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화 : 70층 지배 (1)
저벅저벅저벅……!
전투 준비를 완료한 1군단 전원이, 염훈의 뒤를 따라 줄 맞추어 걸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염훈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인원 열외 없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줄 맞춰 걷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성황제로서 발산 중인 패시브 스킬, [절대적 존재감]은 마치 햇빛과 같아서, 염훈이 지난 2주 동안 바쁘게 활동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절대적 충성주의자로 만들었다.
물론, 염훈의 인품이 뒷받침되었기에 두려움이 아닌 자발적 충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인공 게이트 준비는 끝났습니까?”
염훈이 빌에게 물었다.
빌은 거대한 인공 게이트를 조율하고 있었다.
“물론. 언제라도 이용 가능하다, 성황제 염훈.”
기존의 광장은 두 구역으로 나뉘었다.
3군주 세력, 특히 카인이 썼던 [봉인의 금속창]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광장을 개편하여 아예 절반은 70층 이상 전용 구역으로 설정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딱히. 강은혁과 함께 미리 다 만들어 뒀으니까.”
“그 망할 녀석…….”
염훈은 피식 웃었다.
슬픔이 가슴 밑바닥을 한 번 쳤기에 가능한 웃음이었다.
“제가 없는 동안…….”
“염려 마. 올마스크가 있으니까.”
은혁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달해 준 올마스크는, 길드연합국 방위를 전담하고 있었다.
가면을 교체해 가며, 잠을 전혀 자지 않아도 되는 올마스크가 5층의 방위를 담당하는 한, 이전처럼 허무하게 뚫리는 일은 없으리라.
염훈은 심호흡을 하고 인공 게이트로 들어갔고, 부하들이 뒤를 따랐다.
* * *
-70층~89층 : 끝없는 전쟁의 신세계.
70층은 일종의 평화 구역이었다.
대기실 격인 대리석 건물 안에 염훈과 부하들이 모여 섰고, 멀리서 설명을 담당하는 여성 NPC가 다가왔다.
“다시 오셨군요.”
가까이서 설명하려 한 순간.
“정지.”
염훈이 말했다.
NPC는 즉시 멈춰 섰다.
“네가 3군주의 부하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봐라.”
“네……?”
“아니군. 다가와도 좋다.”
지금의 염훈은 성황제로서의 능력이 매우 개발되어서, NPC의 잔류 사념 정도는 가볍게 읽어 냈다.
일반 NPC의 경우, 질문 몇 개만으로도 독심술에 가깝게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주의 사항이 있다면 주의 사항부터. 그런 게 없다면 미션창부터 열어줘.”
“네, 알겠습니다. 설명 시작하겠습니다.”
-70층~89층 통합층의 메인 미션은 플레이어의 신분에 따라 제공되는 미션이 달라집니다.
-크게, 군주의 미션과 신민의 미션으로 나뉩니다.
-신분 확인 중…….
염훈이 잠자코 기다리자, 염훈과 부하에 대한 신분이 모두 확인되었다.
-군주 신분 확인!
-군주 전용 메인 미션이 개방됩니다!
<70층~89층 군주 메인 미션 : 신세계 통일>
-목표 : 70층~89층 구간에 존재하는 총 20개의 성 중, 12개 이상을 확보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90층에 도전 가능.
-실패 시 페널티 : 군주 자격의 상실.
-제한 시간 : 100년.
“군주 메인 미션이라.”
염훈이 중얼거리자, 1군단 소속 플레이어 한 명이 다가왔다.
“성황제 폐하. 신민의 메인 미션은 이러합니다.”
<70층~89층 신민 메인 미션 : 선택>
-목표 : 세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할 것.
첫째. 군주를 도와 90층에 도달한다.
둘째, 반역을 일으켜 새로운 군주가 된다.
셋째, 노예, 무단입국자, 용병 등 제3의 길을 걷는다.
-성공 시 보너스 : 선택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선택에 따라 다름.
-제한 시간 : 100년.
메인 미션을 본 염훈은 피식 웃고는 NPC에게 물었다.
“만약 군주도, 신민도 아닌 사람이 이곳에 오면 어떻게 되나?”
“그 경우 자동으로 무단입국자가 되며, 모든 군주들의 눈에 붉은색 오러가 보이게 됩니다.”
즉, 모든 군주의 공공의 적이 된다는 뜻이다.
“강력한 무단입국자일수록 붉은색 오러가 매우 강하며, 군주들이 연합해서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빠르게 신민이 되거나, 아예 자유 용병이 되거나 하지요.”
“저 NPC의 말이 맞습니다, 폐하.”
김경철이 염훈에게 조언했다.
“저 또한 무단입국자로 들어왔고, 한동안은 실력으로 버텼으나, 결국 오래 버티진 못하겠더군요.”
산 채로 잡히면 노예가 되거나 죽을 게 뻔했기에, 김경철은 실력을 입증한 뒤 신분을 용병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여러분들은 여기 계신 염훈 플레이어 빼고 전원이 이미 신민으로 지위가 고정되어 있군요.”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뭐든지 물어보세요.”
“만약 내가 군주가 아니라 그냥 길드장 신분이었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규모가 충분히 큰 길드의 길드장인 경우, 군주로 즉시 신분 전환이 가능하십니다. 단, 약간의 전환 페널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금화와 운명치입니다. 규모가 클수록 전환 비용이 크지요.”
“그런가.”
염훈은 은혁이, 자신을 처음부터 길드장 겸 군주로 만들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질문했다.
“그럼 처음부터 군주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 경우에는 반대로 운명치 페널티와 성장 속도 페널티가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길드장 겸 군주로 하는 경우에는?”
“길드장 겸 군주요?”
NPC는 그런 경우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NPC는 벽으로 달려가더니, 벽걸이 전화기로 어딘가에 전화했다.
그리고 곧 돌아왔다.
“관리국에 물어보니, 그 경우에는 아무 페널티가 없다고 합니다. 단, 플레이어가 자기 스스로를 길드장 겸 군주로 등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군주 ‘추대’와 길드 ‘설립’을 72시간 이내에 모두 받아낸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
염훈은 자신이 군주가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무술 대회에서 우승한 은혁에게, 랭킹 200위~180위 수준의 여러 랭커들이 도전했고, 은혁은 그들을 모조리 박살 냈다.
그런 다음 죽기 싫으면 염훈에게 충성 맹세를 하라 시켰고, 염훈은 군주가 되었다.
그리고 3일에 걸쳐 부하들을 훈련시킨 날의 아침, 은혁은 염훈에게 혼자 26층~29층 통합층 도전을 위해 게이트를 예약하러 간다고 했고, 혼자 행정청에 갔다.
그리고 불패불굴 길드를 정식 길드로 등록하고, 은혁 자신은 부길드장에, 길드장에는 염훈을 등록했다.
별거 아닌 흐름 같았지만, 은혁이 특유의 방대한 지식으로 염훈을 위해 안배해 둔 것이다.
“저어, 100층탑의 역사상, 처음부터 그렇게 알고 한 사람은 교황제 말고는 딱 한 사람뿐이라고 하네요.”
“그 한 사람이 나겠군.”
“네……. 어떻게 그렇게 알고, 하신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내가 한 게 아니야.”
“아, 물론, 부하로부터 군주로 추대받고 길드장으로 등록되셨겠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 다른 질문거리가 있다.”
성황제가 된 염훈은 질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은혁이 알아서 다 척척 진행했지만, 정보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건 이제 염훈 자신의 몫이었으므로.
염훈은 분위기, 정세, 세력 구도 같은 것들을 우선 질문했고, NPC는 그런 부분은 잘 모른다고 했다.
“뭐, 그렇겠지. 차차 알아가야겠군. 그럼 마지막 질문! 저기 보이는 70층의 성은 누구 소유지?”
“현재 빈 성입니다.”
“음? 이렇게 평화로운 곳인데?”
염훈은, 3군주라면 평화로운 땅을 반드시 뺏을 거라고 판단했다.
“네. 3군주 간의 협약으로 인해, 그 누구도 차지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렇군. 공식적으로는 빈 성이지만, 사실상 3군주 공동 소유나 다름없는 거군?”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성큼성큼.
염훈은 대기용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앗, 조심하세요! 밖으로 나가는 순간 공격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NPC가 주의를 줬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3군주가 파견한 70층의 감시자들이 셋이 있었다.
염훈은 피식 웃었다.
“[지크리엘의 날개].”
파앗!
[지크리엘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다.
슈우우우우우욱!!
관성 법칙은 물론, 공기 저항도 대부분 무시하는 엄청난 고속 비행.
최고 속도는 마하 1에 달했고, 정지 상태에서 최고 속도에 도달하는 시간은 1초 정도였다.
탓!
성 꼭대기의 깃발꽂이 앞에 착지했다.
-군주는 [깃발 생성]이 가능합니다!
-깃발을 깃발꽂이에 꽂은 뒤 60초간 버티면 그 성의 소유권을 얻게 됩니다!
“[깃발 생성].”
파앗!
염훈의 손에 길드연합국이라 적힌 깃발이 생겨났다.
그 순간.
쉬이익!
3군주의 부하들이 동시에 염훈을 향해 쇄도해 왔다.
SS급 암살하는 초능력자.
SS-급 바람을 지배하는 도적.
SS+급 균형의 성좌를 섬기는 성직자.
하나하나가 강력한 존재들이었고, 오늘 같은 상황을 대비하여 고르고 고른 살상력 높은 스킬을 발동했다.
하지만.
“아직도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
투쾅!!
염훈은 [성황제의 돌진]으로 암살하는 초능력자를 들이받았다.
퍼억!!!
단 일격에 기절시켰다.
“뭣! 단 일격에?!”
“[사이오닉 필드]로 방어했을 텐데?!”
도적과 성직자가 경악했다.
서로가 서로의 스킬을 잘 알고 있었기에 경악 또한 컸다.
“개개인의 정신력이 강해 봤자다.”
염훈이 한숨 쉬듯 말했다.
“나는 길드연합국의 모든 플레이어의 정신력을 이어받는 중이니까. [홀리 체인 라이트닝].”
염훈이 빅 썬더를 휘두르며 스킬을 썼다.
빠지지지직!!
기존의 [홀리 라이트닝]이 강력한 신성력 + 뇌격의 번개 줄기를 직선으로 날리는 스킬이라면, 지금의 [홀리 체인 라이트닝]은 수백 갈래의 전기의 사슬을 마구 뿜어대는 엄청난 광역 스킬이었다.
“컥!”
“으그그극……!”
전기 줄기 하나하나가 사람 팔뚝 굵기였기에, 3군주의 부하들 중 엄선된 존재라 해도 감전되어 부들거리며 떨 수밖에 없었다.
“어이! 세 놈 다 생포해.”
염훈이 부하들을 향해 적당히 외친 뒤 마저 깃발꽂이에 깃발을 꽂았다.
콱!
-길드연합국의 깃발 확인!
-60초 뒤 이 성채는 길드연합국의 소유가 됩니다!
-남은 시간 : 60초…….
-남은 시간 : 59초…….
-남은 시간 : 58초…….
염훈은 가만히 기다리며, 성채 내부를 점검했다.
다행히 텅 비어 있었다.
성주의 방만 빼고.
“…….”
방에는 큼직한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3군주의 협약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용은 누구도 70층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겹군.”
염훈이 액자를 손으로 가리킨 순간.
치이이익……!
유리 액자 안의 종이 문서가 새하얗게 표백되었다.
염훈은 이제 신성력을 한 지점에 집중시키기만 해도, 원하지 않는 것들을 ‘살균’ 처리 할 수 있었다.
-남은 시간 : 3초…….
-남은 시간 : 2초…….
-남은 시간 : 1초…….
-축하합니다! 염훈 군주 플레이어가 이 성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70층 성채의 지배자 : 염훈.
-이 성채를 본성으로 삼으시겠습니까?
-단, 염훈 플레이어의 경우, 70층~89층 통합층 구역에 보유하고 있는 성채가 이것 하나뿐이므로, 군주 메인 미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 성을 본성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이 성을 본성으로 삼겠다.”
염훈은 이 성에 다른 함정이나 숨어 있는 자객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므로 본성으로 삼았다.
-70층 성채가 길드연합국의 본성이 되었습니다!
-현재 길드연합국이 보유한 성채 개수 :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