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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389화 (389/434)

389화 : 다시 100층탑으로

“폐하! 또다시 놈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젠장.”

이번에는 인치가, 과감하게 염훈이 지배하고 있는 70층으로 쳐들어온 것이었다.

길드연합국 측과 3군주 측 모두 스킬 수준이 높다 보니, 방어선을 우회하거나 돌파하는 게 가능해서 후방이라도 방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싸움은 무려 5일간 계속되었다.

5일간의 싸움 양상은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염훈은 하루 만에 성채를 다섯 개 뺏었다가, 세 개를 뺏기고, 다시 네 개를 되찾았다.

인치의 부하를 여럿 처치하는가 하면, 염훈 또한 부하를 여럿 잃기도 했다.

적군의 허점을 뚫었다고 확신한 직후에 아군이 포위되기도 했고, 적군에게 성채를 뺏겼다고 생각할 때 적들을 본성까지 밀어붙이기도 했다.

확실한 건,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3군주는 자신들끼리 협력하는 법과, 염훈의 약점을 배워나간다는 점이었다.

이는 길드연합국에게도 마찬가지라서, 싸울수록 3군주의 협력이 시작되고 끝나는 시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70층~89층 구간이 끝없는 전쟁의 신세계라더니. 정말 그렇군.’

그렇게 5일째 밤이 저물었다.

전투는 일시 소강 상태.

워낙 바빴기에 염훈은 알지 못했지만, 바로 내일이 전송의 날이었다.

5층에 상주하는 각 길드의 상급 스카우터들은, 이제 길드연합국 스카우터가 되어 1층부터 4층까지의 일을 모니터링할 권한을 위임받았다.

* * *

아카데미 소유의 한 벙커.

100층탑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올 경우 맞서 싸우기 위해 만든 장소라고 한다.

물론, 100층탑에서 위험한 무언가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 적도 없고, 그나마 나온 플레이어조차 공식적으로는 두 명뿐.

바로 은혁과 교황제 알렉스였다.

그 둘은 아카데미 소속의 병력들을 훈련시켰다.

“좋아. 훈련 끝.”

은혁이 말했다.

털썩! 털썩!

초대장을 들고 100층탑에 진입할 아카데미의 엄선된 정예병들이었지만 모두 쓰러졌다.

“정말 어마어마하군.”

교황제가 은혁이 가르쳐 준 힐링 포션을 제작법으로 힐링 포션을 만들며 중얼거렸다.

은혁은 불만족스러워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서 훈련 효율이 너무 낮군요. 이래서야, 원.”

은혁은 단순히 체력 훈련만 몰아붙인 게 아니었다.

각종 소환수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의 적응 훈련, 처음 보는 스킬의 파훼법을 찾아내는 훈련, 동료가 곁에서 쓰러질 때의 대처 훈련, 육체적 고통 적응 훈련 등등.

100층탑에 갑자기 내던져지고도 당황하는 대신 냉철하게 ‘음, 훈련받은 내용 그대로네.’라고 말하며 1위로 튜토리얼을 클리어해야 했다.

‘뭐, 잘하겠지.’

거의 세뇌 수준으로 훈련을 시켜뒀기 때문이다.

“거의 세뇌가 아니라 그냥 세뇌…….”

“뭐라고 하셨습니까, 교황제 폐하?”

“아, 아무것도 아닐세.”

“저는 공식적으로 세뇌를 한 바 없습니다. 저들은 자발적으로 100층탑에 들어가기로 한 자들이고, 저의 훈련에 스스로 참가했습니다.”

“알고 있네. 뭐라 한 거 아닐세.”

“…….”

은혁은 교황제를 잠시 흘겨본 뒤, 다시 앞을 보고 말했다.

“작전은 잘 기억하고 계시죠?”

“물론일세.”

“1층에 가더라도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서 만날 수 없을 거고, 저는 제 계획대로 진행해야 하므로 함께 행동하긴 어려울 겁니다. 정말 지시한 대로 잘하셔야 합니다.”

“알았으니 너무 반복할 거 없다네.”

그리고 전송의 날이 다가왔다.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은혁, 교황제, 그리고 아카데미의 부하 수백 명이 전송 초대권을 찢었다.

파앗!

그들은 100층탑의 1층으로 전송되었다.

* * *

전 세계에서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100층탑의 1층으로 전송되었다.

-100층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층 : 오리엔테이션의 층.

전송된 자 절대다수는 일상생활을 하던 회사원, 자영업자, 백수, 대학생, 공직자 등이었다.

“으왓!”

“여, 여긴?”

“오, 맙소사! 갑자기 순간이동되다니! 난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아!”

“와씨, 100층탑에 전송된 것 같네.”

사람들 중 일부는 경악했고, 일부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곳은 1층에서도 제4구역.

총 401명이 모여 있었다.

“앗, 저게 뭐지?”

“게임에 나오는 게이트 같은데?”

“비켜봐. 어떻게 열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그 순간.

“다들 진정하시오.”

어디선가 다크 드워프가 나타났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할 거요. 모두 내 주위에 모여 주시오.”

다크 드워프는 피부가 검고 키가 작으면서도 다부진 존재.

확실히 인간이 아닌 게 느껴졌다.

“진짜 게임 속에 나올 법한 다크 드워프다……!”

“무, 무슨! 이건 다 사기야. 분장일 거라고.”

누군가가 다크 드워프 곁으로 가더니, 함부로 얼굴에 손을 대려 했다.

휘릭!

다크 드워프는 날렵하게 움직이더니 무례한 사람의 손목을 비틀어 제압했다.

“아야야얏!”

“함부로 감독관에게 손대지 마시오.”

다크 드워프는 그렇게 말하고 그 사람을 풀어줬다.

“다들 혼란스러우시겠지만, 내 말을 들어주시오. 시간을 끌면 여러분 구역의 진행만 더 늦어지니까.”

머뭇머뭇…….

그제야 사람들이 그 다크 드워프 감독관 곁으로 다가갔다.

“간단히 내 소개를 하겠소. 나는 여러분의 튜토리얼 감독관이오. 이름은 요렌 크림스톤. 한때 멸망했으나 구원받은 다크 드워프 왕국의 왕족이지. 또한…….”

“저어, 질문해도 됩니까?”

누군가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나중에 질문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뭐, 해보시오.”

“여기가 정말 100층탑이 맞습니까?”

“그렇소. 여기가 100층탑의 1층이오.”

그러자 헛숨 들이키는 소리와 작은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감독관 요렌은 좌중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100층탑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오. 대부분 사실일 거요. 이곳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게임과 현실의 중간쯤 되는 세계. 살아서 나가고 싶다면 100층을 정복해야 하오.”

그러자 또 누군가가 끼어들어 물었다.

“당신은 100층에 가본 적 있습니까?”

“물론 아니올시다. 나는 플레이어도 아니고, 애초에 이미 죽었으니까.”

“네?!”

“긴 이야기요. 우리 다크 드워프 왕국은 멸망했고, 나 같은 왕족들 대다수는 망자화되었소. 그러던 어느 날, 다크 드워프 지하문명국의 최후의 군주, 윌칸과 어느 위대한 인간 플레이어의 도움으로 구원받았지.”

요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것은 은혁과 염훈이 18층에서 했던 일의 요약이었다.

두 사람의 힘으로 윌칸은 망자화된 다른 이들과 함께 구원받았고, 은혁은 라루방툼이라는 보물창고의 보물 절반과 드릴 랜스의 모체가 되는 대형 드릴의 소유권을 얻었다.

“어쨌거나 구원받긴 했지만, 여전히 망자 신세요. 그러니 죽은 채 사는 몸이라고 봐야지.”

“…….”

“더 질문을 받아주다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군. 미션창을 개방해 드릴 테니 잘 보시오.”

파앗!

<1층 메인 미션 : 진흙 인형 뽑기>

-목표 : 단단한 진흙 인형을 하나 골라서 뽑을 것. 그리고 그것을 쪼개면 ‘직업 각성 포션’이 들어 있다. 그걸 마시면 성공.

1인당 하나이므로, 진흙 인형을 두 개 이상 함부로 쪼개거나 방해하면 실패.

-성공 시 보너스 : 직업을 얻고, 게이트 미션에 도전할 수 있다.

-실패 시 페널티 : 폭사.

-제한 시간 : 2시간.

“히익?!”

“눈앞에 홀로그램 같은 게 떴어!”

“오, 맙소사!”

이번 기수의 제4구역 사람들은 유난히 호들갑이 심했다.

유난히 조용한 청년 한 명 정도를 빼면 다들 당황해했다.

요렌은 이 한심한 인간들에게 호통을 치고 싶은 걸 참았다.

‘참자. 관리국이 맡긴 임무야.’

관리국은 매년 100층탑의 한 종족을 골라 튜토리얼 1층 감독관 임무를 맡기곤 했다.

엘프가 맡을 때도 있고, 오리가 맡을 때도 있다.

그리고 올해 처음, 다크 드워프가 관리국으로부터 감독관 일을 받았다.

‘한때 멸망한 다크 드워프 종족을 관리국이 인정해 준다는 뜻이겠지.’

즉, 이번 일을 실수 없이 해내서, 관리국으로부터 당당한 자주 종족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잠깐 기다려요!”

깐깐한 인상의, 보석으로 치장한 중년 여성 한 명이 나섰다.

“이거, 전부 사기죠?”

“사기? 무슨 뜻이오?”

“우리를 집단 납치해 놓고,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 아닌가요?”

“허…….”

요렌은 기가 막혔다.

확실히 눈앞의 여성이 착용한 장신구들은 꽤 고가의 물건이었다.

물론, 다크 드워프의 안목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00층탑으로 전송되어 놓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거요? 인간의 상상력이란 대단한 건지 한심한 건지.”

“뭐, 뭐라고요?! 이 쪼그만 인간이 감히!”

중년 여성이 요렌에게 화를 내려 했고, 요렌은 장단을 맞춰주면 시간이 낭비된다고 생각했다.

휙!

피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 순간.

철컹! 철컹!

다섯 개의 금속 침대가 중심부에 생겨났다.

각 금속 침대에는 쇠사슬이 붙어 있었다.

“히익!”

“뭐야, 저 침대는!”

“고, 고문용 침대인가?!”

그제야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었다.

‘효과가 있군.’

원래 이 침대는 직업 고르기를 다 한 다음 공개해야 하지만, 사람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순서를 재량껏 바꿔봤다.

“여러분은 잠시 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오.”

요렌은 사람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으며 말했다.

“이 침대만큼의 산 제물을 바치거나, 지금 보여주는 괴물과 싸워야 하오.”

따악!

이번에는 굶주린 트롤 오형제의 영상이 허공에 나타났다.

“쿠오오오!!”

단순히 영상이었지만, 박력은 엄청났다.

“……!!”

사람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요렌의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안심하시오. 여러분을 저 트롤과 싸울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 줄 테니.”

물론, 일반인인 이들이 플레이어로 각성한다고 해서 당장 트롤만큼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겨우 레벨 1 플레이어가 되는 것일 뿐이므로.

하지만 모두가 힘을 합치면 트롤과 싸워 이기는 것도 가능했기에, 요렌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요렌에게 얼른 질문했다.

“어, 어떻게요?”

“그보다 저 침대의 용도는 뭐, 뭡니까? 아, 아까 산 제물이라고 했는데 설마……?”

요렌은 배우려는 자세가 된 사람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차근차근 가르쳐 줄 테니 듣기만 하시오. 자, 그럼 진흙 인형을 소환하겠소. 놀라지 마시오.”

요렌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

파앗!

눈앞에 진흙 인형이 담긴 넓은 판이 생겨났다.

드워프 군인들의 모습을 한 땅딸막한 진흙 인형은 쉽게 좌우로 쪼개지도록 되어 있었다.

“이 안에 든 것은 직업 선택 포션이오. 한 명씩 줄…….”

타앗!

조용히 있던 청년 한 명이 깜짝 놀랄 정도의 빠르기로 요렌 앞에 섰다.

청년은 싱긋 웃었다.

“제가 제일 먼저 뽑겠습니다.”

“아? 음. 그, 그러시오.”

요렌은 청년이 풍기는 기묘한 기운에 조금 놀랐다.

“자아, 어느 걸 뽑을까…….”

청년은 양손을 진흙 인형이 담긴 판에 얹었다.

“어어, 조심하시오. 다른 진흙 인형을 망가뜨리면…….”

“미션 실패라고요? 압니다. 하지만 하나만 뽑으면 되는 거죠?”

“아아, 그렇소.”

“흐으으음.”

청년은 마치 무언가를 탐지하듯 오래 관찰했다.

“이번에는 히든 진흙 인형은 없는 건가…….”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난번 때는 히든 오리알이 숨겨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난번에도 4번 구역이었지. 히든 아이템을 다른 구역에 배정했나 보군.’

“저 사람 뭐 하는 거야?”

“저기요. 빨리 뽑읍시다.”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이 투덜거린 그 순간.

척!

청년은 갑자기 손가락을 똑바로 펴고 천장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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