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화 : 59층 클리어
염훈이 부담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지금의 염훈은 3군주 세력의 테러 미수 행위에 대한 마음의 위안 그 자체였으므로.
‘염훈을 믿고 마음을 모아주면 이길 수 있어. 실제로 해피를 상대로도 이겼잖아?’
이러한 마음이 매우 강하게 퍼져 있었다.
“으음, 그럼 이제 어쩌지?”
“뭘 어째? 우리가 늘 하는 거 있잖아?”
“그게 뭐더라?”
“탑을 오르는 거지.”
* * *
-59층 : 검은 화산 지대
은혁은 기절했다 깨어난 염훈을 바로 59층으로 끌고 왔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척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도록.
단, 레벨이 높은 기자와 카메라맨을 극소수 데리고 왔다.
“감개가 무량하네.”
염훈은 다른 것보다 59층에 온 사실에 감격했다.
은혁과 함께 5층 광장에서 스크린을 통해 보며, ‘우리도 언젠가 저곳으로 가자’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은혁은 통합길드장이 되고 자신은 성황제가 되어 59층에 온 것이다.
쿠르르르르릉……!!
화산 지대 특유의 지진, 용암 분출, 유황 가스 분출 등이 있었지만 염훈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쿠오오오오오……!!
멀리서 드래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미션창이 떴다.
<59층 메인 미션 : 블랙 드래곤 처치>
-목표 : 검은 화산 지대에 존재하는 블랙 드래곤을 한 마리 이상 처치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블랙 드래곤의 보물 획득.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없음.
“더 쉬워졌네.”
이전에 59층 메인 미션 클리어를 위한 연합대가 치른 메인 미션은 네임드 화산룡을 처치하는 미션이었다.
워잭, 레나, 테일러, 브라이언까지.
총 네 명의 부길드장들이 달라붙어야 했을 정도로 강대한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클리어하고 나서 메인 미션 난이도에 조정이 있었는지, 아무 블랙 드래곤이나 죽이면 클리어였다.
“염훈. 이번 미션은 네 힘으로 해봐라.”
“응?”
“너 혼자서, 여기 있는 블랙 드래곤을 열 마리 이상 죽여 봐.”
은혁은 염훈의 전투력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은혁이 다 죽이고 염훈이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길드연합국의 기대에 부흥해 보라고.”
“흠, 그럼 해볼까!”
염훈은 달려 나갔다.
* * *
5분 뒤.
“은혁아.”
“왜?”
“나, 너무 갑자기 강해진 거 같지 않냐?”
염훈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블랙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쓴 채 황금빛 신성력를 뿜고 있는 모습은 가히 전설의 용사 그 자체였다.
“그냥 [성황제의 돌격]만 써도 되던데?”
두꺼운 블랙 드래곤의 가죽은 타오르는 용암조차도 뚫지 못한다.
하지만 염훈이 발동한 [성황제의 돌격]은 단숨에 꿰뚫었다.
순식간에 블랙 드래곤 다섯 마리를 죽이고 돌아온 염훈은, 은혁 앞에서 잠시 스스로를 분석했다.
“핵심은 [성황제의 돌격] 자체가 아니라, [광역 홀리 채널링]인 거지?”
“맞아. 잘 아네.”
“길드연합국 플레이어들의 힘을 받아 낸다는 게 이런 거구나……!”
길드연합국 인구수가 159만 명 정도다.
얼마 전 해피가 벌인 난동으로 죽은 이들이 매우 많겠지만, 그래도 150만 명은 넘는다.
이 150만 명 중 염훈에 대한 지지자가 절반인 75만 명이라 가정하고, 또 이들 중 염훈을 실시간으로 응원하는 이들이 10%인 7만5천 명이라고 가정해도, 이들이 보내는 에너지는 가히 압도적이다.
말 그대로 드래곤 대여섯 마리쯤은 5분 만에 맨몸으로 찢어 버릴 정도.
쿠오오오오오……!!
크와아아아아……!!
저편에서 블랙 드래곤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소형급부터 초대형급까지.
열 마리가 넘는 블랙 드래곤이 염훈을 느끼고, 전투를 대비했다.
“이젠 좀 힘들 거다. 초대형급은 나도 각오해야 하니까.”
은혁이 말했다.
36층~37층 구간의 봉인된 그린 드래곤 살라키오스가 크기로만 분류하자면 대형급에 속한다.
네임드 대형급과 이름 없는 초대형급은 비슷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을 터.
“가라!”
“좋아! 가볼까!!”
염훈은 [지크리엘의 날개]를 발동하고 돌진했다.
“한꺼번에 덤벼!! 으와아아아!!!”
“쿠오오오오!!!”
열 마리의 블랙 드래곤이 용암을 닮은 브레스를 내뿜었다.
“[10초 무적]!!”
촤아아아아아아……!!!
[2초 무적] 때보다 훨씬 강해지고 지속 시간도 증가한 [10초 무적]이었다.
“사기네.”
멀리서 구경하던 은혁은 딱 한마디 하고 계속 구경했다.
염훈은 [지크리엘의 날개]로 비행하며, 약한 드래곤부터 노렸다.
“[홀리 라이트닝]!!”
빠지지직!!
일격에 소형급 블랙 드래곤 하나가 죽었다.
염훈은 냅다 상승 비행하여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성황제로 승급한 염훈의 공격 하나하나는 매우 위력적인 데다가, [10초 무적]으로 심신에 여유가 생긴 덕분에 더욱 여유롭게 드래곤 사냥이 가능했다.
‘아직도 방심하지 않은 상태의 해피에 비하면 약하지만, 크게 밀리지는 않는다.’
콰콰콰쾅!!!
그때, 염훈은 예상 못 하고 은혁은 예상한 일이 일어났다.
-드래곤 컬트 흑룡파의 수장, 헬카리우스가 강림합니다!
쩌어어억……!!
하늘의 차원이 비닐 포장처럼 천천히 찢어지더니, 거대한 드래곤의 검은색 머리통이 나왔다.
‘엄청나군.’
머리통의 턱부터 이마까지의 길이는 5층 상가 건물만큼이나 컸다.
초대형급을 뛰어넘는 엄청난 크기.
성좌의 본체를 물어뜯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히익…….”
열심히 드래곤을 사냥하던 염훈도 기겁해서 은혁 곁으로 날아왔다.
“저, 저게 뭐야?!”
“최강의 블랙 드래곤이지.”
은혁은, 헬카리우스를 상대로 ‘죽은 척’하는 데 성공했다는 교황제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은혁과 염훈은 손가락 하나 꼼짝 못 한 채, 하늘에서 완전히 머리를 내민 헬카리우스를 바라만 봤다.
-꽤 괜찮은 도발이구나, 인간들이여.
헬카리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히 도발하려고 드래곤 사냥한 건 아닌데…….”
염훈이 중얼거렸고, 은혁은 염훈을 툭 쳐서 조용히 시켰다.
-나에게 도전을 원하는가?
그 순간, 선택지가 떴다.
-흑룡파의 수장, 헬카리우스가 흑룡파의 차원에 초대하였습니다!
-초대를 수락하시겠습니까?
-A. 수락한다.
-B. 거절한다.
수락하면 흑룡파의 차원으로 전송된다.
은혁은 양자택일에 응하는 대신, 헬카리우스를 향해 목청을 돋우어 말했다.
“위대한 헬카리우스여. 거래를 요청합니다.”
원래는 이런 요청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은혁은, 헬카리우스가 일부러 차원의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 정도라면, 충분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슨 거래를 원하는가?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 흑룡파의 차원에 존재하는 용암을 받고 싶습니다.”
흑룡파의 차원은 59층을 닮은 용암 지대다.
그리고 그곳에는 끝없는 용암천이 흐른다.
이 용암천의 불꽃은 9성급 아이템조차 녹여 없앨 정도로 뜨겁다고 한다.
-그것을 원하는 이유는?
“가공하고 싶은 물질이 있는데, 현재 제가 지닌 화염 스킬만으로는 가공이 어려울 것 같더군요.”
-그 대가로 무엇을 줄 것인가?
“저희는 얼마 전에 행복 길드장 해피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래서? 그를 넘기겠다는 건가?
“원하십니까?”
-……그렇진 않다.
골칫거리일 뿐이다.
“그를 잘 보관하겠습니다.”
-흐흐흐…….
머리가 쑥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대한 드래곤의 손아귀가 천천히 나왔다.
-용암천의 용암이다.
주르르륵.
한 움큼 분량의 용암이 흘러나왔고, 은혁은 얼른 [사이오닉 필드] 스킬로 허공에 띄웠다.
-그대와의 대화는 재미있었다.
실제로는 몇 마디 나누지도 않은 아주 짧은 대화였건만, 헬카리우스는 그렇게 말했다.
“저도 무척 뜻깊은 대화였습니다.”
스르르륵.
차원의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교황제를 닮은 자여…….
좁아지는 차원의 문에, 헬카리우스의 한쪽 눈이 보였다.
-이것은 경고이자 충고이니, 다시는 시비를 걸지 말라.
스르륵.
그 말을 끝으로 차원의 문이 닫혔다.
-축하드립니다! 59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플레이어가 처치한 블랙 드래곤의 모든 보물이 플레이어에게 귀속됩니다!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염훈은 보상으로 2억 5천만 골드 정도의 금화와 각종 보물을 얻었다.
“좋아, 다 끝났군!”
은혁은 손가락을 딱 튕겼다.
“드래곤 사체는 그냥 두고 가자고. 헬카리우스를 열받게 할 수 있으니까.”
“어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바로 60층으로?”
“아니, 바로 60층 환경에 진입하는 건 위험해. 진공에 무중력 환경이니까.”
다차원성계 또는 다차원우주공간이라 부르는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진공에 무중력이지만 소리는 전달이 되는 기묘한 우주 공간.
일반 플레이어보다 훨씬 강해진 은혁과 염훈으로서도 그곳에 진입하는 것은 각오가 필요했다.
“그럼?”
“일단 먼저 5층으로 돌아갈래? 28.5층에 들렀다가 갈게.”
“그래, 그러지, 뭐. 으으, 난 가서 좀 쉬어야겠어.”
염훈은 아직 피로가 덜 풀린 듯이 말했다.
* * *
그 뒤로 며칠간 평화가 이어졌다.
길드연합국 플레이어들은 의욕적으로 레벨을 올렸고, 은혁은 주로 28.5층에서 무언가를 제작하며 시간을 보냈다.
용암천의 용암을 이용해 무언가를 제작하는 것 같은데, 무엇인지는 염훈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염훈. 더 많이 인기를 얻어라.’
가끔 [텔레파시]로 이런 지시를 내렸다.
‘나는 이미 꽤 인기인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널 좋아하지. 하지만 희망이 완전히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이나, 노약자, 장애인 같은 사람들이 남아 있어. 그런 사람들을 마저 공략해.’
‘쩝, 알았다.’
염훈은 황금 궁전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약자들을 도왔다.
“흑흑. 너무 힘들어요…….”
“100층탑은 너무 폭력적입니다. 삶의 희망을 잃었습니다…….”
“나 같은 장애인은 왜 자꾸 살리려는 거야! 이 망할 놈의 포션! 자꾸 가져오지 말라고!!”
은혁의 말대로 어려운 이들은 구석구석에 있었다.
통합길드장이 되기 전에 노예였던 NPC부터, 큰 부상을 입고 어중간하게 치료받고 더욱 괴로워하는 장애인까지.
‘생각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네.’
염훈은 치료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제 [광역 치유], [광역 축복], [신성한 지휘] 스킬로 치료해드리겠습니다.”
힘든 이들을 불러 모은 뒤 그렇게 말했지만, 호응은 그저 그랬다.
“그래서 금화도 잔뜩 준비했습니다!!”
염훈은 58층에서 얻은 금화를 바닥에 쏟아냈다.
촤르르르르륵!!
“…….”
괴로움을 호소하던 이들이 조용해졌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염훈이 얼른 말했다.
“여러분의 아픔이 돈으로 무마될 정도로 간단하다고 생각해서 금화를 꺼낸 건 결코 아닙니다.”
염훈은 새로 얻은 성황제 스킬인 [절대적 존재감]을 발동하며 말했다.
염훈의 진심 어린 태도와 금융의 힘으로 약자들 또한 마음을 열었다.
‘좋아. 더 열심히 약자들을 돕자.’
그것이 염훈의 적성에 맞는 일이기도 했거니와, 은혁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니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은혁이 녀석이 심심해서 내게 착한 일을 시키는 것일 리는 없지. 내가 하는 이 착한 행동 하나하나가 나중에 탑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래서 염훈은 더욱 진심으로 약자들을 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은 염훈을 졸졸 따라다니는 밤말 신문 기자들에 의해 대서특필되었다.
* * *
“후아아아암.”
해피는 평화의 감옥 지하 10층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은혁과의 약속을 때려치우고 탈옥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금방 또 잡히겠지.’
“후후…….”
웃음소리가 들려서 그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시리우스가 있었다.
같은 행복 길드 출신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을 한 곳에 가두는 건 위험한 일이었기에 저스티스는 반대했다.
하지만 은혁은 ‘상관없습니다. 끼리끼리 모여 있게 하죠, 뭐. 해피는 부하랑 같이 뭉쳐 있으면 오히려 더 지루해할 테니까.’
실제로 그런 건지 아닌 건지, 해피는 시리우스를 지루한 얼굴로 돌아봤다.
“뭐가 그리 웃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