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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02화 (402/434)

402화 : 운명의 지배자가 되다

은혁은 [텔레파시]로 움브라에게 작전을 전달했다.

우우우웅……!

은혁조차도 실제로 쓸 타이밍을 찾아내기 어려운 작전.

매우 과감한 작전이었기에, 움브라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위험한 작전이군요. 어쩌면 100층탑 전체에…….”

“쉿! 비밀입니다. 타이밍은 나중에 전달하죠. 그리고 어센션 길드장님?”

“나에게 시킬 일이라도?”

“예. 혹시 무아의 성좌를 만난 적 있습니까?”

“아니. 만나야 하나?”

“소개해 드릴까요?”

“딱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이제 교황제의 검 가지러 갈 건데, 같이 가시겠습니까?”

“내가 도울 일이 있나?”

“전혀요.”

“뭐, 심심하니 가볼까.”

“따라 오십쇼.”

파앗!

은혁과 어센션은 어디론가 떠났다.

“허험! 나 좀 다시 5층으로 데려다주시겠소?”

이경덕이 체리에게 부탁했다.

* * *

심연의 악마들은 모두 은혁을 두려워했다.

은혁이 [미완성 운명 지배]로 자신을 강화시킨 것만으로도 그림자의 궁전을 무너뜨린 일을 심연의 악마들 또한 감지했기 때문이다.

즉, 은혁은 성좌의 차원에 존재하는 본체보다 강력하며, 걸어 다니는 운명치 폭풍이나 다름없었다.

‘다 도망치니 좀 심심하네.’

사실 은혁은 심연의 마왕이나 여러 악마들과 좀 싸워보고 싶었다.

100층탑의 밑바닥에 서식하는 악마는 다른 곳의 악마와는 차원이 다른 심원의 사악함을 지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악함을 좀 배울 기회가 있지 않을까 했더니만.’

은혁은 아쉬움을 갈무리한 채, 교황제의 검을 찾아갔다.

“찾았다.”

마왕성처럼 생긴 건축물이 은혁의 눈앞에 있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심연의 마왕을 자처하는 한 강대한 존재가 머물러 있었지만,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사실, 은혁이 심연에 도착한 직후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심연의 마왕이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은혁이 전력을 다한다면 물론 은혁이 이기겠지만, 마왕은 다수의 악마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방심하면 은혁 또한 위태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은혁은 심연에 머물면서도 빠르게 강해졌고, 그 힘은 마왕과 그 권속들을 가볍게 압도하는 수준이 되었다.

“제가 해도 될까요?”

“뭘?”

“이 마왕성 부수는 거요.”

“엥?”

“얍! 맨손 [강타]!”

은혁은 모래성을 때리듯 손바닥을 휘둘러 쳤다.

투쾅!!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마왕성이 부서지고, 그 잔해가 폭풍이 되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크으아아아악……!

크오오오오옥……!

도망치던 마왕과 그 수하 악마들은, 은혁이 박살 낸 마왕성의 잔해 폭풍에 휘말려 모조리 죽었다.

“……미쳤군.”

어센션은 중얼거렸고, 은혁은 손을 털었다.

“이상하게 손이 아프네요. 마왕성을 수호하는 어떤 힘이 있었나 봅니…… 아, 찾았다!”

은혁은 잔해 속에서 교황제의 검을 찾았다.

은혁의 예상대로, 교황제의 검은 1층의 홀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마왕은 복잡한 룬 도식을 교황제의 검 주변에 그려 넣어서, 그 힘을 자신과 마왕성을 강화하는 데 쓰고 있었다.

“흠. 악마 놈들도 맨손으로 직접 만질 수는 없었던 모양이군.”

어센션이 중얼거렸다.

은혁도 동의했다.

교황제의 검은, 전반적으로 칠흑 같은 검은색으로 이루어졌으며, 손잡이와 칼날 곳곳에 황금으로 장식된 장검이었다.

황금은 그냥 장식이 아니라, 정교한 마력 회로로서, 교황제의 영혼과 정체성 등 모든 것이 순환을 이루도록 해뒀다.

‘생각보다 엄청난 검인데?’

은혁은 이미 교황제를 부하로 만들고 온 길이다.

그래서 교황제의 검 또한 내심 만만하게 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엄청 대단한 무구였다.

‘교황제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만들었다더니. 그건 과장이 아니었구나.’

그러고 보니 흑룡파의 수장이 교황제의 검을 자신이 챙기거나 파괴하는 대신, 심연에 던졌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교황제의 검은, 본체인 교황제 자신보다 더욱 대단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 봐야 내 세븐 칼리버 제7형태의 재료로 쓰일 뿐이지만.’

은혁은 성큼성큼 다가갔다.

스으윽.

교황제의 검에 깃든 영혼이 나타났다.

-그대는 누구인가?

“네 본체의 주인 되는 분이다.”

-크흐흐흐…….

교황제의 검에 깃든 영혼은 차갑게 웃었다.

한창때의 교황제 알렉스가 지을 법한 웃음이었다.

-강력한 존재여. 나를 소유할 수 없다. 나는 오직 교황제만이 쥘 수 있다.

“그래? 그럼 더더욱 내 손에 쥐어야겠군.”

하지만 은혁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허. 이런 느낌이군.’

교황제의 검을 움켜쥐려는 은혁의 의지에 대해, 자신의 운명이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것을 느꼈다.

자유 의지와 운명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생소한 감각에 은혁은 신기해했다.

‘아마 일반인들은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일이 없겠지. 아니, 과거의 나조차도 그랬을 거야.’

은혁에게도 살아오면서 자유 의지와 운명이 힘겨루기를 한 적이 몇 번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생하게 의식한 적이 없을 뿐.

‘무리해서 [미완성 운명 지배]를 쓰면 교황제의 검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그랬다가 교황제의 검에 담긴 힘이 깎여 나갈까 걱정이었다.

교황제의 검에 담긴 혼은 교황제의 모든 것 즉, 운명도 포함되는 것이기에, 무리해서 운명을 조작하려 들었다간 그 순수성이 약해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흐흐흐. 뭘 망설이는가? 강자여. 자신이 있으면 날 쥐어 보라.

교황제의 검에 담긴 혼이 은혁을 도발했다.

은혁은 씨익 웃어줬다.

“좋아. 정했다. [무아의 성좌 강림].”

쿠구구궁…….

세상이 떨리는가 싶더니, 세계가 극도로 느려졌다.

은혁이 직업 카드를 뽑을 때와 비슷한 현상.

초가속된 은혁의 정신 세계 속에 무아의 성좌가 자리를 잡고 말을 걸었다.

-……오랜%$#!훌%^#잘해줬지만^ &%^&@#%$?

‘뭐라고 하는 겁니까? 아, 아차. [초월 명상].’

우우우웅……!

무아의 성좌 아카식 제로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려왔다.

-제대로 들리나? [초월 명상] 스킬을 쓰도록.

‘네. 들립니다.’

-나를 부른 용건은 전에 맡긴 퀘스트 클리어를 보고하기 위해서겠지.

‘그렇습니다.’

교황제의 검과 관련된 이유도 있었지만, 공적인 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음. 훌륭한 플레이어여. 너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냈구나.

아카식 제로는 은혁이 운명의 성좌와 만난 것, 그리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것을 알고 있었다.

‘원하던 답을 찾으신 겁니까?’

-아니다.

그럼에도 실망스러운 어조가 아니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

‘그게 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뢰요, 둘째는 불완전함이다.

‘난해하군요.’

-첫째로, 나는 너를 크게 의심했다. 너의 행보를 지켜봐 왔지만, 너는 너만의 이득을 좇는 것 같았지.

‘…….’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너는 신의를 지키는 자다. 너는 나와의 퀘스트 계약을 잊지 않았다. 다른 성좌들이 성직자와 계약을 하고, 믿고 기다려 주는 이유를 알겠구나. 신뢰할 때 얻는 즐거움을 알았다.

‘하하. 퀘스트 계약인데, 당연한 일이죠.’

-둘째는, 운명의 성좌조차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운명에 관한 질문의 답보다 그게 더 값진가요? 실망하셨을 줄 알았는데요.’

-실망보다 깨달음이 더 컸다. 나는 한동안, 성좌란 불완전한 존재임을 잊고 있었다. 너와 대화를 나눈 그림자의 성좌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길 꿈꾼다고 했지만, 그것은 얄궂고 오만한 발언이겠지. 사실, 우리 성좌야말로 각자의 영역에만 얽매인 불완전한 존재인 것을.

‘그림자의 성좌가 말한 불완전함은, 보다 인간적인 불완전함이었을 겁니다.’

-그러하다. 그렇게 보면 불완전함이란 참으로 종류가 다양한 것이로구나. 100층탑의 거의 모든 지식을 지니고 있다는 나조차도 모를 수많은 불완전함이라! 으하하하!!

무아의 성좌는, 그 어느 때보다 극명히 자아를 각성한 듯했다.

-심연에 가는 법과 그 탈출법을 보상으로 주기로 했었지? 하지만 너는 이미 그 방법을 다 알고 있군.

‘네. 심연의 힘을 많이 흡수했기에, 심연 탈출은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후후, 추가 보상을 약속한 바는 없지만, 뭔가를 요구할 모양이군.

‘네. 실은 [미완성 운명 지배]라는 스킬을 얻었는데, 이 메커니즘이 이해가 안 가는군요. 지혜를 조금 빌려주시겠습니까?’

-그거라면 운명의 성좌에게 물어야 하지 않나?

‘어느 철학자가 너 자신을 알라 했지요. 당연한 소리 같지만, 자기 자신이 어디까지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그 철학자는 그렇게 말한 건지도 모릅니다. 운명의 성좌 자신은 [미완성 운명 지배]가 지닌 가능성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좋다. 그럼 지혜를 일시적으로 강화시켜 주마.

우우웅……!

은혁은 순간적으로, [미완성 운명 지배] 스킬을 완벽히 이해했다.

‘아……!’

-패시브 스킬 [운명의 지배자]를 획득하셨습니다!

기존의 [미완성 운명 지배]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쓸 수 있는 대신 미완성적 요소가 컸다면, [운명의 지배자] 스킬은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대신 패시브 스킬로서 상시 적용된다.

‘이제, 나는 자유군.’

이 순간, 은혁은 100층탑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다.

[운명의 지배자] 스킬을 깨달았다고 해서 움브라와 대결할 때처럼 폭발적인 강함이 드러나진 않았다.

그저, 몸과 마음이 한없이 자유로울 뿐이다.

관리국이나 성좌 연합 등이 현실을 조작하는 등의 온갖 조작을 가해도, 은혁은 그로부터 면역이었다.

즉, 은혁은 플레이어이면서도 동시에 플레이어의 업을 완전히 극복한 상태.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열반]에 매우 근접한 상태이기도 했다.

100층탑에 존재하는 사실상 모든 직업에 닿아 있으면서도 모든 직업에 얽매이지 않았다.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군.

‘감사합니다. 무아의 성좌여.’

-이걸로 너와 나의 계약은 끝이구나. 그동안 너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저도 매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후후. 그럼 행운을 빌지…….

무아의 성좌가 은혁의 몸에서 떠났다.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흘렀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교황제의 검에 깃든 영혼이 의아해했다.

은혁은 지체 없이 손을 뻗었다.

철컹!

교황제의 검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앗?!

“별것 아니군?”

100층탑의 그 어떤 플레이어보다도 스스로의 운명의 주인이 된 은혁에게, 교황제의 검에 걸려 있는 프로텍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오오오오…….

교황제의 검에 깃든 비대해진 자아가, 뜨거운 물에 각설탕 녹듯이 은혁의 몸에 흡수되었다.

-교황제의 검의 소유권을 획득하셨습니다!

“훗.”

‘오오. 됐다.’

은혁이 교황제의 검을 뽑았다.

우우우웅……!

강력한 힘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교황제의 검 :

유일 전설급 아이템.

교황제 알렉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든 검.

100층탑 정복의 의지와 자신의 영혼까지 담았다.

플레이어가 성좌나 기타 신격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제작한 전설급 아이템이기에 그 가치는 측정할 수 없다.

내구도 개념 자체가 없으므로, 교황제 본인의 허가가 없다면 절대 파괴 불가의 아이템이다.

교황제의 검에는 다양한 스킬이 담겨 있으며, [신성한 지휘], [신성한 일격], [법령 생성], ……, [광역 치유] 등이다.

“굉장하군.”

어센션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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