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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14화 (414/434)

414화 : 대리인들과의 대화

은혁의 눈앞에 펼쳐진 목록에는, 무려 수십 가지의 보상 지원들이 적혀 있었다.

목록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자, 어떻소?”

코루민트가 내심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별로인데요.”

은혁이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별로라고 하셨소?”

“네. 이 정도 가지고 자랑스럽다는 듯이 제시하시다니.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만, 솔직히 좀 실망했습니다.”

은혁이 말하자 코루민트는 경악했다.

“무, 무슨! 보상 목록 중에는 우리가 다른 존재들과 전쟁할 때 쓰려고 한 것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소! 가령 초차원 진공포 같은 경우는 신의 본체에도 깊은 타격을 주는 것으로……!”

“목록 중에 엄청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은, 바꿔 말하자면, 전부 포함된 건 아니라는 뜻이죠?”

“아,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고.”

“아니라고요? 흐음. 게다가 몰락한 지고의 위상들에 대한 소환권은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

코루민트는 은혁이 전부 꿰뚫어 보고 있음을 눈치챘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소환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는 건가!’

폭식의 시대를 거치며 몰락한 지고의 위상 말고도, 다른 목적으로 스스로 몰락한 존재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먼 훗날을 예비하는 강대한 존재들도 있다.

바로, 먼 훗날 즉, 오늘을 포함하여 플레이어가 100층에 근접한 날.

플레이어에 의해 드래곤과 성좌와 관리국이 약해지면, 플레이어들의 터전 곳곳에 존재하는 몰락한 존재들을 재상승시켜서 장악하려는 계획.

그리하여 100층탑을 지배하거나, 더 나아가 100층에 도전하는 최후의 플레이어를 산 채로 흡수하는 계획.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안 거지? 그것은 100층탑이 완공된 직후에 비밀리에 짠 계획인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모략은 심연에 가라앉았고, 은혁이 알 수 있었다.

“뭐, 수상쩍은 계획이 없는 종족은 없으니, 막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파고들진 않겠습니다.”

물론,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하는 소리였다.

“하여간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정말로 귀중한 것들을 전부 제시해도 여러분 파벌을 고를까 말까인데, 정말 귀중한 것들 일부는 숨겼다면…… 저희로서는 실망감을 표출할 수밖에요.”

코루민트의 목소리에 분노가 깃들었다.

“이 오만한 필멸자 놈! 파벌 고르기를 빌미로 이득을 최대한 뜯어내겠다는 거로구나!”

“그러면 안 됩니까?”

은혁은 뻔뻔하게 되물었다.

“이래저래 최종 결전을 앞둔 이 시점에서 보상을 아끼는 당신이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이는데요. 말 나온 김에 확실히 하죠.”

은혁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100층 클리어는 여러분 기준에서도 엄청난 대사건입니다. 그리고 100층 클리어가 가능한 건 지고의 위상이나 드래곤 컬트, 성좌 연합이 아닙니다. 관리국조차 아닙니다. 오직 플레이어만이 가능합니다. 즉.”

은혁은 허공에 뜬 보상 목록을 코루민트 쪽으로 밀어냈다.

“이 정도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크윽……!”

“하지만 바로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시간을 좀 드리죠.”

은혁이 다른 파벌의 대리인들을 보며 말했다.

“다른 두 파벌의 이야기도 들어 보고, 최종 결정 내리겠습니다. 잠시 뒤에 뵙죠. 다음으로 드래곤 컬트 쪽과 대화를 나눠 보겠습니다.”

“잠……!”

그러자 코루민트의 목소리가 끊기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밀려났다.

그리고 대기 중이던 다른 영체가 다가왔다.

-드래곤 컬트측 대리인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적룡왕 그랑피네온이다.”

드래곤 컬트 전체를 통틀어 사실상 최강자다.

오직 황룡파의 수장만이 그나마 적룡왕에 버금간다고 할 정도.

“오…….”

“으음…….”

은혁과 염훈마저 기세에 조금 밀렸다.

협상에 문제가 없도록, 일부러 영체 상태로 대화하도록 미션이 강제하고 있었음에도 특유의 기운이 느껴졌다.

“결론부터 말하지. 우린 아니, 나는 너희가 어느 파벌을 고르건 크게 상관없다.”

“어째서입니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뭐, 좋다. 아마도 이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설명이겠지.”

적룡왕은 잠시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100층을 정복하면 소원을 이룬다고 하더군.”

“그렇습니다. 100%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아마 맞을 거다. 총관리자라는 자와 몇 번 그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도 있지. 플레이어가 100층을 클리어하면 소원을 이룰 권한이 주어진다.”

“……!!”

이는 엄청난 정보였다.

회귀 지식으로도, 심연의 기억에도, 100층 클리어 보상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는 없었다.

‘근데 좀 이상하네.’

은혁은 회귀 전 이지 루트를 탈 때도 이와 관련된 대화를 나눈 적 있다.

하지만 그때는 적룡파의 수장인 그랑피네온이 대리인으로 나오지 않았었고, 이렇게까지 염세적인 태도도 아니었다.

“너희가 다른 파벌을 고르고, 우리 파벌, 드래곤 컬트를 공격하여 멸망시키려 한다고 해보자. 그 경우 우린 소멸하거나, 큰 피해를 볼 것이다.”

그랑피네온이 냉철하게 분석했다.

“반대로, 너희가 우리를 선택하고, 우리의 도움을 받아 너희가 100층을 클리어했다고 치자. 그러면 너희가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겠지? 그 소원으로 우리의 존재를 지워 없앨 수 있겠지.”

“음? 왜 우리가 직접적으로 여러분을 없애는 소원을 빈다고 생각하십니까?”

“직접은 아니더라도, 100층탑의 존재 이유는, 플레이어를 시험하기 위한 것. 100층을 클리어한 플레이어가 나와 소원을 비는 순간, 100층탑은 의미를 잃는다. 100층탑은 역할을 다한 거니까. 그 경우, 관리국은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까?”

“…….”

“우리를 해방시키거나, 아예 없애려 들거나, 아니면 영원히 100층탑 내부에 그냥 가두어 버리거나 하겠지? 그밖에 다른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느 쪽이건 우리로서는 생존 및 존립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그랑피네온은 한숨을 또다시 내쉬었다.

“그러니, 너희가 무슨 선택을 하건, 별로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은혁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하, 왜 회귀 전과 다른지 알겠다.’

회귀 전의 은혁은 클리어 가능성이 낮았다.

그래서 격이 낮은 자가 대리인으로 나왔고, 그리 허무감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은혁의 클리어 가능성이 극도로 높기에, 오히려 그랑피네온이 염세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럼, 저희에게 아무런 보상도 주지 못하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는 않다. 방금 말한 내 넋두리는 내 개인적인 것. 드래곤 컬트 전체는 여전히 그대와 함께하길 원한다.”

그 말에 염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그럼 대리인으로서 개인적인 넋두리는 하시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내 마음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

“보상 목록은 여기 있다.”

지고의 위상 측이 제시한 것에 비하면 양은 적었지만, 질적으로는 훨씬 더 엄청난 것들이었다.

-9성급 아이템 청룡왕의 케이프.

-9성급 아이템 흑암마룡검.

-신화급 1회용 아이템 우주를 채색하는 물감.

…….

…….

-전설급 1회용 아이템 끝없는 우물의 소유권.

-성좌 추방권 3개.

-무한의 터널 소환권 3개.

‘와우.’

은혁도 내심 감탄사를 터뜨렸다.

지고의 위상 측이 제시한 것보다 몇 배는 더 좋은 목록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흠흠…….”

은혁은 생각하는 척했다.

“은혁아. 그냥 드래곤 컬트 편 맺는 게 낫겠는데?”

염훈이 소곤소곤 말했다.

하지만 은혁은 고개를 젓고, 코루민트에게 했던 것과 같은 말을 했다.

단, 최대한 완곡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고, 적룡왕은 화를 내지 않았다.

“잠시 뒤에 다시 뵙죠.”

“그러지.”

스르륵.

그랑피네온이 물러났다.

“마지막은 성좌 연합이군.”

-성좌 연합 측 대리인이 나타났습니다!

“반갑습니다. 성좌 연합의 대리인으로 나온 지혜의 성좌, 와이즈랜더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강은혁. 이쪽은 염훈입니다.”

“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두 분의 명성은 성좌 연합에서도 자자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죠. 저희가 성좌 연합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네. 이 정도로 높은 층에서는 성좌 연합이 가장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성좌는 운명치 문제로 쉽게 활동하지 못한다.

단, 90층~99층 영역에서는 그 제약이 확 줄어든다.

비유하자면, 성좌 기준에서는 1층이 고산지대고, 반대로 99층이 산소가 넉넉한 지상 환경에 가깝다.

“그러므로 성좌 연합을 택하는 게 가장 합리적입니다.”

“그렇군요.”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혜택을 드릴 수 있습니다.”

와이즈랜더는 포상 목록을 띄웠다.

-죽음의 성좌, 모티스 소환권 3장.

-무기명 성좌 계약서 3장.

-번개의 성좌, 블릿츠 데바의, ‘필중의 뇌창’ 대여권 10장.

…….

…….

-화염의 성좌, 아브러스 플레임 소환권 3장.

-9성급 아이템 무제한 표창.

-성좌 설득권 3장.

‘흠. 나쁘지 않군.’

드래곤 컬트가 제시한 것과 가치는 비슷하지만 1회용 계열이 더욱 많았다.

“잘 봤습니다.”

제한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다.

은혁은 대리인 셋을 전부 불렀다.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실, 설마설마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은혁의 말에 대리인 셋은 궁금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은혁은 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강해진 모양이군요. 여러분 모두 제 기대 이하 수준으로 약하며, 제안해 주신 목록의 수준 또한 많이 낮습니다.”

옆에 있던 염훈이 펄쩍 뛸 정도로 무도한 폭탄 발언이었다.

“너무하는군. 그런 식으로 우리로부터 보상을 더 뜯어낼 수 있을 것 같소?”

지고의 위상 측 대리인인 코루민트가 빈정거렸다.

은혁은 피식 웃었다.

“하하하. 그건 여러분 수준을 알기 위해 관찰한 것이었을 뿐, 정말로 필요해서 본 건 아닙니다.”

그 말에 드래곤 컬트 측 대변인인 그랑피네온이 미심쩍어했다.

“그건 좀 지나친 말 같은데. 그게 정말 필요 없단 말인가?”

“네. 여러분이 가진 무구와 아이템의 위력을 다 합쳐도 제 세븐 칼리버 한 방 위력보다는 약할 겁니다.”

이번에는 성좌 연합 측 대변인인 와이즈랜더가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가 제안한 모든 것보다, 당신 무기 한 방의 위력이 더 강하다고 하신 겁니까?”

“네.”

“허세도 정도껏 부리셔야지.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이런 겁니다.”

파앗!

은혁은 90층 대기실 밖으로 [그림자 도약]을 펼쳤다.

다차원성계의 진공 공간이었지만, [심연의 심장]마저 얻은 은혁은 이제 맨몸으로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었다.

“[심연의 터널].”

파앗!

은혁은 이제 까마득한 아래인 심연과 90층을 왔다 갔다 하며 이동할 수 있었다.

심연에서는 물리법칙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초고속 이동이 가능했으므로.

즉, 심연에서 초장거리 이동을 1초 남짓 한 뒤, 다시 90층으로 되돌아오고, 다시 또 심연에 가서 이동한 뒤 90층으로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무한한 거리를 아주 짧은 순간에 이동할 수 있었다.

“으음.”

“인상적인 이동기군.”

“한데 뭘 하는 거지?”

대리인들이 중얼거린 뒤 염훈을 바라봤다.

아는 게 있느냐는 눈초리였지만.

“아니, 저 녀석이 또 뭘 하는 거지?”

염훈은 염훈대로 은혁이 떠난 방향을 보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은혁은 중앙 항성까지 이동했다.

그러더니 교황제의 검을 꺼냈다.

‘해보자!’

“으랴아아압!!!”

쓔우우우웅!!

냅다 교황제의 검을 중앙 항성에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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