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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423화 (423/434)

423화 : 95층 클리어

은혁의 폭풍 같은 비판에 골탠스포드는 바로 반응을 못 하고 주변의 금화를 바라봤다.

‘유한자가, 사실상 불멸자인 나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하다니. 그리고 골드 드래곤의 자존심인 이 수많은 보물들을 비웃다니.’

이 보물은 드래곤 컬트가 모아 온 업적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과 같다.

골탠스포드는 보물들을 보여 주며, 드래곤 컬트가 쌓아 온 모든 업적과 존재의 소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은혁은 그것을 징징거림으로 치부했다.

‘모든 것은 소멸한다. 그동안 최강 종족으로서 살아왔다면, 소멸의 위기에 대해 징징거리지 말고 그냥 운명을 받아들여라.’

가히 독종에게 어울리는 사상.

골탠스포드의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은혁뿐이었다.

지켜보던 염훈은 조마조마해했고, 골탠스포드는 머쓱한 기색을 보였다.

“매우 가차 없군, 자네.”

“미션이나 보여 주시죠.”

“……이 모든 걸 그냥 소멸시키긴 아까운 일. 그래서 만든 미션일세.”

미션창이 개방되었다.

<95층 메인 미션 : 허무의 보물창고에서의 선택>

-목표 : 골탠스포드가 제시하는 선택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선택에 따라 다름.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5분.

“선택지는 다음과 같네.”

-A.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또는 일부의 보물을 지구에 넘긴다. 그 대가로 아무것도 줄 필요 없다.

-B. 보물을 거절한다. 그 대신 그 선택을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손해 볼 게 없는 미션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미션을 진행하는 중이니, 합의해서 단 하나의 선택만 해야 하네. 둘 다 따로 고르는 건 허용하지 않겠네. 5분 안에 합의해서 고르도록.”

그 말에 은혁과 염훈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

“난 정했다, 염훈.”

“나도.”

“보아하니 같은 선택인 것 같네.”

“음. 네가 아까 저 황룡파 수장한테 꼽주는 거 보고 나도 느낀 바가 있거든.”

“그래? 그럼 동시에 선택하지. 하나, 둘, 셋!”

“B를 고른다!”

-B 선택지를 선택하셨습니다!

-황룡파의 모든 보물을 거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허어, 정말 의외군.”

골탠스포드가 어이없어했다.

“왜 B를 골랐나?”

“염훈. 네가 설명해 봐라.”

은혁은 염훈에게 기회를 넘겼다.

“어? 나? 음, 글쎄. 말로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염훈은 목덜미를 긁적이며 골탠스포드에게 말했다.

“제가 B를 고른 이유는, 그냥 A가 끌리지 않아서, 관심이 없어서입니다.”

“관심이 없다니. 그리고 자네가 관심이 없더라도 지구의 대다수 존재는 보물을 원할 텐데? 저 보물들에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모든 불평등의 해답이 될 수 있는 것들조차 포함되어 있단 말일세.”

“남이 준 거잖아요.”

“뭐?”

“위대한 드래곤과의 기연과 위대한 선물 받기…… 이런 건 게임과 현실의 경계인 100층탑에서나 의미가 있는 거죠.”

염훈은 인간으로서 말했다.

“인간의 경제 문제, 질병 문제는 인간의 것입니다. 극복 못 하고 멸망한다면 그거야말로 인간의 운명이겠죠.”

“……!”

골탠스포드는 내심 놀랐다.

“매우 자주적이군. 오만한 마음을 내려놓고, 단순히 좋은 마음으로 선물한다면? 그래도 거절하겠다는 건가?”

“무례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거절합니다. 너무 과도한 선물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라는 말이 있죠. 아무리 좋은 마음이라도.”

“으음.”

“보물을 바깥에 선물함으로써, 지구인을 드래곤의 물질적, 정신적 후계자 비슷한 걸로 만드시려는 모양인데, 안 통합니다. 그런 과도한 선물은 오히려 인류의 발전 가능성을 떨어뜨린다고 봅니다.”

염훈이 말을 마쳤다.

은혁은 감탄하면서도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야, 염훈. 근데 너 왜 말투가 나랑 비슷해졌냐?”

“뭐래? 네 말투에 특허라도 있냐?”

“지금! 지금도 비슷해졌어!”

“……네가 떠나고 성황제 노릇 하느라 말투가 좀 변했다. 됐냐?”

“흠, 진짜 마음고생 심했나 보네.”

“알면 보상을 해주든가.”

“그 방법은 금융 치료뿐이지. 아, 근데 어쩌나. 우리 염훈, 드래곤의 보물조차 싹 다 거절해 버렸네. 금융 치료가 안 통하는 몸이 된 거 아니냐?”

“야이……!”

염훈이 티격태격을 시작하려 하자, 은혁은 골탠스포드를 바라봤다.

“좀 주시죠.”

“음? 아니, 방금 안 받는다고…….”

“지구에 넘기는 선택지를 거부했지, 제가 받는 선택지는 거부 안 했습니다.”

“…….”

“여기서 싸워도 별 상관 없는데.”

“깡패가 따로 없군.”

골탠스포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차피 100층탑 클리어 앞에서는 다 무의미하다면서요? 무의미한 금속 조각이라 생각하고 넉넉히 주시죠.”

“…….”

골탠스포드는 당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본래 이번 미션의 의의는, 플레이어들에게 아까움, 안타까움, 아쉬움 등의 감정을 복합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보물전을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 흔들릴 테니까.

하지만 은혁과 염훈은 이미 그런 단계를 초월했다.

1층부터 95층까지 올라오면서, 강해진 것은 몸만이 아니다.

우정, 희망, 투쟁, 실망, 좌절, 극복 등.

보통 인간이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시련들을 모조리 견디고, 멋지게 클리어하면서 올라왔다.

이제, 은혁과 염훈의 정신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초월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와 있는지도 모른다.

‘대단하군.’

드래곤들의 신화 중에도, 초월자와 대면한 드래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신화 속 드래곤은 초월자를 마주한 대가로 더 이상 드래곤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이 플레이어들은…… 어쩌면……?’

“야, 은혁아. 이제 와서 삥을 뜯냐?”

“흠흠. 내 사리사욕이 아니라…….”

“뻥 치고 있네! 이젠 안 통해, 인마!”

“아니야…….”

“아니긴 무슨!”

이들은 여전히 인간 청년들처럼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골탠스포드는 은혁과 염훈을 보며 생각했다.

‘즉, 플레이어는 기존의 지구인으로서의 형질을 유지한 채, 몸과 마음을 초월자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게 하는 존재인 걸까? 100층탑은 그걸 위해 설계된 것이고?’

촤악!

촤아악!

상념으로부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은혁과 염훈은 금화를 서로에게 뿌리며 싸우고 있었다.

마치 눈싸움을 하는 것 같은데, 표정은 세상 진지했다.

“이거나 먹어라!”

“싫다!”

세상에 둘도 없는 금화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촤륵!

와장창!

“아, 그, 그 금화는……!”

골탠스포드는 안타까웠다.

플레이어들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미션인데, 정작 골탠스포드가 아쉬움을 견디지 못했다.

“그만들 두게!”

그러자 은혁이 비웃었다.

“왜요? 제가 100층 클리어하면 다 없어질 거니까 무의미하고 허무하다면서요?”

“아, 그건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잖나!”

“후후. 답 나왔네요.”

은혁은 금화 던지기를 멈췄다.

“인간도 사실 그렇게 삽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라는 질문을 많이들 듣죠. 그에 대한 답은, ‘아직은 안 죽었잖냐.’ 이거 말고는 딱히 없더라고요.”

은혁은 골탠스포드에게 말했다.

“그러니, 끝이 오기 전에 미리 무의미하다 하지 마십시오.”

“자네가 클리어하기까진 몇 층 안 남았잖나.”

“몇 층이 아니라 몇 초라고 해도, 미리 허무함을 끌어안을 필요는 없겠죠.”

“누구나 할 수 있는 훈계군.”

“그렇긴 하죠.”

골탠스포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은혁의 승리를 인정했다.

-95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양심껏 보물 좀 챙겨가게. 나는 이 허무의 금고에 남아서 더 생각해 볼 테니.”

“감사합니다. 그럼!”

은혁과 염훈은 작별인사를 하고 게이트로 향했다.

* * *

-96층 : 초소형 항성들의 트랙 (성좌 연합)

육상 경기용 트랙을 연상시키는 장소였다.

“잘 오셨소.”

정체를 알기 어려운 성좌의 화신이 서 있었다.

다만 천사 계열의 존재인지, 천사의 날개를 등에 달고 있었다.

‘방심하지 말자.’

지고의 위상, 초차원 실에게 들은 게 있었기에, 성좌 연합의 층에서는 긴장하기로 했다.

“본인은 천계에서 온 천계의 사자요. 하급 성좌로서, 이곳을 설명하러 왔소.”

“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곳 96층의 트랙은, 성좌 연합이 다차원성계의 일부를 심상 변환 시킨 것. 수백 미터 정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긴 거리를 상징하오.”

“과연…….”

트랙의 허공 곳곳에는 반짝이는 별 같은 게 있었다.

아마도 그 별들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실제 항성을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무력으로 싸우는 곳이 아닌, ‘속도’를 겨루는 곳이오.”

그 말과 동시에 미션창이 떴다.

<96층 메인 미션 : 함께 달리기>

-목표 : 다차원성계를 베이스로 한 트랙에서 성좌들을 상대로 2인 1조 함께 달리기를 할 것. 먼저 골인 지점에 돌아오면 승리.

-성공 시 보너스 : 없음.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제한 시간 : 3분.

“보면 알겠지만, 이어달리기가 아닌 둘이 동시에 함께 달리기요.”

“함께라…….”

“둘 중 한 명이 더 빠르건 느리건 함께 골인에 도달해야 골인으로 인정되오.”

“우리 둘이 손잡고 발 맞춰 뛰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업거나 하는 식으로 동시에 골인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군요?”

“잘 이해하셨소. 함께 달리며 성좌 대표로 나온 둘을 이겨야 할 뿐만 아니라, 한 바퀴 도는 시간이 3분을 초과해서는 안 되는 것을 명심하시오.”

“3분씩 걸릴 것 같진 않군요. 재밌어 보이는데. 안 그러냐, 염훈?”

은혁이 묻자, 염훈은 흠, 하는 소리를 내더니 질문했다.

“이거, 비행 같은 거 하면 안 됩니까?”

염훈이 묻자, 천계의 사자는 빙긋 웃었다.

“이 트랙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실제 트랙과는 달라서, ‘밟기’가 불가능하오.”

“음? 지면은 단단해 보이는데요?”

염훈이 시험 삼아 트랙을 향해 발끝을 꾹꾹 눌러 봤다.

스스슥.

“아!”

염훈의 발이 쑥 꺼졌다.

하지만 완전히 텅 빈 것처럼 몸 전체가 빠져들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구조구만.”

다리는 쑥 빠지는데, 그 밑에 보이지 않는 중력장이 있어 다리를 잡아 줬다.

즉, 이 트랙은 기존의 땅과는 다른 느낌으로 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두 분의 경쟁 상대는 이분들입니다.

파앗! 파앗!

사람 모습을 한 두 성좌가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나는 별의 성좌, 스트라비아라고 합니다.”

처음 인사를 한 이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청년.

성좌로서의 힘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지만 방심하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나는 시간의 성좌, 타임리스라고 합니다.”

반투명한 몸체에, 은색으로 깜빡거리는 성좌였다.

‘별의 성좌와 시간의 성좌를 상대로 달리기를 해서 이기라는 건가.’

은혁의 고민은 짧았다.

“무기나 스킬 사용은 문제없는 거겠죠?”

천계의 성좌에게 질문했다.

“물론입니다. 단, 상대를 직접 공격하는 행위는 절대 금지입니다.”

“알겠습니다.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 절대 소환].”

파앗!

은혁의 앞에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이 나타났다.

“앗!”

“으음……!”

염훈과 성좌들 모두 놀랐다.

90층 구간에 들어온 이래로 여태 맨몸으로 싸우던 은혁이 처음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을 꺼냈으니까.

“은혁아. 그 정도로 어려운 미션이야?”

“응. 그냥 두들겨 패는 거면 3분 안에 이길 자신이 있는데, 싸우지 말고 달리기는…… 솔직히 좀 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

트랙이 존재하는 이상, 트랙을 함부로 이탈하면 페널티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심연의 터널]을 이용해서 바로 골인지점으로 가는 꼼수는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읏차.”

철컹!

은혁은 드래곤 파워드 아머 2.0을 착용했다.

-두 분, 슬슬 출발선에 서시죠.

“아, 그 전에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정해야 합니다.”

원형 트랙 형태였기에, 한쪽을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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