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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65화 (365/434)

365화 : 플랜 B (4)

‘후, 그 소리는 더 불안하군.’

두 사람은, 조립되지 않은 기가 스틸 탑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대화를 더 나눴다.

‘이제 와서 할 소리는 아니지만…….’

‘프로젝트를 보류하는 건 어떻겠느냐고요?’

‘응.’

이전의 빌이었다면 이런 소린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통합된 길드연합국은 그야말로 황금기 그 자체였다.

플레이어 간의 싸움은 줄어들고, 질서는 세워졌다.

경제는 활성화되고, 넘치는 부는 노약자와 장애인에게 돌아갔다.

‘길드 간의 무의미한 권모술수와 다툼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평화가 찾아오더군.’

‘그렇지요. 힘에 의한 평화라 좀 그렇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무력으로 통일한 것임에도 은혁은 떳떳했다.

길드연합국의 몇 안 되는 법인, 헌법에 따라 부길드장과 길드장들을 차례로 꺾고 올라선 것이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강은혁. 어쩌면 우리는 이 길드연합국에서 선을 창출하고 진리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힘이, 마음이 하나로 집중된 길드연합국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국가보다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굶어 죽는 자는 없고, 힐링 포션만 있어도 어지간한 병은 치료가 되니까.

이전 길드연합국도 그랬지만, 이제는 통합된 길드연합국이므로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3군주 세력이 없었다면 국가 경영 놀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3군주 세력은 언제든 우리를 공격할 수 있고, 착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치는 길드연합국 플레이어를 갈아서, 말 그대로 ‘인적 자원’으로 쓰는 방안을 대놓고 입에 올린 바 있다.

3군주 측이 신경질적으로 ‘국경층’이 맞닿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길드연합국에 써먹으려는 위험한 생각을, 길드연합국 측에서 자신들에게 역으로 쓸 경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리라.

‘결정적으로 그들의 100층탑 클리어가 가깝습니다.’

이 부분을 말할 때, 은혁은 달콤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3군주의 성장을 도운 건 은혁이나 다름없다.

은혁의 폭발적인 성장은 3군주 세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들은 회귀 전 역사에 비해 훨씬 진지하게 100층탑 클리어를 추구하고 있을 터.

물론, 3군주의 성장이 우려된다고 해서 은혁 자신이 성장을 늦추거나 힘을 숨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으음……!’

‘그들 중 누군가가 100층탑을 클리어하고, 소원을 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가령,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류의 고통스러운 죽음 같은 것.’

‘그런 무의미한 걸 할 리가 없잖느냐…… 라고 하고 싶지만, 100층탑에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법이 없지.’

빌은 한숨을 푹 내쉬고, 이 프로젝트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우리의 이번 프로젝트는 겉보기보다 절박한 프로젝트였구만?’

‘그렇습니다. 통합 길드연합국이 생겨났으니 한숨 돌릴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생존은 생각보다 훨씬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통합된 길드연합국의 존재 자체가 3군주를 경계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3군주 세력권에 진출해야 하고, 그들을 쓰러뜨릴 준비도 해야 합니다.’

‘……그나마 행운이군. 제대로 된 지도자가 있어서,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야.’

그 말에 은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텔레파시]를 이용한 대화를 종료했다.

빌은 인공 게이트 설치 지휘를 위해 5층 광장으로 갔고, 은혁은 다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28.5층으로 떠났다.

* * *

그날, 깊은 밤.

거대한 일들이 발생했다.

은혁의 명령에 따라, 거대한 인공 게이트를 5층 광장에 설치하는 중이었다.

완전한 기밀하에 진행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가능한 한 야심한 밤에 조용히 진행되는 일이었다.

그때, 길드연합국의 5층에서는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는 일이 발생했다.

슈우우욱!!

5층 광장 한복판에 세 대의 셔틀이 동시에 등장했다.

각 셔틀에는 한 사람씩 타고 있었다.

인치, 미치오, 카인이었다.

화신만 보내는 게 아닌, 3군주의 본체가 직접 나타났다.

28.5층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던 은혁의 통합길드장의 목걸이가 경보를 외쳤고, 5층의 통합 경보 시스템도 미친 듯이 알람을 울려댔다.

-경고! 경고!

-3군주 세력의 침략 확인!

5층에 상주하던 염훈도 경악했다.

“제1종 위기 발령! 레벨 70 이하는 전원 대피하라!!”

[신성한 지휘]를 발동한 직후, 인치가 염훈의 앞에 나타났다.

“야아, 오랜만, 오랜만. 피구름 속에서 만나고 처음이지?”

“큭……!”

염훈은 전투태세를 취했지만, 인치는 시계를 들어서 보여줬다.

“하하하! 싸우려고 온 거 아니야~. 이거 봐.”

손목시계에는 카운트다운이 표시되고 있었다.

-총관리자가 직접 개입하기까지 남은 시간 : 4분 49초…….

-총관리자가 직접 개입하기까지 남은 시간 : 4분 48초…….

-총관리자가 직접 개입하기까지 남은 시간 : 4분 47초…….

“5층에 5분 이상 머무르면, 관리국 총관리자님께서 직접 개입하겠다고 하셨거든~.”

“뭐 하러 온 겁니까?”

“일단 축하하려고.”

“뭘 말입니까?”

“너 말이야. 얼마 전에 성황제로 승급했다지? 축하축하!”

“…….”

염훈은 미심쩍다는 듯이 인치를 노려봤지만, 인치는 정말로 가만히 있었다.

“정말로 너랑 싸우러 온 거 아니라니깐?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너희들을 포섭하고 싶어~.”

그때였다.

콰쾅!!

콰콰콰쾅!!

미치오와 카인이 7대 길드 본부를 연달아 습격하고 있었다.

“이런! 거짓말이었나!!”

“아냐, 난 쟤들이 같이 오자고 해서 온 것뿐이래도.”

인치는 히히 웃었다.

“사실은 카인이 자기 혼자서도 초토화시킬 수 있다면서 자기만 가겠다고 해놓고서는, 자기가 떠난 뒤에 나랑 미치오가 뭔 짓을 할지 모른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어~. 그래서 따라온 것뿐임.”

“뭐……!”

“실제로 나랑 미치오는 구경만 하고, 카인 혼자서 깽판 칠 거야. 그러니 나한테는 화내지 말라구?”

“제길! 비켜!!”

“응, 비킬게.”

인치는 정말로 옆으로 비켰다.

그리고 뛰어나가는 염훈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카인이랑 미치오가 너무 강해 보이면 언제든 내게 와서 부하가 되겠다고 말해~ 그럼 받아줄 테니까!”

인치는 정말로 은혁과 염훈을 부하로 삼고 싶은지 그렇게 말했다.

염훈은 그 밉살스러운 소리를 무시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때, 염훈은 보았다.

“저, 저게 뭐야……!”

금속으로 된 기둥 여섯 개가,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카인은 그보다 높은 곳에 뜬 채로 마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쏴라! 쏴!”

“소환수로 멀리서 공격하라!”

최근 실력이 급성장한 중소 길드의 길드장, 부길드장들이 주도하여 외쳤다.

[포이즌 에로우], [화염의 독수리 소환], [에어 서펀트 소환], [아음속 투척], [방어력 감소의 저주] 등등의 스킬들이 카인을 향해 날아갔지만.

터터텅!

터텅!!

카인에게는 닿지도 못하고 전부 튕겨 나갔다.

“뭐지!”

“왜 닿지 않는 거냐!”

카인은 [666 인비지블 플레이트]라는, 투명하게 날아다니는 차원 금속 패널 666개를 몸 곳곳에 두르는 스킬을 쓰고 있었다.

각 차원 금속 패널의 강도는, 은혁과 빌이 싸울 때 대련장의 사방을 구성하던 ‘차원 유리벽’과 사실상 동급이었다.

즉, 은혁이나 빌 정도의 공격력이 아니면 부술 수도 없다.

그리고 카인이 스킬을 발동했다.

“[봉인의 금속창].”

“이런! 다 피해!!”

슈슈슈슉!

콰콰콰콱!!

여섯 개의 엘더니움 금속창이 광장에, 육망성의 형상으로 내리꽂혔다.

폭발을 걱정했던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조용한 걸 보고 어리둥절해했다.

그 순간.

-게이트의 기능이 극도로 제한됩니다!

-5층에 존재하는 모든 게이트는 6층까지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뭣?!”

“말도 안 돼!”

카인은 플레이어들의 경악성을 귀담아듣지도 않고 허공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인치, 미치오. 할 일은 끝났다.”

카인이 보통 목소리로 말하자, 인치와 미치오가 곁에 날아왔다.

“히히! 셋이 힘 합치니까 좋네. 안 그래, 미치오?”

인치가 친한 척 말을 걸었지만.

“……귀찮아.”

전체적으로 선이 가느다란 귀공자 타입의 미청년인 미치오는 작게 말했다.

“자, 그럼 셔틀 타고 다시 튀자!”

인치가 외친 순간.

“잠깐!!”

요양원 방면에서 누군가가 뛰어왔다.

인치와 미치오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카인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형!!!”

달려온 자는 아벨이었다.

그는 은혁이 통합길드장이 된 뒤, 주로 노약자를 위한 보호소에서 일했다.

심상찮은 파괴음을 듣고 뛰쳐나와 봤더니, 3군주인 형이 와 있었다.

“형! 그만둬! 쓸데없이 사람들을 죽이지 마!!”

아벨은 형을 설득하기 위해 외쳤지만.

“닥쳐……!!”

카인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금속창을 내던졌다.

쉬익!!

그 순간, 슬레이버가 튀어나왔다.

“[가치 변환].”

촤라라락!!

카인의 금속창이 금화로 변해서 사방에 흩어졌다.

“아벨이라 했던가? 강은혁이 자네를 지키라더군.”

슬레이버가 말했다.

하지만 아벨은 슬레이버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한 것처럼 외쳤다.

“형! 나는 형한테 화난 것도 없고, 형이 한 것을 다 용서할 수 있어! 그러니까……!”

“닥치라고!!”

콰콰쾅!!!

카인은 아벨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듯이 금속창을 생성해서 던져댔고, 슬레이버는 방어하며 아벨을 피신시키려 했다.

아벨은 싸우려고 말을 거는 게 아니었지만, 카인에게는 아벨의 목소리 자체가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몇 안 되는 약점이었다.

“하핫. 동생이 미운가 보네.”

인치가 웃었고, 미치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은 모르지만 바로 떠나는 게 좋겠어.”

“응! 그러자!”

미치오와 인치가 카인의 양옆으로 날아가 양팔을 잡았다.

“놔! 다 죽이기 전에는 안 간다!!”

“운명치 폭풍으로 다 죽고 싶어? 이미 우린 제한 시간이 아슬아슬하다고?”

인치와 미치오는 카인을 셔틀에 탑승시켰다.

“자아, 그럼 안녕!”

인치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파앗! 파앗! 파앗!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떠났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은혁은 황급히 5층으로 왔다.

“휴, 퓨전 스킬 [게이트 터널]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만약 [게이트 터널] 스킬이 없었다면, 5층에 갇힐 뻔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빌이 우울한 어조로 말했다.

“설마 기가 스틸 탑을 뺏겼습니까?”

“뺏기진 않았지만 엉망으로 썰렸다.”

카인은 자신의 금속 화신을 따로 생성하여, 기가 스틸 탑을 습격, ‘감염’시켰다.

빠드드득.

빠드드득.

절대 녹슬지 않는 기가 스틸이었지만, 카인의 화신이 자폭하면서 생긴 쇳가루를 뒤집어쓴 탑은 스스로 붉게 변하며 부식되고 있었다.

‘[부식의 쇳가루] 스킬을 쓴 거군.’

카인의 화신이 자폭할 때만 쓸 수 있는 스킬로, 범위 안에 들어가면 금속이건 아니건 녹슬고 파괴된다.

3군주의 하나로서 다른 3군주의 아티팩트를 훼손시킬 때 주로 쓰며, 3일에 한 번만 쓸 수 있다.

“인공 게이트도 기껏 만들었지만, [봉인의 금속창]으로 기능이 저하된 상태다. 여섯 개의 금속창 중 하나만 제거해도 기능은 회복되겠지만…….”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뽑거나 박살 내는 건 나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 기존의 게이트들이 손상될 거다.”

안전하게 [봉인의 금속창]을 제거하려면 여러 사람이 직접, 또는 중장비를 동원해서 통째로 뽑아내야 한다.

하지만 막상 손을 직접 대면 추가 함정 스킬이 발동할지도 모른다.

“분석하고 제거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 거다.”

물론, 그동안 3군주는 100층을 향해 더 빨리 올라갈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나?”

“후후. 플랜 D부터 B까지 다 막혔다면…….”

은혁은 히죽 웃었다.

“좋든 싫든 플랜 A로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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