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 염훈 VS 해피 (2)
“크큭, 귀엽군. 근데 그거 아냐?”
해피가 염훈을 향해 세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지금 네 혼자 실력으로는 내게서 3분도 못 버틴다는 거.”
“어? 3분? 의외로 기네?”
염훈이 감탄조로 말하자, 해피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네가 지루하게 도망친다는 가정하에서 3분이다. 설마 너 정말 정공법으로 내게 도전하……!”
“왜 그리 말이 많냐! 겁나냐?”
“어쭈? 이 자식이 무슨 소년 만화 주인공인 줄 아나? 덤벼 봐!”
“싫다! 네가 덤벼!”
“아놔, 가지가지 하…….”
그 순간.
투쾅!
염훈은 [지크리엘의 날개]를 기습적으로 발동, 돌진했다.
* * *
부활의 방.
그곳에는 은혁, 빌, 저스티스, 슬레이버가 모여 있었다.
은혁은 해피에게 당해서 부활의 방으로 왔고, 빌, 저스티스, 슬레이버는 브라이언에 의해 왔다.
브라이언이 [전기 충격] 스킬로 빌, 저스티스, 슬레이버의 심장을 가격해서, 최대한 안전하게 부활의 방으로 보낸 것이다.
브라이언은 A팀이었기에, B팀의 세 사람을 편법적으로 부활의 방으로 보내더라도, B팀 입장에서 페널티는 없었다.
‘좋아. 전부 계획대로다.’
그들은 은혁이 심어 둔 소환수와 방송용 카메라의 시야를 [메스 텔레파시] 스킬로 공유받아서 보고 있었다.
“염훈은 왜 정면으로 싸우는 거지?”
“원래 도망치면서 시간 끄는 역할 아니었나?”
다들 당황했다.
하지만 은혁은 태연했다.
‘역시 이 부분은 회귀 전 역사대로 흘러가나?’
은혁은, 이미 크게 뒤틀린 역사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숙명을 보며 착잡한 심정이었다.
‘회귀 전에도 염훈은 해피와 싸웠지.’
제2차 길드 대전의 최강자 중 하나인 해피.
그 해피를 쓰러뜨리는 이는 염훈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3만 명의 희생과 염훈의 희생이었지.’
제2차 길드 대전의 후반부에서, 해피는 여러 부길드장을 터뜨려 죽인다.
그리고 뒤늦게 방심한 채 나타난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마저 살해한다.
7대 길드장 전체에서도 손꼽히게 강했던 올마스크의 어이없는 죽음은, 해피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강적을 죽이는 데 성공한 해피는 비정상적인 쾌감에 빠져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지는 대신, 걷잡을 수 없는 광기에 빠진다.
그리고 5층 길드연합국 전체를 무너뜨리기로 한다.
그것을 막기 위해 플레이어와 NPC 합쳐, 약 3만 명이 해피를 향해 돌진했다.
제2차 길드 대전의 마지막에 만들어진 자유 연합군인 셈이다.
그중에 은혁과 염훈도 있었다.
은혁은 염훈에게 도망치자고 했었다.
‘지금의 우리 실력으로는 무리야! 피해야 해!’
‘안 돼! 여기서 우리가 도망치면 길드연합국의 모두가 죽는다!’
염훈은 누구보다 가장 앞장섰다.
은혁 또한 염훈을 욕하며 곁에 섰다.
해피는 자신을 저지하러 몰려드는 여러 적들 앞에서 행복해했다.
‘하하하! 와라!’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결국, 해피 또한 지쳤다.
은혁의 생각이 맞다면, 해피가 지친 결정적인 이유는 3만의 적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절박한 것들을 일일이 죽이는 일이 너무 지루해져서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격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은혁과 염훈은 해피에게 돌진했고. 은혁이 [패링]으로 해피의 공격을 겨우 빗겨내는 순간, 염훈이 [2초 무적]을 응용한 공격으로 심장을 꿰뚫어 죽인다.
이 일로 인해, 실력에 비해 명성이 높지 않았던 은혁과 염훈의 명성은 매우 높아진다.
명성 높은 이들 대부분이 제2차 길드 대전 때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피를 마지막 순간에 죽인 덕분에, 은혁과 염훈의 레벨은 급상승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명성과 레벨로도 3군주 세력과 정면으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여, 아직 끝나지 않은 제2차 길드 대전의 혼란기 속에서, 3군주가 서로 싸우고 지배하는 통합층인 70층~89층을 매우 변칙적인 방법으로 통과, 90층으로 향했었다.
‘후, 지금 회상해도 진짜 말이 안 되는 방식이었어.’
다양한 직업을 지닌 지금도 회귀 전에 한 일을 해보라고 하면 주춤할 정도다.
“강은혁?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래 하지?”
빌이 물었고, 은혁은 회상을 중지했다.
“별거 아닙니다. 하여간 염훈은 믿어도 됩니다.”
“괜찮겠나?”
“아뇨.”
물론, 전혀 괜찮지 않다.
지금의 염훈이 회귀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는 해도, 해피와 일대일 대결을 벌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도박이다, 염훈.’
은혁이 생각한 도박수가 통한다면 염훈이 정말로 해피를 이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플랜 B는 계속 진행해야 한다.
“분명한 건, 일은 이미 벌어졌고, 우리는 작전대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보다 그 작전이라는 게 실제로 말이 되긴 하는 건가?”
“해보죠!”
은혁은 [그림자 결속]으로, 빌, 슬레이버, 저스티스의 힘을 한곳에 모았다.
즉, 이번에는 은혁 자신은 중심에서 모두의 스킬이 잘 발동하도록 돕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나머지 길드장들이 힘을 쓰도록 했다.
은혁의 플랜 B는 다음과 같은 수순을 지닌다.
1단계. 최대한 시간을 끌며 코인을 모은다.
2단계.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염훈을 제외한 모두가 부활의 방에 모인다.
3단계. 빌은, 아래의 4단계부터 8단계까지의 일을 반복하는 동안, 모두에게 필요한 막대한 양의 마력을 공여한다.
4단계. 은혁은 [시스템 해킹]의 힘으로, 무형의 자산인 코인의 가치와 작동 방식을 분석한다.
5단계. 분석한 코인의 정보를 전부 [텔레파시]를 통해, 슬레이버에게 전달한다.
6단계. 슬레이버는 받은 코인을 [황금 변환] 스킬로 황금으로 만들어 쌓아둔다.
7단계. 잔뜩 쌓인 황금에 저스티스의 [정의 부여] 스킬을 이용해 가치를 100배로 증가시킨다.
8단계. 저스티스가 만든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코인을, [시스템 복구] 스킬로 다시 정상적인 형태로 복호화한다.
‘마지막 9단계는, 1억 코인이 모이는 순간 중립 상점으로 가서 즉시 승리 주문서를 구매하는 것!’
코인은 순조롭게 쌓이고 있었다.
-35,960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5,567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55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2,969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15,961 코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코인 획득 메시지는 쌓여만 갔다.
은혁의 예상과 다른 점은, 벌어들이는 코인의 액수가 안정적인 복리 방식이 아니라 랜덤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인위적인 해킹 방식으로 가치가 변환된 코인이라 그런 걸까?’
제한 시간이 다 끝나기 전에 코인을 다 모으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그전에 염훈이 해피와 싸우다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지금 이 일을 도중에 끊고 염훈을 도우러 갈 수도 없어!’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의 힘을 빌려서 하는 일이었으므로.
쿠쿵……!
쿠쿠쿵……!
해피와 염훈이 격돌하는 진동음이 이곳까지 울려 퍼졌다.
속이 탔다.
“진정해라, 강은혁.”
빌이 말했다.
“나는 딱히 근성 같은 걸 믿는 타입은 아니지만, 지금의 염훈이라면 괜찮을 거다.”
늘 냉철한 빌이 그렇게 말하니 은혁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콰콰콰쾅……!!
심상치 않은 굉음이 울려 퍼지고, 브라이언이 [텔레파시]를 요청해 왔다.
브라이언은 은혁의 흡혈충에 기생당한 이후로, 사실상 불패불굴 길드의 부하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으며, 지금은 멀리서 염훈과 해피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은혁. 염훈이 방금 죽었다.’
* * *
“후우, 겨우 죽였네.”
스테이지의 북쪽 끝.
화산 지대를 뚫고도 한참 끝이었다.
“돌진만 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 염훈.”
해피는 척추가 부러져 죽은 염훈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염훈은 강화형 [무적 돌진] 스킬을 이용해 끊임없이 해피에게 돌진했다.
해피는 그때마다 성가셔하며 피했다.
정말로 염훈의 공격이 위험해서는 아니다.
염훈의 [2초 무적]을 응용한 찌르기는 말하자면 작은 바늘과도 같았다.
급소에 찔린다면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해피가 방심하지 않으면 당할 리가 없었다.
해피는 귀찮게 하는 염훈을 갖고 놀기 위해, 그답지 않게 밀리고 당황하는 척했다.
염훈은 그때마다 더욱 용기를 불태워, 해피와 격돌했다.
두 사람은 충돌하고 피하며 북쪽 끝까지 도달했고, 염훈의 등이 북쪽을 향하는 순간, 해피가 역으로 혼돈을 터뜨리며 돌진했다.
그리고 염훈을 스테이지 경계면에 처박았다.
“흐흐흐. 이번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완전히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알았겠지?”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꼼수는 많다.
인공 유닛을 이용해 죽이거나, 아니면…….
“지금 내가 한 것처럼 스테이지 경계면에 아예 처박아서 죽이면 되는 거지.”
혼돈의 힘을 담아, 관리국이 만든 스테이지 경계면에 처박으면 아무리 염훈이라 해도 죽는다.
빙글.
해피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뒤돌아서 걸어갔다.
‘강은혁이 뭔 꼼수를 부리고 있는지 궁금하네.’
해피는 브라이언을 우선 잡아 족치기로 마음먹었다.
그 순간.
“아직……이다……!”
“허?”
돌아보니 염훈이 부들거리며, 스스로에게 [상급 치유]를 걸고 일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어떻게 일어나는 거지?”
“절묘하게…… 5차 각성했거든.”
염훈이 힘겹게 웃으며 말했고, 해피는 깨달았다.
“5차 각성 보너스인가.”
“응.”
“내게 계속 덤빈 건 일부러였나.”
“그래. 그래야 숙련도가 빨리 오르니까.”
염훈은 은혁과 조율해서, 5차 각성이 머지않은 수준까지 숙련도를 이미 올린 상태였다.
그리고 염훈은 해피에게 일부러 싸움을 걸었고, 해피의 마지막 일격에 당해서 만신창이가 된 순간 5차 각성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성기사 숙련도가 10%++++에 도달했습니다!
-5차 각성 선택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A. 직업의 등급을 올린다.
-B. 직업을 승급한다.
‘승급한다.’
-5차 각성 선택지로, 승급을 선택하셨습니다!
-100층탑의 시스템이, 성기사 숙련도의 방향성을 분석합니다.
-추천 승급 선택지는 단 하나만 존재합니다!
A. 불패불굴의 성황제.
‘엥?’
염훈은 눈을 껌뻑였다.
‘성황제? 뭔가 엄청난데?’
-SS급 직업 불패불굴의 성기사 → SSS+급 직업 불패불굴의 성황제
-모든 스탯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모든 스킬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근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근력 : A+ → SSS+
-축하드립니다! 의지력 잠재력이 상승합니다!
-현재 의지력 : A → SSS+
-현재 성황제 숙련도 : 10%++++.
-성황제 고유 스킬 [10초 무적]을 획득하셨습니다!
-성황제 스킬 [광역 홀리 채널링]을 획득하셨습니다!
-성황제 패시브 스킬 [절대적 존재감]을 획득하셨습니다!
…….
…….
-성황제 스킬 [절대 지휘]를 획득하셨습니다!
-성황제 스킬 [법령 제정]을 획득하셨습니다!
-성황제 스킬 [플레이어 부활]을 획득하셨습니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스킬들이다.
하지만 염훈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힘겹게 일어났다.
“으으, 이런 느낌인가. 일부러 목숨 걸고 위험하게 싸워서 숙련도 올리는 게…….”
지금 염훈이 생각하는 것은 강해진 자신도 아니고, 눈앞의 강적 해피도 아니었다.
‘이런 고생을 아무렇지 않게 해왔구나, 강은혁.’
염훈은 정점에 도달한 순간, 그동안 은혁이 고생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녀석이라고 안 아팠을까? 안 힘들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은혁은 팔이 잘려도, 다리가 얼어붙어도 태연하게, ‘계획대로다’라고 말하며 싸워 왔다.
‘일일이 아파하면, 곁에서 지켜보는 내가 괴로워할 테니까.’
염훈은 문득, 은혁에게 은혜를 갚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고의 은혜 갚기는 혼자 힘으로, 아무리 아파도 일일이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강적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