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 상승 길드장 어센션을 만나다
[심연 검색]으로 정보 검색을 마친 은혁은 네 가지 사실을 도출해 냈다.
첫째. 어센션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둘째. 길드연합국과 3군주 세력은 아직도 계속 싸우고 있다.
셋째. 은혁이 지배 중인, 교황제와 아카데미 세력의 튜토리얼은 잘 진행 중이다.
넷째. 교황제의 검은 심연의 마왕이 지니고 있다.
‘좋아, 좋아. 넷째 빼고는 다 순조롭군.’
은혁은 심연의 마왕이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단, 자신이 마왕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5분 안에 마왕을 죽이긴 어렵겠지. 교황제의 검 회수는 심연 탈출 직전에 몰아서 하고, 다른 일부터 끝내자. 우선 어센션부터 찾으러 가볼까!’
은혁은 우선 어센션을 찾아가기로 했다.
저벅저벅……!
은혁은 보통 걸음을 걷는 것 같았지만 맹렬한 속도로 앞으로 걸어갔다.
마치, 고속으로 이동하는 무빙워크 위에서 걸어가면, 천천히 걷은 것 같아도 실제로 빨리 움직이듯, 은혁은 심연 속에서 [그림자 왕국]을 발동했기에 맹렬한 속도로 앞으로 쏘아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심연의 대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전설적 케르베로스가 나타났습니다!
-그림자 아귀가 나타났습니다!
심연의 독을 먹으며 살아온 강대한 존재들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은혁이 그들의 구역을 침범한 것이다.
“쿠오오오!!”
“샤아아아아악!!!”
몰락한 지고의 위상을 잡아먹을 정도로 강력한 심연의 괴물들이 은혁을 죽이러 덤벼들었지만.
휙.
은혁은 그냥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물론, 심연의 괴물들 또한 심연을 이용하는 법을 알았기에 은혁을 뒤쫓았다.
‘귀찮으니까 몰이 사냥하자.’
휙! 휙! 휙!
은혁은 빠르게 움직였다.
‘이건 진짜 신기하네.’
지금의 은혁은 자신이 공간 속을 움직인다기보다, 은혁을 중심으로 주변 공간을 휙휙 넘기는 것만 같았다.
‘심연 + [그림자 왕국] 효과 때문이겠지만, 나중에 100층탑 위로 올라가도 쓸모가 있겠는데?’
심연의 어둠을 [재난의 심장]에 이미 넣어뒀으니, 나중에 심연을 탈출했을 때도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게 가능할 터.
“쿠오오오!!”
“캬아아아아악!!”
은혁의 비정상적인 빠르기의 움직임을 보며 괴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은혁은 일부러 심연의 괴물들이 사는 구역을 침범해 가며, 괴물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좋아. [그림자 방출] + [플레임 인플레이션] 융합.”
-히든 이펙트 발동!
“[심연초열발산의 룬].”
허공에 작은 룬이 생성되었다.
룬은 심연의 어둠에 사르륵 녹아드는가 싶더니.
화아아악!!!
은혁이 설정한 범위의 어둠이 통째로 화염으로 변했다.
마치 심연이 이미 기화 폭탄의 연료가 되었고, 스킬로 만든 룬이 기폭제가 된 듯했다.
물론, 실제 위력은 기화 폭탄보다 훨씬 강력했기에 괴물들은 순식간에 죽었다.
-축하드립니다! 레벨이 1만큼 상승하셨습니다!
-현재 레벨 : 239.
“레벨도 별로 안 오르네.”
은혁은 배부른 소리를 하고는 마저 어센션을 찾아 나섰다.
어센션이 있는 곳은 심연의 어둠과 구별되는 커다란 ‘기둥’이 있는 곳이었다.
‘저 기둥은……!’
은혁이 심연의 정보를 해석해서 겨우 알게 된 것에 의하면, ‘어둠의 기둥’이다.
건물에 비유하자면, 100층탑의 내력벽이거나 필로티 기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카데미의 과격파가 틀렸다는 거지.’
아카데미의 과격파는 지구의 100층탑 밑의 땅을 드릴 따위로 파서, 100층탑을 통째로 무너뜨리자는 식의 주장을 하곤 한다.
하지만 100층탑의 ‘기초 기둥’은 실제로는 이곳, 심연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구의 100층탑이나 그 밑동을 판다고 해도 무너지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이 기둥을 훼손하면……?’
은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둥 밑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넌 뭐냐?”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전형적인 비렁뱅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100층탑의 플레이어 강은혁입니다.”
“직업은?”
“모든 직업.”
“흠……?”
어센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은혁에게 조금 더 다가왔다.
은혁은 어센션을 관찰하며 생소함을 느꼈다.
‘이상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반대로, 어센션은 은혁을 관찰하며 놀라워했다.
‘이상하군. 모든 직업이라더니, 정말인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짧은 관찰을 마쳤다.
“혹시 날 찾아왔나?”
“겸사겸사요.”
“여기가 어딘지 모르나? 이곳은 심연. 100층탑의 내부이자, 동시에 바깥인 곳. 일반 플레이어는 겸사겸사 올 만한 곳이 아니야.”
“저는 이미 일반 플레이어라고 할 수준이 아니라서요.”
“광오하군. 이전의 나보다 더 광오해.”
어센션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은혁에 대해 크게 호기심을 느꼈다.
“어쩌다 여기 오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나?”
“말하자면 긴데요. 일단 밖에 나갔다가…….”
“밖이라니?”
“100층탑 바깥 말입니다.”
은혁은 설명했지만, 어센션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믿기 어렵습니까?”
“너라면 믿겠나?”
“그럼, 당신이 여기 오게 된 경위를 알아맞혀 볼까요? 당신, 부길드장이던 브라이언 때문에 오게 된 것 맞습니까?”
“허,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아, 그냥 기억을 전송해 드리는 게 낫겠군요.”
은혁은 블러드 데이터 칩을 만들어서 어센션에게 전해줬다.
하지만 어센션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정보 전달 계열 스킬은 안 통한다.”
“음? 어째서입니까?”
“정보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와의 상호 작용은 대화 말고는 못 해. 왜냐하면 지금의 내 직업은 ‘무등급 무아의 권성’이거든.”
“허…….”
“심연에서 [명상]만 주야장천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더군.”
어센션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덕분에 잠을 잘 필요도 없고 식사를 할 필요도 없는 몸이 되었지. 심연의 악마들도 나를 딱히 건드리지 않아.”
“혹시 소문으로만 듣던 [해탈]입니까?”
“아, 궁극 스킬 [해탈] 말이지? 구원 길드 애들 중에 그걸 노리는 애들이 있다고 들었지. 하지만 그거랑은 또 다른 것 같아.”
“으음……!”
“뭐, 대화라면 실컷 할 수 있는데. 너는 뭔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심연에 온 것 같군.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아, 제 목적 중 하나는 당신입니다. 함께 위로 올라가서 길드연합국을 승리로 이끌 생각은 없습니까?”
“음? 전쟁이라도 하나?”
“네. 3군주와 전쟁 중입니다. 현재 통합길드장은 염훈이고요.”
“기억 전송이 없으니 불편하군. 일단 좀 설명해 봐.”
“후, 그러죠.”
은혁은 일일이 말로 설명했다.
어센션은 곧 이해했다.
“미안하군. 어차피 나는 전투를 할 수 없는 몸이야. 멀리서나마 그 염훈이라는 자를 지지하고 싶긴 한데.”
“그렇군요. 그럼 그걸로 충분합니다.”
어차피 지금의 은혁은 매우 강했고, 3군주 한 명보다는 확실히 강했다.
어쩌면 길드장 3명을 합친 것보다 더욱 강할지도 모른다.
-안정화 작업중 : 0.00005%…….
-안정화 작업중 : 0.00006%…….
-안정화 작업중 : 0.00007%…….
아직도 ‘나 혼자만 모든 직업’의 안정화가 덜 되었다는 걸 감안해도 그렇다.
‘안정화가 여전히 느리네. 그래도 다 끝나면, 400개의 직업을 새로 얻게 되겠지.’
단순히 스킬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직업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증가하는 스탯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되므로, 그때는 아무리 겸손하게 판단해도 은혁이 최강자가 되는 것은 확정이라 봐야 한다.
“그럼 몇 가지만 묻겠습니다. 왜 계속 여기 머무르고 계시는 겁니까?”
“음, 처음에는 탈출할까 생각도 했었지.”
브라이언에 의해 심연에 떨어지고 나서,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브라이언이 섬기는 성좌, 블릿츠 데바에 의해 심연에 떨어졌지. 그렇다면 다른 성좌에 의해 심연을 탈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
“심연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성좌를 찾아 나섰겠군요?”
“원래 계획은 그랬지. 하지만 심연에 떨어지는 것도 흔한 경험은 아니니까, 이곳을 좀 탐험해 보기로 했지. 뭐, 죽을 고비를 한…… 수백 번 정도는 넘긴 것 같군.”
아무리 길드장급 강함을 지닌 어센션이라 해도, 혼자서 심연에서 버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심연의 어둠 속에서 모든 걸 잊고, 오직 살아남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모든 게 변해 있더군. 100층탑에 대한 집착도, 향상심도 모두 내려놓았지. 일부러 내려놓겠다고 다짐한 적도 없는데 말이야.”
“되게 모순적이군요. 상승 길드장이 허무에 심취해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니.”
“하하. 그렇군. 하지만 허무주의랑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
어센션은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하여간, 나에게는 굳이 심연을 탈출할 이유가 없어. 하나 마나 한 소리긴 하지만, 브라이언에 대한 원한도 없다.”
어센션이 캄캄한 심연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의 인정을 받고, 부하들의 인정을 바랐던 브라이언. 그를 완전히 이해하고, 또 용서한다. 더 나아가, 통합길드장은 브라이언을 상승 길드장으로 임명해줬으면 좋겠다.”
어센션은 후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훨씬 전부터 해온 생각을 소리 내어 말할 기회가 생겨서 참 잘됐다는 태도다.
은혁은 예상과 완전히 다른 어센션을 보며 생각했다.
‘얄궂군.’
이제, 어센션은 상승 길드를 처음 세울 때의 목적, 100층 정복은 불가능한 몸이 되었다.
하지만 100층탑의 그 누구보다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것도, 100층 꼭대기의 정반대 층인 심연에서 깨달음을 얻고 편안해하다니.’
은혁은 어센션에 대해 더 추궁하거나 하진 않기로 했다.
“잘 알겠습니다. 한데, 하필 이 기둥 앞에 자리를 잡으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큰 이유는 없어. 그림자의 성좌가 있는 궁전이나 마왕성을 제외하면, 사실상 유일한 구조물이거든. 그냥 안정적으로 보여서 여기 머물 뿐이야.”
어센션이 기둥에 손을 댔다.
“심연에는 이런 기둥이 총 네 개 있더군.”
그 이상 아는 것은 없는 듯했다.
“부술 줄 압니까?”
“이걸?”
기둥의 굵기 자체는 한 아름 정도.
굵기는 하지만, 100층탑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가느다랗다.
“직접 보라고.”
어센션은 어둠의 기둥에 대고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스륵.
어센션의 주먹은 어둠의 기둥을 그냥 쑥 뚫고 지나갔다.
“물리적으로는 부술 수 없는 것 같아. 일종의 시스템으로 구성된 것 같은데…….”
“과연 그렇군요.”
은혁은 살짝 손을 대었다가 땠다.
‘분석 완료.’
뿐만 아니라 [시스템 해킹 2.0]으로 은혁이 원하는 데이터를 심어둔 데다가, 어둠의 기둥 속에 [피의 표식]까지 남겨 뒀다.
“자, 자네 뭘 한 건가?”
“이제, 이 기둥은 제겁니다.”
“뭐?”
“지금은 설명해도 모를 겁니다. 잠시만요.”
파앗!
은혁의 몸이 순간 흐려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어센션은 경악했다.
‘엄청난 빠르기군!’
은혁은 이미 다른 어둠의 기둥 3개를 전부 찾아낸 뒤, 같은 식으로 장악했다.
‘좋아! 무리해서 심연에 온 보람이 있군!’
심연에 비밀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의 요소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저는 이제부터 그림자의 성좌를 뵈러 갑니다. 같이 가실래요?”
“흠, 쉽지 않을 텐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처음 내가 심연에 떨어졌을 때, 그림자의 성좌가 날 초대한 적 있지. 당시의 나로서는 살았다 싶었지.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