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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22화 (422/434)

422화 : 94층 클리어

“[광풍흡성기류장].”

휘오오오오오오오……!!

진공의 태풍이 일으키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힘.

은혁은 일부러 자신이 쓰는 스킬의 위력을 많이 낮춰서, 힘의 균형을 맞게 했다.

‘[광풍흡성기류장]으로 죽이면 곤란해. 무력화만 시켜야 한다.’

은혁은 왼손으로 [광풍흡성기류장]을 신중히 유지한 상태에서, 선즈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

“[저격].”

투쾅!!

화염탄이 진공의 태풍의 중핵의 살짝 옆을 스쳐 지나가게 했다.

푸확!!

-몰락한 지고의 위상, 진공의 태풍이 무력화되었습니다!

공기층에 구멍이 뚫리면서 진공의 태풍은 그대로 무력화되었다.

“자, 마지막이군! 초차원의 실이었던가? [심연 도약]!”

파앗!

놀랍게도, 몰락한 지고의 위상, 초차원의 실은 도망치지 않았다.

-잠깐! 내 말을 들어보라.

“시간 끌려는 수작이면 고통스럽게 제압하겠다.”

-힌트! 힌트가 궁금하지 않은가!

“다음 층의 힌트 말인가?”

-그, 그렇다!

“딱히? 걱정했던 것보다 너무 쉬워서.”

은혁은 약간 허무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어려운 시험이라는 소문을 듣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너무 쉬워서 과잉 준비를 한 기분이랄까.

-으으. 그럼 99층에 대해서 말해주겠다. 99층에 대해서는 모르지 않는가?

“음?”

확실히 99층은 ‘???’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맞아. 그것만은 나도 몰라.’

회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스테이지일 것이라 추측할 뿐.

하지만 은혁은 협상을 위해 전혀 궁금하지 않은 척했다.

“난이도가 94층보다는 높겠지. 하지만 걱정스럽진 않은데? 만화 주인공이 할 법한 허세처럼 들리겠지만, 난 아직 내 전체 힘의 10%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을 부르지 않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크게 허세도 아니었다.

-제한 시간 : 1분 31초…….

-제한 시간 : 1분 30초…….

-제한 시간 : 1분 29초…….

“시간 끌지 말고 바로 말해. 말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죽이겠다. 내가 염훈이랑 힘을 합치면, 너를 죽인 다음 부활시켜서 정보만 뽑아 먹는 것도 가능하거든?”

-으으, 날 죽이면 미션 실패 아닌가?

“나는 100층탑을 존중하기 때문에 미션의 성공 실패 판정 자체는 안 건드리고 있지만, 사실 [시스템 해킹 2.0]으로 판정을 잠깐 미루는 건 가능하거든? 미션 판정을 살짝 얼린 다음, 널 죽이고, 부활시키면 된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기준에서도, 죽였다가 되살린 뒤 정보를 뽑아내겠다는 식의 협박은 상당히 무서운 협박에 속했다.

-으윽, 99층의 메인 미션은 ‘강림’이다.

“누구에게, 뭐가 강림하는데?”

-거의 모든 성좌가 너의 동료인 염훈에게 강림하려 든다! 그리고 너와 싸움을 붙인다! 그게 99층의 정체다!

“뭐라고!!”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 은혁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졌다.

‘맙소사. 이건 예상 못 했네.’

설마 성좌 연합이 그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

-성좌 연합이 악한 집단은 아니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거다. 최후의 시험이기 때문에 기존의 도덕 관념을 버리는 거다.

“과연. 오히려 일리 있군.”

강은혁이 염훈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성좌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은혁의 정신을 가장 잘 뒤흔들 수 있는 최후의 시험을 99층에 준비해 둔 것이다.

‘워우, 상상만 해도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은혁은 마음을 놓았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래서, 대처법은?”

-간단하다. 염훈을 데리고 99층에 가지 않으면 된다.

“기왕이면 함께 클리어하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도 있다.

“뭐지?”

-나를 너의 부하로 삼아다오. 나는 ‘초차원의 실’이다. 가능성의 분기점에서 태어난 기적 같은 존재지.

“보통은 자기 입으로 자신을 기적 같은 존재라고 하진 않던데.”

-그런 의미가 아니라 매우 드문 존재라는 것이다. 네가 날 부하로 삼아 준다면, 성좌들이 강림하려는 그 순간에 맞춰 [초차원 진동]을 쓸 수 있다. 그 경우, 성좌들은 네 동료인 염훈을 표적 삼아 들어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떤 원리로?”

-성좌들은 염훈과 계약한 게 아니라, 억지로 강림하려는 것이기에, 차원 계면을 따라 염훈에게 쏟아져 들어가는 방식을 쓸 것이다. 내가 그 순간에 맞춰 [초차원 진동]을 쓰면 다 막진 못해도 놈들은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 틈에 놈들을 내가 처리하라는 거군.”

-그렇다.

성좌가 염훈을 노리고 차원 계면을 타고 온다면, 오히려 한 방에 싹 쓸어버릴 계획도 있었다.

‘당장 사이오닉 런처만 최대 출력으로 쏴도 효과적일 것이고.’

은혁은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너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3대 파벌의 대리인들이 대화를 나눈 것을 기억할 것이다. 조심성 없이 소리로 대화하더군. 나는 [초차원 진동]을 응용하면 다차원성계상의 모든 파동을 감지할 수 있다.

“아하, 소리도 파동이니, 엿들었다는 소리군.”

은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이코메트리] 스킬로 검증해 봤다.

‘진실만 말하고 있군. 의외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너는 다른 인간들을 괴롭히거나 죽인 적 있나?”

-없다. 대부분의 시간을 차원의 틈새 속에서 반수면 상태로 지냈으니.

“좋아. 그럼 너를 부하로 삼겠다. 그 대가로 원하는 것이 있나?”

-100층에 도달하게 해다오. 그것은 다른 지고의 위상들이 이루지 못한 엄청난 업적! 그것만으로도 나는 몰락한 지고의 위상을 벗어나, 다른 지고의 위상들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가능할 터.

“뭐, 그러든지. 하지만 확답은 못 한다. 100층은 관리국 본부가 있는 곳이라, 지고의 위상은 사절이라고 하면, 떼어 놓고 가는 수밖에 없어.”

-알고 있다. 그래도 시도는 해다오.

“좋아. 그러지. 충성을 맹세해라.”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몰락한 지고의 위상, 초차원의 실이 강은혁 플레이어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파앗!

초차원의 실은 말 그대로 실처럼 변해서 은혁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진짜 실이네.”

-몰락한 지고의 위상들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94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메시지를 본 은혁은 [텔레파시]로 초차원의 실에게 말을 걸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

‘물론이다.’

‘잘됐군.’

은혁은 초차원의 실을 쥔 채, 차원의 낚싯대를 타고 다시 염훈 곁으로 돌아갔다.

“해냈구나! 한참 안 와서 걱정했네.”

염훈이 기뻐하자, 은혁은 초차원의 실을 선물했다.

“지니고 있어라, 염훈.”

“응? 뭐야, 이거. 보통 실이 아니라…… 지고의 위상 같은데?”

성황제인 염훈은 한눈에 간파해 냈다.

“맞아.”

은혁은 초차원의 실로부터 들은 사실을 전해 줬다.

“으음. 99층에 가면 성좌들이 나를 노린다는 건가.”

“아마도.”

“확실해?”

“확실치는 않아.”

초차원의 실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또한 속았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아, 메탈 서전트에게 물어봐야겠군.’

메탈 서전트는 얼마 전 금속 차원의 성좌가 되었다.

움브라는 심연에 있으니 성좌 연합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메탈 서전트는 새로이 성좌가 되었으니 성좌 연합에서 연락이 갔는지도 모른다.

‘메탈 서전트. 혹시 성좌 연합과 관련하여 새로운 정보가 있나?’

은혁은 메탈 서전트와 빠르게 교신을 나눴다.

그러자 메탈 서전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현재 성좌 연합 측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하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저는 성좌 연합에 가입 대기 상태입니다, 주인님.’

‘그렇군. 나중에 알게 되면 연락 다오.’

일단 교신을 끊었다.

99층이 염훈에게 특히 위협이 될지 아닐지는 확실치 않은 상태.

“어떻게 할래? 빠질래? 아니면 같이 초차원의 실의 조언대로 할래?”

“당연히 빠질 생각은 없어.”

염훈은 초차원의 실을 손목에 칭칭 감았다.

“근데 은혁아. 지금 든 생각인데.”

“응?”

“내가 이걸 갖고 있으면, 성좌들이 역으로 너를 노리고 강림하려 들지 않을까?”

“그건 불가능할 거야.”

은혁은 히죽 웃었다.

[운명의 지배자] 패시브 스킬과 [심연의 심장]을 가진 은혁에게 성좌가 직접 강림을 시도하는 것은, 활화산의 분화구 속으로 사람이 뛰어드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 될 테니까.

“그럼 됐다!”

염훈이 호탕하게 자신의 흉갑을 두들겨 보였다.

“내 정신력, 이 초차원의 실, 그리고 네 도움이 있으면 성좌 연합이 내게 강림하려 해도 견딜 수 있어!”

“좋은 각오다, 염훈.”

모르고 당하는 거라면 두렵지만, 초차원의 실이 알려준 정보가 있으니 대처할 계획과 용기가 생겼다.

“그럼 다음 층으로 가자고!”

* * *

-95층 : 허무의 보물창고 (드래곤 컬트)

은혁과 염훈은 95층에 도착했다.

촤르륵.

게이트에서 발을 내딛자마자 금화의 언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그곳은 거대한 황금과 보물의 전당이었다.

이야기 속 드래곤의 영역에 어울릴 법한 장소로,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금화와 오아시스의 물방울보다 많은 다이아몬드, 그리고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 진주 등 수많은 보석들이 샐 수 없이 많이 깔려 있었다.

“어서들 오시오.”

황금색 곤룡포를 입은 장년인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황룡파의 수장인 골탠스포드라고 하오. 여러분을 시험하는 역할이지.”

황룡파는 적룡파와 함께 드래곤 컬트를 양분하는 최강의 집단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위대한 골드 드래곤, 골탠스포드.”

은혁과 염훈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눈치챘겠지만, 이곳은 황룡파의 본거지이기도 하다오.”

골탠스포드가 주변 경치를 보며 말했다.

“어떻소? 솔직히 대단한 장관 아니오?”

“그렇군요.”

은혁은 운명의 사도였기에, 이곳에 모인 금화 하나하나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강력한 열국 간에 사용하던 신용 금화, 위대한 제국의 기념주화, 차원이 멸망하면서도 파괴되지 않았던 금고에서 인양한 금화 등등.

가장 밑에 깔린 하찮은 금화조차도 깊은 역사와 힘을 지니고 있었다.

또, 따로 놓아둔 보물상자 속에는, 사실상 수명이 무한에 가까운 드래곤들조차 감탄할 만한 권능과 기적이 담긴 보물들이 있었다.

“다 무의미하다네.”

골탠스포드가 말했다.

“자네가 100층탑을 정복한 그 순간부터,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지.”

“100층탑 클리어한 뒤의 소원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 어떤 금화도, 그 어떤 보물도 원하는 걸 즉시 이루는 소원에 비할 바는 아닐 걸세.”

“다른 존재에게 위해를 끼치는 소원을 빌 생각은 없습니다만…….”

“후후. 자네가 아무리 선한 마음을 품어도, 100층탑이 클리어되는 순간 100층탑은 존재 의미가 매우 퇴색하게 되는 법이지. 그 안에 초대받은 혹은, 끌려와 갇힌 우리 모두 또한 마찬가지고.”

골탠스포드는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은혁은 냉소적으로 답했다.

“징징대지 마십시오.”

“뭐?”

“소멸의 위기 앞에 감상적으로 변하신 것 같은데, 인간 입장에서는 좀 웃기게 들립니다.”

“설명해 보게.”

“인간은 100년도 못 삽니다. 그나마도 자유롭게 살지 못합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운명의 사슬을 끊고 사는가, 아니면 운명을 직시하고 살아가는가…… 이런 의문과 더불어 살다가 그냥 죽을 뿐이죠.”

“…….”

“그런 인간 앞에서, 100층탑의 끝이 보인다느니, 이 모든 보물들이 의미를 잃을 것 같다느니 하는 감상적인 소리로 인간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무한한 수명을 지닌 최강의 생물로 살아왔으면서, 존재의 소멸 위기가 가장 가까이 다가왔다는 이유만으로 징징거리지 말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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