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 아카데미 장악 (1)
“좀 적당히 투덜거리게. 나도 노력 중인 거 안 보이나?”
알렉스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었다.
이미 알렉스가 부하로 만든 이들은 대다수가 일반인이었지만, 그 수가 몇만에 이르므로 정보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하지만 100층탑의 회귀자로서 활동하던 은혁의 눈에는 영 느림보처럼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2주나 걸리다니. 허참. 앞으로 100층탑으로 복귀할 때까지 2주밖에 안 남았다는 거잖습니까?”
은혁이 또다시 투덜거렸다.
물론, 은혁은 2주 동안 시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다.
우선 막대한 금괴를 모았다.
한국 돈인 원화는 100층탑에 돌아갔을 때 쓸모가 없지만, 금괴나 골드바는 100층탑 내부에서도 비싼 값에 유통된다.
교황제는 상당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심심했던 은혁은 직접 금괴를 모으기로 했다.
금괴를 모으는 방법은 간단했다.
‘불법 카지노.’
교황제의 부하가 지닌 정보로 한국에 존재하는 불법 카지노들을 찾아갔다.
[그림자 터널]로 딜러의 카드를 엿보는 건 기본, [스파이럴]을 아주 작게 써서 룰렛 테이블을 조작하거나, [미완성 시감 되감기]로 2초를 되감아서 결과를 알아내거나 하는 등.
온갖 꼼수로 돈을 싹 다 털어 냈다.
100층탑에서 막대한 돈을 번 은혁의 기준에서 보면 잔돈 수준이지만, 당장 쓸 수 있는 원화를 털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털어 낸 돈으로 다시 금괴를 모은 것이다.
물론, 금괴만 모은 건 아니었다.
“읏차.”
은혁은 창가의 화분들을 점검했다.
연금술용 버섯이었다.
불패불굴 길드는 이전부터, 몰락한 지고의 위상, 부패한 버섯 마물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내가 염훈과 30층 히든 미션을 깼을 때부터.’
버섯 카레의 힘(?)으로 하플링들의 마음을 얻고, 금지된 늪지대로 가는 히든 미션을 열었었다.
그리고 다양한 포자를 일부는 은혁이 직접 얻고, 대부분 부하를 시켜서 금화를 주고 사오게 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인벤토리창에 남아 있던 연금술용 재료들을 꺼내서 [그림자 주머니] 속에 함께 담아 왔던 것이다.
‘100층탑 밖에서도 힐링 포션과 비슷한 물약을 제조할 수 있을까?’
은혁은 간단히 실험해 봤다.
희귀 금속을 일부 꺼낸 뒤, [초월 설계]와 [소도구 제작]을 이용해, 연금술 상점에서 쓰던 연금술 제작대 비슷한 걸 만들어 냈다.
“제작해 볼까!”
은혁은 연금술 조성식을 알고 있었기에, [제작] 스킬의 도움 없이도 얼추 힐링 포션을 만들 수 있었다.
‘일단 완성했으니 마셔봐야지?’
꿀꺽꿀꺽……!
맛이 무척 썼지만 체력 회복 효과는 기존의 힐링 포션보다 크게 뒤지지 않았다.
“성공.”
은혁이 흐뭇하게 웃으며, [돌 생성] 스킬로 더 많은 돌 화분을 제작했다.
그 순간.
“좋아, 됐다!”
알렉스는 마침내 희소식을 전해 왔다.
“아카데미의 끄나풀과 만나기로 했네.”
“오, 겨우 약속이 잡힌 겁니까?”
“음, 근데 자네가 허락한 대로 자네 이름을 팔았더니 성사되더군. 근데 정말 괜찮은 건가?”
“상관없습니다. 아카데미가 제삼자에게 떠벌리고 다니는 조직도 아니거니와, 떠들어대면 그때는 그것대로 플랜 B가 있으니까요.”
은혁으로서는 한 달 안에, 정확히는 남은 2주 안에 아카데미를 완전 장악하는 게 중요했다.
‘교황제를 제압한 방식으로 아카데미를 건드리면, 놈들이 숨어 버릴지도 모른다.’
아카데미는 점조직, 비밀 조직스러운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은 누구죠? 설마 지난번 TV 토론 상대였던…….”
“한국 대학교 이상현상연구학과의 강만수냐고? 맞네.”
“…….”
이제 보니 교황제 본인과 아카데미 측 세력이 지구에서 세력 다툼을 벌인 격이다.
‘그것도 TV 토론으로!’
은혁은 기가 막혀서 알렉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커험! 뭘 그리 보나?”
“혹시, 서로의 정체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던 겁니까?”
“나는 강만수가 아카데미 소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쪽은 내가 교황제라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을 걸세. 이제는 알겠지만.”
“그런 정보는 사전에 어떻게 알아냈던 겁니까?”
“간단하다네. 내 세미나에 참석한 자들 중에 아카데미 측 인물이 열 명 넘게 있거든. 말단이지만.”
“아하…….”
즉, 아카데미 측에서도 알렉스의 세미나를 미심쩍게 주시해 왔고, 세미나에 잠입시킨 바 있다.
‘그랬다가 알렉스에게 세뇌당해서 정보를 다 토해 낸 거로군.’
“자, 그럼 약속 장소로 가세나.”
은혁은 교황제를 길잡이 삼아, 강만수 교수와 만나기로 한 카페로 갔다.
* * *
은혁은 문득, 아벨과의 만남이 참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카데미가 운영하는 고아원 출신인 아벨은, 아카데미에 대해 꽤 많은 것을 말해줬다.
‘계급은 보스, 학장, 학사, 학생 순서였지…….’
물론, 이 정보는 수십 년 전의 것이므로,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사내, 강만수 교수는 자랑스럽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것이 진짜 명함입니다.”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카데미의 진정한 계승자이며 유일하게 옳은 학파인 적출파의 학장 강만수.’
“……이렇게 명함에 박아도 되는 겁니까?”
“하하! 100층탑에서 나온 분이시니까요.”
강만수는 알렉스를 무시하고, 함께 나온 은혁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은혁과 알렉스 모두 쓴웃음을 지었는데, 그동안 강만수가 멸시해 온 알렉스야말로 100층탑의 전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제가 100층탑 출신인 것을 믿으시나 보군요.”
“예. 아카데미의 보스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남겨주신 장치가 하나 있습니다.”
“장치?”
그것은 오래된 계산기와 주파수 감지기를 합친 것 같은 장치였다.
“보스께서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비밀 유서에는, ‘가면을 쓴 자’가 남겨 준 각종 비밀 지식이 있습니다.”
아카데미의 보스 즉, 태백산 연구소의 소장은 자신이 아는 각종 비밀 지식을 아카데미에 남기고 죽은 모양이다.
“그중에는 이것, ‘운명치 검출 장치’라는 게 있지요.”
“호오…….”
은혁은 신기해하며 교황제를 돌아봤다.
그리고 [텔레파시]로 물었다.
‘왜 당신에게는 저 장치가 반응하지 않죠?’
‘……교황제의 검에 내 모든 걸 담았기 때문이지.’
‘아차, 그랬죠.’
교황제의 검에 담았던, 교황제로서의 모든 권리에는 보유하고 있던 운명치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저 장치 제법인데?’
은혁은 내심 감탄했다.
운명치 검출 원리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분해를 허락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앞서, 녹음기를 켜도 되겠습니까?”
강만수가 녹음기를 켰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이미 여러 개 켠 상태인 것 같은데요.”
“네?”
“이미 몸에 여러 개 지니고 계시잖습니까? 이 카페도 아카데미 것이고.”
은혁은 이미 [그림자 분신 6.0]을 시켜 사방에서 이곳을 감시 중이었으며, [사이코메트리] 스킬로 많은 것을 이미 알아냈다.
“맞은편 테이블의 두 명은 이 테이블에 설치한 녹음기를 이어폰으로 엿듣는 중이고, 카페 사장은 카운터에서 카메라로 촬영 중이고, 화장실에는 가스총으로 무장한 사람이 두 명이 있군요. 그밖에도 카페 바깥 맞은편 도로 차 안에도 몇 명 있고.”
“……!”
강만수가 흠칫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놀란 강만수를 보며 은혁은 피식 웃었다.
‘너무 쉽군.’
강만수가 은혁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경외심 때문이 아니라, 써먹기 좋은 100층탑 내부 정보원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은혁이 보여주는 능력은 강만수의 지식을 뛰어넘는다.
은혁은 좋은 정보를 얻었다.
‘즉, 아카데미도 플레이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100층탑 초대장을 지니고 있다지만,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용도일 뿐, 안에 들어간 자들이 바깥에 정보를 도로 토해 내지 못하는 이상, 정보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보 우위…… 라는 표현을 쓰기 미안할 정도로 은혁이 아는 것이 훨씬 많았다.
정보가 곧 힘이라면, 아카데미가 수집한 전체 정보보다, 은혁의 한마디가 더 강할 것이다.
“하, 하하. 이것 참…….”
강만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스르륵.
잔과 테이블이 맞닿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잔이 쑥 아래로 빠졌다.
“앗?!”
놀란 강만수가 테이블을 살폈지만 잔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쪽입니다.”
은혁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은혁은 [빙천신공]을 발동했다.
쩌저적……!
강만수의 잔과 커피가 통째로 얼어붙었다.
휙!
은혁은 얼음덩어리로 변한 커피잔을 강만수에게 던져줬다.
엉겁결에 받은 강만수는 이것이 사기가 아니라 진정한 이능력임을 깨닫고 경악했다.
“이, 이럴 수가……! 정말로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털썩! 털썩!
여기저기서 사람들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은혁이 [그림자 분신 6.0]을 빠르게 발동해서, 현재 녹음, 촬영, 기습 준비를 하는 이들을 모두 기절시키고, 그들의 장비를 파괴한 뒤 사라지게 한 것이다.
그나마 교황제 알렉스의 눈에만 은혁이 스킬을 빠르게 발동하고 해제하는 기척이 느껴질 뿐.
강만수는 그제야 눈치챘다.
‘……포위당한 건 우리 쪽이었나?’
“지금부터 저는 아카데미를 장악할 겁니다. 아카데미의 보스에게 저를 안내해 주십시오.”
* * *
3일이 지났다.
그 3일은 강만수가 애처로운 발악을 포기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강만수에게는 100층탑을 파괴한다는 신념이 있었고, 은혁을 설득하려 했다.
“당신의 힘이라면! 100층탑을 부술 수 있을 겁니다!”
“못 부숩니다.”
“해보지 않고서 어떻게 압니까!! 통째로 무너뜨릴 수 있지 않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제 의견대로, 100층탑의 밑동을 통째로 파서……!”
“그것도 불가능할 겁니다.”
“아니,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아냐고요!”
“…….”
은혁은 관리국에 대해 알았지만 강만수는 그렇지 않았다.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후우, 알렉스 님? 설득 좀.”
물론, 강만수는 여전히 알렉스를 무시했다.
알렉스가 교황제였다는 사실이, 강만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삼킨 것 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은혁은 한숨을 푸욱 내쉰 뒤 참교육을 해주기로 방침을 바꿨다.
빠각!!!
칼라미티 해머로 반쯤 죽인 뒤.
“블러드 솔저로 만든다.”
그렇게 강만수는 은혁의 블러드 솔저가 되었다.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났다.
‘나에게는 [블러드 솔저 소환] 스킬이 있지. 이걸로 100층탑 내부의 존재를 밖으로 불러낼 수 있나?’
궁금했던 은혁은 [메탈 서전트 소환] 스킬을 비롯해 각종 소환 스킬을 사용해 봤다.
‘안 되네.’
[그림자 분신 6.0]은 은혁이 지닌 분신 계열 스킬이라 발동되고, 소환 관련 스킬은 100층탑 내부에서만 사용 가능한 듯했다.
‘뭐, 곧 돌아갈 테니까.’
은혁은 강만수를 통해 아카데미의 보스가 기거하는 곳으로 갔다.
아카데미의 본부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 사무실용 건물의 22층 사무실 전체였다.
그 사무실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각종 의료 장비와 몸이 연결된 노인이 누워 있었다.
‘현대 의학은 아니군.’
운명치 검출 장치와 같이, 아카데미 보스가 올마스크가 남겨준 지식을 이용해서 만든 물건 같았다.
노인은 누운 채 말했다.
“1톤 분량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네. 주의하게.”
엄포를 들은 은혁은 피식 웃었다.
“푸하하하하!!”
피식 웃고 말려고 했는데 웃음이 치밀어 오르는 바람에 못 참았다.
노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농담 같나?”
“아뇨. 100층탑이랑 수준이 너무 차이가 나서.”
은혁은 그렇게 말한 뒤 [염열파]를 노인을 향해 냅다 뿜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