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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73화 (373/434)

373화 : 강은혁의 유언

염훈이 제인에게 날아가자, 제인이 떨리는 손으로 옥상에 설치된 플랫폼을 가리켰다.

“드래곤 파워드 아머가…….”

엉망으로 파괴된 드래곤 파워드 아머였다.

은혁 없이, 비상 프로토콜을 발동한 채 28.5층으로 귀환한 것이다.

-소유자 상실!

-각 파츠 완파! 내부 프레임 손상도 90%!

-수리가 완료되고 소유자인 강은혁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28.5층에 머물게 됩니다!

-임시 소유권과 수리 권한 및 책임은 제인에게 귀속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본 염훈과 제인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은혁이는? 어떻게 됐어?! 왜 혼자서만 온 거냐구!”

제인이 염훈에게 매달리듯 물었다.

“아직 몰라. 하지만 괜찮을 거야.”

이 시점의 염훈은 은혁이 알아서 귀환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난 5층으로 갈게. 금방 은혁이가 또 쓴다고 할지 모르니, 수리 부탁해!”

“응…….”

제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염훈은 다시 게이트로 뛰어 들어가, 5층으로 향했다.

“허억, 허억.”

다급한 염훈의 거친 숨소리를 빼면 무척 조용했다.

나지막한 탄식 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올 뿐.

5층 광장에 모인 이들은 고개를 떨군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뭐지? 왜 이리 조용해?’

염훈은 은혁이 패배하고 도망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뭐, 괜찮아. 내가 70층에 도달했으니까.’

일단 게이트를 개방했으니, 은혁과 함께 70층에 갈 수 있었다.

은혁이라면 3군주에 맞설 새로운 수단을 개척해낼 터.

그때였다.

사사사삭.

자유시장 길드장인 슬레이버의 부하들이 염훈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슬레이버 님께서 보내셨습니다. 황금 궁전으로 모시겠습니다.”

“엥?”

“어서 타십시오.”

작은 마차에 염훈을 태우자마자 창문을 닫았다.

마치 외부와의 정보를 차단하려는 듯이.

‘어디로 가는 거지?’

마차가 향한 곳은 구원 길드의 공용 훈련장이었다.

초창기에 은혁과 단둘이 훈련을 하던 곳.

구원 길드원들은 염훈을 그곳의 지하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비밀 통로가 존재했고, 그 비밀 통로는 황금 궁전의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이쪽입니다.”

염훈은 안내를 받아 황금 궁전으로 향하며 속이 탔다.

‘왜 이렇게 시간 낭비들을 하는 거지? 당장 은혁이를 구하러 가야 하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길드장들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조용히 안내에 따랐다.

마침내 염훈은 황금 궁전 지하실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슬레이버, 저스티스, 빌이 있었다.

그리고 가면을 쓴 사내가 한 명 더 있었다.

“어어, 무슨 일입니까?”

염훈이 묻자, 슬레이버, 저스티스, 빌은 침통한 기색을 드러낼 뿐, 말이 없었다.

“그쪽이 염훈임?”

가면을 쓴 자가 등을 보인 채 물었다.

염훈이 주춤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염훈입니다.”

“강은혁의 동료이자, 얼마 전 성황제로 승급했으며, 유사시에 통합길드장 대신 길드연합국을 이끌어갈 그 염훈 맞음? 중요한 거니까 똑바로 말하셈.”

“네. 그게 접니다.”

“그럼 발표해도 되겠군.”

가면을 쓴 자, 올마스크가 모두를 돌아봤다.

“나는 올마스크라고 해.”

“예.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올마스크는 슬쩍 염훈의 인사를 피했다.

뭔가 껄끄러운 말, 하지만 꼭 해야 하는 말을 준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사실, 강은혁이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비밀에 부쳐두는 편이 더 좋겠지? 잘 들어라. 강은혁이 죽었다.”

염훈은 어느새 쓰러져 천장을 보고 있었다.

머리부터 바닥에 부딪힌 탓에 머리가 아팠다.

“바, 방금 뭐라고……!”

“강은혁이 3군주의 화신과의 싸움 중 죽었다.”

“어딥니까!!”

염훈은 당장 찾아갈 생각이었다.

“저는 [플레이어 부활] 스킬을 얻었으니, 지금 바로 가면 부활시킬 수도 있습니다!”

죽은 지 한 시간 이내인 플레이어의 시체가 있다면, 일정 확률로 부활에 성공하는 스킬이 [플레이어 부활] 스킬이다.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고, 쓸 때마다 성황제의 수명이 조금 줄어들긴 하지만, 염훈은 은혁을 위해서라면 매일이라도 쓸 수 있었다.

“놈들도 그런 건 예상했을 거다. 3군주의 화신들이 강은혁의 시체를 완전히 제거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때였다.

파앗!

은혁의 통합길드장의 목걸이가 황금 궁전으로 전송되었다.

통합길드장이 죽은 경우에만 발동하는 현상.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염훈과 7대 길드장들에게 전송되었다.

-통합길드장 강은혁 플레이어의 사망이 확인되었습니다!

-통합길드장의 목걸이가 자동으로 황금 궁전에 전송됩니다!

염훈은 시스템 메시지를 잡아서 찢어 버리고 싶었다.

‘아냐. 은혁이는 살아 있어. 이건 분명히 무슨 정교한 속임수일 거야.’

은혁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목걸이만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다른 길드장들은 모두 은혁의 죽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아니야……!”

염훈은 모두를 밀치고 게이트로 달려갔다.

그리고 은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올마스크가 문가를 가로막았다.

“이봐. 나는 강은혁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어.”

올마스크는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자신의 가면까지 하나 빌려간 은혁이었지만, 결국 버티지 못하고 3군주의 화신에 의해 죽는 모습을.

가면을 통해 멀리서도 죽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은혁이 가짜로 죽은 것이었다면, 3군주의 화신들이 눈치챘겠지.”

말하자면, 3군주 쪽에서 일종의 교차검증을 해준 것이다.

“나는 놈들이 은혁의 시체조차 남기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함요.”

올마스크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갑게 들려왔다.

염훈은 올마스크를 밀쳤고, 올마스크는 별 저항 없이 밀려났다.

“염훈.”

빌이 염훈의 어깨를 뒤에서 붙잡으며 말했다.

“괴롭겠지만, 강은혁의 죽음은 기정사실인 것 같다.”

통합길드장 관련 시스템 메시지가 뜨고 목걸이까지 나타났다는 것은, 은혁의 죽음이 분명하다는 증거였다.

“지금 은혁을 찾으러 가는 건 미친 짓이다, 염훈. 3군주 놈들이 함정을 깔아둔 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을 되찾아라.”

빌이 염훈의 앞을 가로막았고, 다른 길드장들이 말렸지만.

“다 비켜!! 씨X 비키라고!!!”

염훈은 게이트로 갔고, 하는 수 없이 저스티스, 워잭, 슬레이버, 테일러가 염훈을 경호하기로 했다.

저스티스, 슬레이버는 길드장이고, 워잭과 테일러도 강력한 부길드장이었으니, 3군주의 화신이 기습해 와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빌 또한 한숨을 내쉬며 이들을 돕기로 했다.

“60층~69층은 여전히 엉망이다. 70층까지 뚫은 염훈이 있으니, 파티를 맺으면 다 함께 갈 수는 있겠지. 인공 게이트를 이용해 은혁의 최후 추정 좌표로 전송하겠다.”

그렇게 저스티스, 슬레이버, 워잭, 테일러는 함께 전송되었다.

공기도 없는 무중력 공간을 스킬의 힘만으로 탐색했다.

은혁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좌표로 갔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염훈은 테일러와 슬레이버를 닦달해서 시간을 되감으라 했지만.

“공간 자체가 지워졌다네. 미안하네.”

테일러가 말했다.

“무슨 소립니까?! 빌이 가르쳐 준 추정 좌표는……!”

“그 3군주 놈들이 은혁을 살해하고, 그 공간 자체를 축소시키고 소멸시켜 버렸어…….”

테일러의 [시간 되감기]를 써서 은혁의 시체를 되찾으려 해도, 은혁이 죽었던 공간 자체가 지워지고 훼손되어서, 도무지 복구가 안 된다.

“아……!”

염훈은 결국 의식을 또다시 몇 초간 잃었다.

[불패불굴] 특성을 지닌 염훈이었지만, 결국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순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고의 위상들이 몰려왔다.

3군주의 지시를 받은 괴물들이, 그들을 모조리 죽이러 온 것이다.

“이런! 퇴각한다!”

“염훈은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군. 내가 업겠다.”

“워잭! 테일러! 나를 서포트 해라!”

다급한 소리들을 들으며, 염훈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 *

3일이 지났다.

3일간 염훈이 가장 많이 한 일은 기절한 일이고, 두 번째로 많이 한 일은 현실을 믿지 않는 일이었다.

‘강은혁이 정말 죽었을 리가 없어.’

하지만 그때마다 올마스크가 고개를 저으며 진실을 말해줬다.

“괴롭겠지만 받아들여라, 염훈. 강은혁은 죽었다.”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괴로웠던 염훈은 그때마다 의식을 잃었다.

3일 만에 깨어난 염훈은 황금 궁전에서 회의 중인 길드장들을 만났다.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은혁의 죽음을 공표할 것인지에 관해 토론하고 있었다.

염훈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회의를 일시 중지 했다.

염훈이 올마스크에게 다가갔다.

“말해주십시오.”

“뭐를?”

“은혁이의 최후를…….”

“어떻게 죽었는지 듣고 싶은 거임? 듣기 괴로울 텐데?”

올마스크가 염훈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염훈은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올마스크는 은혁이 마지막까지 용맹하게 싸웠다고 말해줬다.

“녀석이 내게 한 부탁은, 자신이 3군주의 화신들과 싸우는 동안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었어.”

“아니었다고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부탁을 했죠?”

올마스크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면을 썼어도, 껄끄러운 말을 하며 상대를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염훈을 무조건 도와서 100층탑을 정복하라더군.”

“아니, 도대체 왜……!”

“왜 강은혁을 그 자리에서 돕지 않았냐고?”

“네. 그랬다면 강은혁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자기 말로는 자신의 죽음은 100층탑 정복을 위한 필연이라더군.”

“필연이라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설명해 주시죠!”

부스럭.

올마스크는 은혁의 편지를 내밀었다.

“네가 이성적으로 판단할 준비가 되면 이걸 직접 전해주라고 했다. 내가 볼 때 지금이 그때인 것 같군.”

은혁은 올마스크가 전해 준 편지를 뜯었다.

유서였다.

[<강은혁의 유서-2>

염훈.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쯤이면, 나는 죽어 있겠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죽음은 100층탑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야.

내가 죽음으로서 길드연합국이 얻는 여러 이점이 있지만, 일일이 설명했다간 앞으로의 네 전략 구상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게.

다만, 3군주를 방심시키는 데 내 죽음보다 더 좋은 길이 없다는 것까지는 말해도 되겠지.

문제는 딱 하나인데, 가짜로 죽으면 들통날 가능성이 크니 실제로 죽어야 한다는 거지.

멋대로 죽어서 미안하다, 염훈.

너에게 막중한 책임을 남기고 가는 것도 미안해.

하지만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너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다는 거다.

길드연합국 또한 충분히 강하고.

성황제로 승급한 너는, 길드연합국 플레이어들의 100층 정복의 염원을 끌어모아 힘으로 전환할 수 있어.

지금의 너라면 100층을 정복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혹시, 내가 죽고 실의에 빠져서, ‘100층 따위 정복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하면서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거 기억나?

100층탑의 정상에 오르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소문 말이야.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내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100층에 올라가서, ‘소원 100개 이룰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빈 다음, 그중에 한 소원으로 날 부활시키는 걸 택하면 그만 아니냐?

만약 소원 100개 이뤄달라는 식의 꼼수가 안 통한다면, 내 소원을 참조해도 좋다.

내가 원하는 소원은 딱 하나!

‘100층탑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을 부활시킨다.’

어때?

100층탑에 들어와서 운명이 뒤틀리고, 죽은 자들도 많지.

그런 자들을 모조리 싹 다 부활시켜 버리는 거야.

그중에는 꼴 보기 싫은 놈들도 있지만, 네가 100층을 정복할 때쯤이면 그놈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아, 유서가 너무 길어졌군.

안녕이다!]

유서의 밑에는 더 황급히 쓴 흔적이 역력한 추신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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