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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63화 (363/434)

363화 : 플랜 B (2)

* * *

58층.

염훈과 슬레이버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쿠르릉……!

쿠르르릉……!

“슬슬 오는 것 같네요.”

“으음.”

염훈은 태연한 데 비해, 슬레이버의 얼굴은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괜찮습니까? 속이 불편하세요?”

“자넨 아무렇지도 않나?”

“음? 뭐가요?”

“층을 뚫는 일 말일세.”

“3군주 놈들이나 해피가 이미 해본 적 있는 일 아닙니까? 우리라고 못 할 건 없죠.”

“허참. 자네도 참 대범하군.”

콰르르르르릉!!!

하늘에 말 그대로 구멍이 뚫렸다.

“오옷!”

“왔다!”

“계획대로 합시다!”

대기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의욕을 보였다.

염훈의 [신성한 지휘]를 받는 이들은 길드연합국 랭킹 100위~25위 수준의 강자들.

평소에는 제멋대로인 이들도, 성황제가 된 염훈의 지휘에는 충실히 따랐다.

그들은 우선 스킬과 엘더니움 금속을 이용해, 하늘에서 끝없이 떨어지는 용암을 받아냈다.

주르르르르륵……!!!

끈적한 용암은 100톤 용량의 엘더니움 그릇에 담겼다.

“용암 받이용 엘더니움 임시 그릇을 만드느라 내 전 재산의 절반을 써야 했다…….”

슬레이버가 중얼거렸지만 염훈은 의외로 가차 없었다.

“우린 모두 통일 길드연합국의 일원이잖습니까. 공적 프로젝트에 네 돈 내 돈이 어딨겠습니까?”

“으윽, 염훈 자네도 강은혁처럼 말하는군.”

그리고 그들 중 사이오닉 스킬 보유자들이, 뜨거운 용암을 적절히 떠서 발랐다.

주르르르륵……!

치이이이이익……!

차가운 기가 스틸 금속과 닿자, 오히려 온도가 상승했다.

“와, 신기하네.”

“블랙 드래곤들의 차원에서 갖고 온 용암이라 그런가 다르구만.”

“자, 일단 가공해 보자고.”

그들은 기가 스틸을 가느다란 철근 형태로 가공하기 시작했다.

빌과 은혁이 내려와서 상황을 지켜봤다.

“저 철근을 굳힌 다음…….”

“탑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기가 스틸은 다이아몬드보다 몇 배나 강하기에, 가느다란 탑 형태로 만들어도 세울 수 있었다.

이 작업은 28.5층의 콩나무 본부, 10층에 있는 빌의 연구소, 그리고 9층에 있는 공장 등, 공정이 가능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풀가동할 생각이다.

‘특히 9층의 공장이 쓸모가 있겠지.’

오염된 개울가와 공장이 있던 9층의 고블린들 대다수는 스테이지 경계면 밖으로 쫓겨났고, 이전에 비해 공기와 수질 환경은 많이 개선되었다.

단, 여전히 고블린의 위협은 존재했으며, 9층의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면 1일 공장장 자격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은 이전과 동일했다.

9층을 클리어하지 못한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아직 많이 있었으니, 그들을 일종의 바지사장(?)으로 두고 은혁이 직접 지휘하면 된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10층 높이가 될까?”

“그건 해피의 정찰 결과를 봐야만 확정할 수 있겠지만, 전 가능하다 봅니다.”

60층~69층이 모두 파괴되어 공허한 다차원 성계의 일부가 되었다면, 일반적인 층처럼 위아래로 높게 나뉘지 않고 한데 뒤섞여 있을 터.

무엇보다 무중력이라는 게 의미가 컸다.

은혁은 작업 현황을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초월 설계] 스킬을 발동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4개월에서 5개월이면 되겠군요.”

* * *

다음날, 해피는 맨몸으로 60층에 도전했다.

그 모습이 5층 광장 하늘에 마련된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본래는 은혁이 당장 떠나라고 한 직후, 중계팀과 함께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준비된 이가 없었고, 너무 위험했기에 해피의 몸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부착하고 가기로 했다.

“으하하하! 죽여준다, 죽여줘!”

새까만 우주 공간을 연상시키는 진공의 공간.

그곳을 해피는 무려 [혼돈 추진]이라는 엄청난 방식으로 유영하고 있었다.

“3군주 새끼들이 제대로 된 놀이터를 만들어 줬구만! 하하하!!”

보통 플레이어는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숨조차 쉴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해피는 즐겁게 웃고 소리쳤다.

“자아!! 와라, 지고의 위상 새끼들아!!”

-지고의 위상, 식탐의 군주가 나타났습니다!

-지고의 위상, 태양을 노려보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두 개체가 등장했다.

-배고파배고파배고파아아아!!

-아, 어두워요. 너무 어두워요.

지난번 60층 탐사대를 전멸시킨 그 지고의 위상들이었다.

“놀아볼까!!”

해피는 양손에 혼돈의 힘을 모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복싱 글러브처럼 주먹에 두른 뒤 허공에 휘둘렀다.

빠악!!

쩌적!! 쩌적!!

쩌적!! 쩌적!! 쩌적……!!

한참 떨어진 위치에서 허공을 후려치자, 공간이 알아서 갈라지며 지고의 위상들을 향해 깨져 나갔다.

-경고! 차원 파괴 위험 증가!

-플레인 크런치 현상이 발생합니다!

콰자자작!!

지고의 위상들과 접해 있는 차원이 유리창처럼 깨져 나가며, 지고의 위상 자체들에게도 피해가 갔다.

“크하하하!! 뭐가 지고의 위상이냐! 쓸모없는 괴물 새끼들!!”

해피는 차원 깨짐 현상에서 도망치는 두 지고의 위상 중 식탐의 군주 쪽으로 날아갔다.

-아악! 배고파배고파배고파……!!

“이거나 처먹어!!”

해피는 식탐의 군주의 복부를 향해 발길질을 갈겼다.

빠악!!!

혼돈의 기운이 배 속에 들어갔다.

부우우우웅……!

복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공기가 아니라 혼돈의 힘이 가득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기에 지고의 위상조차 견디질 못했다.

-키헤엑! 배불러어엇!!

뻐벙!!

단숨에 폭발해 버렸다.

“다음은 너다! 뚝배기 딱 대!”

부러진 빅 배트를 들고 태양을 노려보는 자를 향해 날아갔다.

-아, 무서워요. 태양을 봐야겠어요.

태양을 노려보는 자가 눈을 떴다.

번쩍!!

텅 빈 눈구멍에서 강력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고, 해피는 그것을 정통으로 받아냈다.

“으랴아아!!!”

몸으로 피해를 감수하면서 그대로 날아간 해피는 빅 배트로 태양을 노려보는 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쿠콰콰쾅!!!

단 일격에 태양을 노려보는 자 또한 죽었다.

그것을 본 5층의 플레이어들이 감탄사를 후원 메시지로 보냈다.

-오오! 굉장해!

-강하다! 압도적으로 강해!

-부길드장들과는 확실히 격이 다르네.

-적일 때는 싫었지만 같은 편일 때는 든든하군!

해피는 메시지는 보지도 않고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힘들다. 으으.”

아무리 해피라고 해도 공기도, 중력도 없는 곳에서 싸우는 건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아! 해피 님! 후원 메시지로 체력 회복시켜드릴게요!

-맞아! 우리 그거 할 수 있어요!

일부 성직자나 드루이드는, 후원 메시지를 통해 상대 플레이어를 회복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플레이어 케이티가 [상급 치유] 스킬을 보내옵니다!

-플레이어 루티스가 [상급 치유] 스킬을 보내옵니다!

“X들 까쇼.”

정작 해피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시스템 메시지를 전부 걷어차 버렸다.

“이때다 싶어서 친한 척하는 것들 다 기분 나빠.”

-헐! 성격 더럽네.

-그러게.

-컨셉 확실하고. ㅋㅋ.

“읏차.”

해피는 인벤토리창에서 차원 탐사 장치를 꺼냈다.

빌에게서 받은 탐사 장치는, 스테이지의 끝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확인 중…….

-범위 계산 중…….

-측정 방식 연산 중…….

“거, 되게 오래 걸리네. 빨리 좀 찾아내라, 이 고물 놈아.”

탁탁!

해피는 애꿎은 탐사 장치를 때렸다.

-야! 불쌍한 탐사 장치 때리지 마라!

-맞아맞아! 불쌍해!

-때릴 거면 네 머리통이나 때려, 이 바보 놈아!

“허이구, 알았다, 알았어.”

해피가 플레이어들과 노닥거린 지 30분 정도 지났다.

탐지 장치가 결괏값을 알려줬다.

-측정 완료!

-69층의 끝은 현 위치에서 약 15km 전방에 위치합니다!

“헐, 이게 되네?”

해피는 의외로 값이 똑떨어지게 나오자 조금 놀랐다.

“물리적인 거리로 환산하면 15km 정도면 의외로 가까운 거리 아닌가?”

해피의 중얼거림에, 5층에 있던 모두가 희망을 느꼈다.

-헐! 그럼 정말로 탑을 지어서 69층에 도달 가능?

-바보냐? 그럼 탑 높이가 15km는 되어야 한다는 건데 그게 더 비현실적이다!

-15km 정도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15킬로가 장난인 줄 아냐? 15미터만 해도 장난이 아닌데?

-스킬 뒀다 뭐 하고, 인벤토리창 뒀다 뭐 하냐? 여럿이 분해한 다음 60층에 가서, 조립하면 어찌어찌 될 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 ‘어찌어찌’ 부분이 어렵다니까 그러네? 참 갑갑한 새끼.

-네가 더 갑갑하다, 이 새끼야. 강은혁은 그 ‘어찌어찌’를 온갖 꼼수로 클리어해 온 장본인이라고? 네가 그 어찌어찌를 생각 못 한다고 강은혁도 모를 것 같음?

-말 되게 띠껍게 하네. 그렇게 말해야겠냐?

-ㅎㅎ. ㅈㅅ.

플레이어들은 채팅창에서 각자의 의구심과 믿음을 가지고 대화를 나눴다.

그 순간, 해피의 바로 앞에 차원의 문이 열렸다.

-지고의 위상, 공허를 토해내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어라?”

해피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그 지고의 위상은 소라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둔해 보였다.

주둥이는 소라 껍데기의 입구 쪽에 있었고, 해피는 그곳을 향해 일단 주먹을 한 방 먹일까 생각했다.

그 순간.

-구웨에에엑!!

지고의 위상은 갑자기 공간 그 자체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우주 공간이 늘어났다.

-69층의 끝은 현 위치에서 약 15.1km 전방에 위치합니다!

-69층의 끝은 현 위치에서 약 15.2km 전방에 위치합니다!

-69층의 끝은 현 위치에서 약 15.3km 전방에 위치합니다!

“이런 망할!”

지고의 위상이 공간 자체를 토할 때마다, 해피가 선 현 지점, 즉 60층 언저리부터 69층까지의 거리가 늘어나고 있었다.

“더럽게 왜 공간을 토하고 지랄이야!”

해피는 화를 내며 지고의 위상을 향해 날아갔다.

-구궤게게게게엑?!

그 지고의 위상은 직접 전투력은 약한지 공간을 토해 내며 도망쳤다.

-69층의 끝은 현 위치에서 약 15.4km 전방에 위치합니다!

…….

…….

-69층의 끝은 현 위치에서 약 15.8km 전방에 위치합니다!

“야!!!”

해피는 기가 막혔다.

해피도 차원 부수기가 가능하므로, 쫓아가는 건 가능했지만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무리해서라도 쫓아가야 하나?’

해피가 화를 삭이며 고민하자, 후원 메시지도 의견이 분분했다.

-쫓아가셈! 쫓아가서 죽이셈!

-쫓아갈 때마다 공간이 늘어나서 손해인 것 같네요.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고.

-싸움을 싫어하는 지고의 위상인 듯? 그냥 방치하셈.

-그런 것치고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았음? 수상한데?

플레이어들은 지고의 위상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으나, 해피는 지고의 위상 그 자체보다는 저런 존재를 인위적으로 불러낸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공간을 토해 내면서 싸움을 싫어하는 지고의 위상이 그냥 이곳에 나타났을 리가 없지. 분명 3군주 놈이 유인한 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해피의 눈빛이 바뀌었다.

“야, 다들 닥쳐봐. 거물이 나타났다.”

저편에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것이 나타났다.

어두운 공간이었기에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해피는 느낄 수 있었다.

쩌저적……!

가느다란 바늘은 반으로 갈라졌다.

반으로 갈라진 바늘은 또다시 반으로, 또 반으로 갈라졌다.

쩌적.

쩌저저적!

가느다란 바늘에서 이토록 큰 소리가 나는 게 기이하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그 순간, 바늘이 이어 붙여지며, 한 사람의 형상을 나타냈다.

새까만 공간에 아주 작게 쪼개진 수백 개의 바늘이 합쳐져 만들어진 형상이라, 마치 별자리 같았다.

“카인의 화신이군.”

해피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바늘로 이루어진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목소리는, 바늘끼리 서로 긁히며 만들어진 쇳소리였다.

5층에서 그 소리를 듣던 이들은 모두 소름 끼쳐 했고, 해피는 피식 웃었다.

“직접 나오지 않고 화신만 보낸 이유는?”

“그보다 자네는 여기 왜 온 건가?”

“정찰하러.”

“이 간극을 뛰어넘어 3군주 세력권에 도전할 건가.”

“아,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냐. 우리한테는 새로운 지배자가 생겼거든. 들어봤지?”

“강은혁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고, 영상을 보기도 했다.”

카인의 화신은 잠시 말이 없더니, 이어 말했다.

“그래 봤자, 그 정도 실력으로는 70층~89층 영역에서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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