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 3군주 세력과의 소모전 (5)
“……확실히.”
카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쥬빌레와 그 부하들이, 길드연합국의 주력 병력이 빠진 5층을 습격했음에도 크게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패배했다.
소형화된 마나 엔진 병기로 무장한 NPC와 저레벨 플레이어들은, 3군주 세력의 추론과 달리 마냥 약자들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물론 놈들이 공격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고, 3군주인 우리들 본체가 직접 학살하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자체로 3군주의 손해다.
5층에 학살하러 3군주 본체가 가는 것은, 운명치 손실은 둘째치더라도, ‘본성’을 비워 뒀다는 광고나 다름없다.
“우울한 이야기군……. 둘째는 뭐지?”
미치오가 물었고, 총관리자가 답했다.
“둘째는, 며칠 뒤 지구에서 추가로 신규 플레이어가 약 만 명 정도 100층탑에 들어오게 됩니다.”
“아, 벌써 그 시즌인가.”
1년에 1, 2회, 신규 플레이어가 전송되는 시기다.
“근데 그거랑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미치오가 고개를 갸웃하자, 총관리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릅니다. 다만 예상외의 변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발목을 잡을 그 무언가가.”
“뭐야, 그게. 억지로 겁주기는.”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을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게 누굽니까?”
“……!”
현재 지휘 중인 이는 염훈이지만, 이 모든 ‘판’을 짠 이는 단 한 명이다.
‘강은혁.’
“그는 겨우 반년 조금 넘는 시간 만에 길드연합국을 일통하고, 여러분 턱밑에 칼끝을 들이밀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 재수 없는 새끼 이야기는 관두지.”
카인이 요구했다.
총관리자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모인 3군주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며, 내심 안도했다.
‘그나마 최악은 아니야. 다행히 강은혁을 미리 죽여 버렸으니.’
그 여파로 성황제 염훈이라는 최강의 존재가 탄생했고, 은혁이 남긴 통합된 길드연합국이라는 유산은 막강했지만, 그래도 3군주로서는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3군주를 보며 총관리자 알파레몬은 내심 혀를 찼다.
‘한심한 것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구만?’
여전히 3군주의 전투력은 100층탑 최정상급이며, 일대일로 싸우면 7대 길드의 길드장조차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위기에 몰리니 민낯이 드러나는군.’
총관리자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의미는 있어.’
3군주가 총관리자의 목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과 오해한 것이 한 가지씩 있었다.
‘나는 100층탑을 클리어하는 자가 빨리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건 너희들 말이 맞아. 하지만 정말로 강한 자가 클리어하길 기다리고 있지.’
3군주는 총관리자가 자신들을 어느 정도 돕는 포지션이라 생각하고, 협상의 대상이라 여기고 있다.
그러나 총관리자는 아무나 클리어하게 둘 생각은 없고, 3군주의 입맛에만 맞춰 줄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최강자가 아니면 100층에 올 수 없고, 와봤자 의미가 없지.’
총관리자는 속내를 숨긴 채 손뼉을 짝짝 쳤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쯤 하죠. 여러분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친 총관리자는 3군주를 밖으로 전송시켜 버렸다.
3군주는 대사관 밖의 호수 위 허공에 갑자기 전송되었지만 크게 당황하지 않고 공중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어떻게 하지……?”
미치오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긴? 계획대로 하자. 단, 총관리자의 조언대로 방심하진 말고.”
* * *
“왜 이리 조용한 거지?”
10층을 방어 중인 빌이 중얼거렸다.
예상한 바에 따르면 3군주 세력 중 한 명은 10층을 공격하러 와야 했다.
하지만 5분, 거의 10분 가까이 지났음에도 조용했기에, 빌은 오히려 불안했다.
대기하던 빌은 [텔레파시]로 염훈에게 말을 걸었다.
‘염훈. 들리나?’
‘무슨 일입니까?’
‘놈들이 공격해 오질 않는군. 어쩌면 네가 공격하려는 본성에 적들이 밀집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군요.’
길드연합국을 공격하는 척한 뒤, 사실은 한곳에 모여 밀집 방어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의외로 저항이 없습니다. 본성 방어군 놈들이 당황하는 게 느껴집니다.’
* * *
카인의 본성은 79층에 있었다.
79층은 수많은 노예병들이 주둔하고 있는 척박한 땅.
토양은 화성을 연상시키는 붉은색이었다.
쓔우우우우웅……!
염훈은 [지크리엘의 날개]를 발동하고 직접 정찰했다.
함정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부하들은 접경지대에 대기 시켰다.
‘본성만 뺏으면, 3군주 중 하나는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다른 성채를 무시하고, 정예 병력만 몰아서 79층 지역에 진입한 것이다.
“마, 막아라!”
“우, 우와아아악!”
노예병들은 염훈을 향해 함성을 내지르며 공격했지만.
부웅! 부우웅!
녹슨 투창을 던질 뿐이다.
‘다들 약한데?’
염훈은 당황했다.
일부러 약한 척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노예병들의 레벨은 가장 낮은 자도 50이었으므로.
‘뭔가 있어.’
염훈은 노예병들의 경추 즈음에 금속 구속구가 박혀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구속구로부터 노예병들의 힘이 어디론가 전송되고 있음도 확인했다.
‘힘을 빨아들이고 있군.’
대다수 부하들을 신뢰하지 않는 카인이었다.
부하들의 힘을 억누르는 한편, 그 부하들의 힘을 빨아들이기 위해 [지배의 구속구]를 만들어 박은 것이었다.
카인이 [지배의 구속구]를 발동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카인의 지배 영역에 존재하는 신민들이 모두 ‘노예’ 상태여야 했으며, 한번 노예가 되면 스스로는 해제가 불가능했다.
노예병들이 녹슨 투창을 던지며 염훈을 위협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노예병들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이렇게라도 쓸모를 증명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카인이 손짓만 해도, 노예병들은 죽는 목숨이므로.
‘구할 수는 없겠지…….’
염훈은 나약한 적들을 보며 측은함을 느꼈다.
노예병들의 몸에 꽂힌 [지배의 구속구]를 인위적으로 해제하려 들면 즉사할 것임이 자명했다.
‘카인을 우선 쓰러뜨려야 해. 놈은 어디 있지?’
구속구를 통해 빨려 나오는 힘은 79층 본성의, 카인만이 앉을 수 있는 옥좌로 전송되고 있었으니, 그곳에 카인이 있다고 봐야 했다.
‘카인이 본성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걸까? 왜 요격하러 안 나오지?’
염훈이 혼란을 느낀 순간, 28.5층 방어를 맡은 슬레이버와 테일러 또한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군. 3군주의 흔적도, 놈들의 부하의 침공 징후도 없다!’
이어서 인치의 영역에 정면으로 쳐들어간 해피 또한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야! 염훈! 3군주 이 새끼들 아무래도 없는 거 같다!’
‘없다니,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지! 자리를 비웠거나 놈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아, 젠장! 취소! 갑자기 놈들이 나타났다! 주의해라!’
그 순간.
번쩍!
차원의 문이 열리고 카인이 다시 나타났다.
그것도 79층 본성의 꼭대기 위로.
카인은 비행 중인 염훈을 보고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절묘한 타이밍이군.”
“과연.”
카인이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은 유인책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어떤 이유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3군주 놈들끼리 무슨 회의를 벌인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3군주의 본체 셋이 전부 안 보인 게 말이 된다.
하지만.
‘한창 전쟁 중인데 자리를 비울 정도로 중요한 회의라고?’
수상한 점이 있었지만, 염훈은 각오했다.
“결판을 내자, 카인.”
“훗.”
카인은 코웃음 치며 쳐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염훈은 프리즘 랜스를 꺼냈다.
‘일격에 죽인다.’
[광역 홀리 채널링]의 힘을 프리즘 랜스에 모았다.
카인은 [666 인비지블 플레이트]를 상시 발동 중이라고 하지만, 염훈은 그것조차도 꿰뚫을 자신이 있었다.
‘[신성한 일격]!!’
쒜에엑!!
황금빛, 그리고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프리즘 랜스가 카인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파팡!!
염훈의 것과 비슷한 신성력이 모여, 염훈을 튕겨 냈다.
-본성의 수호 시스템이, 본성의 성주를 보호합니다!
-전체 위력의 10%만 전달됩니다!
-나머지 90%의 위력은 사방으로 반사됩니다!
카인은 염훈의 공격 피해 중 10%만 입었다.
그 10%는 카인의 투명한 차원 금속 중 하나인 [666 인비지블 플레이트]에 막혔고, 나머지 90%의 위력은 사방으로 분산되어서, 일부가 염훈의 몸에 튀었다.
“큭?!”
염훈은 거의 200m 이상 튕겨 나갔고, 노예병들이 포위했지만.
“[성역 생성]!”
파앗!
노예병들은 일시 정지되었다.
카인은 멀리서 그걸 바라보며 웃었다.
“예상대로, 너희는 ‘본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여기는 일반 성채와 다르다.”
카인이 비웃을 기회라 판단했는지, 아니면 여유를 과시하려고 하는 것인지 설명을 늘어놓았다.
“너, 3군주가 수십 년 동안 자기들끼리 모략만 주고받는 걸 보고 멍청한 놈들이라고 비웃었겠지? 거기에 이유가 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나?”
카인이 본성을 둘러보며 조롱했다.
“70층~89층 구간의 모든 군주는, 자신의 ‘본성’에서 몇 배나 강해진다. 3군주끼리의 견제가 끝나지 않는 이유, 3군주 세력이 고착화된 이유가 바로 그거다.”
“으음……!”
“네놈의 힘이 아무리 강해졌어도, 본성에 있는 군주를 쓰러뜨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카인은 자신의 금속 관련 스킬을 활용하여, 본성 내부가 뚫린 경우까지 대비해 두는 등, 본성 방비에 특히 신경을 썼다.
카인은 설명을 마치고 반격을 준비했다.
“[리미트 해제].”
염훈이 [성역 생성] 중인 곳의 노예들에게 박힌 구속구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노예병들의 리미트가 30초간 해제됩니다!
-공격력이 300% 증가합니다!
“쿠오오오오오!!”
“퀘에에에엑!!”
노예병들은 광전사로 변하여 염훈에게 달려들었다.
“뭣?!”
염훈의 [성역 생성]의 힘은 강력하지만, [리미트 해제]는 구속구 내부에 이미 카인의 힘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던 스킬 즉, 내부에서부터 발동되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큭! [10초 무적]! [홀리 썬더]!”
콰콰콰쾅!!
염훈은 단 일격으로 노예병들을 쳐 날렸다.
하지만 살상력보다는 충격력을 강화시켜서, 실제 사상자는 많지 않았다.
그걸 본 카인은 앙천대소했다.
“크하하하!! 역시 예상대로다! 노예병들을 죽이지 않고 살리려 드는구나!!”
카인의 눈에 보인 염훈의 선량함은 여전히 약점이었다.
“뭐래? 나라면 여유 부릴 시간에 직접 날 공격하러 나왔겠다.”
염훈은 [10초 무적]의 여유 속에서 그렇게 말했다.
카인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나를 본성 바깥으로 유인하려는 거라면 통하지 않는다.”
카인은 본성 범위 안에서 그렇게 말하더니,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금속 수호병 소환]! 나와라, 수호병들이여!”
스으으으윽……!
붉은 토양 밑에 숨겨져 있던 금속의 수호병들이 몸을 일으켰다.
카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몸과 영혼을 모두 바친 존재들.
“귀찮게 됐군!”
염훈은 [성황제의 돌진]으로 퇴로를 만든 뒤, 먼저 금속 수호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금속이라면 오히려 쉽다! [홀리 체인 라이트닝]!!”
빠지지지지지직!!!
뇌전과 신성력의 격류가 금속 수호병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크으으윽……!”
“기기기긱……!”
금속 불꽃이 튀면서 기능이 정지했다.
그 순간.
-철분 토양이 금속 수호병을 치유합니다!
파앗!
금속 수호병들이 철분기를 머금은 이 붉은색 땅 위에 존재하는 한, 회복은 거의 즉시 이루어진다.
카인은 희열에 차서 외쳤다.
“하하하! 흔히들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지? 그게 말처럼 쉽겠냐! 위기 속에서 역으로 쳐들어온 네놈의 최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