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 플랜 B (1)
해피가 죽건 말건, 아예 대놓고 정찰병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물론, 실제로 죽을 가능성이 작다는 것을 은혁도 알고 해피 자신도 알았다.
“흐흐. 생각해보지.”
“회의가 끝날 때 답 주시죠. 그럼 다시 본래 이야기인 관리국은 왜 이 사태를 해결 안 하는가의 둘째 이유로 돌아오죠.”
모두가 은혁의 입을 바라봤다.
“둘째. 관리국은 복구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허참, 역시.”
슬레이버는 짐작했다는 듯이 말했다.
“3군주 측의 관리국을 향한 일종의 로비 행위가 있었다는 거군? ‘우리가 60층~69층 좀 부술 테니 복구 좀 천천히 해달라~’라는 식으로.”
“증거는 없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크죠.”
대사관의 이스트 대사는, 3군주의 성명서가 통합길드장인 은혁 앞으로 가지 않고 자신 앞으로 온 것에 대해 당황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스트 대사조차 모르는 윗선에서, 관리국 측과 3군주 측의 물밑 접촉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저분한 정치 거래 경험이 많은 슬레이버는 단박에 이해했다.
하지만 염훈은 은혁과 슬레이버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관리국은 평등하고 중립적인 집단 아냐? 3군주가 관리국을 돈으로 매수했다고?”
“돈으로는 매수가 어렵겠지. 다만, 다른 걸 대가로 지불했을 수는 있어.”
“그게 뭘까?”
“한번 생각해 봐. 나도 확실한 정답은 모르지만.”
“으음…….”
염훈은 잠시 고뇌했으나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염훈. 관리국은 100층탑을 완전히 공략하는 플레이어가 있기를 바랄까, 바라지 않을까?”
이 질문은 모두의 의식을 환기시켰다.
“어어, 바란다? 아님?”
“맞아. 어쩌면 3군주는 관리국 측에 이런 조건을 걸었을지도 몰라. ‘우리 3군주 중 한 명이 조만간 100층탑 클리어할 것이다. 근데 길드연합국 놈이 치고 올라오면, 놈들과 싸우느라 100층탑 공략이 늦어진다. 그러니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60층~69층을 완전 파괴 해서 놈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동안만 60층~69층을 수리하지 말아달라’라는 식으로.”
물론, 이는 확인된 바가 아니었지만, 파장은 충분했다.
“헐!”
염훈은 불공평함에 개탄스러워했다.
나머지 길드장들은 크게 경악했다.
“놈들이 그 정도로 강하다는 건가!”
은혁은 회귀 전 기억과 비교해 봤다.
‘역사가 크게 뒤틀렸지만, 순수하게 강함으로만 따지자면, 그렇다. 3군주는 이미 100층탑 꼭대기에 도달할 정도의 강함은 이미 확보했다.’
회귀 전 100층에서 뮤비즈와 싸울 때의 은혁보다, 지금의 3군주가 훨씬 강하다.
“네. 그럼에도 그들이 아직 100층탑을 클리어하지 못한 이유는…….”
“놈들이 서로 반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거기에 놈들의 약점이 있습니다.”
3군주 세력이라 묶어 부르지만, 그들은 서로를 믿지 않는다.
한편, 길드연합국도 지배자인 길드장들은 일곱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이제는 통합되었죠.”
“그런가. 이제 이해가 됐다.”
빌이 말했다.
“놈들이 왜 급발진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후후. 모두를 위해 말씀해주시죠.”
“네가 이미 말한 그대로야. 길드연합국이 하나로 일통되었기에, 그 힘이 정말 두려운 거다.”
그 말에 염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정도일까요?”
“예를 들어보겠다, 염훈 길드장. 가령 우리 길드연합국이, 3군주 세력 중 하나, 가령 카인 쪽에 붙는다고 가정해 봐.”
“아……!”
“길드연합국 + 카인 연합은 나머지 2군주를 순식간에 쓰러뜨릴 거다. 나머지 2군주는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니, 결국 각개 격파 당하겠지? 무엇보다 덩치는 길드연합국 + 카인 연합이 더 크니까. 그리고…….”
이어서 슬레이버가 말을 받았다.
“막판에, 길드연합국이 카인을 배신해서 쓰러뜨리면, 길드연합국의 압승. 끝.”
“헐…….”
염훈은 자신이 너무 순진했다고 생각하며 은혁을 바라봤다.
“저, 정말 그게 말이 돼?”
“안 될 건 없지.”
“그렇구나……. 이제 좀 이해가 가네.”
염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기준에서 보면 3군주 놈들이 60층~69층을 통째로 파괴하고 봉쇄한 게 어이없는 급발진이지만, 놈들 기준에서는 나름 합리적인 행동이네?”
“그런 거다, 염훈. 그리고 너 정도면 이해가 빠른 거야.”
이로써 상황 파악이 끝났다.
“자, 그럼 제 계획을 말씀드리죠. 성공률과 효율성이 모두 가장 낮은 플랜 D부터.”
보통은 플랜 A부터 가지만, 이번에는 역순으로 갔다.
“플랜 D는 정찰을 통한 루트 확보입니다.”
은혁은 해피를 똑바로 바라봤다.
“해피 길드장님은 시스템 파괴에 능하시고, 70층 앞까지 가보신 적이 있다고 하셨죠? 그러니 60층~69층의 상황을 직접 정찰해 보시고, 해결책을 찾아보십시오. 안전한 루트가 있으면 알아보시고요.”
“흠. 그러지, 뭐. 대신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내 정찰 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줄 것.”
“호오? 그 이유는?”
“멍청한 것들에게 내 활약상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지.”
해피는 연신 히죽거렸다.
“100층탑의 정상을 노린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건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음…….”
충격을 받는 이들도 많겠지만, 진실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했다.
‘그리고 진실을 보고 좌절한 이들이 다시 일어나면, 그들의 마음이 염훈에게는 큰 힘이 될 거다.’
“좋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십시오.”
“지금 바로?”
“네.”
“플랜 C부터 A까지도 듣고 싶은데.”
“아, 안보상의 이유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허참, 우린 이제 깐부잖아.”
“아닌데요.”
은혁은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파괴와 혼란을 자랑스러워 하는 인간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정보가 제약될 수 있습니다.”
“…….”
해피는 처음으로 소외감을 느꼈다.
예전에는 누가 자신을 소외시키려 하면, 그냥 통째로 모임이건 건물이건 파괴해 왔다.
하지만 은혁과 염훈에게 패배한 뒤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허, 기분 더럽네.”
해피가 툭 내뱉었다.
은혁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해피는 불행한 기분을 느끼며 나갔다.
“속이 다 시원하네.”
“으하하!”
그 모습을 본 다른 길드장들은 묘하게 기뻐했다.
은혁도 쓴웃음을 지었다.
‘해피가 지은 죄가 많으니 하는 수 없지.’
“그럼 플랜 C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구원 길드장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갑자기 구원 길드장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당혹스러워했다.
“우린 그가 어딨는지도 모르잖나?”
“그게 말이죠.”
은혁은 구원 길드에서 개최했던 대련 시합의 우승컵을 꺼냈다.
“이걸 쓰면, 저를 포함한 4인이 구원 길드장 앞으로 전송됩니다.”
“잠깐만, 은혁아.”
염훈이 끼어들었다.
“그거, 위험한 거 아냐? 그냥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도전하러 가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이 방법 말고는 구원 길드장 올마스크와 접촉하기가 어려워.”
그러자 다들 “기각.”이라고 말했다.
“올마스크는 일종의 아웃사이더야. 해피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지. 지금까지 우리를 방해한 적은 없지만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군. 우리가 가진 힘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거다.”
빌이 말했고, 다른 이들도 동의했다.
“다들 저와 의견이 같군요. 사실은 저도 플랜 C는 배제하려 했습니다.”
통합길드장의 목걸이를 사용하면 7대 길드의 길드장 위치를 전부 알 수 있다.
그것으로 회의를 하기 전에 은혁은 올마스크의 위치를 알아내려 했으나, ‘확인 불가’ 메시지가 떴었다.
은혁은 그 사실에 불길함을 느꼈고, 플랜 C는 내심 배제하기로 했다.
‘엄밀히 말해 포기하는 건 플랜 C-1이고, 플랜 C-2는 남겨뒀지만.’
은혁의 이런 구상은 염훈에게도 말해두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구원 길드장 카드를 언급한 뒤 파기함으로서 최종 플랜의 성공률을 높여두는 포석이었다.
“그럼 플랜 A와 B가 남는군요.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실행할 겁니다. 우선…….”
* * *
은혁은 화산 지대인 59층을, 더욱 강력한 화산 지대로 만들고 있었다.
“증식은 순조롭군.”
흑룡파의 수장, 헬카리우스에게서 받은 용암천의 용암을 용암 지대에 이식한 뒤, 그대로 증식시키는 중이다.
이대로 며칠이 지나면 화산 지대는 대규모 용암천으로 바뀔 것이다.
“넌 미친놈이다, 강은혁.”
안전모를 쓴 빌이 말했다.
“그보다 대규모 [양자 터널]은 잘 만들고 있습니까?”
“쉽게 말하는군.”
빌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은혁은 59층의 바닥과 58층의 천장을 연결하는 거대한 [양자 터널]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었다.
“내 스킬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제가 도우면 가능하죠?”
“네가 돕는다면 가능하지. 하지만 정말 플랜 B를 진행할 건가?”
“네!”
은혁의 플랜 B는 다음과 같다.
1단계. 59층 전체를 아주 뜨거운 용암으로 만든다.
2단계. 59층 바닥 즉, 58층의 천장에 구멍을 뚫는다.
3단계. 59층의 용암이 58층의 기가 스틸 성채에 쏟아진다.
4단계. 기가 스틸은 매우 단단하지만, 용암천의 강력한 용암을 이용하면 용융시키는 게 가능하다.
5단계. 적당히 물렁해진 기가 스틸을 가공하여 거대한 탑을 제작한다.
6단계. 거대한 탑을 제작하는 동안 인공 게이트를 만든다.
7단계. 탑을 인공 게이트에 밀어 넣고, 밟고 올라가서 70층에 도달한다.
“그게 말이 되냐?!”
플랜 B를 접한 수많은 이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6단계까지는 가능하다고 쳐도, 7단계는 상식적으로 아예 말이 안 됐으니까.
‘다차원우주의 텅 빈 60층~69층 공간에 맞춘 높은 탑을 만들고, 그 탑을 걸어 올라가 70층에 도달한다?’
그 장면을 머리에 그려내지 못한다고 해도, 상상력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은혁이라 해도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60층~69층은 통째로 파괴되다시피 한 상태.
매우 불안정한 다차원 성계 영역이다.
“즉, 3군주가 60층~69층의 공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 지금만 쓸 수 있는 방법이지요.”
“아니,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은혁은 믿음을 담아 말했다.
온갖 이상한 실험을 해 온 연구 길드장 빌조차도 말문이 막혔다.
망설이던 빌이 되물었다.
“놈들이 방해하면?”
“3군주 자신들이 오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기가 스틸은 폭탄 테러 따위로 부술 수 없다.
빌도 [아토믹 블래스트]를 써야 겨우 기가 스틸을 녹일 수 있다.
“100층탑 내부에, 층을 뚫는 10층짜리 기가 스틸의 탑을 새로 쌓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허참.”
“저는 오히려 할 만한 것 같은데요. 보세요. 순조롭잖습니까.”
콰르르릉!!
은혁의 [그림자 분신 6.0]과 저스티스가 협동하여 용암천을 만들고 있었다.
기존의 용암에 용암천의 용암을 넣고, [시스템 해킹]과 [정의 부여]로 증식시키는 일이었다.
화산은 일반 용암이 아닌, 흑룡파의 본거지에만 존재하는 용암천의 용암을 분출해 냈다.
“쿠오오오!!”
기존의 블랙 드래곤들조차 견디기 힘들어하며 구석으로 피신해 떠나갔다.
-흑룡파의 수장, 헬카리우스가 경악합니다!
-다이렉트 메시지를 신청해 옵니다!
-YES/NO
“NO.”
받아야 할 건 다 받았으니, 굳이 대화할 필요는 없다.
헬카리우스가 재차 다이렉트 메시지를 신청하려 한 순간, 은혁은 통합길드장의 목걸이를 움켜쥔 채 말했다.
“다이렉트 메시지 일시 차단.”
-헬카리우스는 24시간 동안, 통합길드장 강은혁에게 그 어떤 식으로도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크크크.”
통합길드장의 목걸이에 담긴 권능 중 하나다.
“용암천의 오리지널리티가 훼손되고 59층이 파괴되는 게 싫었다면 애초에 주질 말았어야지. 후후후.”
은혁은 59층 전체가 절절 끓는 용암천으로 변하는 과정을 본 뒤, 이번에는 빌과 함께 바닥을 뚫었다.
“준비됐습니까!”
“후우, 아무리 나라고 해도 두 번은 못 한다. 한 번에 성공시켜.”
기이이이이잉……!!
은혁은 [그림자 결속]을 걸고, 두 사람의 마력 준위를 동조시켰다.
“[스파이럴]!!!”
은혁이 [스파이럴]로 용암과 지반을 한데 모아 뒤틀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59층의 용암 지대 대부분을 범위로 하는 것이기에 은혁에게도 무리가 갔다.
“지금입니다!”
“음!”
은혁의 [광역 돌 부수기] 스킬과 빌의 [양자 터널]을 융합시켰다.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층 뚫기]!!!”
번쩍!!!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