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 움브라 VS 강은혁
-체아트리의 신격이 강화되었습니다!
-체아트리는 독립 성좌로 각성합니다!
-비밀 상점의 성좌, 체아트리로 변화합니다!
파앗!
체리의 격이 상승하고, 온전한 성좌가 되었다.
“아……!”
“축하합니다!”
은혁이 크게 외치며 박수를 쳐줬다.
움브라, 어센션과 이경덕 또한 박수를 쳤다.
체리는 감격한 얼굴로 움브라를 봤다.
여전히 움브라를 말리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움브라와 은혁은 대련 범위와 시작 시각 등 기타 자잘한 조건까지 순식간에 조율했고, 어느새 이미 [계약 대결] 메시지가 떠 있었다.
<계약 대결>
-목표 : 강은혁과 움브라는 전력을 다해 대련을 펼치되, 상대의 소멸에 이르지는 않게 한다. 규칙을 어기면 패배.
-조건 : 대결 장소는 그림자의 궁전 내부로 하며, 제삼자의 개입은 절대 금지된다.
-강은혁이 이기는 경우 : 그림자의 성좌, 움브라는 강은혁의 부하가 되며 충성을 맹세한다.
-움브라가 이기는 경우 : 강은혁은 그림자의 성좌, 움브라의 노예가 되며, 강은혁의 플레이어 자격, 생명, 지성 등 모든 것은 움브라의 소유가 된다.
- [계약 대결]이 성립되었습니다!
-대결 시작까지 60초…….
-대결 시작까지 59초…….
-대결 시작까지 58초…….
은혁은 가볍게 몸을 풀기 시작했고, 움브라는 싱긋 웃으며 체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체아트리? 다락방에 가서 ‘그것’ 좀 가져와, 아니, 빌려주겠니?”
“아, 그것 말이지요?”
체리는 얼굴이 환하게 변하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타타탓…….
“무슨 비밀 병기를 준비 중이신가 보군요.”
은혁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움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하나쯤 비장의 수단을 숨겨놓는 법이지?”
“동의합니다.”
-대결 시작까지 48초…….
-대결 시작까지 47초…….
-대결 시작까지 46초…….
은혁은 무심히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다가 몸풀기를 마쳤다.
“다들 주의하십쇼.”
은혁은 움브라는 물론, 멀찍이 피신한 어센션과 이경덕에게도 말했다.
“뭔가 하려고? 아직 대결 시작 전인데?”
움브라가 의아해했지만 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은혁이 대결 전에 움브라를 먼저 공격하면 규칙 위반으로 패배가 되어, 자동으로 움브라가 이길 뿐이다.
“편의를 봐주셨는데, 등에 칼을 꽂는 것 같아 속이 좀 켕기는군요.”
“무슨 소리지?”
“[미완성 운명 지배].”
운명의 성좌는 자신의 권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세계와 직접 상호 작용이 제한된 성좌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은혁은 아니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은혁의 몸에, 관리국이 운명치라 부르는 무언가가 마구 쌓였다.
후둑, 후두두둑…….
은혁의 피부로부터 결정화된 운명치가, 작은 운명석 형태로 변하여 마구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촤르르르르르륵……!!
은혁의 몸은 굵은 모래를 쏟아내듯 운명석을 흘려보냈다.
“이, 이건……!”
구경하던 어센션이 경악했다.
그가 한창 7대 길드의 길드장으로 활동할 때는 늘 운명치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순수한 운명석은 성좌나 지고의 위상들끼리만 보유하고 있었으며, 인공 운명석에 관한 것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은혁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그런가. 그래서 운명의 성좌와……!’
어센션은 은혁이 운명의 성좌와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은혁의 구상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운명의 성좌와 동등한 위치에서 계약하고 유일한 사도가 되는 것. 그것은, 아아! 그야말로 사실상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 아닌가!’
은혁은 [미완성 운명 지배]의 힘을, 막혀 있던 직업 안정화에 돌렸다.
-안정화가 고속으로 진행됩니다!
-안정화 작업 중 : 0.00009%…….
-안정화 작업 중 : 0.0001%…….
-안정화 작업 중 : 0.003%…….
-안정화 작업 중 : 0.8%…….
-안정화 작업 중 : 9.4%…….
-안정화 작업 중 : 22.5%…….
순식간에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쿠구구구구구구궁……!!
400여 개의 직업이 안정화된다는 것은, 단지 직업의 가짓수가 늘어난다는 것 이상을 의미했다.
직업 중첩의 시너지 효과로, 스탯 효율이 급상승한다는 뜻.
-경고! 심연에서 전례 없던 힘이 감지됩니다!
* * *
100층.
모든 플레이어들의 목표.
그곳에는 관리국 본부가 존재했다.
100층탑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일을 감지하는 중앙 시스템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관리국의 모니터링 담당 요원들은 기현상을 발견했다.
‘뭐지?’
심연에서 이상 현상이 감지된 것이다.
‘한 플레이어가 엄청난 힘을 방출해 내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연의 어둠은 옛 데이터를 머금은 것으로, 그 자체로 생명체의 힘을 억누른다.
그곳에 플레이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예외적으로 상승 길드장, 어센션이 심연에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
‘이거, 관리국장님께 보고 드려야 하나?’
이상 현상은 관리국의 장 즉, 관리국장인 알파레몬에게 무조건 보고해야 한다.
‘근데 그분이 요즘 바쁜데.’
알파레몬은 관리국의 장임과 동시에, 100층탑을 총괄하는 총관리자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70층~89층에 정신을 기울이고 있다.
그곳에서 결전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100층탑 최초 클리어에 가장 가까운 자들.
그렇기에 알파레몬은 그곳에 위치한 총관리자 전용 대사관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쩐다? 나 혼자 처리하긴 벅찬 문제인데.’
모니터링 요원은 도움을 청하고자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두가 바빴다.
모니터링 요원들과 직속 상관이 모두 바쁜 이유는, 교황제와 아카데미 때문이다.
“맙소사! 교황제라니!”
“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교황제가 사실은 죽은 척만 하고 나간 것은 확인했지만, 이런 식으로 복귀할 줄은……!”
“교황제만 문제가 아냐. 아카데미 놈들도 갑자기 초대장을 이용해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고!”
“제기랄, 100층탑 입장권을 그래서 한 집단에게만 몰아서 뿌리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이, 옛날 일을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거야? 그 일은 총관리자님께서 허락하신 거다. 총관리자님이 틀렸다는 거냐!”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총관리자님께 아부라도 떠는 거냐!”
“뭐라고?!”
모니터링 요원들 간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어휴, 몇 명 빠진 것 가지고 이렇게 되다니.’
강은혁의 행보는, 사실 관리국 요원들의 과로로 인한 병가 기록 갱신과 일치한다.
은혁이 일으킨 깽판의 뒷수습을 하느라 빠진 이들도 많았다.
지금도 노리 차장이 이곳에 있어야 하지만, 은혁에게 패배하고 트라우마 때문에 여전히 휴가 중이다.
즉, 100층의 관리국 본부에는 꼭 필요한 고위직, 중간 관리직들이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다.
‘총관리자님이 머물려 계셨으면 이런 추태가 없었을 텐데.’
모니터링 요원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확인한 순간.
‘어?’
이상 반응은 싹 사라져 있었다.
모니터링 요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작은 오류였군.’
심연에서는 때때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심연은 1층~100층과는 상이하므로, 심연에서 발생한 기현상이 100층탑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애초에 없었다.
‘한시름 덜었어.’
이 모니터링 요원은 평소처럼, ‘심연에서 기현상이 발견되었으나, 자연 소멸’이라고 데이터베이스에 한 줄 남기고 넘어갔다.
* * *
‘이런, 관리국에 들켰으려나?’
은혁은 심연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로 파워업을 거쳤다.
너무 강해진 게 관리국에 들킬까 봐, 일부러 심연에서도 그림자 궁전 안에서 했는데, 소용없었다.
와르르…….
박살 난 그림자 궁전의 지붕에서 잔해가 흐르는 소리가 났다.
“하…….”
어센션은 자신과 이경덕을 겨우 보호했고, 움브라의 얼굴은 창백했다.
‘말도 안 돼.’
처음에 은혁이 [미완성 운명 지배]를 썼을 때,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자신이 이길 확률을 높이려나 보다, 정도로 생각했을 뿐.
하지만 은혁이 [미완성 운명 지배]를 이용해 한 일은, 정체되어 있던 ‘나 혼자만 모든 직업’의 안정화 작업을 재개한 것.
즉, 이미 1층에서 압도적으로 강해진 상태였는데 안정화되지 않아 쓸 수 없었던 힘을, 강제로 안정화시켜 온전하게 쓸 수 있게 한 것이다.
‘실제로는 절반 정도지만.’
-안정화 작업 중 : 50.00007%…….
-안정화 작업 중 : 50.00008%…….
-안정화 작업 중 : 50.00009%…….
딱 절반 정도까지 미친 듯이 치솟더니, 거기서 멈췄다.
“후우…….”
지금의 은혁은 3군주 한 명 정도는 10분 안에 맨손으로 때려죽일 정도의 강함을 지녔다.
3군주가 본성에 틀어박혀 숨거나, 은혁이 모르는 비장의 술수를 쓰면 조금 더 귀찮겠지만, 사실 그에 대한 대처도 두어 가지 준비해 두었다.
“주, 주인님……?”
먼지를 뒤집어쓴 체리가 어이없어하며 조심스레 움브라에게 다가갔다.
무언가를 한아름 들고 왔는데, 전부 성좌들이 탐낼 법한 강력한 무구들이었다.
“주인님?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대결 시작까지 3초…….
-대결 시작까지 2초…….
-대결 시작까지 1초…….
-대결 시작!
“아.”
은혁은 대결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듯이 소리를 냈다.
“어떻게, 덤비실 겁니까?”
은혁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
움브라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졌어.’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졌다.
지금 이곳에서 진정한 그림자의 성좌 자리에 어울리는 이는 자신이 아니라 은혁이었다.
‘절대 못 이기겠네.’
움브라가 전력을 다해도, 은혁을 이기진 못한다.
반면에 은혁은 움브라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게 가능할 정도.
아마 3군주 1.5명보다도 강하고, 2명보다 아주 조금 모자라는 수준일 터.
‘아니, 실제로는 더 강하겠지.’
어쩌면, 플레이어 기준에 맞춰 은혁의 강함을 측정하려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움브라가 측정한 은혁의 전투력은, 맨 손으로 성좌의 본체를 찢어 죽이는 게 가능한 수준.
사실상 성좌급 기준에서 은혁을 바라보는 게 더 적절하다.
만약 은혁이 무기를 들고 싸운다면, 최상위급 성좌의 본체와 싸운다 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졌어.”
-그림자의 성좌, 움브라가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 [계약 대결]의 조건대로, 그림자의 성좌, 움브라는 강은혁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부하가 되어야 합니다!
털썩.
움브라는 일말의 지체도 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본녀는 강은혁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맹세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움브라 님. 100층탑을 클리어한 뒤, 저에게 바친 충성에 보답할 것입니다. 당분간은 심연에 머물며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의 주인이신 강은혁 님 만세.”
그렇게 승부는 끝이 났다.
체리는 망연자실해했다.
“움브라 님. 어째서.”
“미안하구나, 체리. 네가 가져온 기물들을 사용해도 이길 수 없었을 거야.”
움브라로서는 빠르게 포기하는 게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은혁은 체리를 보더니 손을 뻗었다.
“주셈.”
“뭐, 뭐를?!”
“도깨비 감투.”
“그걸 내가 왜 줘야 하는데!”
“움브라 님은 이제 내 부하고, 너는 움브라 님의 부하 아닌가?”
그러자 움브라가 끼어들었다.
“그건 아닙니다, 강은혁 님. 기억 못 하시나요? 저는 대결 전에 체리를 독립 성좌로 만들어줬습니다. 그런 식의 서열은 인정될 수 없지요.”
“후후. 과연 그렇군요.”
은혁은 크게 아깝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도깨비 감투가 있으면 삼엄한 카인의 본성 구역에 잠입하기 편해지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작전은 있었으므로.
“뭐, 없어도 상관없으니까.”
은혁은 움브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럼 작전을 전달할 테니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