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 60층~69층의 결전 (1)
“…….”
은혁의 신랄한 비판에, 인치의 화신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은혁은 그런 인치의 화신을 향해 비아냥거렸다.
-만약 우리가 100층탑 1기나 2기생이었다면, 지금쯤 100층탑을 전부 정복하고 소원 빌고 다 나갔을 겁니다. 안 그러냐, 염훈?
“그렇다!”
셔틀에 탑승한 염훈도 은혁의 말을 지지해줬다.
“허참, 늘 느끼는 거지만 너네는 너무 오만해.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따악!
인치의 화신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파앗!
파앗!
카인과 미치오의 화신 또한 나타났다.
이렇게 즉시 나타난 것을 보면, 멀지 않은 곳에 화신을 배치해 뒀었다는 뜻이다.
-으음…….
은혁이 침음성을 흘리며 화신들을 관찰했다.
카인의 화신은 이전처럼 바늘이 합쳐져 만들어진 형상이었고, 미치오의 화신은 작은 수정구 형태였다.
인형 형태인 인치의 화신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너희를 가능한 안전하게 부하로 삼아주려 했지만! 너희가 거절한 거다!! 화신 3체의 협공으로 죽여주지!!”
인치가 외친 그 순간.
“잠깐…….”
수정구 형태를 한 미치오의 화신이 목소리를 냈다.
“우리 손으로는 죽이지 말자.”
“어? 왜?”
“뭔가 수상해…….”
미치오의 화신이 신중하게 말했다.
카인의 화신은 미치오를 비웃듯이 말했다.
“그렇게 조심성만 내세우니까 3국을 통일하지 못하는 거다.”
카인의 화신이 표독스러운 말투로 말했지만 미치오는 아예 듣지도 않은 척했다.
“가까이 다가갔다간…… 무언가에 당할 수도 있어.”
그러자 인치의 화신이 되물었다.
“그건 네 스킬이야? 아니면 그냥 감이야?”
“그냥 감이야…….”
미치오의 직업은 미래 예지와 조금은 관련이 있었다.
‘SSS급 직업 공간을 지배하는 혼돈술사.’
공간 감지 능력이 극도로 발달해서, 상대의 기척에도 상당히 민감했다.
“저놈, 아직 한 방이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수정구 형상을 한 미치오의 화신이 은혁을 뚫어져라 관찰하며 말했다.
사방을 비추는 수정구는, 내부에 카메라 렌즈를 장착한 것처럼 은혁의 모습을 줌인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눈치 빠르네.’
은혁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드래곤 파워드 아머를 장착하고 있으니 본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인데도, 미치오는 특유의 민감함으로 감지해 낸 것이다.
“흠, 그렇다면 어쩌자는 건가?”
“우리 손 더럽히지 말고 지고의 위상들을 불러내자.”
“좋아. 미끼는 내가 준비하지. [제물의 핏가루].”
카인의 화신이 쇳가루 같은 것을 조금 흘렸다.
본체의 피 일부로 보였다.
이어서 미치오의 화신이 스킬을 썼다.
“[차원의 문]…….”
슈르르륵.
미치오의 화신인 수정구가 반짝이더니, 차원의 문이 여러 개 나타났다.
“핫하! 크기는 내가 키울게! 얍! [크기 지배]!”
인치의 화신이, 미치오의 화신이 만든 차원의 문을 크게 키웠다.
그 직후, 지고의 위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고의 위상, 도끼를 든 검은 산양이 나타났습니다!
-지고의 위상, 일억 개의 모래 조각이 나타났습니다!
…….
…….
-지고의 위상, 붉은 차원의 파편이 나타났습니다!
-지고의 위상, 더럽혀진 꿈의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적게 잡아도 12체는 되는 지고의 위상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한 번에 12체를 부리는 건 3군주 기준에서도 부담이 가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장소의 경우다.
이 60층~69층 구간은 이미 파괴된 공허의 공간이었기에 부담 없이 지고의 위상들을 불러냈다.
“으으, 은혁아. 어떡하지?”
-걱정할 거 없어.
찰칵.
은혁은 미리 드래곤 파워드 아머 안쪽에 숨겨 둔 ‘무언가’를 작동시켰다.
-[관리자용 OTP 생성] + 궤도 폭격 요청 휴대폰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정화 폭격포]를 관리자 권한으로 현 좌표로 발사 요청합니다!
번쩍!
그들이 있는 곳 기준에서 ‘위쪽’ 1km 지점에 무수히 많은 포대가 생성되었다.
관리국이 자랑하는 기가 스틸 포대였다.
기이이잉……!
짧은 예열을 거치는가 싶더니.
쓔우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쾅!!!
공간을 정화하기라도 할 것처럼 막강한 궤도 폭격이 가해졌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지고의 위상들이 순식간에 고기 조각으로 변했다.
그중에는 물리 저항력이 150%에 달하는 존재들도 있었으나, 관리국이 작정하고 정화하기로 할 때만 발동되는 [정화 폭격포]는 모조리 찢어발겼다.
“이런!”
“이게 놈의 노림수였나……!”
직접 손을 대지 않으려고 지고의 위상들을 소환했건만, 전부 죽어 버렸다.
혀를 차는 3군주의 화신들의 소리를 들으며, 은혁은 내심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고야! 완벽하게 됐다!’
은혁은 아주 오랫동안 ‘궤도 폭격 요청 휴대폰’을 아껴왔다.
너무나도 위력이 강한 것이기에, 지고의 위상 수십 마리에 포위당한 경우를 제외하면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 상황이 펼쳐졌다.
지고의 위상들은 순식간에 죽어 나가서, 은혁은 막대한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
…….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115.
순식간에 폭렙을 해낸 은혁은, 궤도 폭격을 피하느라 잠시 멀어진 3군주의 화신들을 보며 간격을 잡았다.
-좋아! 지금이다!
덜컹!
은혁은 등에 장비한 셔틀을 해제했다.
그리고 셔틀의 자체 부스터를 원격 가동 했다.
-염훈! 먼저 가라!
“뭣?! 넌 어쩌고!”
-걱정 마! 아직 궤도 폭격 한 방 더 남았어!
은혁이 방금 쏜 궤도 폭격은, 아이템에 관리자용 비밀번호를 강제로 쑤셔 넣어서 쓴 것으로, 일종의 치트다.
1회용 아이템인 궤도 폭격 요청 휴대폰이 너무 강력하기에, 한 번만 쓰기 아까워서 쓴 꼼수다.
-그러니까 먼저 가! 우리 둘 중 한 명만이라도 70층까지 도달하면 승리다!
둘 중 한 명만 도착해도, 길드연합국 플레이어가 뚫은 것으로 판정이 뜬다.
이 경우 5층의 게이트가 정상화된다면, 다른 자격 있는 플레이어들도 70층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는 60층~69층의 미션과 게이트가 모조리 파괴된 특수한 상황이기에 가능한 경우다.
“야! 그게 문제가 아니라! 3군주를 혼자서 상대하는 건 아무리 너라도……!”
-다 계획이 있다고!! 빨리 가!!!
은혁은 드물게, 염훈에게 진지하게 화를 냈다.
“제길! 너무 무리하지 마!!”
염훈은 은혁만 두고 가는 것이 애가 탔지만, 더 시간을 끌어봤자 상황만 악화된다고 판단했다.
“부스터 온! 최고 속도로!!”
투콰아앙!!
염훈이 탄 셔틀이, 자동 항법 시스템에 따라 빠르게 치솟아 올라갔다.
“…….”
3군주의 화신들은 힐끔 바라볼 뿐, 은혁에 대한 포위를 풀지 않았다.
-음? 안 잡으러 갑니까?
“우리를 분산시키려는 거라면 실패다, 강은혁.”
카인의 화신이 금속성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한두 층도 아니고, 60층~69층에 이르는 10개 층을 모조리 파괴한 이유가 뭐겠나?”
-일종의 늪으로 삼으려고.
“바로 그거다.”
3군주 셋은 서서히 간격을 유지하며 은혁을 삼각 포위 했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서, 은혁도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너와 염훈 중 하나만 이 공간의 늪에서 확실히 죽일 수 있다면, 이 넓은 공간을 파괴한 것도 낭비가 아닐 것이다.”
-글쎄요. 제가 볼 때는 저를 적으로 돌린 것 자체가 여러분 인생의 최대 낭비인데요. 여러분의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니까 말입니다.
은혁은 승산이 낮지는 않다고 판단하고 도발했다.
도발하는 이유는, 염훈이 안전하게 70층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눈앞의 3군주의 화신들이 말 그대로 화신이었기 때문에, 은혁은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화신 하나당, 본체의 60% 정도의 전력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하면…….’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힘을 빌리면 어찌어찌 각개격파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은혁의 판단이다.
‘방심한 피스메이커를 20초도 안 걸려서 걸레짝으로 만든 바 있다.’
거기에, 방금 레벨업도 잔뜩 했으니 결코…….
콰지직!!
“어?”
은혁은 어느새 드래곤 파워드 아머 밖으로 튕겨 나와 있었다.
미치오의 화신이 발동한 스킬, [공간 왜곡]의 힘으로 은혁만을 통째로 꺼낸 것이다.
‘말도 안 돼. 드래곤 비늘이 마법저항력을 지니고 있을 텐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간단히 성공했다.
첫째. 미치오의 화신이 발동한 [공간 왜곡]은 마법보다는 혼돈술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므로.
둘째는…….
“전부 보인다.”
미치오의 화신이 발동 중인 [천리안] 스킬.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내부까지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완전한 자유 관측이 가능한 상태에서 발동한 [공간 왜곡]이었기에, 저항력을 무시하고 성공률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다시 착용해 보지 그래? 후후…….”
미치오의 화신이 나직하고 심술궂게 물었다.
은혁은 사양 않고 [그림자 도약]으로 드래곤 파워드 아머를 다시 장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금속 비틀기].”
파카카카카카칵!!!
카인의 화신이 쓴 스킬이 더 빨랐다.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프레임과 파츠의 관절 부위가 뒤틀렸다.
“아……!”
“아무리 강하고 단단해도, 금속이면 다 뒤틀고 자를 수 있다.”
그것이 카인의 [금속 지배]였다.
“히힝! 제대로 천적 만났네? 그치?”
인치의 화신이 재밌다는 듯이 웃더니, 작은 돌멩이를 꺼냈다.
작은 인치의 화신 기준에서 조약돌 크기였으니, 사람 기준에서는 모래 알갱이 중에서 조금 큰 수준이었다.
하지만.
“얍! [크기 지배]!!”
인치의 화신은 그 돌멩이를 던지는 순간 크기를 키웠고, 운석처럼 커져서 날아갔다.
“큭!”
은혁은 [그림자 도약]으로 멀리 피했다.
“앗! 의외로 도망 잘 치네?”
인치의 화신이 말했지만 카인의 화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의외로 도망을 못 치는 거다.”
은혁에게 순수한 비행 스킬은 거의 없었다.
[그림자 도약]의 힘이 압도적이긴 하지만, 3군주의 화신들을 상대로 한 가지 스킬만 연속 발동하는 것은 파훼당할 위험이 있다.
[사이오닉 필드]나 [피구름 생성]을 응용하여 허공을 떠다닐 수는 있지만, 3군주에 비하면 느릴 터.
‘그래서 사이오닉 런처를 부스터로 쓸 수 있게 한 건데.’
하필 사이오닉 런처가 장착된 드래곤 파워드 아머가 카인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회수하러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라고 놈들이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은혁은 전투와 회피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되, 두 가능성 모두 성공률이 희박한 것으로 보여야 했다.
‘실제로도 50%보다 낮지만, 더 낮은 것처럼 보여야 한다!’
“강은혁. 너는 죽는다.”
“맞아. 유린당하다 죽을 거야.”
“갖고 놀 생각은 없지만…… 아니, 갖고 놀다 죽일까.”
카인, 인치, 미치오의 화신들이 그렇게 떠들어댔다.
그동안 은혁은 [그림자 분신 6.0]을 연속 발동했다.
파앗! 파앗! 파앗!
스스로 분신을 추가 생성 가능한 [그림자 분신 6.0]은 순식간에 300체가 넘는 분신으로 불어났다.
“[염열파]!!”
“[염열파]!!”
…….
…….
“[염열파]!!”
“[염열파]!!”
빠르고 강력한 [염열파]가 무려 300회 연속 발동되었다.
화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