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 60층~69층의 결전 (2)
300회 중첩된 [염열파]는 지고의 위상급 괴물을 통째로 구워 버릴 정도로 강력한 화염 줄기의 무더기였다.
각 화염 줄기가 겹치고 얽히며 더욱 열기는 강해졌다.
컴컴한 다차원성계의 빈 공간에 화염으로 된 꽃이 피어난 것 같았지만.
“[소형화].”
“[흡열 금속판 소환].”
“[공간 비틀기].”
파앗!
터텅!
콰드득!
인치를 향해 뿜어진 거대한 화염 줄기들은 촛불처럼 작아지고.
카인을 향해 뿜어진 거대한 화염 줄기들은 흡열 금속판에 닿자마자 마력으로 전환되었으며.
미치오를 향해 뿜어진 화염 줄기들은 뒤틀린 공간을 따라 저 멀리 힘없이 뿜어져 나갔다.
은혁은 공격이 전부 실패했다는 사실에 좌절하진 않았다.
왜냐하면 바빴기 때문이다.
“[스파이럴] + [그림자 분신 6.0] + [광원 지배] 융합.”
쿠구구구구구궁……!
무수히 많은 그림자 분신들이, 갈려 버린 공간 속에서 한데 뒤엉켰다.
막대한 그림자의 힘이, 새로 얻은 ‘빛을 지배하는 마나 엔지니어’ 직업의 [광원 지배] 스킬에 의해 융합되었다.
은혁은 그 덩어리를 향해 선즈 리볼버를 쏘아서 점화시켰다.
-히든 이펙트 발동!
“[극암무영파장탄]!!”
번쩍!!
솨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새까만 그림자의 에너지 그 자체가 뿜어져 나갔다.
“읏!”
“저건 좀 까다로운데?”
상호 작용이 불가능한 그림자의 파장이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갔다.
이 그림자는 어둠에 잘 달라붙는 성격이 있어서, 어두컴컴한 다차원 성계의 텅 빈 진공 공간 그 자체와 잘 들러붙었다.
한번 들러붙으면, 아무것도 없는 진공 공간이건, 플레이어건, 통째로 뒤덮어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다.
한번 그림자로 덮어씌워지면 은혁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젠장, 피해야겠군!”
3군주의 화신들이 피신했다.
어차피 화신이었기에 죽어도 안전한 곳의 본체로서는 약간의 체력과 마력 손실 말고는 잃는 게 없었지만.
‘아니, 정보를 다 읽힐지도 몰라.’
인치의 화신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찼다.
화신체에는 본체의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고, 은혁이 [시스템 해킹] 관련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이 틈에 드래곤 파워드 아머를 회수한다!’
카인의 화신에 의해 완전히 뒤틀려 버렸지만, 가까이 가서 [긴급 수리] 스킬을 쓰면 금방 재기동이 가능해질 터.
하지만.
“누가 보내준댔나……?”
수정구 형태의 미치오의 화신이 중얼거렸다.
기이이잉……!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지고의 위상, 공허를 토해내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지고의 위상이 은혁과 드래곤 파워드 아머 사이에 나타났다.
-구웨에에에엑!!
화악!!
은혁과 드래곤 파워드 아머 사이의 공간이 확 늘어났다.
“쳇! [드래곤 파워드 아머 절대 소환]!”
드드드드……!
파괴된 드래곤 파워드 아머였기에 스킬 위력이 감소해서, 은혁 근처까진 오지 못했다.
하지만.
“차원의 낚싯대! 저격 모드!!”
파앗!
낚싯바늘이 차원의 문을 열고 날아가 드래곤 파워드 아머의 끝에 걸렸다.
그 순간.
“안 돼지롱! [빅 펀치]!!”
인형 같은 인치의 화신의 주먹이 트럭처럼 커졌다.
콰앙!!
“크악!!”
은혁은 피를 뿜으며 튕겨 나갔다.
물론, 전부 은혁의 피는 아니고, [피구름 생성] 스킬로 완충 작용을 일으키는 한편 피를 뿜어두는 셋업을 한 것이다.
“얕은수는 안 통한다. [철분 폭발].”
카인의 화신이 금속성 목소리로 선언한 순간.
파바바바바박!!
혈액 속의 미세한 철분이, 쇳가루 섞은 사제 폭탄처럼 터져 나갔다.
“윽!”
고개를 얼른 틀어서 조금 피부가 따가운 수준의 피해만 입었지만, 눈속에 들어갔다면 치명적일 뻔했다.
“좋아! 방심하지 말고 지고의 위상을 더 불러 모으자!”
“응…… 그러자……!”
인치와 미치오의 화신이 힘을 합쳤다.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지고의 위상, 중력의 그래비톤이 나타났습니다!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지고의 위상, 죽음을 긍정하는 불사조가 나타났습니다!
강력한 지고의 위상 둘이 더 나타났다.
상당히 격이 높은 지고의 위상이었기에, 은혁은 스킬을 난사하며 싸웠다.
콰콰콰쾅!!
화르르륵!!
지고의 위상들이 가하는 중력 공격과 화염 공격은 은혁이 대부분 몸으로 맞았지만, [스파이럴]과 [사이오닉 필드], [적류초열공], [빙천신공] 등으로 커버하는 게 가능했다.
촤악!
콰직!
“크악!”
정말 괴로운 건 지고의 위상들을 처리할 때마다 사이사이에 들어오는 카인과 인치의 화신이 가하는 공격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치오의 화신이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너희 둘, 알아서 피해.”
그리고 스킬을 발동했다.
“[차원의 문 : 블랙홀].”
은혁의 바로 앞 1미터 지점에, 다차원성계 어딘가에 위치한 블랙홀로 통하는 차원의 문을 열었다.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려 했지만.
“[스파이럴]!!”
은혁도 필사적으로 스킬을 써서 차원의 문을 비틀어 붕괴시켰다.
‘위험했다! 진짜 죽을 뻔했어!’
1초 안에 반응해서 망정이지, 몇 초만 늦었어도 손을 쓸 수가 없었을 터였다.
차원의 문에 스킬을 쓰려 해도, 그 스킬마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을 것이므로.
그 순간.
채챙!
카인의 화신이 은혁의 등을 노리고 공격했고, 은혁은 프로스트 스파이럴을 이용해 겨우 막았다.
“반응 속도가 빠르군. 죽일 보람이 있다.”
카가가각……!
카인의 화신은 양손이 이미 강철 칼날이었다.
더 예리하고 강한 ‘치트 스틸’의 칼날을 생성하는 게 가능했으나, 은혁의 기량을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일부러 일반 강철의 칼날로 은혁을 몰아붙였다.
채채챙!
파카카칵!
차가운 진공의 공간에서 불꽃이 튀었다.
은혁의 세븐 칼리버 제6형태인 프로스트 스파이럴과 카인의 양손칼은 쉴 새 없이 서로를 노렸고, 또 튕겨 냈다.
‘근접 전투 실력은 호각인가!’
은혁도 카인의 화신의 역량을 쟀다.
문제는, 은혁은 기본기를 활용하되 전력을 다하고 있다면, 카인의 화신은 아직 여유롭다는 점이다.
“좋아! 잘한다, 잘해! 더 밀어붙여! 더! 하하핫!”
인치의 화신은 손뼉을 치며 은혁의 등 뒤로 날아갔다.
한편, 미치오의 화신은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야말로 협공이다. 또 놓치면 재미없어…….”
“흥! 너나 잘해!”
미치오의 화신과 인치의 화신이 티격태격하면서 스킬을 동시에 썼다.
“[차원의 문 : 화염의 차원].”
“[크기 지배 : 강은혁의 화염 저항력을 최소화한다].”
파앗!
화아아아악!!
화염이 은혁의 몸에 끼얹어지고, 허를 찔린 은혁은 꽤 피해를 입었다.
‘인슈어런스 아머! 화염 저항력을 최대로!’
만약 인슈어런스 아머가 없었다면 훨씬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 자식들이 머리 쓰네?’
3군주는 은혁이 [적류초열공]과 [화염 지배] 등으로, 화염에 별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걸 알고, 오히려 그 심리적 허를 찔러 화염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거기에 당했다는 사실에 은혁은 심리적으로도 조금 피해를 입었다.
“크윽.”
하지만 은혁을 향한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카인의 화신은 거리를 두려는 은혁을 추격하며 스킬을 썼다.
“[금속 차원의 거신 소환].”
“뭣?!”
언젠가 은혁은 [금속 차원의 거신 면담 요청] 스킬의 힘으로, 거신의 한쪽 팔을 소환한 바 있었다.
하지만 카인의 화신은 은혁보다 상위 호환의 스킬을 가볍게 썼다.
-금속 차원의 거신이 강림합니다!
금속 차원의 거신은 거대한 차원의 문 너머로 상반신만 내밀었다.
힐끔.
은혁의 얼굴을 기억하는 듯했지만, 별 내색은 보이지 않았고, 카인에게 집중했다.
“치트 스틸을 10kg 바치겠다. 양손으로 저놈을 날려 버려.”
-양손을 이용한 2회 공격을 요구하는 건가?
“그렇다.”
카인의 화신이 답한 순간.
“아닙니다! 위대한 거신이시여!”
똘망똘망한 목소리.
은혁이 소환한 메탈 서전트가 끼어들어 외쳤다.
“이 3군주들은 나쁜 자들입니다! 저의 주인님과 달리 약속을 어길 것입니다! 악!”
카인의 화신이 금속 표창으로 메탈 서전트를 쳐 날렸다.
은혁은 얼른 메탈 서전트를 소환 해제하여 보호했다.
-흠.
금속 차원의 거신은 은혁과 카인의 화신을 번갈아 봤다.
은혁은 힐링 포션을 체내에 억지로 쑤셔 넣느라 바빴고, 카인의 화신은 평온해 보였다.
-틀림없이 제물을 바칠 것인가?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겠다.
확인을 마친 금속 차원의 거신은 지체 없이 은혁의 몸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콰앙!!
은혁은 [사이오닉 필드]를 황급히 펼쳤지만.
‘컥!!’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강력한 일격.
오히려 무중력 공간이라 망정이지, 일반적인 지표면에서 공격을 당했다면 납작해졌으리라.
콰앙!!
거신은 가차 없이 한 방을 더 날렸다.
쐐애애애액……!
은혁은 공기총에서 발사된 작은 탄알처럼 빠르게 날아갔다.
-이만 떠나겠다. 약속한 금속을 다오.
금속 차원의 거신은 할 일만 마치고 카인의 화신 앞에 둥실둥실 떠 있었다.
그동안, 튕겨 나가는 은혁은 고통 속에서 웃었다.
-63층을 돌파하였습니다!
-64층을 돌파하였습니다!
-65층을 돌파하였습니다!
얄궂게도, 튕겨 나간 은혁은 빠르게 층을 돌파했다.
“앗!”
“저거 노린 거임?”
카인과 인치의 화신은 빠르게 날아가는 은혁을 보며 그런 대화를 나눴다.
3군주의 화신들은 은혁을 쫓으려 했지만.
-약속한 치트 스틸부터 내놓아라. 그전에는 아무도 못 간다.
“야! 너랑 계약한 건 카인뿐이잖아! 나머지 우리는 보내줘야지!”
인치의 화신이 화를 냈지만 금속 차원의 거신은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강은혁을 공격했을 때의 수혜는 너희 전부에게 돌아가는 것 아닌가?
“야! 수혜의 여부가 아니라 계약 당사자하고만 따져야지!”
-직접 계약한 자가 지불 능력이 없을 수도 있잖나. 내가 이러는 게 싫다면, 너희는 약속한 금속을 선불로 지불했어야 옳다.
실제로, 은혁은 그렇게 했었다.
46층~49층 구간에 도전하던 무렵, 은혁은 배불뚝이 마이크와 함께, 제물로 바칠 금화를 잔뜩 쌓아두어서 눈앞에 보여준 뒤 계약을 맺었었다.
금속 차원의 거신은 그 방법이 정석적인 계약이라 판단하고 선지급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하하하하……!”
저 멀리서 은혁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카인의 화신은 재빨리 치트 스틸을 소환했다.
슈르르르륵.
허공에서 생성되는 치트 스틸의 모습은 장관이었지만, 인치의 화신은 성화를 부렸다.
“야! 평소에는 빠르더니 지금은 왜 이리 느려!!”
“금속 차원의 거신 소환을 유지한 상태로 추가로 스킬을 발동해야 하니 오래 걸리는 거다!”
카인의 화신 자신도 속이 탄다는 듯이 외쳤다.
은혁을 죽이기 위해 소환한 거신이 발목을 잡게 된 격이다.
“야! 미치오! 네가 먼저 가!”
“내가 왜…….”
3군주의 화신들은 티격태격했고, 카인의 화신이 겨우 치트 스틸을 건넸다.
-다음에 또 불러다오.
금속 차원의 거신이 말하며 사라졌다.
3군주의 화신들은 황급히 은혁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은혁은 침착하게 날아가며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진공풍파신장] + [그림자 방출]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퓨전 스킬 [그림자 진공 폭발]!!’
[광풍돌진권]과는 반대로 오히려 진공의 힘으로 흡수하는 [진공풍파신장]에, 그림자를 방출하는 [그림자 방출]을 합쳤다.
서로 반대되는 특성의 스킬이었지만, 어두운 진공 공간에서는 의외의 상승 효과를 일으켰다.
투쾅!!!
은혁의 비행 속도가 가속되었다.
-66층을 돌파하였습니다!
-67층을 돌파하였습니다!
-68층을 돌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