻어먹을 정도로 아부 실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이씨,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웃던 해피는 그 죄수를 냅다 걷어찼다.

투확!!!

발길질이 죄수의 몸통에 꽂혔다.

몸통은 터져서 빨간 안개처럼 변했다.

후두둑……!!

팔다리와 머리만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본 시리우스와 페넬레시아는 신음성을 흘렸다.

‘혼돈의 힘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쓰다니!’

해피 기준에서는 단순 발길질이었지만, 그 발끝이 죄수의 몸에 닿는 순간 응축된 혼돈의 힘이 방출됐다.

아마 죄수가 갑옷을 입고 있었어도 비슷하게 죽었으리라.

“아, 오랜만에 길드연합국 꼴 보니 왠지 킹받네.”

해피가 알던 사람들이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하나같이 은혁이었다.

그 사실이 묘하게 재밌으면서 화가 났다.

그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 와하하하하!!”

은혁은 크게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고, 빌은 불안한 얼굴로 은혁을 따라오고 있었다.

“그가 왔군요.”

페넬레시아가 조용히 말했다.

“음.”

해피는 빅 배트를 어깨에 걸친 뒤 은혁과 빌을 향해 걸어갔다.

“야, 네가 강은혁?”

“네. 제가 강은혁입니다.”

“나는 해피다.”

“압니다.”

“근데 아까 왜 크게 웃음?”

“너무 강해서요.”

“나?”

“네.”

“헤헤. 고맙긴 한데, 내 강함을 보고 비웃은 건 네가 처음이다.”

“비웃은 건 아닙니다. 그냥,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강해서요. 하하하!”

은혁은 통합길드장이 되고 마법사 직업 3중 승급이라는 꼼수 덕분에 극도로 강해졌다.

그런데도 해피는 여전히 은혁보다 강했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자, 그럼 지금 바로 붙어볼까?”

“싫습니다.”

“왜 싫음?”

“통합길드장의 결정입니다.”

“아, 그거 들었어. 길드장 네 명을 꺾어서 임시 통합길드장 되었다지?”

“맞습니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네 지위는 그리 공고한 게 아니야. 네가 길드장 네 명을 꺾어도, 나머지 세 길드장 중 한 명만이라도 나와서 동의하지 않으면 즉각 취소된다. 이렇게.”

-길드장 해피의 반대로 인해, 강은혁 플레이어의 임시 통합길드장의 직위가 해제되었습니다!

-해피가 반대를 철회하거나, 강은혁으로부터 패배하는 순간 임시 통합길드장의 직위가 복구됩니다!

-통합길드장의 목걸이의 장착이 해제됩니다!

통합길드장의 목걸이가 해제되어 은혁의 손에 돌아왔다.

은혁은 피식 웃으며 그것을 인벤토리창에 던져 넣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임시 통합길드장이, 동의하지 않는 길드장을 두들겨 패서 패배를 인정시키거나 죽이면, 다시 지위는 되살아나지요.”

“하하하! 와하하하하!!”

해피는 허리를 꺾으며 웃었다.

“그럼 나랑 더 싸워야 하는 거 아님?”

“통합길드장 자리를 걸고 말입니까?”

“잉? 그게 무슨 소리임?”

“당신이 나를 이기고, 나를 대신해서 임시 통합길드장이 되고 싶은 거 아닙니까?”

“엥? 그런 게 돼?”

해피가 어리둥절해하며, 빌, 페넬레시아, 시리우스를 돌아봤다.

세 사람은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이론상.”

빌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안 될 건 없다. 다만 임시로나마 통합길드장이라는 게 존재했던 적이 없지. 그러니 안 될 것도 없다…… 라고 해야겠군. 정의 길드장 저스티스도 아마 잘 모른다고 대답할 거다.”

그 말에 해피는 손뼉을 쳤다.

“아하하! 대박이네. 의도치 않게 어부지리하겠……!”

그때였다.

꾸구구구구궁……!

5층 전체가 떨렸다.

-드래곤 컬트, 녹룡파의 108 녹룡단이 해피를 향해 다가옵니다!

-지고의 위상, 검은 모래가 해피를 향해 다가옵니다!

…….

…….

-죽음의 성좌, 모티스의 화신이 해피를 향해 다가옵니다!

-오크의 성좌, 오키니움의 화신이 해피를 향해 다가옵니다!

신적 존재, 또는 그와 맞서 싸울 정도로 강력한 존재들 이십여 체가 강림하려 했다.

“아, 며칠 잠잠하다 했더니만.”

해피는 팬들에게 쫓기는 인기인처럼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미친놈.”

빌은 이를 갈았다.

해피가 쳐들어올 때, 하늘을 부순 적이 있었다.

그 하늘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7대 길드의 길드장 대부분이 힘을 모아 만든, 일종의 차원 방어벽이었다.

강력한 성좌나 지고의 위상 등이 함부로 5층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어벽.

7대 길드의 길드장이나 부길드장급의 힘이 아니면 내부에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저도 궁금하더군요. 하늘은 어떻게 부순 겁니까?”

“간단해. 6층에서 빅 배트로 바닥을 내리쳤어.”

“…….”

“그나저나 저놈들 모조리 강림하면 5층은 멸망하지 않나?”

-강력한 신적, 또는 그에 준하는 존재들이 동시에 5층에 강림하려 합니다!

-5층은 낮은 층이므로, 전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동시에 강림하는 순간 5층은 곧 멸망하게 됩니다!

-집단 강림까지 남은 시간 : 25분 59초…….

-집단 강림까지 남은 시간 : 25분 58초…….

-집단 강림까지 남은 시간 : 25분 57초…….

“하하하! 진짜 망하나 보다. 하핫!”

해피는 이 상황이 웃긴 듯이 웃어댔다.

빌은 책임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은혁.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다. 내가 해피와 자폭할 테니, 너는 그동안 염훈을 데리고 와라. 내가 자폭하면 해피가 두르고 있는 혼돈의 힘이 조금은 약해질 터.”

그 틈에 염훈과 함께 해피에게 막타를 먹이라는 것이었다.

해피는 대놓고 말하는 빌의 말을 듣고 싱글거리며 웃을 뿐, 별말이 없었다.

“그럴 거 없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요.”

은혁은 해피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혹시 도박 좋아합니까?”

“도박? 음. 도박도 좋지!”

“그럼 각자의 모든 걸 걸고, 저와 한판 붙어보시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