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 교황제와의 대결 (2)
“윽!”
알렉스가 드릴 랜스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방어뿐이었다.
콰콰콰콰콱……!!
도망치던 알렉스는 갑주의 힘을 믿고 힘으로 버텨 보려 했지만, 드릴 랜스의 힘은 갑옷마저 서서히 뚫어 냈다.
“흐억?! 도대체 그 무기는 뭐냐!!”
“이런 거 처음 보죠? 마나 엔진 병기인데, 당신이 없는 수십 년 동안 100층탑이 많이 변했습니다.”
은혁은 친절히 말해주며 무기를 또다시 변신시켰다.
“제5형태 칼라미티 해머.”
철컹!
은혁은 교황제를 올려쳤다.
꽈아아앙!!
비스듬히 휘둘렀을 뿐인데, 건물 천장까지 뚫고 하늘로 튕겨 올라갔다.
“크악!”
하지만 은혁은 세븐 칼리버를 제4형태인 차원의 낚싯대로 이미 변신시켜서 휘둘렀다.
“흡!”
철컥!
낚싯바늘이 교황제의 갑옷에 걸렸고, 은혁은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광풍돌진권]을 날렸다.
쿠콰콰콰콰콰콰콰쾅!!
끌려오는 순간 맞았기에, [광풍돌진권]의 위력이 100% 들어갔다.
갑옷의 흉갑과 면갑을 포함한 전면부 대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내부의 알렉스는, 말도 안 되는 전신 진탕 증세를 보였다.
“커흑, 컥……!”
알렉스는 앞도 못 보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찌그러진 갑옷이 얼굴과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갑옷을 해제하면 은혁의 손에 죽을 것이 뻔하기에 그럴 수도 없다.
그 순간.
“[긴급 수리].”
파앗!
교황제의 갑옷이 빠르게 복구되었다.
교황제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이제야 알았다. 네놈 직업……!”
“맞춰 보시죠?”
“네놈은 직업이 여러 개인 놈이구나!”
“정답. 그리고 거기서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은?”
“내 대업을 이루는 데 방해라는 뜻이지!”
기이이잉……!
교황제는 모든 힘을 주먹에 모아 은혁에게 휘둘렀다.
일단 명중만 제대로 한다면 확실히 은혁을 죽일 수 있는 위력이다.
은혁이 마음만 먹으면 피할 수 있었지만.
투확!!
은혁은 맞았다.
알렉스가 흠칫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피가 터져 나갔고, 알렉스는 흠뻑 뒤집어썼다.
“아, 그거 가짜입니다.”
진짜 은혁은 알렉스의 뒤편에서 말을 걸었다.
진짜 은혁은 [무아연환격]을 날려서 알렉스가 정신 못 차릴 때, [은신] 스킬로 구석에 숨은 뒤 여태 숨어 있었다.
그리고 [피구름 생성]을 [그림자 분신 6.0]의 중심 부분에 넣어서 생성하고, 진짜 무기를 쥐여준 채 마저 싸우게 했다.
그리고 방금 분신이 죽을 때 피가 터지도록 했다.
“두 번째로 묻는 건데, 더 할 겁니까? 지금 항복하면 더 안 때린다고 약속할 수 있는데.”
“어림없는 소리!!”
알렉스는 포기를 모르고 은혁에게 돌진했지만.
“[피의 저주]. [피의 지배].”
파앗! 파앗!
이미 피를 뒤집어쓴 알렉스는 꼼짝없이 당했다.
우뚝……!
달려들던 그대로 멈춰 서게 됐다.
“이, 이건……!”
“갑옷 표면은 물론 안쪽까지 피로 완전 적셔졌죠? 그럼 끝이지, 뭐.”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은혁은 [그림자 결속]과 차원의 낚싯대까지 걸어서 [그림자 꼭두각시]를 발동했다.
“지금부터 5분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두들겨 패라.”
피투성이 갑주를 입은 교황제는, 주먹으로 스스로를 때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그렇게 5분이 지났다.
중간에 알렉스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를 은혁은 들었지만 일부러 못 들은 체했다.
정확히 5분이 지나자, 갑옷은 완전히 파괴되고, 주먹의 건틀릿과 얼굴을 보호하는 면갑도 너덜너덜해졌다.
은혁이 면갑을 맨손으로 잡아 뜯어 버리자, 엉망이 된 알렉스의 모습이 드러났다.
“더 할 겁니까?”
“…….”
알렉스는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또르륵 흘렸다.
“다 큰 어른이 뭘 울고 그럽니까?”
“제기랄……!”
“저한테 맞아서 지는 건 그리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게 아니다……!”
눈물이 흐를 때마다 피투성이 얼굴에 눈물 흐른 자국이 생겨났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다.”
알렉스는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100층탑의 전설적인 존재였던 내가! 최초로 황제급 군주에 도달했던 내가 이렇게 되다니……!”
“음…….”
은혁은 동감했다.
“당신의 전략 자체는 사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 낭비를 너무 했다는 게 문제죠.”
100층탑의 플레이어들은 엄청난 속도로 상향 평준화되었다.
길드가 존재하니만큼, 그 길드 밑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고속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당신이, 교황제가 최강이던 시절에는 길드연합국과 3군주가 그렇게까지 빠르게 성장하진 않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사라진 지 수십 년…….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은혁의 세븐 칼리버를 보고 놀란다.
하지만 교황제가 보고 놀라는 만큼 놀라진 않는다.
소형화된 마나 병기는 아니더라도, 미션 중에 다양한 마나 엔진 장비들을 접할 수밖에 없으므로.
“교황제 폐하. 당신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당신의 전성기는 헬카리우스를 상대로, 교황제의 검을 들고 맞서던 그 순간. 딱 그 순간까지입니다.”
감히 인간으로서 흑룡파의 수장이자 최강의 드래곤인 헬카리우스와 맞선다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은혁으로서도 헬카리우스와 정면 대결을 벌이는 것은 상당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즉, 교황제의 헬카리우스와의 대결은 인류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는 대사건이기도 하므로, 은혁은 높이 평가했다.
“차라리, 나는 거기서 그냥 죽었어야 했나? 전성기이던 그 시점에?”
“아뇨. 핵심은 방금 말씀드렸듯이 시간입니다. 당신이 바깥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 모든 게 바뀌었을 뿐.”
은혁은 선언했다.
“당신은 지구의 인간들을 세뇌해 예비 플레이어를 확보하여 100층탑을 밑에서부터 장악할 생각이었겠지요. 플레이어는 확실히 귀한 자원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자원을 잃었습니다. 바로 시간 말입니다.”
교황제는 할 말이 없었다.
은혁은 교황제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당신에게 제안할 것은 하나뿐입니다. 제 부하가 되십시오. 그리고 제가 100층탑을 정복하는 걸 도우십시오.”
“이 모든 걸 어떻게 포기하란 말인가……! 그동안의 노력, 계획, 부하들, 그 모든 걸……!”
“그걸 버리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교황제 지위는 전부 유지될 겁니다.”
은혁은 끈질기게 설득했다.
은혁은 교황제의 태도를 보며 내심 혀를 찼다.
‘이럴 때 보면, 어린애와 어른이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
어린애가 장난감을 잃기 싫어하는 태도나, 어른이 교묘한 계획을 통해 이룩한 것들을 잃기 싫어하는 모습은 묘하게 닮았다.
교황제와 입씨름을 하면서도 은혁은 의외로 크게 화가 나거나 짜증이 치밀지는 않았는데, 교황제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이 얼핏 보였기 때문이다.
‘더 패지 말고 좋게 타이르자.’
이러한 은혁의 열의가 전달되었는지, 장장 두 시간에 걸친 입씨름 끝에 교황제가 설득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네.”
“뭡니까.”
“자네의 다음 계획은 뭔가?”
“100층탑과 연관이 깊은 지구의 조직이 둘 있죠. 그중 하나인 당신을 부하로 삼는 데 성공했으니, 그다음은 아카데미를 장악해야죠.”
원래 계획은 아카데미 먼저, 그다음 교황제 찾기였는데, 우연히 본 TV 덕분에 일의 순서가 반대로 진행되었다.
“좋아. 협조하지. 단, 아카데미 놈들을 내 수하로 부릴 수 있게 해주게!”
교황제 알렉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은혁은 피식 웃으며 동의했다.
어차피 알렉스가 은혁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알렉스가 지닌 인적 자산과 조직도 은혁의 것이 될 것이므로.
“충성을 맹세하십시오.”
교황제는 내키지 않는 태도로 충성을 맹세했다.
물론, 100층탑 바깥이므로 시스템적으로 맹세가 이뤄지진 않았다.
“나는 신뢰로서 당신의 충성 맹세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피의 지배], [그림자 결속], [메모리 마인] 등 온갖 지배 수단을 총동원해서 교황제를 지배했다.
교황제 알렉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제 은혁은 절대적으로 교황제를 지배했다.
‘좋아. 생각보다 훨씬 순조롭군. 다음은 아카데미다.’
한 달 뒤, 은혁은 여러 부하들과 100층탑의 1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부탁한다, 염훈. 너무 무리하진 말고.’
* * *
은혁이 죽은 뒤 2주가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염훈은 잠을 6시간 정도만 잤다.
하루에 6시간이 아니라, 2주 합쳐서 6시간이다.
굳이 잠을 자지 않아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며칠간 피로가 쌓이더라도 [상급 치유] 한 방이면 말끔히 회복되었다.
2주의 대부분의 시간은 수련을 하거나 길드연합국을 관리하는 데 썼다.
염훈이 [광역 홀리 채널링]을 상시 발동하면서 느낀 것은, 이 힘이 근력에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지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었다.
당장 똑똑해진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혼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회의를 하는 것 같은 감각에 빠질 때가 있다.
‘플레이어들의 집단 무의식.’
무아의 성좌, 아카식 제로의 영역이 구축한 영역에 한쪽 발을 담그는 듯한 감각.
이 감각은 염훈에게 본능적으로 올바르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도록 도왔다.
3군주 세력을 향한 침공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 중이었다.
우선, 7대 길드를 연합시켜 연합군으로 재편하는 일에 돌입했다.
기존의 1군이었던 이들만 따로 모아 제1군단으로 재편했다.
[신성한 지휘]의 상위 호환격인 [절대 지휘]를 통해 각 길드의 이상을 표백시키고 새로운 목표를 주입했다.
2주차인 오늘, 염훈은 직접 사열을 주관하기로 했다.
“들어라.”
성황제 패시브 스킬인 [절대적 존재감]을 지닌 염훈 앞에 모인 제1군단은 꼼짝도 못 하고 들었다.
“길드연합국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러자, 염훈이 성황제 스킬 [법령 제정]으로 이미 만든 답이, 그들의 입에서 나왔다.
“100층 정복입니다!!!”
“그렇다. 100층 정복을 위해서는 3군주 세력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다.”
염훈은 아직 70층의 메인 미션도 알지 못했다.
70층~89층이 완전한 통합층이며, 끝없는 전쟁의 땅이라는 사실만 해피나 올마스크의 입을 통해 전해 들었을 뿐.
“100층탑의 정복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자존과 번영을 위해, 그리고 초대 통합길드장이었던 강은혁의 복수를 위해, 우리는 놈들을 무찌르고, 당당히 위로 올라갈 것이다.”
제1군단은 벌써 함성을 내지르고 싶은지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염훈은 엄격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직 너희들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 말에 제1군단 전원은 조금 아쉬워했다.
그때, 굳은 표정이던 염훈은 씨익 웃었다.
묘하게 은혁을 닮은 웃음이었다.
“……라고 3군주 세력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는 70층으로 간다. 그리고 교두보를 확보할 것이다. 군단장은 앞으로.”
제1군단의 군단장은 깜짝 놀라서 조금 늦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제1군단장은 은혁의 제자였던 불패불굴 길드의 김경철이었다.
염훈이 작게 물었다.
“3군주 세력권에 대해 잘 알지?”
“그건 압니다, 폐하.”
김경철은 공손히 답했다.
김경철은 한때 3군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용병이었다.
3군주 세력권의 지형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폐하, 지금 이들 실력으로는…….”
“걱정 마라. 내가 함께 갈 것이다.”
염훈의 그 말은 뜨거운 온천수처럼 김경철의 몸을 휘감았다.
공포도, 망설임도 사라졌다.
“알겠습니다, 폐하.”
1분 뒤, 염훈은 1군단 전원을 데리고 광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