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 올마스크와의 대화
“응. 이 몸 자체는 1회차지. 단…….”
올마스크는 조금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귀환자라서, 어지간한 인간들보다 훨씬 많은 걸 경험했음요.”
올마스크는 평상용 가면을 벗었다.
처음으로 맨 얼굴을 드러냈다.
“어때? 평범하게 생겼지?”
가면 너머에는 주름살 가득한 중학생의 얼굴이 있었다.
비유하자면, 절대 녹슬지 않는 식칼에 오랜 세월 누적된 물때랄까.
어린 나이에 노화가 멈춘 존재였음에도, 오랜 고생을 겪었기에 주름살이 쌓인, 기묘한 얼굴이었다.
“아,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시네. 허험.”
올마스크는 얼른 다시 가면을 썼다.
은혁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떠올려 냈다.
“실은 당신의 과거를 조금 봤습니다.”
“음? 언제?”
“31층 말입니다.”
31층에서는 미스터리 진행자가 주는 시나리오 속에 들어가서 사건을 해결하라는 메인 미션이 주어진다.
은혁은 그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고, 추가로 히든 미션에 도전했었다.
‘태백산 미래 전략 연구소’의 비밀이 얽힌 것이었다.
은혁이 그것을 설명하자 올마스크는 감탄했다.
“햐, 그랬구만. 거기서 연구소장의 ‘기억’과 만난 건가.”
“그렇습니다. 술술 이야기해주더군요.”
“허. 내 정체를 옛 기억을 통해 알아낸 건가. 그런 식으로도 내 정체가 노출될 수 있다니……. 반성해야겠군.”
“당신이 아카데미를 만든 것도, 그리고 그 이유도 들었습니다. 인간들이 받을 충격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초대장’을 확보하려고.”
“그렇지. 나는 100층탑에 꼭 들어가야 했거든. 아카데미에 100장도 넘게 초대장이 주어졌고, 아마 태백산 쪽 연구소에도 서너 장쯤 주어졌던 걸로 기억해.”
“거기에 대해서는 크게 궁금한 게 없지만, 당신이 처음에는 100층탑의 강림을 막으려 했다는 게 이해가 안 가더군요.”
“응…… 내 과거사를 자세히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저는 회귀자라는 것까지 깠는데요. 그리고 올마스크 님도 귀환자라는 걸 밝혔잖습니까. 이제 와서 뭘.”
“오케오케, 알았음.”
올마스크는 한숨을 내쉰 다음 말했다.
“100층탑이 강림하기 전, 관리국은 베타 테스터를 선정했어. 대략 100명 정도.”
“거기에 당첨되셨군요.”
“크하핫! 맞아. 당첨이지. 알파레몬 놈이 직접 날 데리고 갔어.”
“알파레몬?”
“관리국장 겸 총관리자인 놈 알지? 가면 쓴 놈.”
“네. 설마.”
“그놈 본명이 알파레몬이야. 당시 직함은 100층탑 건립위원장? 뭐, 그런 직함이었지.”
‘알파레몬.’
은혁은 그 이름을 뇌에 새겨질 정도로 반복해서 외웠다.
“나는 관리국 본부로 끌려갔지. 그곳에는 나와 같은 베타 테스터가 100명 있었지.”
“튜토리얼 같은 걸 진행했습니까?”
“아니. 다른 차원으로 그냥 던져 버렸다.”
“그 차원은?”
“여기.”
“아……!”
“청룡파가 지배하는, 바로 이곳.”
올마스크가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꼭 여기여야 할 필요는 없었어. 알파레몬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 그걸 테스트하기 위해 우릴 적당히 위험한 곳에 던졌을 뿐이야. 그 적당히 위험한 곳으로 청룡파의 차원이 선택되었을 뿐이고. 어차피 테스트니까 대충대충 한 거지.”
“과연. 아니, 역시라고 해야 할까요.”
은혁은 올마스크 곁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100층탑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런 다양한 차원은 존재해 왔군요.”
“그렇지. 일부 차원은 파괴되어서 100층탑 내부로 흡수된 거고, 일부는 이런저런 점프 포인트나 게이트 따위로 100층탑과 연결된 거고.”
“그래서 테스트는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후후. 우리 베타테스터들은 호랑이굴에 갑자기 던져진 쥐 꼴이었지. 관리국 아니, 당시 100층탑 건립 위원회 놈들은 우리를 냉철히 관찰했어. 흐흐흐…….”
올마스크의 목구멍으로 스산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괴물 앞에서 얼마나 크게 비명을 지르는가? 어떨 때 자포자기하고 어떨 때 맞서 싸우려 하는가? 등등의 반응 테스트 데이터를 보는 게 알파레몬의 목적이었어.”
“……잔혹한 실험이군요.”
“많이 잔혹했지. 다 죽었으니까.”
올마스크가 언덕 아래를 가리켰다.
“이 언덕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언덕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무덤가가 나온다. 99개의 무덤이지.”
“나머지 99명의 베타테스터는 다 죽은 겁니까?”
“응. 괴수들에게 통째로 잡아먹힌 자들이 많아서, 묘지는 장식일 뿐, 실제로 사람을 묻은 건 아님요.”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았습니까?”
“덩치가 작아서. 그리고 운이 좋아서.”
총관리자, 즉 알파레몬은 100명에게 플레이어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
100명의 베타테스터를 살려서 뭘 할 생각이 없었고, 테스트가 끝나면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으므로.
하지만 올마스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체구가 작았기 때문에, 동굴의 좁은 틈새로 도망치다가 우연히 ‘가면’을 찾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면은 100층탑의 설계자들 중 한 명이 남긴 ‘최초의 가면’ 중 하나였어.”
“가면?”
“우리 인간 기준에서는 만능 스마트폰 같은 거지. 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통신, 전자상거래, 구조 신고 등등을 다 하잖아?”
“아, 이해했습니다.”
“조악한 설명이지만, 대충 그런 거야.”
“누가 실수로 떨어뜨린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니라고 봐. 가면은 꽤 귀한 거니까. 내 짐작이 맞다면, 100층탑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 고의로 떨어뜨린 거라고 생각해.”
“아……!”
“혹시 만났나? 어떤 여자인데.”
“네.”
은혁은 통합길드장이 된 뒤, 황금빛 공간에 전송되어, 설계자로부터 통합길드장의 목걸이를 받고, 승급 보너스를 얻은 일을 말했다.
“음. 7대 길드장들은 헌법 만들 때 그 여자를 봤지. 다들 그냥 넘어갔지만, ‘가면’을 지니고 있던 나는, 베타테스터 시절에 주운 가면의 본래 주인이 그녀임을 느낄 수 있었어.”
“그녀의 정체가 뭘까요?”
“모르지. 다만 플레이어들에게 조금 호의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저도 그건 느꼈습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빠졌군. 하여간 나는 귀한 가면을 쓸 수 있었지. 그 가면을 쓴 순간 스스로 플레이어로 각성했어.”
“……!”
“가면을 훔친 것으로 인식되었는지 자동으로 ‘도적’ 직업이 뜨더군. 가면 속에는 각종 스킬에 관한 정보, 몇 년 뒤 지구에 강림하게 될 100층탑에 관한 정보와 강림 날짜에 관한 시간 계산식 등이 담겨 있었어. 내가 얻은 최초의 가면은, 그야말로 엄청난 가면이었던 거야.”
“그 가면을 쓰고 무얼 하셨습니까?”
“최우선 목적은 생존이었지. 본능적으로 [은신] 스킬도 쓰고 도망쳐서 살아남았어. 용기를 내서 [암습]과 [도축] 등의 스킬로, 이 차원에 존재하는 각종 괴물들을 잡아먹었지. 그중에 제일 위험하고 맛있었던 것은 드래곤의 알이었어.”
“굉장하군요.”
“그러다 보니 게임처럼 레벨이랑 숙련도가 오르더라? 그러다 [가면 제작]과 [가면 훔치기] 같은 스킬을 알게 되었지. 드래곤 중에 차원을 이동하는 드래곤을 [가면 지배]로 지배한 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올마스크는 자신의 옛 이름을 버리고 올마스크가 되었다.
100층탑이 지구에 생기기도 전에 이미 올마스크는 레벨이 100에 달했다.
“그리고 차원을 떠돌며, 나와 같은, 하지만 다른 차원에 배치된 베타테스터들을 찾는 데 성공했지. 인간뿐만 아니라, 엘프나 드워프 같은 종족들도 있더군. 일부는 종족의 운명 그 자체를 100층탑에 종속당하고 차원이 파괴되어 100층탑의 일부가 되었지.”
“으음……!”
“까딱하면 우리 인류도 그렇게 속박된 존재가 될 뻔했는데, 어째서인지 인류의 경우, 100층탑을 통해 시험하기로 결정되었지. 하지만 관리국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어.”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 해보셈.”
“아마 적당한 이유, 가령 적당히 발달한 과학 지식, 적당히 많은 인구수, 특색 없이 이족 보행하는 신체 같은 이유였을 겁니다.”
“흐흐. 그럴지도. 나는, ‘관리국 놈들의 기본 종족값이 인간이라서 인간들이 사는 지구에 100층탑을 세웠다.’라고 생각했는데.”
“어?!”
은혁은 올마스크의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관리국 놈들도 인간이야.’
은혁은, 관리국 측 인사들이 외모만 인간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일 거라고 판단했다.
‘여기에도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어이, 너무 고민하지 말라규? 해봤자 알 수 없으니까. 말단 관리국 요원은 물론, 과장, 차장급도 아마 잘 모를걸?”
“으음, 그렇군요.”
은혁은, 가능하다면 황금빛 공간에서 ‘설계자’와 다시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은혁의 의지대로 되는 부분이 아니었기에, 당장은 잊어 두기로 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그렇게 차원을 떠돌며 강해진 뒤 지구로 돌아왔음.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구는 아무 일 없이 평화로웠어. 더 이상 100명 단위의 베타테스터들이 다른 차원에 끌려가는 일도 없었지. 실종 사건은 그냥 흐지부지 처리되었고.”
“그렇게, 한동안 지구는 별다른 의문 없이 평화를 누렸겠군요. 폭풍전야인 줄 모른 채.”
“맞아. 뭐, 100층탑이라는 게 언제 강림할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알아도 솔직히 대처할 수 없었겠지만. 물론 나는 최초의 가면에 담겨 있던 정보 덕분에, 100층탑이 강림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지.”
“그다음은 저도 알 것 같군요.”
“응. 나를 도울 만만한 정보 조직이 하나 필요해서, 태백산 미래 전략 연구소라는 곳으로 가서, 그곳의 소장을 지배했다.”
“하필 태백산 미래 전략 연구소를 고르신 이유는?”
“방금 말한 그대로야. 거기가 가장 만만했으니까. 그리고 놈에게 내 힘이 일부 담긴 가면을 주고 100층탑의 예상 강림 위치를 계산시켰지.”
그 뒤는 은혁도 과거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당신은 100층탑의 강림 자체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죠.”
“맞아. 100층탑이 나타날 아주 정확한 좌표는 알지 못했거든. 아마 알았어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 강림을 막아내긴 힘들었을 거야. 실망한 나는, 호랑이굴에 직접 들어가기로 했지.”
“100층탑에 직접 들어가기로 한 거죠? 저는 당신이, ‘이래서야, 귀환한 힘숨찐이 되어서 다시 맨 처음부터 시작하게 될 뿐인데.’라고 푸념했던 것도 과거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흥, 2회차 주제에 모르는 게 없군. 님 말이 맞음요. 정말로, 이 뒷부분은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네.”
올마스크는 흥이 식은 듯이 말했고, 은혁이 빠르게 요약했다.
“그런 뒤 당신은 아카데미와 태백산 미래 전략 연구소를 통해, 지구인의 100층탑 강림의 정신적 충격을 줄이고 ‘초대장’을 다량 확보했죠.”
“그렇지. 그렇게 나는 100층탑에 들어온 거야. 그리고 본래 목적을 수행하기로 했다.”
“본래 목적은?”
“인류 구원이지. 구원자의 자질이 있는 자를 찾아 나서고, 없다면 내가 구원자가 되기로.”
“진짜 숭고한 이상이군요.”
“근데 표정이 왜 그러심?”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은 다 성격이 비뚤어졌잖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의외로…… 목적과 수단이 그럭저럭 일치한달까? 크게 깽판 치지 않고 고고하게 인류 구원을 추구하는 점 하며…….”
“갑자기 칭찬하는 걸 보니 눈치가 매우 좋군.”
올마스크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설마, 여기서 날 가면으로 만들겠다는 건 아니겠죠?”
“아닐 이유가 없잖음?”
“역시, 당신도 미친놈이군요.”
“갑자기 평가가 나빠지네.”
“평가를 좋게 할 수가 없잖습니까.”
“그럼 네 가면을 빌려주기만 해도 되는데.”
“싫습니다.”
“…….”
“왜요?”
“강은혁. 100층탑의 인류에게는, 플레이어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해!”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