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 아카데미 장악 (2)
화르르르륵!!
기겁한 노인은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굳어 버렸지만.
파앗!
은혁은 자신이 발동한 [염열파]의 화염보다 훨씬 빠르게 앞질러 노인 앞에 섰다.
슈르르르르륵……!!
노인 앞의 은혁은 [적류초열공]과 [화염 지배]의 힘으로 화염을 흡수해 버렸다.
“으음……!!”
“어지간한 화염은 오히려 마력 회복에 도움 됩니다. 폭발해 봤자 폭발력을 미디엄 링으로 흡수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림자 도약] 스킬로 피하면 그만이고.”
“마력……! 스킬……! 그것들이 전부 진짜란 말인가!”
노인은 경악했다.
그걸 본 은혁은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는 겁니다.”
은혁은 손끝으로 핵 공격 가하던 빌과 일대일 대결을 벌인 경험이 있는 자다.
그리고 지금의 은혁은 그때보다 더욱 강해져 있었다.
그런 은혁에게 폭탄 따위로 협박을 하니, 비웃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원하는 걸 말해 보게나.”
“첫인상이 좋지 않았지요? 일단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100층탑에서 나온 플레이어 강은혁입니다.”
은혁이 정중히 악수를 청했다.
노인은 긴장한 채로 은혁의 손을 맞잡았다.
“나는 아카데미의 12대 보스인 호아킨 마르티네즈라고 하네.”
두 사람의 손이 맞닿은 순간.
‘와, 이거 너무 쉽네.’
은혁은 이번에도 [사이코메트리] 스킬을 발동, 노인의 과거사의 굵직한 부분과 오늘날의 요긴한 정보를 빠르게 해킹해 냈다.
‘이건 거의 뭐 악수가 만능인데?’
물론, 플레이어들은 각자 레벨과 아이템의 도움으로 이런 경우에 대비한 정신 저항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은혁의 표적은 죄다 아무 능력 없는 지구인이다.
어쩌면 가장 강한 지구인이, 1층에서 허둥거리는 플레이어보다 약할지도 모른다.
플레이어가 되는 순간부터 직업이 생겨나고, 아무리 약한 F급 직업이라 해도 이런저런 보정이 붙기는 마련이니까.
“적출파와 온건파의 투표라…….”
은혁은 알아낸 정보를 입에 올렸고, 노인은 그제야 손을 황급히 뿌리쳤다.
“으으, 정보를 읽힌 건가? 내가 너무 안일했군.”
“어쩌면 그 생각도 오만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너무나도 컸다.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는 카인 때랑 바뀐 게 너무 없잖아?’
아벨에게 폭탄 조끼 입히고 100층탑에 잠입시킬 때도, 100층탑 내부에 대해, 관리자나 플레이어가 가진 스킬의 힘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문제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한 게 없다는 것이다.
‘이 인간들을 어떻게 일일이 가르치면 좋을까.’
은혁은 짧게 고민하다가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가기로 했다.
“요약하자면, 오늘날의 아카데미는 적출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있으며, 적출파는 말 그대로 지구에서 100층탑을 제거하자는 쪽이고, 온건파는 그 외의 나머지 집단 전부다…… 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거친 요약이지만, 그렇다네.”
“그리고 그 투표가 다음 주에 있고?”
“다 알면서 뭘 자꾸 묻나?”
“아, 이렇게 소리 내서 말하는 편이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되거든요.”
은혁은 아카데미의 보스를 눈앞에 두고도 멋대로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카데미의 보스인 호아킨은, ‘지금이라도 자폭을 해볼까?’ 하고 홧김에 행동을 하려 했지만.
키이잉……!
호아킨은 머릿속이 깨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내게 종속됐거든요.”
혼돈술사 스킬인 [메모리 마인]을 걸어뒀다.
특정 기억, 또는 그에 관한 행동을 하려 할 때 자동으로 터지게 해뒀다.
이 경우의 기억은 ‘자폭’이다.
“아아아악……!”
은혁은 호아킨의 노령을 생각해서 아주 작은 폭발을 심어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극심한 고통과 뇌혈관 한 가닥을 끊어 놓기에는 충분했다.
“드시죠.”
은혁은 직접 치유하는 대신, 어제 연금술로 제작한 힐링 포션 하나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 마신 순간.
“아……!!”
호아킨은 비명 지르는 것을 멈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이 나았어……!!”
호아킨이 평소에 앓고 있던 고혈압, 협심증은 물론, 각종 혈관 관련 병세들이 빠르게 호전되었다.
“방금 드신 게 힐링 포션입니다. 100층탑에서는 쉽게 구매할 수 있죠. 더 좋은 소식은, 힐링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재료와 지식을 모두 갖고 왔다는 겁니다.”
“맙소사……!”
호아킨은 은혁이 보인 그 모든 이적에 두려워했지만, 직접 마신 이 힐링 포션만큼은 아니었다.
“만약 이걸 지구에서 대량 생산 할 수 있다면……!”
은혁이 보여준 화염 스킬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파괴력만 봤을 때는 사실 지구의 여러 군대가 실행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힐링 포션은 지구의 의학 수준을 초월했다.
“이제, 협조할 마음이 좀 생겼습니까?”
“뭐든지 하겠네!”
“그럼, 아카데미의 핵심 간부들, 학장들을 모두 이곳에 모아주십시오.”
다음날.
아카데미의 모든 간부들은 교황제의 세미나에 참석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교황제의 부하가 되었다.
“너무 쉽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플레이어가 아닌 이들은 정신적인 제압에 너무나 약했다.
은혁이 직접 나설 것도 없이, 교황제가 세뇌를 유도하니, 그들은 전부 넘어왔다.
그렇게, 은혁은 교황제는 물론, 아카데미까지 모조리 부하로 만들었다.
“이제 100층탑 초대장 사용까지 일주일 남았군요.”
“음, 이번에 100층탑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네. 제 동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100층탑에 데리고 가도, 당장 도움이 되긴 어려울 걸세.”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야, 이들은 약하기도 하고, 지구 수준의 관습과 상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지.”
“일주일 안에 이들을 레벨 3 플레이어급으로 단련시키겠습니다.”
은혁은 힐링 포션을 많이 만들어뒀다.
“잠도 안 재우고 훈련시킬 테니까, 잘 부탁합니다.”
지옥 훈련을 감행하고, 부상과 피로를 힐링 포션으로 씻어 내리는 방식의 훈련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 * *
은혁의 죽음으로부터 3주가 지났다.
염훈의 성채 정복 행보는 일부는 빠르고 시원스레 진행됐으나, 또 일부는 갑갑하게 진행됐다.
3주 하고도 하루째인 오늘도 그러했다.
콰콰콰쾅!!!
[성황제의 돌진]은 카인이 지배하고 있는 75층 성채의 방어군을 단숨에 꿰뚫었다.
“막아라!!”
“적은 한 놈이란 말이다!!”
카인의 부하들이 외쳤지만, 염훈을 막을 수는 없었다.
쐐애애애액!
단숨에 성채의 꼭대기로 올라간 염훈은 빅 썬더를 꺼내 들었다.
“[연쇄와류식 홀리 썬더].”
콰콰콰콰콰쾅!!!
최대 위력의 [홀리 썬더] 수십 개가, 마치 지진처럼, 파도처럼 마구잡이로 성채 내부로 쏟아졌다.
“흐아아악!!”
“아악!!”
이전의 염훈은 [연쇄와류식 홀리 썬더]를 쓰려면 준비 과정이 많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이 발동한 스킬의 힘이 75층 성채를 마구잡이로 두들기는 동안, 염훈은 [지크리엘의 날개]를 발동한 채 성주의 방으로 향했다.
“으윽……!”
성주인 포식스는 SS급 직업, ‘죽음의 성좌 모티스를 섬기는 성전사’였다.
성직자 직업으로 시작해서, 전사의 힘까지 다루도록 승급한 존재.
100층탑 6기 플레이어로, 3군주보다 크게 늦지 않은 초창기 플레이어 중 하나다.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염훈이 말하자, 포식스는 씨익 웃었다.
“허세 부리지 말라.”
“허세 아닌데.”
“흐흐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군은 너희 군세를 공격 중이다.”
“그게 뭐? 내 부하들도 강하다.”
“문제는, 인치와 미치오의 군세도 마찬가지로 공격 중이라는 것 아닌가? 후후후. 그것도 너희 본성을 말이지.”
“뭐, 3면 공격이 귀찮긴 하지.”
투쾅!!!
염훈은 더 시간 끌지 않고 빅 썬더를 휘둘렀다.
퍼버벅!!
“끄아아아!!”
염훈은 포식스의 다리를 모조리 분질러 버렸다.
“이, 이 개자식! 부상 입히고 치유할 생각이냐!!”
포식스는 염훈의 의도를 눈치채고 그리 말했다.
“죽이는 것보단 낫지 않나?”
“차라리 죽겠다!!”
포식스는 무언가 키워드를 발동하더니.
콰직!
심장이 스스로 일그러지며 그대로 죽었다.
염훈이 조금 당황한 순간.
-죽음의 성좌, 모티스가 분노합니다!
- [죽음의 신 강림]이 발동합니다!
스오오오오오……!
검은 안개 같은 것이 포식스의 몸에 몰려들었다.
“아아악!”
“살려줘……!”
검은 안개는 성채 전체를 휘감았고, 성채에 머물던 포식스의 부하들까지 모두를 죽였다.
‘이건 위험하다.’
죽음의 성좌의 본체가, 죽은 포식스의 몸에 강림했다.
스윽.
포식스의 육체가 복구되고, 모티스의 본체 중 일부가 포식스의 몸에 강림되었다.
“한 가지만 묻지.”
-내가 대답할 거라 생각하나?
투화아아악……!!
검은 홍수와 같은 죽음의 기운이 염훈을 덮쳤다.
“[10초 무적].”
염훈은 두려워하는 기색조차 없이 가볍게 버텼다.
10초면 짧은 것 같지만, 10초 내내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는 것은 성좌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르륵…….
죽음의 성좌가 공격을 멈추자, 염훈은 프리즘 랜스를 꺼냈다.
“길드연합국 국민이 지닌 생의 의지여. 여기에 깃들라.”
기이이이이잉……!!
프리즘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천연색의 빛깔이, 죽음의 성좌 모티스를 물러나게 했다.
“[신성한 일격].”
초기부터 주력으로 사용해 온 강력하고 단순한 공격 스킬.
성황제가 아니던 시절에도 과충전해서 쓰면 성좌의 핵을 반으로 쪼갤 수 있었다.
성황제가 된 지금의 [신성한 일격]의 위력은……!
투확!!
검은 안개가 흩날렸다.
염훈의 일격은 포식스의 몸을 매개로 하여, 죽음의 차원에까지 생명의 섬광을 내뿜었다.
-흐어억……!!
“본체를 일부 강림시킨 게 역효과였군?”
염훈은 은혁을 연상시키는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염훈의 일격에 죽음의 성좌, 모티스는 본체에 타격을 입었고, 그가 지배하는 차원이 생명의 의지로 뒤덮이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흔히들 죽음은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하지. 하지만 내 앞에서는 아니다.”
-으음……! 이런 오만한 필멸자가!
화악!
모티스의 기세가 다시 살아났다.
이곳, 80층~89층 구간은 끝없는 전쟁의 공간.
죽음의 공기가 팽배한 곳이다.
-한 번의 공격이 성공했다고 자만하면 큰 오산이다!
“그래?”
염훈은 프리즘 랜스를 거두었다.
“계속 전력으로 치고받을래? 그냥 갈래?”
한 방 크게 먹여놓고는 선택지를 성좌 쪽에 넘겨 버렸다.
죽음의 성좌는 짧게 고뇌했다.
-그냥 떠나겠다…….
염훈은 성기사에서 승급한 성황제다.
길게 싸워 봤자 모티스의 손해가 더 막심하다.
“단, 그냥은 보내줄 순 없다.”
염훈이 또 말을 바꾸자 모티스는 당혹스러워했다.
-이 필멸자 놈! 또다시 말을 바꾸는 건가!
“살아 있음이 곧 변덕일지니. 아까 하려고 했던 내 질문에 답하고 가라.”
염훈은 시종일관 느긋했다.
이전의 염훈이라면 있을 수 없는 태도였지만, 길드연합국의 절대자가 된 이후로는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크게 성장했다.
그 여유로운 태도를 본 죽음의 성좌, 모티스는 우선 질문했다.
-무엇이 궁금한가? 필멸자여.
“사후 세계라는 게 정말 존재하나?”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죽음의 성좌의 호기심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